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46화 (246/300)

EP.246 용궁 연회(4) : 갓-고미님의 원픽.

식탁 위에 늘어선 유기(鍮器)가 내뿜는 고급스러운 광택과 그 안에 담긴 형형색색의 요리들은, 먹을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절로 감탄사를 내뱉을만한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내가 아는 음식은 거의 없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큰 카테고리는 아는 음식 같은데, 구체적인 맛을 모르겠다고 해야 하나.

‘타락죽에 석류 만두라니.’

죽이면 죽이고, 만두면 만두지.

타락죽은 뭐고 석류 만두는 또 뭐란 말인가.

이름만 놓고 보면 석류로 만든 만두 같잖아.

‘앞으로는 먹을 거에도 좀 관심을 가져야겠네.’

먹는 게 인생의 목표인 아기곰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할 줄은 몰라도 메뉴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겠다.

‘그래도 내가 저건 알지.’

그나마 다행인 건, 이 궁중 요리로 가득한 한정식 상차림에, 내가 맛을 알고 있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고미가 절대로 싫어할 리 없는 것으로.

먹보 아기곰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스스로 양념에 몸을 던진 저 숭고한 자태.

짭쪼름하고 달달한 양념의 향기.

한입 덥석 베어 물면 입속에서 사르르 녹아버릴 것 같은 얇은 두께감.

티비에서 본 적 있다.

‘저건 분명 너비아니야.’

그리고 지금 나의 머릿속에는, 어릴 적 티비에서 본 냉동식품 광고의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궁중 불고기, 너비아니♩」

그래, 너비아니.

사실상 내가 이름과 맛을 모두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궁중 요리라고 할 수 있지.

‘설마 그 광고, 거짓말은 아니었겠지?’

내 기억이 맞다면, 분명 태정태세문단세 어쩌고로 시작해서 너비아니는 임금님이 먹던 궁중 불고기라는 설명이 나왔던 것 같다.

‘냉동식품보다는 확실히 맛있을 거야.’

게다가 대학원생 시절 아사 직전의 불쌍한 석사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었던 냉동식품 중 하나였던만큼, 맛도 확실히 알고 있다.

뭐, 냉동식품과 진짜 너비아니의 맛에는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든 이 연회상에 올라온 음식 중 내가 그 맛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요리니까.

그런데, 말하다 보니까 왜 이렇게 불쌍한 사람 같냐.

“고미, 고기 먹을까?”

나의 질문에 메뉴 선정에 실패해 잠시 실의에 빠져있던 아기곰의 눈동자가 다시 별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오, 오오! 그렇구나! 고기! 고기는 언제나 이 몸을 실망시킨 적이 없느니라!”

역시 이 녀석도 고기는 항상 옳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군.

갑자기 궁금한 건데, 곰이라 고기를 좋아하는 걸까, 아기라 고기를 좋아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아기에 곰이라서?

희대의 난제군.

나는 곧바로 유기그릇에 담긴 양념한 고기와 숯이 담긴 작은 화로를 앞쪽으로 끌어왔다.

‘고급스럽구만.’

1인용 화로라니, 티비에서 몇 번인가 본 것 같기는 한데,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다.

프라이팬에 냉동 떡갈비나 너비아니라도 구워 먹은 날이면, 오늘 하루 제법 사치를 부렸다고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오오······. 이것은······. 전에 엄마가 해주었던 갈비라는 녀석과 비슷한 냄새가 나는구나!”

익숙한 냄새가 풍기자, 아기곰의 꼬리가 설렘을 가득 담아 살랑살랑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작은 녀석은 무엇이냐?”

본격적인 숯불을 처음 접하는 아기곰의 꼬리가 호기심으로 쫑긋 일어났다.

부모님이 깨어났을 때 같이 먹었던 건 그냥 평범한 소고기 구이였고, 그 후에 해준 양념갈비도 집에서 만든 거라 숯불에 굽지는 않았으니까.

“숯불이라는 거야. 여기에 불을 붙이면······.”

“제가 붙여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흑룡 셰프가 손가락 끝에서 불꽃을 튕겨 아기곰을 위한 미니 화로에 불을 붙여주었다.

“흠······. 제르날, 훌륭하구나. 앞으로도 고미님을 잘 보좌하거라.”

그 모습을 본 동이님은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감사합니다, 주군.”

이유찬 씨는 정중히 예를 갖추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음······. 무려 블랙 드래곤이 휴대용 가스레인지 역할을 수행하는 걸 차기 드래곤 로드가 칭찬하다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호오오······. 이것은······.”

벌겋게 달아오르는 숯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던 아기곰은 곧바로 수다르 님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명을 요구하는 그 눈빛에, 수다르 님은 인자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그 회색 덩어리는 숯이라고 하옵니다. 요리에 사용하면 직접 불로 굽는 것과는 다른 또 다른 맛을 내주지요.”

“오오, 수다르, 역시 너는 아는 것이 많구나.”

- 치이익!

얇게 저민 고기가 화로 위에 오르자, 고기를 구울 때 나는 특유의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향긋한 숯내와 고기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오, 오오오! 그렇구나, 확실히 그냥 고기를 구울 때와는 다른 냄새가 풍긴다.”

그 향기를 맡은 아기곰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냄새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으, 으음······. 엄마가 만들어준 것과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냄새가 나는구나. 하지만 양념의 배합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굉장하군······.

생각해 보니 고미의 후각이라면 어떤 요리든 냄새만으로도 정확히 구분해 낼 수 있는 게 당연하구나.

어쩌면 레시피까지 정확히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음, 저주 받은 곰손만 아니라면 훌륭한 요리사가 될 재목인데 말이야.’

하지만 아무리 냄새를 잘 맡는다 한들 머릿속에 구현된 레시피를 만들어 낼 손이 없으니, 참으로 서글픈 반쪽짜리 재능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고기도 그때 먹었던 것과는 냄새가 다르구나. 이 녀석은······. 그래, 양념이 되어있지만 틀림없이 돼지가 아니라 소구나.”

······.

원래 소고기랑 돼지고기를 모양이 아니라 냄새로 구분할 수 있는 건가?

나도 감각 강화 스킬이 Gomi급이 되면 저런 신기한 걸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허허, 대중적으로는 돼지 갈비가 더 흔하지만, 너비아니는 양념을 한 궁중식 소고기 요리입니다. 재료 역시 갈비살이 아니라 부드러운 소 안심을 사용하지요.”

“오오······. 너비아니라, 이름부터가 범상치가 않구나. 그런데 안심은 무엇이냐?”

냄새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구분할 수 있는 녀석이, 고기의 부위별로 맛이 다르다는 사실은 모르다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허허, 모든 고기는 부위별로 맛이 다릅니다. 그중 안심은 소의 등 부위인 등심과 엉덩이 부분인 홍두깨 살 사이의 채끝살 바로 아래에 위치한 부위를 의미하지요. 양도 적지 않고 특유의 부드러운 맛으로 인해 상당히 고급 식재료 중 하나로 인정받는 부위입니다.”

부위별로 맛이 다르다는 말에, 먹보 아기곰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일 정도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수하!”

“알겠어, 종류별로 다 먹어보자.”

“우, 우웃! 하지만 그러려면 돈이······.”

음······. 내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주다니, 언제 이렇게 컸을까.

“괜찮아, 그 정도 돈은 있어.”

“오, 오오! 그렇구나! 게다가 생각해 보니 이 몸도 이제 돈이라는 것을 벌 수 있구나! 이 몸이 열심히 돈을 벌어서 가족들에게 고기를 사주겠다!”

게다가 이제는 한술 더 떠 자신이 고기를 사주겠다고 하니, 이게 애 키우는 맛이구나 싶다.

“자, 그럼 한번 드셔 보시지요.”

숯불 화로에 오른 고기가 적당히 익은 듯 하자, 수다르님은 곧바로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미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망의 한입······.

“우, 우웃! 슈, 슈하! 이, 이거슨!”

너비아니의 맛을 본 아기곰은 고기를 씹느라 발음이 새는 것조차 모르고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이 부드러우믄, 무, 무어시란 말이냐!”

흥분을 참지 못한 아기곰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주위에 있던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너, 너희들도, 어, 어서 머, 먹어보거라!”

음······. 굉장하군. 이렇게 격렬한 반응은 처음인데?

내가 추천한 음식을 이렇게까지 맛있게 먹어주니 기분이 좋구만 그래.

“수, 수하! 역시 너는 최고다! 수, 수다르보다도 더 정확하게 나의 입맛을 꿰뚫고 있구나!”

역시 내가 최고라는 고미의 말에, 사회생활 만렙 수달의 입가에는 보일락말락하게 옅은 미소가 번졌다.

‘설마······. 일부러 나한테 양보하신 건가?’

단순히 전채에서 본요리로 이어지는 순서를 지키느라 고미가 가장 좋아할만한 요리를 추천하지는 않을 것일지도 모르지만······.

상대가 상대다 보니 일부러 나에게 가장 큰 영광(?)을 양보한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 띠링.

바로 그때,

< 축하합니다. 새로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시스템 창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응?’

언제나 그렇지만, 정말 알 수 없는 타이밍에 메시지를 보내는군.

그런데, 대체 무슨 퀘스트가 완료된 거지?

< 히든 퀘스트 : 먹기 위해 산다! >

- 고미에게 맛있는 음식은 삶의 목적, 그 자체입니다. 아직 다양한 요리를 먹어보지 못한 고미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찾아주세요!

······.

굉장하군, 이런 퀘스트가 숨겨져 있었던 거냐?

그런데, 지금까지도 맛있는 건 충분히 먹였잖아. 왜 이제 와서······.

< 달성 조건 >

1. 10가지 이상의 음식이 차려진 상에서 고미의 취향에 가장 잘 맞는 요리를 찾을 것.

2. 해당하는 음식의 섭취로 한 번에 200포인트 이상의 해피 곰 포인트를 획득할 것.

‘10가지 이상의 음식이라니, 뷔페용 퀘스트냐?’

이런 치밀한 자식······.

설마 이런 호화스러운 한정식 상차림이나 뷔페를 위한 별도의 퀘스트를 숨겨놨던 거냐.

< 달성 보상 >

1. 능력치 강화 (+3)

간단한 퀘스트라 그런지 보상은 그리 대단치 않았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아.’

이미 주 능력치가 60을 넘어선 상황에서 3포인트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시스템 창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오! 야, 이거! 야, 진짜 장난 아닌데?”

너비아니를 맛본 봉식이가 눈이 휘둥그레져 호들갑을 떨었다.

“음······. 나름대로 만반진수와 산진해찬을 다 맛보았다고 생각했는데, 현세의 음식은 또 다른 풍미가 있군요.”

심지어 무서운 손주분마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너비아니의 맛에 감탄하고 있었다.

음······. 당연한 거지만, 역시 냉동식품과 오리지널 궁중 불고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모양이네.

“그래요?”

고개를 돌려보니, 숲속 친구들이 너도 나도 앞다투어 화로에 고기를 구워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 회식은 고기인가보다.

“자, 수하! 어서, 어서 먹어보거라!”

화로 하나를 가져다 고기를 구우려 하자, 마음씨 고운 아기곰은 자신의 화로 위에 있던 고기를 잽싸게 집어 나에게 건넸다.

“고마워.”

한 번에 해피곰 포인트를 200점이나 올려줄 정도로 마음에 들 하는 음식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고미의 모습에,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이 났다.

아, 그렇다고 안 먹는다는 소리는 아니고.

나도 맛은 봐야······.

“음?”

그리고 고기를 입안에 넣는 순간,

‘이, 이게 냉동식품과 오리지널의 차이인가?’

감히 냉동식품을 먹고 맛을 확실히 안다고 말했던 나의 경솔한 입을 틀어막고 싶어졌다.

거부감이 들지 않는 자연스러운 단맛에, 이게 정말 고기가 맞는건지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육질, 그 속에 감추어진 풍부한 육즙까지······.

“이거 진짜 맛있네······.”

내가 지금껏 먹어본 고기 중에 가장 맛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홀린 듯 두 번째 고기를 집어먹는 나의 모습에, 아기곰의 통통한 두 뺨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후훗, 네 녀석이 그렇게 맛있어하는 것은 처음 보는구나!”

심지어 사람 표정을 잘 살필 줄 모르는 아기곰이 보기에도, 내가 맛있어 한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반응이었나보다.

이후 우리는 너비아니를 중심으로 온갖 전에 국, 떡 같은 것들을 잔뜩 집어먹었고, 결굴 식사가 끝날 무렵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배를 부여잡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 * *

폭풍 같은 식사가 끝난 뒤, 우리는 한동안 휴식 시간을 가졌다.

너무 배가 불러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거든.

어느 정도 배가 꺼지자, 수다르님과 토생원, 제르보나와 동이님, 흑암 등 용귀의 수리를 맡기로 한 숲속 친구들은 적당히 조를 이루어 용궁 곳곳을 돌아다녔다.

선금도 받았고, 배도 채웠으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해야지.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고.

“그럼 우리는 가게로 가자.”

한편, 마도 공학같은 것에는 별다른 지식이 없는 나와 고미, 이강혁 씨, 봉식이 조는 곧바로 아웅이, 다웅이를 만나러 갔다.

지금 우리의 손에는 용궁에서 받은 너비아니와 전 몇 가지가 들려 있었다.

“후후후, 이것을 받으면 엄마 아빠와 아웅이 다웅이가 아주 좋아할 것이다.”

부모님과 의형제(?)들을 위한 선물을 손에 든 아기곰의 모습에서는 개선장군과도 같은 당당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토끼굴을 통해 화원으로 들어갔다가 가게의 뒷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웅!”

“다, 다웅!”

아웅이와 다웅이가 평소처럼 가게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뒷문을 열고 고미를 향해 달려온 것이다.

“우, 우웅!? 아웅이, 다웅이, 왜 그러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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