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9 숲속 친구들의 용궁 투어(2) : 거북이는 달리고 싶다.
가장 먼저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완벽한 대형을 유지한 채 한쪽 집게를 들고 있는 ‘새우’ 군단이었다.
“이쪽은 용궁의 수비를 맡고 있는 경비대, 딱총새우 군단입니다.”
으, 으음······. 새우가 경비대라니, 굉장히 불안하군.
‘그런데 저거, 진짜 새우 맞나?’
횟집 아들이 용궁에 오는 게 적합한 행동인지는 둘째치고, 눈앞에 서 있는 새우 군단의 생김새는 내가 아는 새우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우선 앞발이 새우가 아니라 게처럼 생긴데다가, 오른쪽 집게발의 크기가 거의 왼쪽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크다.
‘저게 무기인가?’
외모로 미루어 짐작건대, 아마도 저 집게가 무기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름이 왜 딱총 새우지?
설마 저기서 뭘 쏘는 건가?
“우웃, 멋지구나! 참으로 멋진 집게발이다! 게다가 이 갑옷 같은 껍질과 위엄있는 수염까지! 참으로 듬직하구나!”
“삐이이이!”
새우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나와 달리, 순진무구한 아기곰과 아기용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딱총 새우 군단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마 어린아이의 눈에는 딱총새우 군단의 갑각과 집게발이 아주 멋지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어릴 때는 가재처럼 집게가 달린 생물은 뭔가 멋지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왜 그랬는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냥 본능적으로 멋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어서 고북 대왕은 딱총새우 군단 곁에 서있던 뱀장어들을 가리켰다.
이쪽은 안 봐도 역할이 뭔지 알겠군.
“이쪽은 용궁의 마력 공급과 전투를 맡고 있는 전기 뱀장어군단입니다.”
역시, 이쪽은 클리셰에 충실하구만.
“다음은 용궁의 돌격대를 맡고 있는 백상아리 부대입니다.”
“오오! 저 날카로운 이빨과 단단한 피부! 이 녀석들은 제법 강력하겠구나!”
“이쪽은 용궁 군단의 보급과 운송을 맡고 있는 고래 부대입니다.”
음, 이쪽은 안면이 있는 것 같은데.
“오오! 전에 이 몸을 바닷가로 데려다 주었던 녀석들이구나! 너희들 덕분에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 수 있었느니라!”
아니나 다를까, 바다 여행에서 자신을 태워준 돌고래들을 알아본 아기곰은 짤막한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녀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한데······.’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한 듯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용궁 군단의 모습에, 나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고북 대왕님, 설마 이 부대들은······.”
“네, 모두 고미님과 수하님을 돕기 위해 준비해 온 것입니다.”
역시······. 우리가 용궁에 찾아올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
“어디부터 어디까지 알고 계신 거죠?”
나의 질문에 고북 대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저희 조부께서 내린 예언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수다르 일족이 대대로 의원인 것처럼 고북 일족도 대대로 점술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그 예언이라는 게······.”
“조부께서는 제가 위대한 수호자의 첫 번째 제자와 모두 세 번에 걸쳐 중요한 연을 맺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이라······. 이번이 두 번째니까, 앞으로 또 만날 일이 있다는 건가?
“그리고 첫 번째 만남에서는 큰 도움을 받을 것이며, 두 번째 만남에서는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라 말씀하셨지요.”
이어지는 고북의 말에 나는 자연스레 처음 용궁과 고북 대왕을 만났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도움이라는 게······. 우리가 게이트를 파괴해준 걸 말하는 건가?’
그때 고미는 아마도 그 두 개의 게이트가 ‘정찰대’일 거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용궁의 정체가 용족 역사상 최강의 마도 병기 중 하나라는 걸 생각해보면······.
‘설마, 그 날 정찰대를 보낸 이유가 용궁을 빼앗아 가려고 했던 건가?’
황금의 군주와 만수왕은 현세를 침공하기에 앞서 수다르 님을 죽이려 했다.
그렇다면, 용궁을 찾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동이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병기를 자신들이 침략하려는 곳에 남겨두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
“예언대로 수하님께서는 저희 용궁을 지켜주셨고, 저는 용왕의 방패를 드렸지요. 그리고 이제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으니, 저희는 예언에 따라 고미님과 수하님에게 이 용궁을 빌려드릴 생각이옵니다.”
우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고북의 입에서 용궁을 빌려주겠다는 말이 나오자, 바닷속 친구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아기곰이 오도도도 달려와 나의 어깨에 올라탔다.
“우, 우웃! 그렇다면 너희도 우리와 함께 싸워주겠다는 것이냐!?”
“이 고북, 위대한 수호자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나이다.”
말을 마친 고북은 고미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등껍질에서 기다란 삼지창을 꺼내들어 충성을 맹세했다.
그런데, 자기 키보다 큰 삼지창이 어떻게 등껍질에 들어갈 수 있는 걸까?
“허허, 그럼 먼저 영덕전으로 가시지요. 용궁의 진정한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영덕전으로 가야하니 말입니다.”
어쨌거나, 고미에게 충성 서약을 마친 고북 대왕은 곧바로 통로에 떠있는 커다란 물방울 위로 걸음을 옮겼다.
“자, 이곳으로 들어가시면 곧바로 영덕전으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고북의 뒤를 따라 물방울 안으로 들어가자, 게이트 안에 들어갔을 때처럼 눈앞이 하얗게 변하며 돌연 주위의 풍경이 변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우리의 눈앞에는 푸른색 수정으로 지어진 멋진 이층 짜리 전각 하나가 놓여있었다.
“오오! 참으로 멋지구나!”
전각을 발견한 고미는 곧바로 솜방망이를 두드리며 감탄사를 내뱉었고,
“허허, 이곳이 바로 영덕전이군요. 육지의 신령인 제가 용왕의 궁전을 방문하게 될 줄이야. 참으로 영광입니다.”
수다르님은 가볍게 허리를 숙이며 고북에게 예를 갖춘 뒤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대전을 바라보는 숲속 친구들을 향해 영덕전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영덕전은 용왕이 집무를 보는 곳으로, 인간들의 건축물로 따지자면 조선 시대의 근정전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아! 어디서 많이 본 모양이다 싶었는데, 확실히 근정전이랑 비슷하네요! 수정으로 지어진 궁전이라니, 정말 근사해요!”
갑자기 용궁 투어 가이드가 된 수다르님의 설명에 한유진 씨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짝였다.
그나저나, 어째서 산신령이 용궁의 구조를 알고 있는 걸까?
“허허, 용궁은 많은 설화에서 다루어진 장소이지요. 심청전에서 심청이 인도된 곳도 영덕전이고, 조선시대의 작품인 용궁부연록에도 등장하는 곳입니다.”
의아함이 어린 내 눈빛을 읽은 수다르님은 이내 웃으며 자신이 영덕전에 대해 알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정말 해박하시네. 심청전은 알지만, 용궁부연록은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데······.’
우리가 나온 물방울에서 영덕전까지는 수십 미터에 달하는 제법 널찍한 광장이 펼쳐져 있었고, 바닥은 입구와 마찬가지로 형형색색의 마정석이 박힌 채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광장을 지나 영덕전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조각이 새겨진 옥좌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저곳이 바로 용귀의 옥좌입니다. 용왕급의 마력을 가진 자가 저곳에 앉아 마력을 주입하면, 용귀의 진정한 힘을 끌어내실 수 있사옵니다.”
설명을 마친 고북은 자연스럽게 고미의 등 뒤에 서있던 동이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옥좌는 왕이 앉는 곳, 감히 제가 앉아도 될지 모르겠군요.”
동이님이 다소 난감하다는 듯 멋쩍은 웃음을 짓자, 고북은 곧장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로서는 용귀의 진정한 힘을 끌어낼 수 없으니, 부디 사양하지 마시옵소서.”
고북의 부탁을 받은 동이님은 말없이 깊숙이 허리를 숙인 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옥좌에 올랐다.
동이님이 옥좌에 앉자, 돌연 똬리를 틀고 있던 조각상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 자신의 입에 물린 여의주를 말라 비틀어진 그의 오른손 위에 올려두었다.
“후우······.”
여의주를 받아든 동이님은 긴 한숨을 내쉬며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했고,
- 우웅······.
이내 사방에서 묵직한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며 영덕전 전체에서 신비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 오오오! 동이! 거북이가, 거북이가 깨어나고 있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마력을 느낀 아기곰은 유리구슬 같은 맑은 눈으로 사방을 훑어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 우웅, 우우웅!
곧이어 영덕전에서 시작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광장 위에 박혀있던 마정석들이 저마다 다른 빛을 발하며 주위가 은하수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와아······.”
은하수의 한가운데 앉아 있는듯한 황홀한 광경에, 저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놀랄 일은 아직 끝이 아니었으니,
- 쿠릉, 쿠르릉······.
나지막한 뇌성이 울리며 영덕전의 천장과 벽면에 위엄이 넘치는 필체로 적힌 알 수 없는 문자와 용의 그림이 떠올랐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장관에 숲속 친구들이 넋을 잃고 있는 사이, 동이님의 옥좌 앞에 홀로그램과도 같은 화면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대전 내에 떠오른 그림이나 문자들과는 달리,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비추고 있는 것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별처럼 빛나는 전각과 누각, 곳곳에 떠 있는 물방울과 마법진, 용궁 내를 바삐 오가는 용궁 식구들, 영덕전이나 입구와는 달리 찰랑찰랑 물이 차있는 방들과 용궁 밖에 있는 바닷속 생물들까지······.
“음······. 이 자리에 앉아있으면 용귀의 체내는 물론이고 주위의 풍경까지 한눈에 볼 수 있군요.”
동이님의 마력을 주입받은 영덕전은 이미 용왕의 집무실이 아니라, 전함의 함교나 다름이 없었다.
“우오오! 동이! 훌륭하다! 어서 이 녀석을 몰고 사악한 악당 놈들을 물리치러 가자꾸나!”
전함이 제대로 작동하는 듯 하자, 흥분한 아기곰은 당장이라도 적진에 뛰어들 기세로 솜방망이를 붕붕 휘둘러댔다.
“삐이! 삐이이!”
꼬마 드래곤 알틴 역시 적잖이 흥분한 듯 자그마한 날개를 파닥였다.
하지만 정작 옥좌에 앉아 전함의 곳곳을 살피고 있는 동이님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생겨나 있었다.
“왜 그러시죠?”
나의 질문에 동이님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너무 오랜 세월 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탓인지,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군요.”
그리고는 눈앞에 떠오른 화면을 휙휙 넘겨가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용귀의 내부는 상당히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생물처럼 구성된 곳도 있고, 마법의 힘으로 만든 진법도 존재하고, 연금술로 만든 기계적인 구조도 존재하는 것 같군요.”
이후 이어진 동이님의 설명에 따르면, 용귀는 기계와 생물, 마법의 결합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았다.
덕분에 그 내부 구조나 작동 원리 역시 상당히 복잡하고, 제대로 움직이게 하려면 그 각각의 부위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 필요가 있어 보였다.
“우, 우웅······. 그렇구나. 역시 굉장한 녀석이다.”
동이님의 설명을 들은 아기곰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으나······.
‘전혀 알아듣지 못했군.’
언제나 그랬듯,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차원간 이동 능력과 봉인을 무력화시키는 기능, 용궁의 내부에서 외부로 이어지는 전송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송 기능은 마법진만 손보면 되니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지만······.”
“차원 도약 능력과 봉인을 무력화시키는 기능이 없다면 드라고니아에 진입조차 할 수 없습니다.”
동이님의 설명을 듣고 있던 제르보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역시, 예상대로야.’
수백, 어쩌면 천년 이상을 용귀로서의 기능은 사용하지 않았으니, 아무리 전설의 마도 병기라도 자잘한 문제들이 생겼을 수 밖에 없겠지.
하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이런 문제가 벌어질 거라는 걸 예상했다는 건, 해결책도 알고 있다는 의미니까.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면, 이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