EP.250 진정한 수련의 시작.
히든 퀘스트의 내용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좀 더 정확히는 특별할 게 없다기보다, 내 관심사가 아니라고 해야 하나.
< 히든 퀘스트 :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안다(1) >
- 위대한 곰의 제자라면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영민함을 가져야 합니다. 진정한 곰의 가르침을 웅용하여 스스로 새로운 스킬을 깨우쳐 보세요.
‘웅용이라니, 누가 보면 오타인 줄 알겠네.’
< 달성 조건 >
1. 시스템 창을 이용하지 않고 새로운 스킬을 익힐 것 (완)
2. 고미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지 않고 새로운 스킬을 익힐 것 (완)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역시 달성보상이었다.
‘진짜 아웅이랑 다웅이가 가진 스킬을 익힐 수 있다고?’
시험 삼아 대상을 선택해 보려던 찰나, 아랫줄에 있는 ‘비고’란이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 비고 : 대상선택은 취소가 불가합니다. 신중하게 선택해 주십시오.
이 자식이······. 너무한 거 아니냐.
스킬이 뭐가 있는지 살펴볼 기회는 줘야 할 거 아니야.
마트에 가도 시식 코너라는 게 있고, 자동차를 탈 때도 시승식이라는 게 있고, 게임을 살 때도 체험판이라는 게 있는데!
‘이런 상도덕도 없는 자식 같으니.’
나를 더욱 고민에 빠뜨린 건, 앞으로 이런 형태의 퀘스트가 몇 번이나 더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 번? 두 번? 어쩌면 아웅이나 다웅이의 스킬을 익힐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일단 고미는 제외하는 게 좋겠어.’
고미가 가진 스킬은 언제든지 익힐 수 있으니까, 당연한 결론이었다.
아웅이와 다웅이 중 누구를 선택할지 역시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다웅이는 무투파다.
즉, 스킬의 구성도 대체로 고미와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다웅이 전용 스킬이 있다고 해도 원조 아기곰의 스킬을 잘만 응용하면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 게 대부분일 테고······.
‘역시 아웅이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답은 아웅이였다.
게다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일 것 같은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웅이였고.
< 아웅이를 선택했습니다. >
- 큐어(A / Ex)
- 힐(A / Ex)
- 얼음 공예(A / Ex)
- 얼음 폭풍(A / Ex)
- 바람 칼날(A / Ex)
······.
‘음, 전부 A급으로 맞춰져 있네······.’
다만 최대치는 Ex······.
이게 아웅이의 현재 스킬 등급인가?
아니면 성장 한계치?
‘고미는 고미급인데, 아웅이는 그 자체로 등급 표기가 될 정도로 강한 건 아니구나.’
스킬 이름도 곰 어쩌고 하는 게 들어가 있지는 않고······.
확실히 관리자가 그 정도로 특별 대우를 해주는 건 고미 한 명뿐인 모양이다.
‘좀 너무하네. 아웅이랑 다웅이도 좀 더 신경 써 달라고.’
아무리 원조 아기곰이 특별하다지만, 도원결의까지 맺은 마당에 아웅이 다웅이도 조금 더 대우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유비’하면 관우 장비가 세트로 따라오는 것처럼, 세트 취급을 해달라고.
나는 그렇게 속으로 불만 아닌 불만을 늘어놓으며 아웅이의 스킬을 훑어봤다.
그리고,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 힐(A)을 선택하셨습니다. >
얼음 마법이니 바람 마법이니 하는 것들은 어차피 골라봤자 제대로 써먹지도 못할 것 같았다.
단독으로 사용하자니 훨씬 더 좋은 스킬이 많고, 이제와서 다른 스킬들과 시너지를 낼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어렵고.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주무기가 흑염대웅신검이라는 점이었다.
상식적으로 불꽃과 얼음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면,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일 확률이 높아 보이니까.
‘역시 치료 스킬이 가장 효율이 높지.’
어차피 내 진로는 정해졌다.
‘기곰술’을 바탕으로 한 곰사, 아니, 검사.
어줍잖게 마곰사 한 번 해보겠다고 새로운 실험을 해보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그보다는 몸으로 때우고 치료를 하는 게 낫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게 정답이었다.
지난번에는 어찌어찌 무사히 넘어갔지만, 가짜 고미와 싸우다보면 반드시 부상을 입을 거다.
게다가 앞으로 수행을 하다보면 다칠 일도 많을 거고.
‘그런데, 왜 자꾸 슬퍼지지?’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는 건, 너비아니를 구우며 올라오는 연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기곰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불판 위에 몸을 지지는 너비아니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한 눈물인가.
“후훗! 어떠냐, 이 몸이 가져온 선물이! 아주 맛있지 않느냐?! 다음 번에는 이 몸과 함께 엄마 아빠도 용궁에 가는 것이다! 이미 고북에게도 허락을 받아 놓았느니라!”
“아웅!”
“다웅!”
내가 스킬을 고르는 사이, 식탁에서는 한창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여보, 그럼 장사 하루 쉬고 아웅이 다웅이 데리고 다 같이 용궁 여행이라도 가볼까? 용왕님한테 선물도 받았는데, 우리도 뭐라도 해드려야지.”
용궁 효도 관광을 보내주겠다는 고미의 말에, 어머니는 소녀처럼 눈을 빛내며 벌써부터 고북 대왕에게 인사치레로 줄 선물을 고민하고 계셨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김태평 사장님은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왜 저러시지?’
평소 성격이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용궁 여행을 가자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인데 말이야.
“그런데 여보······.내가 횟집 사장인데, 용궁에 가는 게 예의에 맞는 행동일까?”
······.
고민했던 이유가 그거였던 겁니까, 아버지.
‘으음, 이런 걸 부전자전이라고 하는 건가.’
하지만 정작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터라,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군.
“어머, 생각해보니 그렇네.”
아버지의 날카로운(?) 지적에, 어머니 역시 잠시 턱을 괴고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두 분의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생선전도 있는데?”
어머니가 용왕이 횟집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제출하자,
“그렇네. 용왕님도 생선을 드시니까, 횟집을 한다고 화를 내지는 않겠어.”
아버지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 아버지······. 조금 더 정상적인 주제로 토론을 할 수는 없는 겁니까······.
“좋아, 결정. 그럼 조만간 가게 문 닫고 용궁 한 번 가자!”
“아웅!”
“다웅!”
아버지가 시원하게 결론을 내리자, 신이 난 아웅이 다웅이가 팔을 높이 치켜들며 만세를 불렀다.
가족회의(?)가 끝났다고 판단한 나는 이 기회를 틈타 내일 아웅이의 알바를 빼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아, 엄마. 혹시 내일 아웅이 좀 데리고 나가도 돼?”
“응? 왜?”
“아웅이랑 같이 확인해 볼 게 좀 있어서.”
나의 대답을 들은 어머니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 가지 조건을 덧붙이셨다.
“그래, 그럼 다웅이도 데리고 가.”
“응? 다웅이도?”
“응, 엄마 아빠야 원래 맨날 장사하던 사람들이라 그렇다 쳐도, 아웅이랑 다웅이는 좀 쉬어야지.”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본래 이 알바생 둘은 주 5일, 하루 6시간만 일을 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딱히 이 녀석들을 돌봐줄 사람도 없고, 둘만 집에 두고 나오려면 울고 불고 난리가 나서 매일 같이 아웅이 다웅이와 함께 가게에 나오신다고······.
‘음······. 훌륭해.’
근로기준법을 확실히 지키려고 노력하시는구나.
문제는 정작 아웅이와 다웅이가 엄마 아빠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지.
“어떻게 할래 다웅아, 같이 갈까?”
다웅이의 의사를 묻자,
“다웅!”
녀석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웅, 다웅!”
그리고는 홀 이곳저곳과 냉장고를 가리키며 열변(?)을 토했다.
“청소는 엄마가 해도 되고, 음료수도 엄마가 틈틈이 채워 넣으면 돼요. 다웅이도 놀다 와야지.”
이에 어머니는 기특하다는 듯 다웅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루쯤은 나가서 놀라고 권했지만,
“다웅!”
게으름뱅이 판다는 답지 않게 고개를 홱 돌리며 단호하게 어머니의 요청을 거절했다.
“다음에 다 같이 놀러 가자고? 다웅이는 절대로 가게 안 떠날 거예요?”
어머니의 질문에 다웅이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자신의 뜻을 명확히 밝혔다.
그런데······. 엄마는 어째서 다웅이 말을 저렇게 잘 알아듣는 걸까······.
“오오, 다웅이! 과연 이 몸의 동생답구나! 그렇지, 진정한 곰이라면 신의를 알아야 하느니라!”
게으름뱅이 판다답지 않은 성실한 태도에 감동한 원조 아기곰은 무려 다섯 개에 달하는 초코바를 다웅이게 내밀었다.
“좋다! 그렇다면 이 몸이 상을 주도록 하마!”
“다웅?!”
대량(?)의 숙성 초코바를 상으로 받은 다웅이는 대단한 보물이라도 하사받은 사람(?)처럼 곧장 포권을 취하며 원조 아기곰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오늘 보니, 지금처럼 장사를 해서는 아웅이 다웅이도 꼼짝없이 휴일없이 일을 해야 할 판이다.
김태평 사장님, 고옥분 여사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계속 연중무휴로 일만 하시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으음······. 엄마, 그러지 말고, 차라리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는 게 어때? 엄마 아빠 말고 아웅이 다웅이 생각해서라도.”
이에 나는 어머니에게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영혼 수확자에게 당해 쓰러지기 전, 두 분은 거의 연중무휴로 일을 하셨다.
주말은 물론이고, 명절 연휴에도 하루 이틀 빼면 빠짐없이 가게를 열었다.
공휴일에는 휴일 손님 놓치기 아깝다며, 평일에는 평일에 어떻게 문을 닫냐며 장사를 했다.
자식된 입장에서 그렇게 뼈가 닳도록 일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게, 어떻게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아이고, 집에서 가만히 쉬면 뭐하게. 할 것도 없어. 엄마, 아빠는 그냥 장사하는 게 제일 좋아. 심심하지도 않고.」
언제나 그렇게 말하며 가게 문을 열었지만, 사실 봉식이도 나도, 알고 있었다.
없는 형편에 대학원까지 가버린 아들놈에,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낳은 자식인 봉식이까지 챙기느라 정작 본인들의 삶에는 휴일이 없었다는 걸.
“이제 나랑 봉식이도 돈 많이 벌고, 엄마 아빠가 매일 일하면 아웅이 다웅이도 같이 못 쉬잖아. 엄마 아빠가 하루 쉬면서 아웅이 다웅이랑도 좀 놀아주고, 응?”
“수하가 말 잘했네. 어무니 아부지도 좀 쉬어야지. 이번 기회에 주 6만 합시다.”
“오오! 그렇다! 이 몸도 돈이라는 것을 벌고 있으니, 엄마 아빠도 조금 쉬는 것이 좋겠구나! 쉬는 날에는 가족 소풍을 가는 것이다!”
봉식이는 물론이고 자기가 얼마를 버는지도 모르는 고미까지 나서서 주 6일제를 주장하자,
“으음······.”
잠시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던 어머니가 어렵사리 입을 떼셨다.
“그럼 엄마랑 아빠가 가게 매출이랑 확인해보고 결정할게. 자식들한테 손 벌리면서까지 쉬고 싶지는 않아.”
“아빠도 동의. 그렇지 않아도 아웅이 다웅이 때문에 하루는 쉴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역시 자식들 벌어다 주는 돈 까먹으면서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아버지 역시 같은 생각.
“그리고 아빠 아직 젊다. 평균 수명이 80세인 세상인데, 아직 환갑도 안됐잖아. 요즘 세상에 아빠 정도는 노인정 가도 빠꾸 먹어.”
그리고는 나름대로 논리적인(?) 이유를 덧붙이시며 다시 한번 자식들에게 신세지고 싶지 않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알았어. 그럼 그 문제는 조만간 다시 얘기하고. 내일은 아웅이만 데리고 갔다올게.”
결국 다웅이의 고집을 꺾지 못한 나는 조금 불안하지만 아웅이만 데리고 던전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 * *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후, 나는 거짓말처럼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웅이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탓에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역시 전신의 기를 몇 번이나 쏟아부은 것으로 인해 몸에 적잖이 무리가 간 모양이었다.
문제는······.
‘개운해, 더럽게 개운해.’
‘피로야, 가라!’라는 끔찍하고도 감사한 스킬 덕분에, 기분이 나쁠 정도로 몸 상태가 좋다는 것.
눈을 뜨자마자 귓가에 ‘굴러라, 굴러!’라고 외치는 관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후 나는 평소와 같이 아침을 먹고, 아웅이와 고미, 봉식이를 데리고 문을 나섰다.
“아웅!”
평소와 달리 먼저 집을 나서게 된 아웅이는 아기곰 삼형제의 막내에게 ‘가게를 부탁한다!’고 말했고,
“다웅!”
이에 다웅이는 솜방망이를 바르쥐며 혼자서도 완벽히 가게 일을 돕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좋아. 오늘은 아웅이까지 데리고 가는 거니까, 진짜 제대로 수련하자.’
그래, 오늘부터 진짜 시작이다.
이제 혼자서도 가짜 고미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곰사가 되는 거야.
‘시작은 역시 만천화웅부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