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38화 (238/300)

EP.238 숲속 친구들의 용궁 투어(1) : 거북이는 느리지 않다.

게이트를 벗어난 우리는 각각 조를 나누어 드래곤의 등 뒤에 올라탔다.

동이님의 등 뒤에는 나와 고미, 그리고 봉식이와 이강혁 씨가 탑승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적당히 제르보나 호와 유찬 호에 나눠타고 바다로 향했다.

“하하, 고미님과 함께 다시 한번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다니, 정말로 행복합니다.”

자그마한 갈색 솜뭉치를 등에 태운 동이님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후후후, 이 몸도 아주 즐겁구나! 역시 위대한 이 몸에게는 너처럼 큰 녀석이 어울린다!”

동이님의 등에 매달린 솜뭉치의 짤막한 꼬리는 쉴 새 없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음······.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되는 사이즈야.’

반면 나는 동이님의 어마어마한 사이즈에 조금 기가 질려 있었다.

제르보나나 이유찬 씨의 등도 어른 예닐곱은 넉넉히 태울 정도로 널찍하지만, 동이님의 등은 그것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넓었다.

‘게다가 이것도 원래 사이즈가 아니니까······.’

본 모습으로 돌아간 동이님의 등에 고미가 올라탄다면, 녀석을 찾을 수나 있을까 의문이다.

비유하자면, 커다란 빌딩 벽에 참새 한 마리가 앉은 느낌 정도겠지.

한쪽은 상상을 초월하는 빅 사이즈, 한쪽은 세상 아담한 쪼꼬미.

정말이지 대비가 확실하군.

“후훗, 자, 그럼 어서 가보자꾸나! 현세의 바다는 정말 멋진 곳이니라! 너도 반드시 마음에 들어할 것이다!”

“네! 그럼 한번 힘껏 날아보겠습니다!”

동이님의 힘찬 대답에,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 아니겠지. 아닐 거야.’

- 후웅!

다음 순간, 검은색과 금색이 뒤섞인 거대한 날개가 가볍게 펄럭이며 거짓말처럼 눈앞의 풍경이 변했다.

‘다, 다행이다. 난폭 운전을 하는 편은 아니신 것 같네.’

지금 우리의 발아래에는 끝없이 늘어선 빌등 숲과 도로가 보이고 있었다.

과연 두 사람의 주군이라 그런지, 제르보나나 이유찬 씨보다 몇 배는 더 빠른 것 같았지만, 승차감은 마치 고급 세단을 탄 것처럼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왜 안 멈추시지?’

언제나 우리의 전용기가 되어주었던 두 드래곤들은 보통 이 정도 높이에서 비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동이님은 계속해서 위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설마 너무 빨리 날아서 사람들한테 피해를 끼칠까 봐 굳이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거나······.’

바로 그때,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울려퍼졌다.

“그럼 꽉 잡으십시오, 고미님!”

- 콰앙!

이어서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굉음이 울려 퍼지며 발밑의 풍경이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고,

“이것이다! 이것이야! 동이! 역시 이 몸을 만족시켜줄만한 녀석은 너뿐이구나!”

“으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살려줘!”

스릴 중독자인 아기곰의 목소리에 이어 세 인간의 처참한 비명 소리가 창공을 수놓았다.

* * *

우리 세 사람이 정신을 차렸을 무렵, 발밑에는 이미 익숙한 도심의 풍경 대신 짙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주, 주, 주, 죽는 줄 알았다.”

어지간해서는 약한 소리를 입 밖에 내는 법이 없는 봉식이의 입에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겁에 질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고,

“헉, 헉, 이렇게 빠른 건 처음입니다. 유리창 없이 전투기에 탄 기분이네요.”

이강혁 씨 역시 세 번의 생을 통틀어 이런 속도는 처음이라는 반응이었다.

“우하하하하! 동이! 이것이다! 이것이야! 역시 너는 최고다!”

귓가에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아기곰의 웃음 소리에, 반쯤 몸에서 빠져 나가있던 영혼이 간신히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왔다.

지금 고미의 목소리에서는, 꿀을 먹었을 때 만큼이나 진한 행복감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이, 이 정도는 되야 널 만족시킬 수 있었던 거였냐?’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슈퍼 아기곰을 진정으로 만족 시킬 수 있는 속도라는 건······.

인간의 몸과 정신으로는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아마 마법으로 날아가지 않게 감싸주지 않았다면, 우리 셋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으, 으아! 이거 뭐야!?”

그때, 나와 마찬가지로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봉식이가 경악에 찬 목소리로 손목 시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야! 서울에서 동해까지 10분 걸렸어!”

서울에서 동해까지 대충 거리가 얼마나 되려나. 모르긴 몰라도 150킬로미터쯤 됐던 것 같은데······.

그럼 지금 시속 900킬로미터 정도로 날았단 소리잖아······.

아까 출발할 때 ‘쾅’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라니, 설마 그거 소닉붐인가 뭔가 그거냐?

‘살아있는 게 용하네······.’

아직 나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고개를 돌려보자,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육지가 보였다.

“이쯤에서 고북을 부른다면 인간들도 놀라지 않겠지, 자, 수하! 어서 피리를 불어보거라!”

······.

사람들이 겁 먹을까 봐 배려하는 건 좋은데, 그 따뜻한 마음을 나를 위해서도 조금만 나눠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하? 어찌하여 대답이 없느냐?”

내 정신이 완전히 돌아온 것은, 도톰하고 말랑한 젤리가 팔을 잡고 흔들고 난 후였다.

“으, 응. 알았어, 기다려 봐.”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은 나는 주섬주섬 인벤토리에서 고북 대왕이 준 피리를 꺼내 입에 가져다 댔다.

있는 힘껏 피리에 숨을 불어넣자,

-삑! 삑! 삐이이익······.

뭔가 싸구려 리코더에서 날 것 같은 허접한 소리가 바람을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어째 소리가 영 시원치 않다. 제대로 분 것 맞냐?”

봉식이 역시 같은 감상이었는지, 다소 김이 빠진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가볍게 입꼬리를 씰룩였다.

“우웅······. 어째서 고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냐?”

하지만 피리를 불었음에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자,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아기곰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고미, 아무리 그래도 피리를 불자마자 나타나기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바다가 이렇게 넓은데······.”

상식적으로,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어딘가에 숨어있는 용궁이 피리를 불자마자 나오는 게 더 이상한······.

- 쏴아아아!

일이 아니구나. 빠르네, 빨라.

이건 뭐 테이크 아웃 전문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오는 속도만큼이나 빠르네.

- 끼루룩! 끼룩!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신속한 반응에 헛웃음을 흘리고 있는 사이, 가느다란 빗줄기가 떨어지며 갈매기와 이름 모를 바다 새들이 모여들고, 수면 위에 짙은 해무가 끼기 시작했다.

- 쏴아아아!

곧이어 또 한차례 커다란 파도가 이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며 푸른 바닷물 아래로 거대한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 오오! 수하, 왔다! 왔느니라! 고북이 왔느니라!”

한눈에 보기에도 수백 미터는 넘어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그림자에, 나의 등줄기에서는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 고오오오!

이어서 묵직한 울음소리와 함께 어지간한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와 맞먹는 슈퍼 거북이의 머리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잠깐······. 어째 더 커진 것 같은데?’

처음 봤을 때도 충격적인 크기이기는 했지만, 이건 거의 방사능 먹고 벌크업한 수준이잖아.

혹시 잠깐 안 본 사이에 일본 여행이라도 다녀왔나?

- 쏴아아아아!

슈퍼 거북이가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 바다에는 집채만한 파도가 일었고, 폭포 같은 물줄기가 떨어지며 해수면을 때렸다.

“용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전설 속 마도 병기의 모습에, 동이님은 흥분으로 바르르 몸을 떨었다.

“고북! 위대한 이 몸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슈퍼 거북이의 머리 위에 올라탄 직립보행 거북이를 발견한 고미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고북 대왕의 이름을 외치며 바다 위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런데 보통 ‘위대한 이 몸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가 아니라, ‘위대한 존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얘기하지 않나······.

어째서 도움을 청할 때조차 자신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거냐.

성질 급한 아기곰이 먼저 슈퍼 거북이의 머리 위로 뛰어내리자, 동이님 역시 천천히 날개를 펄럭이며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떠올랐다.

“어, 그런데 동이님······. 아직 다른 사람들이 오지 않았는데, 이대로 용궁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동이님은 생각보다 너무 빨랐고, 고북 대왕 역시 거북이라는 자신의 캐릭터 성을 상실한 듯 빠르게 모습을 드러냈다.

덕분에 아직 나머지 친구들은 바다에 도착하지도 않은 상태고.

“걱정 마십시오. 이제 곧 도착할 때가 되었습니다.”

나의 질문에 동이 님은 싱긋 웃으며 반대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짙은 해무를 헤치고 거대한 두 개의 그림자가 날아오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쪽도 엄청 빠르네.’

덩치가 커지면서 빨라진 건 알았는데······.

설마 그 동안은 나를 배려하느라 천천히 날았다던가?

“훌륭하다. 너희들도 많이 강해졌구나. 역시 고미님과 수하님, 유진에게 너희를 맡기기를 잘한 것 같구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공에 멈춰선 두 드래곤의 모습에, 동이님은 흡족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주군!”

“영광입니다, 주군!”

그리고 두 드래곤의 등 뒤에는, 선발대로 도착한 세 사람만큼이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숲속 친구들이 올라타 있었다.

물론 무서운 손주분께서는 언제나처럼 오만하고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나머지는 반쯤 죽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

“오오! 모두 모였구나! 그럼 고북! 우리를 용궁 안으로 초대해다오!”

친구들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고미가 우리를 향해 솜방망이를 흔들자,

- 고오오오!

거대한 거북이가 입을 벌려 우리를 집어삼켰다.

* * *

“꺄아아악!”

“으, 으아아!”

“주, 죽는 줄 알았다!”

“헉, 헉······.”

“고, 고미 선생! 용궁에 초대하는 방식이 이런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나!”

너무나도 충격적인 입장 방식에, 용귀에게 삼켜진 숲속 친구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잠깐 눈앞이 캄캄해졌던 것 같기는 한데, 눈을 떠보니까 거북이 입속이었다.

훗,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나에게는, 겨우 그 정도 감상인 거지.

“수, 수하! 괜찮느냐?”

지금 나의 눈앞에서는 순진무구한 아기곰이 새파랗게 질린 채 솜방망이를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실 슈퍼 거북이가 입을 벌린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은 잘 생각이 안 나기도 하고.

“응,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입을 떼기 무섭게, 옆쪽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봉식이의 목소리였다.

“야, 너 기절했었어.”

음, 그랬군.

난 기절했던 거구나.

좋은 걸 배웠다.

기절하면 무섭지 않구나.

다음 번에는 차라리 미리 기절해야지.

가짜 고미를 상대해야 하는데 해피 곰 포인트를 낭비할 수는 없잖아.

해피 곰 포인트도 아끼면서 무섭지 않으려면, 그냥 기절을 하는 편이 가장 효율적이니까.

“자, 그럼 이제 용궁으로 들어가시지요.”

내가 정신을 차린 듯 하자, 고북 대왕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용궁 안이 아닌 건가요?”

그새 정신을 차린 한유진 씨는 어린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고북에게 질문을 던졌다.

“허허, 이곳은 용궁의 입구입니다. 용귀의 목구멍을 지나야 진정한 용궁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으십니다.”

나는 고북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초거대 거북의 입안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하다 못해 물비린내라도 날줄 알았는데, 그러기는커녕 정체를 알 수 없는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음, 구강 건강과 청결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거북이인가?’

그렇게 고북 대왕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주위가 점점 환해지며 벽면에서 형형색색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후후, 수하, 어떠냐? 멋지지 않느냐?”

이미 용궁 투어 경험이 있는 아기곰은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정말 멋지네.”

용귀의 몸 안이 용궁이라길래 꼭 거인의 뱃속에 들어온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벽면이 가끔 꿈틀거리는 것을 제외하면 그냥 거대한 동굴이라고 느껴질 것 같은 모습.

게다가 벽면에는 노란색, 붉은색, 보라색, 파란색 등, 은은한 빛을 내뿜는 기이한 돌들이 곳곳에 박혀있어 신비롭고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벽면에 박힌 돌들에서는, 익숙한 듯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저거, 전부 마정석 인가요?”

나의 질문에 고북대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사옵니다. 용귀의 체내에는 수백만 개에 달하는 마정석이 박혀있지요. 다만 용귀와 융합한 마정석은 바까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독특한 마력 파장을 발산하게 되지요.”

짤막한 대화를 나누며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벽면과 마찬가지로 형형색색의 마정석이 박힌 문에서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자로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드래곤 어인가?’

용귀는 본래 드래곤들의 마도 병기라고 했으니까, 아마도 드래곤들의 문자겠지?

그렇게 속으로 문 위에 적힌 글씨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있을 때,

“용귀, 문을 열어다오.”

문 앞에 도착한 고북 대왕이 가볍게 손을 들어 마력을 방출했고,

- 드드드드득······.

“위대한 수호자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거대한 문이 양옆으로 벌어지며 수십, 아니, 수백에 달하는 용궁의 식구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 이게 뭐냐······.’

상상을 초월하는 용궁 식구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무언가가 이상했다.

‘어째서 용궁 식구들이 입구에 다 모여 있지? 꼭 우리가 올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혹시 이것도 예견된 일인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