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43화 (243/300)

EP.243 용궁 연회(1) : 갓-고미님은 풍류를 안다.

“우, 우웃! 벌써 위대한 이 몸을 위한 웅장한 연회가 준비된 것이냐!”

연회라는 두 글자에 잔뜩 신이 난 아기곰은 한시라도 빨리 연회장으로 가고 싶다는 듯 후다닥 나의 어깨에 올라탔다.

‘음, 연회라······.’

일종의 파티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까?

나도 이런 건 거의 경험을 못 해봐서,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사실 생일파티 같은 거 말고 본격적인 연회를 경험해 본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되겠냐만.

‘아······. 생각해보니 비슷한 경험이 있긴 있네.’

음, 또다시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라 버렸다.

석사들은 의무적으로 학술대회에 참석해야하고, 학술대회의 마지막 날에는 만찬이라는 걸 한다.

교수님과 박사 선생님들, 그리고 석사 선후배 간의 불편하기 짝이 없는 교류의 장이랄까.

여하튼, 되짚어보면 그것도 파티 비슷한 거기는 했지.

다만 지금처럼 즐겁기보다는 먹다 체하기 딱 좋은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온통 윗사람에, 바닥이 워낙 좁다 보니 누구 한 사람 눈 밖에 나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니까.

‘좋은 기억이 없구만.’

어째 고미를 만나기 전을 떠올려보면 내 20대에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새삼 이 아기곰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군.

“자, 그럼 가시지요.”

그때, 무사히 선물 증정식을 마친 고북 대왕이 응벽궁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우, 우우······. 수, 수하! 이, 이 몸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구나!”

고북 대왕의 뒤를 따라가는 내내 귀여운 아기곰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몇 번이나 나의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하지만 곰강불괴를 익힌 탓인지, 하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어째 평소보다 통증이 덜한 느낌이다.

‘설마 곰강불괴의 숨겨진 효과로 모근이 강해진다거나······.’

생각해보니 꽤 합리적인 추론이군.

고미의 털은 누가봐도 명백하게 풍성족에 해당하니까, 사실은 곰강불괴의 숨겨진 효과로 인해 저런 풍성한 털을 가진 아기곰이 된 걸지도…….

정말 그런 거라면, 난 지금 현대문명은 물론이고, 게이트가 열린 이후 생긴 여러 가지 신기한 물건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류 최대의 난제를 해결할 열쇠를 찾은 걸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아기곰에게 머리털을 맡긴 채(?) 몇 분 정도를 걸어가다 보니, 문득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음······. 이럴 줄 알았으면 부모님이나 아웅이, 다웅이도 데리고 올걸.’

사실 용궁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놀자판(?)이 될 줄은 몰랐다.

심각하게 전쟁 얘기나 하고, 전함 수리하고 뭐 그런 작업이 쭉 이어질 것 같아서 우리끼리 온 건데······.

정작 수리나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맛보기 수준만 하고, 용궁 구경에 선물 증정식에 이어 곧장 파티라니, 이건 숫제 전쟁 준비를 하러 온 게 아니라 그냥 용궁에 놀러 온 느낌이다.

‘음식은 뭐가 나오려나? 부모님이랑 아웅이 다웅이 줄 거 조금 싸가도 되려나?’

뭐가 나올지는 몰라도,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맛볼 일 없는 용궁 음식인데, 염치불구하고 가족들에게 가져다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군.

바로 그때, 황금색의 물방울 하나가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다.

“우, 우웃! 꿀색 물방울이라니!”

마치 거대한 꿀처럼 영롱한 빛을 발하는 물방울의 모습에, 가뜩이나 흥분해 있던 아기곰은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허허, 이곳이 바로 용궁의 연회장인 채하궁의 입구입니다.”

이후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은 채 고북 대왕의 뒤를 따라 황금색 물방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 둥, 두둥!

- 뿌우-!

- 둥, 두둥!

황금색 물방울을 지나자, 무언가가 눈에 비추기도 전에 웅장한 북소리와 피리 소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우, 우웃! 수, 수하! 저 녀석들을 보거라!”

잔뜩 흥분한 아기곰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린 순간, 봉식이만큼이나 커다란 해마들이 소라로 된 뿔피리를 불며 널따란 연회장 안으로 위풍당당하게 걸어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 이게 뭐냐.’

악단이 있을 거라는 사실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 악단의 멤버가 해마일 거라고는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상상조차 하지 못한 용궁 악단의 모습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 둥, 두둥! 둥!

이번에는 단단한 집게발을 들어 조개로 만든 커다란 북을 두드리고 있는 바닷가재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뭐, 뭐야. 왜 조개를 두드리는데 북소리가 나는 건데.’

바닷가재에 북이라는 조합도 충격적이지만, 어째서 조개에서 실로폰 소리도 아니고 북소리가 나는 걸까.

“우, 우웃! 저 녀석도 아주 멋지구나!”

하지만 이미 용궁 악단의 매력에 흠뻑 취해버린 아기곰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정신없이 고개를 돌려대고 있었다.

- 삐리리!

이어서 올망졸망한 물고기들이 형형색색의 소라로 만든 피리를 불며 연회장 안으로 입장했다.

그런데······. 물고기의 생김새가 이상하다.

‘열대어?’

여기 동해잖아, 왜 열대어가 있는 건데.

설마 아이돌 뽑듯이 오디션을 봐서 멋진 물고기들만 용궁 악단에 가입할 자격을 주는 건 아니겠지······.

“허허허, 용궁의 연회가 아주 멋지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니, 과연 명불허전이군요.”

인세의 그것을 벗어난 신비하고 동화 같은 악단의 모습에, 수다르 님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내뱉었고,

“허······. 저도 나름대로 견문이 넓다 자부했는데, 이런 멋진 광경은 처음이군요.”

심지어 한때 중원 제일의 강자로서 숱한 명승고적을 돌아보고,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며 호의호식하고 살았을 천마도 진심으로 감탄한 듯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뭐, 본인 입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대체로 무협지에 나오는 천마에 대한 묘사라는 게 그러니까.

“삐이이이!”

“우오오오!”

바로 그때, 숲속 친구들 중 귀여움을 담당하고 있는 아기곰과 꼬마 드래곤이 끓어오르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악단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황금색 아기용과 풍류를 아는 아기곰이 난입(?)하는 것과 동시에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됐다.

해금과 아쟁이 내는 독특한 소리를 시작으로, 가야금인지 거문고인지 모르겠지만 사극에서나 본 것 같은 여러 가지 현악기의 아름다운 선율이 이어졌고, 뒤이어 북과 장구 같은 타악기가 합류했다.

끝으로 소라로 만든 여러 가지 관악기가 어우러지며 한껏 흥을 돋우었다.

“오오! 오오오!”

그 사이 번개처럼 악단 사이로 난입한 아기곰은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씰룩 흔들며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괴상한 춤사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괴, 굉장해.’

보송보송한 솜방망이를 한껏 치켜든 채 좌우로 흔드는 것부터 시작해, 듣도 보도 못한 스탭까지······.

이렇게 충격적이고 제멋대로인 춤은 처음이다.

‘풍류를 아는 아기곰이라더니······.’

정말 알고 있는 걸까?

저게 알고 있는 거라면, 굉장히 잘못 알고 있다는 생각이······.

“삐이이이!”

그때, 덩달아 흥이 오른 꼬마용이 날개를 파닥이며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날개를 접고 그대로 바닥을 향해 떨어지더니, 이내 커다란 원을 그리며 고미의 주위를 맴돌았다.

“고미님이 저렇게 신나 하는 건 처음 보는군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동이님은 감상에 젖은 눈빛으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으, 으음······. 어떻게 하면 저 엄청난 춤을 보고 감상에 젖은 표정을 지으실 수 있는 걸까.

차기 드래곤 로드는 굉장히 감수성이 풍부한 모양이다.

“이건 영상으로 남겨야겠네요. 대왕님, 이거 찍어도 되나요? 인터넷에 올리지는 않을게요!”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흔들며 흥겨운(?) 춤사위를 이어가는 아기곰의 모습에, 한유진 씨는 더이상 못 참겠다는 듯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아직 허락 안 하신 것 같은데······.’

그래도 안 된다고 하지는 않으니 되는 거겠지 뭐.

나중에 한유진 씨가 찍은 이 엄청난(?) 영상을 부모님에게 보여드려야겠군.

몇 분이나 지났을까, 마침내 용궁 악단의 연주가 끝나고, 현란한(?) 춤사위를 선보이던 아기곰이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후후후! 수하! 참으로 굉장하구나! 다음 번에는 엄마 아빠와 아웅이, 다웅이를 모두 데리고 오자꾸나!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다!”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아기곰은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고북 대왕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고북! 엄마와 아빠를 데리고 와도 되겠느냐? 당연히 되겠지? 이렇게 멋진 것은 가족과 함께 보아야 하느니라!”

정말 괜찮을까.

횟집 사장님의 용궁행이라니, 뭔가 안될 건 없지 않나 싶으면서도 굉장히 부적절하다는 느낌이······.

“허허, 안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언제든 찾아주시지요.”

하지만 고북 대왕은 나의 정체가 횟집아들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나는 차마 가족들을 데리고 와도 되냐고 물어보지도 못 했는데······.’

역시 행동파 아기곰다운 언행이랄까.

덕분에 부모님과 곰돌이 삼형제의 나머지 둘에게도 용궁 구경을 시켜줄 수 있게 됐으니, 어쨌든 기분은 좋네.

“고마워, 고미.”

나와는 달리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행동파 아기곰에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네자,

“우웅? 무엇이 말이냐?”

녀석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나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가족들 데리고 와준다고 한 거 말이야.”

“우웅? 그것은 감사할 일이 아니니라.”

이어지는 나의 말에, 고미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고마워할 필요조차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음, 이럴 때 보면 참 배울 점이 많단 말이야.’

좋은 게 있다면 함께 보고, 좋은 곳이 있다면 함께 가고, 맛있는 게 있으면 같이 먹고.

당연하지만 너무 당연해서 잊기 쉬운 일들의 소중함을, 고미는 절대로 잊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흐뭇한 마음을 안은 채 녀석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 우웃!”

특유의 감탄사와 함께 제2의 자아께서 또다시 활동을 개시했다.

고미의 꼬리가 또다시 춤을 추기 시작한 이유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먹을 게 오고 있는 거겠지.

이 녀석은 음식이 눈에 보이기도 전부터 그 냄새를 맡고 흥분한 걸 테고.

용궁의 연회에 음식이 빠질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용궁의 연회에는 대체 무슨 음식이 올라오는 거지?’

그 순간, 불쑥 용궁의 잔치상에 올라올 메뉴가 대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고기?’

아니지, 용궁에 고기는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역시 해산물인가?’

음······. 그런데, 어인이라고는 해도 용궁 친구들도 해산물(?)의 일종인데, 해산물이 올라와도 되는 건가?

그렇다고 잔치상에 풀떼기만 잔뜩 올라올 것 같지는 않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코를 킁킁거리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와아······.”

“허어······.”

“이, 이게 뭐냐.”

숲속 친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입을 쩍 벌린 채 나지막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아······.”

내 반응 역시 숲속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이걸 보면 누구라도 이런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을 거다.

멍하니 감탄사를 내뱉는 것 외에는 어떤 반응도 보일 수 없는, 그야말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음식들의 행렬.

“우, 우웃! 고북! 역시 너는 굉장하구나! 역시 고북 일족에게 용궁을 맡기기를 잘했다!”

심지어 고미의 입에서는 반도 복숭아를 보았을 때도 나오지 않았던 대사가 튀어나왔다.

‘너무한 거 아니냐······.’

전설 속의 영약을 선물로 받았을 때도, 세상의 멸망을 막아줄 전함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도, 그런 말은 안 했잖아······.

정권의 정당성을 음식의 가짓수로 판단하다니, 그건 대체 어느 나라 평가 방식이냐고.

하긴, 꿀을 받고 천마신공을 완성해주는 녀석이니, 나름대로 상당히 일관성있고 합리적인 평가 기준일지도······.

‘생각해보니 나랑 친해진 것도 먹을 것 때문이었군.’

과연 수다르 일족은 정말로 그 선함을 인정받아서 산신령이 된 건지, 아주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아주 오랜 시간 가슴속에 품어왔던 호기심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설마······. 나도 초코바 때문에 제자가 된 건가?’

초코바를 가지고 던전에 들어선 자, 전설 속 아기곰을 만나게 되리니······. 뭐 그런 건 아니겠지?

“고미, 그런데 내가 네 제자가 된 이유가 뭐야?”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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