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7 아웅이와 다웅이를 구해라.
“아웅! 아웅!”
언제나 점잖고 예의 바르던 아웅이는 보기 드물게 흥분해 있었고,
“다우웅!”
늘 반쯤 조는 듯하던 다웅이의 눈에서도 전에 없이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수, 수하! 아, 아무래도 가게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한눈에 봐도 평소와 다른 두 의형제의 행동에, 초콜릿색 솜뭉치는 가게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아니야, 고미. 기다려 봐.”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이 두 녀석이 이렇게 흥분한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이것 때문에 그래?”
아니나 다를까, 품 안에 있는 반도 복숭아를 꺼내기 무섭게 두 아기곰은 온몸의 솜털을 곰두, 아니, 곤두세웠다.
‘말버릇이 자꾸 고미를 닮아가네.’
이 녀석들이 어떻게 반도 복숭아의 냄새를 알아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마저 팽개치고 달려올 만한 일이라면, 역시 이것밖에 없어 보였거든.
성실함의 표본인 아웅이야 말할 것도 없고, 다웅이도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일을 내팽개칠만큼 무책임한 녀석은 아니니까.
첫째로는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두 번째로는······.
‘먹어보지도 않은 너비아니 냄새가 공포의 군주에 대한 두려움을 능가할 리가 없지.’
때문에 선과의 존재가 이 두 아기곰을 자극한 건 아닐까 하는 게 내 추측이었다.
어찌됐든 반도 복숭아는 원조 아기곰도 놀랄 정도로 진귀한 보물이니까.
“신기하군요. 아웅님과 다웅님도 선과의 냄새를 아시는 걸까요?”
꺼내기도 전에 이미 반도 복숭아의 존재를 눈치챈 듯한 둘의 반응에, 이강혁 씨는 조금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웅······. 참으로 신기하구나. 반도 복숭아는 이 몸도 몇 번 보지 못한 물건인데······.”
그때, 어머니가 황급히 두 아기곰의 뒤를 쫓아 뒷마당으로 달려오셨다.
“아웅아! 다웅아!”
표정을 보아하니, 갑자기 가게를 박차고 뛰어나온 두 아기곰 때문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다웅이는 원체 의욕이 없어서, 아웅이는 워낙 성실해서.
이유는 다르지만, 둘 모두 좀처럼 돌발행동을 하는 법이 없으니까.
“응? 아들? 우리 아웅이랑 다웅이가 형 보고 싶어서 뛰쳐나갔나 보네.”
하지만 우리를 발견하고는 이내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긋 웃음을 지으셨다.
“아, 엄마. 일단 이거 받아.”
이에 나는 손에 들린 용궁 잔칫상의 음식을 어머니에게 건넸다.
“응? 이게 뭐니?”
“이번에 일이 있어서 어디 다녀왔는데, 거기서 선물 좀 받아왔어.”
지금 나의 손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고급스러운 용궁 특제 선물함이 들려있었다.
고아한 멋이 느껴지는 원목 선물함의 겉면에는 힘찬 파도와 위엄있는 거북이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뭐니? 엄청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선물함 안에 가득 든 음식을 확인한 어머니는 놀란 듯 두 눈을 깜빡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세상에, 전 종류가 뭐가 이렇게 많아? 갈비도 있네? 게다가 이거 전부 방금 만든 것 같은데, 포장도 엄청 고급스럽고······. 누가 주신 거야? 고마워서 어떻게 하니.”
어머니의 반응을 본 아기곰은 한껏 오만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후후, 사실 위대한 이 몸이 친구에게 초대를 받았느니라. 거기서 맛있는 것을 잔뜩잔뜩 먹었는데, 엄마 아빠와 이 녀석들에게도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싶어 선물을 받아왔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고미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지만, 평소처럼 올려다보는데도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음, 어쩌면 고미가 유일하게 내려다보지 못하는 대상이 엄마일지도······.’
그렇게 새삼 공포의 군주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고미를 번쩍 안아 올리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구! 우리 고미가 엄마 아빠랑 동생들 생각해서 선물도 받아왔어요? 어쩜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예쁠까? 엄마가 내일 아침에는 우리 고미 좋아하는 계란말이 해줘야겠네! 또 뭐 먹고 싶은거 있어요?”
“오오! 계란말이라니! 역시 엄마는 위대한 이 몸의 마음을 아는구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밑반찬을 해준다는 말에, 먹보 아기곰은 또다시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기뻐했다.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엄마, 지금 바빠?”
“응? 아니, 그냥 그저 그래.”
“그럼 아웅이랑 다웅이 데리고 잠깐 화원 좀 갔다 와도 돼?”
“응? 그래.”
나의 질문에 어머니는 조금 의아해하면서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갔다 와라, 가게 일은 내가 돕고 있을게.”
봉식이는 자연스럽게 가게 안으로 들어가며 아기곰 둘과 근무를 교대했다.
“가자, 아웅아, 다웅아.”
* * *
“멍, 멍멍멍!”
화원에 들어서기 무섭게 케르베로스와 사랑이들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이 녀석들은 아직 선과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역시 아웅이와 다웅이의 코가 특별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자, 너희들 주려고 가져왔어. 이거 먹고 있어.”
이에 나는 언제나 화원을 지켜주고 토생원과 수다르 님의 손발이 되어주는 녀석들을 위해 용궁의 음식을 선물했다.
물론 이 녀석들이 평범한 강아지라면, 사람 음식을 먹이는 건 좋지 않은 행동이겠지.
하지만 연금술로 탄생한 마력 생명체라, 사람의 음식을 먹어도 딱히 상관이 없으니까.
“멍! 멍멍!”
파도와 거대한 거북이의 모습이 조각된 고급스러운 상자가 열리자, 강아지 오형제는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우리를 바라봤다.
잔뜩 흥분했으면서도 곧바로 그릇으로 달려들지는 않는 걸 보니, 확실히 평범한 개들과는 달랐다.
“역시 교육을 잘 받아서 그런지 예의가 바르네요. 이쪽은 제가 책임지고 먹이겠습니다. 아웅님과 다웅님에게 선과를 먹이시죠.”
이강혁 씨가 상자에 음식을 적당히 그릇에 나누어 담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에 나는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선과를 꺼냈다.
“아웅!”
“다웅, 다웅!”
영롱한 빛을 내뿜는 선과가 모습을 드러내자, 아기 백곰과 쪼꼬미 판다는 더욱 격렬하게 꼬리를 흔들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멍!?”
그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용궁의 잔치 음식에 정신이 팔려있던 댕댕이 오형제가 놀란 듯 두 눈을 치켜뜨며 선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선과의 효과가 굉장하기는 한가 보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력으로 만들어진 녀석들에게 이 선과는 무언가 본능적인 끌림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모양이었다.
“다웅!”
댕댕이 오형제가 선과를 노리는 듯 하자, 다웅이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녀석들의 앞을 막아섰다.
적대감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선과는 절대로 내줄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가 느껴지는 행동.
번역하자면 ‘안돼! 이건 절대 양보 못해!’ 정도 되겠군.
“멍!”
이에 댕댕이 오형제의 리더격인 삼돌이는 잠시 망설이다 사랑이들에게 무언가 명령을 내리듯 짤막하게 짖으며 몸을 돌렸다.
“멍!”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사랑이들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면서도 이강혁 씨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음, 서열이 확실하군.’
그렇게 짧은 소동(?)이 정리된 듯 하자, 나는 아웅이와 다웅이에게 각각 한 개씩 반도 복숭아를 나눠주었다.
“고미가 너네들한테 주고 싶다고 가져온 거야. 고맙다고 인사하고 먹어야지.”
“아웅!”
“다웅!”
선물의 출처를 명확히 하자, 두 아기곰은 고미를 향해 제꺽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우웅······. 그래, 어서 먹거라.”
감사 인사를 받은 고미는 조금 아쉽다는 듯 침을 꼴깍 삼키며 선과를 바라봤다.
‘음, 역시 맛있는 걸 포기하는 게 쉽지는 않나 보네.’
반도 복숭아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들어가는 길에 달콤한 과일이라도 사서 먹여야겠다.
잠시 후, 눈처럼 새하얀 백곰과 게으름뱅이 판다가 커다란 선과를 한입 베어 물었고,
‘역시······. 이건 이 둘을 위해 준비된 거였어.’
나는 초대 고북이 누구를 위해 이것을 준비했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 우웅!
반도 복숭아를 먹자마자, 녀석들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오, 오오! 역시 이 몸의 형제들답구나! 이렇게 빨리 효과를 볼 수 있다니!”
이어서 그 새하얀 빛이 빠르게 아웅이와 다웅이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원조 아기곰의 반응으로 보아, 아마도 저게 선과를 먹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았다.
그런데, 100년 동안 흡수해야 한다면······. 100년 동안 저렇게 후광을 내뿜으며 돌아다녀야 하는 걸까?
“아우우우웅!”
선과를 한입 베어 먹을 때마다 그 빛은 더욱 밝아졌고,
“다우우웅!”
한입, 한입, 선과가 사라져갈 때마다 두 아기곰의 입에서는 괴성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나왔다.
‘으음······. 역시 화원에 데리고 와서 먹인 게 정답이었네.’
반도 복숭아는 전설 속에나 나오는 선과다.
게다가 이 슈퍼 아기곰이 ‘진귀하다’고 평할 정도면, 그 가치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수준이지.
때문에 선과를 먹었을 때 뭔가 이상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녀석들을 화원으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괴성을 지르면서 빛을 뿜어댔으면······.’
당연히 그냥 신기한 구경 정도로는 안 끝났겠지.
바로 그때,
“아웅······.”
“다웅······.”
내 주먹보다 큰 선과 하나를 말끔히 먹어치운 두 아기곰이 졸린 듯 눈을 비비며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응?”
그리고 녀석들의 주위에는, 형형색색의 빛 덩어리를 머금은 새하얀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고미, 왜 이래? 괜찮은 거 맞아?”
금방이라도 파워업을 할 것처럼 괴성을 내지르다 갑자기 잠들어버린 두 아기곰의 모습에,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이, 이런!”
바로 그때, 고미가 번개처럼 자신의 머리털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이어지는 고미의 말에, 심장이 저만치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이 녀석이 솜털을 뽑는다는 건, 웅기조식이 필요한 상태라는 의미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상······. 웅기조식은 주로 주화입마에 준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사용되는 스킬이었다.
“반도 복숭아에 담긴 기(氣)가 이 몸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았던 모양이다! 이대로 두면 저 두 녀석은 일 년 이상은 지나야 깨어날 것이다! 아, 아니, 어쩌면······.”
상황은 다급했다.
하지만 고미는 보송보송한 솜털을 주먹에 쥔 채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선뜻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전에 없이 당황한 그 모습에, 사태의 심각성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침착해, 고미. 우선 상황을 설명해줘.”
“이, 이 녀석들의 기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커져 버렸다. 이, 이러면 둘 중 하나 밖에······.”
“뭐라고?!”
너무나 갑작스레 벌어진 응급 상황.
심지어 의술에 정통한 토생원도, 수다르 님도 곁에 없었다.
“이강혁 씨!”
이에 나는 반사적으로 용궁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었고,
“알겠습니다!”
이강혁 씨는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졌다.
“고미! 시간이 얼마나 있어?”
“기, 길어야 1각 이내로는 기혈을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 하, 하지만 누구를······.”
자신이 가져다 준 선물이 아웅이와 다웅이를 위험에 빠뜨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던 아기곰은 완전히 패닉에 빠져 버린 상태였다.
‘침착하자, 김수하.’
이에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평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지금 같은 상황에 나까지 당황하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웅이, 다웅이를 위해서도, 고미를 위해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만큼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
‘방법을 찾자, 할 수 있어.’
그 사이 시간은 벌써 1분 이상이 지나 있었다.
“수, 수하! 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지만 원조 아기곰은 자신의 두 형제 중 누구를 구해야 할지 여전히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잠깐만 기다려, 고미.”
토생원과 수다르님은 용궁을 수리 중이다.
이강혁 씨가 둘을 찾아 돌아오려면 최소한 5분은 걸리겠지.
어쩌면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르고.
아웅이와 다웅이의 운명을 운에 맡길 수는 없다.
‘좋아, 해보자. 할 수 있어. 아니, 해내야 돼.’
결론은 하나였다.
“삼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