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41화 (241/300)

EP.241 숲속 친구들의 용궁 투어(4) : 용왕님은 인심이 후하다.

놀람과 기대가 뒤섞인 수다르님의 표정은, 나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응벽궁은 어떤 곳이죠?”

나의 질문에 고북 대왕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자신의 등껍질을 두드렸다.

“용궁의 보물 창고는 모두 두 곳입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제 등의 귀갑이고, 나머지 한곳이 응벽궁이지요.”

등에 달고 다니는 그거······.

보물 창고였어요?

‘굉장하군······. 어쩐지 뭔가 신기한 게 턱턱 나오더라니.’

등에 보물 창고를 메고 다니는 용왕이라니, 대체 어디서 이런 캐릭터가 튀어나온 걸까.

어쨌든 용궁의 보물을 도둑 맞을 일은 거의 없어서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바로 그때, 물끄러미 고북 대왕의 등껍질을 바라보던 초콜릿색 솜뭉치가 갑자기 입을 가린 채 헛기침을 해댔다.

“흐, 흐흐흠······.”

가늘게 뜬 눈, 쫑긋 일어선 두 귀에 가볍게 움찔거리는 꼬리까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군.

탐나는 거야, 고북 대왕의 등껍질이.

“호, 혹시 그 귀갑이라는 것도 여분이 있느냐?”

역시······. 갖고 싶구나.

“허허, 이 귀갑은 제 몸과 붙어있는 것이라 여분이 없습니다.”

고북의 한마디에 꿈과 희망으로 부풀었던 아기곰의 통통한 두 뺨이 순식간에 홀쭉하게 변했다.

“우웅, 아쉽구나······. 그 귀갑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안에 맛있는 것을 잔뜩 잔뜩 싸 가지고 다닐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

대충 예상은 했다만, 정말로 용궁의 비밀 창고를 간식 창고로 사용하고 싶었던 거냐.

“고미, 넌 수다르 님의 반지로 언제든지 항아리에 들어있는 숙성 초코바를 먹을 수 있잖아.”

나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먹보 아기곰은 여전히 아쉬운 듯 연신 입맛을 다셔댔다.

“하지만 역시 저런 것을 가지고 다닌다면 조금 더 멋스럽지 않겠느냐? 이 몸에게도 고북 같은 멋들어진 등딱지가 있다면 아웅이와 다웅이는 물론이고 친구들의 간식도 잔뜩 싸가지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으음······. 친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예쁘기는 한데, 역시 멋의 기준이 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 수다르 님의 항아리에도 충분히 많은 간식이 들어가 있잖아. 사실상 숙성 초코바 대량 생산 공장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래도 이렇게 실망하는 걸 보니 영 마음이 안 좋네.

“너무 서운해 하지마. 대신 다음에 멋진 간식 가방을 사줄게. 네가 좋아하는 꿀색으로.”

뭐, 고북 대왕의 등껍질처럼 특별한 기능은 없겠지만, 그래도 어린이용 백팩 정도면 느낌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겠지.

노란색 거북이 등껍질 모양 백팩이 있으려나?

“우, 우웃!? 저, 정말이냐? 이 몸에게도 저런 멋진 등딱지가 생기는 것이냐? 그것도 이 몸이 가장 좋아하는 꿀색으로!?”

가방을 사주겠다는 말에, 조금 풀이 죽어있던 아기곰의 두 눈이 다시 별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조, 좋다! 그렇다면 그 가방에 간식을 싸서 다 같이 소풍을 가는 것이다!”

금세 기운을 차린 아기곰은 잽싸게 동이님에게 달려가 자랑하듯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동이! 동이! 너도 위대한 이 몸과 소풍을 가지 않겠느냐? 이 몸이 너에게 솜사탕을 사주겠다! 너도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주, 주먹밥도! 수하가 사준 꿀색 등딱지에 주먹밥을 싸서 친구들과 함께 꽃구경을 가는 것이다! 아니, 이제 가을이니 단풍구경을 가는 것이 좋겠구나!”

“하하, 이번에도 도시락은 제 몫이겠죠? 인원이 많으니까 도시락을 쌀 맛이 나겠군요.”

소풍 이야기가 나오자 흑룡 셰프는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듯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고,

“허허, 고미님과 함께 소풍이라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군요.”

동이님 역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소풍을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흠, 흠······.”

그때, 소풍 이야기를 듣고 있던 흑암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은근슬쩍 노인국 씨의 어깨를 발끝으로 두드렸다.

그러자 츤데레 두더지 대신 사교성 좋은 New인국 씨가 손을 번쩍 들며 자신도 끼워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고미 선생! 나와 흑암도 같이 가도 되겠나?”

흠······.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콤비군.

한동안 흑막으로 활약했던 전력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건가.

“오오! 문어 할아범! 좋다! 너와 흑암도 함께 가면 더욱 좋겠구나! 사람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 말이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발걸음을 옮기자, 마침내 가로로 기다랗게 늘어선 대전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이 바로 응벽궁입니다. 저희 고북 일족이 3대에 걸쳐 모아온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한 용궁의 보물 창고이지요. 이곳에 제가 여러분을 위해 골라둔 선물이 있습니다.”

응벽궁의 기둥은 붉은 수정으로, 기와는 검은색 수정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벽면은 회색 벽돌로 이루어져 있어 얼핏 보기에는 사극에서 보았던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의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응벽궁의 커다란 문 앞에는······. 아기곰의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굉장한 것’이 서 있었다.

“우, 우웃! 고북! 굉장하구나! 용궁에는 저렇게 멋진 녀석들이 많은 것이냐!?”

용궁의 보물 창고를 지키는 경비병은 바로 ‘대게’였다.

엄밀히 말하면 대게라기보다는 대게와 인간의 중간쯤 되는 생김새를 가진 어인이지만.

‘음······. 굉장한데.’

두 개의 집게발과 여섯 개의 팔에 각각 한 자루씩, 총 여덟 자루의 창을 쥐고 있는 대게 병사는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강력한 느낌을 주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집게발은 그냥 그 자체로 무기로 써도 충분하지 않나?

“오늘은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응벽궁의 문을 열거라.”

고북 대왕의 명령에 보물창고를 지키고 있던 대게 병사들은 곧바로 집게발에 들린 창을 옮겨쥔 뒤 묵직한 문을 열어젖혔다.

“오, 오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널따란 마당을 중심으로 좌측과 우측, 정면에 각각 한 채의 커다란 창고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허허, 지난번 바다에서 고미님을 도와 괴수들을 처리해주신 한 소저에게 꼭 드리고 싶은 선물이 있는데, 받아주시겠습니까?”

마당 안으로 들어선 고북은 한유진 씨를 바라본 뒤 곧장 왼쪽 창고로 걸음을 옮겼다.

말투는 부드럽지만······.

‘이건 뭐 거의 안 받아가면 강제로 떠넘기기라도 할 기세네.’

게다가 아까 말하는 걸로 보아, 꽤 오랫동안 각자에게 맞는 선물을 준비하신 것 같은데······.

고북 대왕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는 지난 번 일에 대한 답례고, 둘째는······. 앞으로 닥칠 전쟁에 대비해 숲속 친구들을 파워업 해주려는 거겠지.

바로 그때,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나의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 드드드득.

마치 수백 킬로그램은 나갈 것 같은 바위가 바닥을 긁을 때 나는 것 같은 묵직한 소리.

‘자, 잠깐. 지금 그거 문 여는 소리야?’

나는 그제야 고북 대왕이 밀어젖힌 창고의 문이 거의 내 어깨 너비만큼이나 넓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역시, 지난 번에 잘못 본 게 아니었어.’

고북 대왕을 처음 만났던 날, 그는 수십 미터에 달하는 용귀의 머리에서 날렵하게 점프해 내 앞에 착지했었다.

그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무사한 것도 놀라웠지만, 전혀 거북이답지 않은 그 민첩한 몸놀림이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그리고 지금 이 말도 안 되게 두꺼운 문을 힘으로 밀어젖히는 것으로 보아, 고북 대왕의 정체는······.

‘닌자 고북이야!’

아니, 굳이 따지자면 닌자는 아니지만, 여하튼 꽤 강력한 전사라는 소리지.

설마 싸움에 들어가시면 갑자기 눈에 띠를 두르신다던가 하지는 않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용궁에 올 때 피자라도 사올 걸 그랬군. 아니지, 용궁을 수리하러 올 때 피자를 사오면 되겠구나.’

피자를 드시면 기분이 좋아지셔서 ‘코와붕가!’라고 외치실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혼자 속으로 제법 설득력 있는 드립을 던지고 있는 사이, 창고에 들어선 고북 대왕이 주먹만한 구슬 하나를 집어 한유진 씨에게 내밀었다.

“우, 우웃! 고, 고북 그것은!”

그 구슬이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슈퍼 아기곰의 솜털이 바짝 곤두서는 모습을 보아하니,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청룡의 구슬,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여의주라는 것입니다.”

고북 대왕의 한마디에, 자리에 있던 모두는 입을 쩍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여, 여의주 같이 귀한 물건을 그냥 덥석 내준단 말이야!?’

저런 걸 부담스러워서 어떻게 받겠나 싶었지만······.

“어머! 진짜요? 그게 여의주에요?”

한유진 씨는 곧장 고북이 내민 여의주를 덥석 건네받으며 깊숙이 허리를 숙여 감사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으음······. 잠깐 잊고 있었군.

한유진 씨는 나랑 다르게 성격이 화끈하시지. 돌려 말하는 법도 없고,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워낙 시원시원한 분이니까.

“허허, 이리 기쁘게 받아주시니, 저 또한 기분이 좋군요.”

이어서 닌······ 아니, 아니지, 고북 대왕은 창고 벽에 걸려있던 화려한 장검 하나를 집어들려다 조금 민망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뵈었을 때 이 검사님에게 맞는 검이 없는 것 같아 다시 만나면 드리려고 검을 골라두었는데······. 오늘 보니 용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그 어떤 검보다도 뛰어난 검을 손에 넣으신 것 같군요.”

굉장하군······. 천마신검이 그 정도로 엄청난 물건이란 말이야?

검령까지 있는 데다 천마의 검이니 대단한 검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대왕님께서 저희를 도와주신다는 것만 해도 이미 충분합니다.”

이에 이강혁 씨는 가볍게 웃으며 괜찮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고북 대왕은 창고 한구석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는 얇은 흉갑 하나를 이강혁 씨에게 내밀었다.

“해신의 갑주입니다. 이것 역시 저희 용궁이 자랑하는 보물 중 하나이니, 사양하지 말고 받아주시지요.”

역시 용왕쯤 되면 스케일이 다르군.

어떻게든 선물 하나씩은 떠넘기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느껴진다.

‘음, 전래동화에 나오는 용왕도 선물에 후했던 것 같기는 한데······. 그런데 대체 저 많은 보물들은 다 어디서 얻은 걸까.’

“이것은 현무의 권갑입니다.”

마지막으로 용왕의 선물을 받은 사람은, 바로 봉식이였다.

녀석이 받은 선물은 강철보다 단단해 보이는 검은색의 권갑이었다.

여태 자기에게 맞는 무기가 없어서 언제나 맨주먹으로 다녔는데, 이걸로 저 녀석도 그럴싸한 무기가 생겼군.

“감사합니다!”

봉식이 역시 한유진 씨 만큼은 아니라도 제법 화끈한 성격을 가진 녀석이니, 굳이 사양하지 않고 고북 대왕이 내민 선물을 받았다.

이후 고북 대왕은 우리를 이끌고 나머지 두 곳의 창고로 들어갔고, 수다르 님에게 은은한 빛이 감도는 침구 세트와 약재 몇 가지를 건네주었다.

“허허, 감사합니다. 이 침구가 있다면 더욱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겠군요.”

그렇게 선물 증정식이 모두 끝났나 싶을 무렵······.

“우웅······.”

선물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좋아하는 아기곰이 조금 서운한 표정으로 커다란 눈을 데록데록 굴려댔다.

마치 산타할아버지가 자신에게만 찾아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어린아이 같은 그 모습에, 괜스레 나까지 서운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설마 고미한테만 선물을 안 주시는 건 아니겠지?’

용궁을 한번 구해준 우리한테 이렇게 후하게 굴면서, 포악한 용왕을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아준 고미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고 끝날 리는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인심 후한 갑부 거북이는 고미에게 아무런 선물도 주지 않고 그냥 마지막 창고를 빠져나왔다.

‘응? 뭐야? 진짜 고미에게는 아무 선물도 주지 않는 거야?’

자신을 위한 선물이 없다는 사실에 실망한 순진무구한 아기곰의 꼬리는 금세 힘을 잃고 아래로 쳐지고 말았다.

‘아, 아니, 이건 아니죠. 고북 대왕님.’

그러나 강제로 선물을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미님에게 줄 선물이 남아있으니 말입니다.”

고북 대왕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귀갑에서 반짝이는 보석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보석을 손에 든 채 세 창고의 중심으로 걸음을 옮기자······.

- 우웅, 우우우웅!

사방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눈부신 광채가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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