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7 숲속 친구들의 용궁 기행.
“트, 특별 교관님을 난처하게 만들 장애물이라니,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네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고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주혁 씨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마치 고미가 스틸맨을 볼 때처럼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으음······. 이분에게 고미는 이미 우주 최강의 히어로가 되어있는 모양이군.’
동경과 존경심이 가득 묻어나는 그 눈빛에 한껏 자신감이 오른 아기곰은 손수 만든 주먹밥을 한입 베어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후후, 그때는 위대한 이 몸도 지금처럼 강력하지는 않았느니라. 지금이라면 웅왕빔으로 한방에 그 등껍질 달린 도마뱀을 격침시켰을 테지만, 당시에는 녀석의 강력한 결계와 껍질 때문에 적잖이 애를 먹었지.”
이어지는 고미의 말에, 절로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지, 진짜냐. 이 녀석이 애를 먹을 정도의 결계를 가지고 있는 전함이라고?’
실로 드래곤들이 만든 최강의 마도 병기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은 능력.
무엇보다 나를 흥분시킨 건, 그 전함이 곧 숲속 친구들의 모함(母艦)이 되어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 출격할 거라는 사실이었다.
슈퍼 아기곰과 정의의 용사들이 타고 있는 우주 전함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군.
그래, 고미의 표현을 빌자면······.
이건 정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일이다.
“처음에는 힘으로 녀석을 격침시키려 했지만, 녀석의 등껍질은 위대한 이 몸의 일격을 견딜 정도로 견고했느니라. 위대한 이 몸의 기습을 막아낸 녀석은 곧바로 다시 차원의 틈으로 숨어들었지.”
······.
음, 이 슈퍼 먼치킨의 꿀주먹을 맞고도 부서지지 않는 등껍질이라니, 명실공히 우주 최강의 등딱지를 가진 생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
우주전함 슈퍼 거북이에 대한 기대감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난다.
“하지만 이 몸은 포기하지 않고 거북이 등딱지에 숨은 채 고개조차 내밀지 않는 비겁한 도마뱀을 혼쭐내 주기 위해 더욱 의욕을 불태웠느니라.”
이어지는 고미의 설명에 따르면, 녀석은 용궁 안에 잠입할 기회를 찾기 위해 무려 한 달 이상을 거북이의 등껍질에 매달려 차원의 틈새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엄청난 집념이군······.’
아니, 이건 엄청난 걸 넘어서 소름이 돋는 수준이다.
“그 사이 위대한 이 몸은 몇 번이고 그 괘씸한 거북이 녀석의 몸속으로 들어가려 애를 썼지만,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느니라.”
이 대목에서 고미는 특유의 오만한 표정으로 모두를 내려다보며 짤막한 꼬리를 바짝 곤두세웠다.
“후후후······. 하지만 위대한 이 몸은 결국 깨닫고 말았다. 엉곰엉곰 기어가면! 거북이 녀석의 결계라 해도 이 몸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
전혀 설명이 안되잖아.
용족이 만든 궁극의 마도 병기 중 하나가 펼친 결계를 무시하고 그 안에 잠입할 수 있는 방법이 고작 엉곰엉곰 기어가는 거라고?
“후후, 그 후로 이 몸은 인간들이 말하는 폐쇄형 던전마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느니라!”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에도 결말이 어처구니가 없군.
그런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능력이 완성된 과정이 고작 그거라니······.
아니, 이야기는 확실히 스펙타클한데, 그 과정이 뭔가 심하게 개연성이 붕괴되어 있는 느낌이다.
“게다가 녀석의 결계를 보고 열심히 연구한 결과, 이 몸의 결계 역시 더욱 완벽해졌느니라. 그것이 바로······.”
설명을 이어나가던 아기곰은 말을 하는 대신 가볍게 손을 휘둘러 아주 익숙한 검은색 벽으로 우리의 주위를 둘러쌌다.
“흑곰 덫이 그때 만들어진 거야?”
봉식이의 질문에 초콜릿색 아기곰은 말없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들어도 믿기지가 않네. 지금만큼 강력하지 않을 때도 드래곤 로드급의 마력을 가진 존재를 참교육할 정도로 강했단 말이야?’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아, 고미의 능력은 본인의 말마따나 수많은 시련을 통해 강해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다만 그 시련을 극복한 방법이나 과정이······. 설명을 들으나 마나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지.
‘뭐, 그때도 절대 평범한 아기곰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이 부분은 백번 양보해도 절대로 그렇다고 말해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후에 이어진 이야기는, 나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용귀의 몸속에 잠입하는데 성공한 아기곰은 곧장 초대형 거북이의 뱃속에 숨어있던 용왕을 찾아 달달한 꿀주먹을 선물했고, 바닷속 친구들에게는 평화가 찾아왔다는, 참으로 고미다운 엔딩.
“그런데, 고북 대왕이 바다를 다스리게 된 건 왜야? 역시 고북 대왕도 수다르 님처럼 착한 사람인가?”
그때, 봉식이가 커다란 다리뼈 하나를 열심히 뜯으며 질문을 던졌다.
저 자식의 먹성은 언제봐도 굉장하군.
오늘 가장 고생한 건 나인데, 어째서 저 녀석이 며칠을 굶은 것처럼 먹어대는 걸까.
“고북 대왕은 현명하고 자애로운 분입니다. 저도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요.”
고북 대왕의 이름이 나오자, 고미 대신 토생원이 추억에 잠긴 입을 열었다.
뭐, 이쪽은 용왕에게 간을 빼앗길 뻔했다가 고북 대왕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했으니, 당연히 고북대왕에게 호의적이겠지.
“게다가 고북 대왕은 아주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토생원의 말에 고미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웅? 고북 할아범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더냐?”
······.
몰랐던 거냐.
“모, 모르셨습니까?”
고북 대왕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는 줄도 모르고 왕 자리를 내어줬다는 말에, 토생원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흐, 흐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느니라. 중요한 것은, 고북 대왕이 훌륭한 녀석이라는 사실이지! 도마뱀 놈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서 용궁에 남아있던 모든 녀석들이 고북을 왕으로 삼기를 바랐느니라!”
이에 고미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면서도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주장했다.
“그 능력이라는 게 뭔데요?”
한편, 나는 고북대왕이 어쩌다 왕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보다, 그가 가진 특별한 능력이 무엇인지가 더 궁금했다.
산신령은 초월자급의 의사이자 약사니까, 고북 대왕 역시 뭔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궁금한 게 당연하지.
그리고 그 능력을 잘 활용하면, 이번 전쟁에 커다란 도움이 될 테고.
‘예상치도 않은 곳에서 새로운 아군이 등장했네.’
어찌됐든, 적은 적을수록, 내 편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미리 고북 대왕의 능력을 파악해두는 게 좋겠지.
“고북은 예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용왕의 추격대를 피해 무사히 달아날 수 있었던 것 역시 고북 대왕의 예언 능력 덕분이었지요. 용왕에게는 비밀로 했지만, 제가 만난 초대 고북 대왕은 강력한 예지력을 가진 점술가였습니다.”
음······. 거북이가 예언자라니, 설마 자기 등껍질에다가 점을 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어쩌면 처음부터 고미가 용궁으로 쳐들어올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용왕의 추격대로부터 토생원이 무사히 달아날 수 있도록 도와줄만한 예언자가 고미가 용궁에 쳐들어올걸 모를 리는 없을테니 말이지.
‘아니, 반대로 고미가 용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줬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속으로 이런저런 추측을 하고 있을 때, 초콜릿색 솜뭉치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오, 오오! 그래서 그 녀석이 나를 기다렸다며 꿀을 내준 것이구나! 용궁에 꿀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했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렸느니라!”
······.
설마 뇌물을 받고 기분이 좋아져서 고북 대왕을 용왕으로 임명한 건 아니겠지?
정말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고북 대왕을 왕으로 삼은 거 맞지?
‘음, 의심이 지나쳤군.’
농담반 진담반 마음 속으로 내뱉은 말이지만, 설마 이 정의로운 아기곰이 뇌물에 홀딱 넘어가서 바다의 왕을 정하지는 않았겠지.
“우, 우웃! 그렇구나!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이어서 고미는 무언가 엄청난 비밀을 눈치챈 사람, 아니, 아기곰처럼 보송보송한 솜방망이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고북이 후일 반드시 크게 쓰일 때가 있을 터이니 그 등딱지 달린 도마뱀을 자신에게 맡겨줄 수 있겠느냐 물었는데! 그것이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말한 것이 분명하구나!”
고미의 충격적인(?) 발언에, 자리에는 잠시 어색한 정적이 맴돌았다.
‘지, 진짜냐······. 그런 얘기를 듣고도 고북 대왕이 예언자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 거냐.’
조금 맹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상대가 예언자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건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당연히 그 예언을 떠올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바로 그 슈퍼 거북이라는 걸 깨닫는 게 정상적인 수순 아니냐고······.
‘아니야, 아니야. 수백 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까먹을 법도 하지.’
그럼, 그럼.
나도 가끔 장 보러 나갔다가 사려던 건 안 사고 엉뚱한 것만 사서 돌아올 때가 있는데.
언제나 공사다망한 대균열의 수호자니, 일이 바빠서 그런 일 정도는 까먹을 수도 있지.
“흐, 흐흠······. 수하님, 고미님, 이 늙은이가 보기에 저 두 분께서는 저의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은데, 혹 진맥을 해보아도 되겠습니까?”
바로 그때, 숲속 친구들 중 가장 충심이 넘치는 눈치 빠른 산신령이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려보자, 흑암이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무는 것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고미에게 맹하다는 둥, 어째서 그런 중요한 사실을 여태 눈치채지 못했냐는 둥, 그런 나쁜 말을 하려던 거겠지.
수다르 님은 눈치껏 그 이야기를 잘라 버린거고.
“오, 오오! 그렇구나! 수다르, 역시 너는 훌륭한 의원이다!”
그제야 신 팀장님과 이주혁 씨를 이곳에 데리고 온 이유를 기억해낸 아기곰은 어서 진맥을 받아보라는 듯 두 사람의 등을 떠밀었고,
“으음······.”
이제 명실상부한 의술 분야의 초월자가 된 수다르님은 천천히 두 사람의 맥을 짚어보았다.
“허허, 이쪽 분께서는 사기(邪氣)와 살기에 침식당해 마음을 잃어가고 계시군요. 제가 사이한 기운을 제거해줄 단약을 만들어 드릴테니, 하루에 세 번씩 복용하십시오. 아마 한달 쯤이면 정상으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이어서 수다르 님은 이주혁 씨의 맥을 짚어보고는 곧바로 무엇이 문제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이쪽 분께서는 타고나기를 근골이 허약하고 기맥이 약하시군요. 무슨 이능을 가지고 있으신지는 모르겠으나, 이능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도 상당히 애를 먹으실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 정말 굉장하십니다! 저, 저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산신령님의 의술을 직접 체험한 이주혁 씨는 용한 무당을 만난 것처럼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반면 신 팀장님은 예의 그 무뚝뚝한 태도로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할 뿐이었다.
“두 분은 앞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저에게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두 분이 드실 단약은 내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산신령님의 처방을 끝으로 숲속 친구들의 야식 파티겸 전설따라 삼천리는 끝을 맺었다.
* * *
다음 날 아침.
“수하! 수하! 어서 고북 대왕을 만나러 가자꾸나!”
친구들에게 용궁을 구경시켜줄 생각에 잔뜩 신이 난 아기곰은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나를 흔들었다.
자신의 위대한 행적이 남아있는 전설 속의 유적(?)이니, 한시라도 빨리 친구들에게 용궁을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알았어, 빨리 가보자.”
나 역시 그 용궁이라는 걸 빨리 구경해보고 싶기도 했고, 이미 수백 년 이상 바닷속과 차원의 틈새를 오간 숲속 친구들의 특급 전함이 망가지지는 않았을까 확인도 해보고 싶었던 터라, 곧바로 봉식이를 깨운 뒤 게이트를 열고 화원으로 이동했다.
* * *
화원으로 들어가자, 삼룡이 패밀리에 동이님, 이강혁 씨에 흑암과 New인국 씨에 무서운 손주분까지, 이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면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럼, 곧바로 이동하도록 하지요.”
숲속 친구들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동이님은 흐뭇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직접 드래곤으로 변신했다.
“우, 우오! 동이! 오랜만에 너와 함께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냐!?”
동이님의 크기는 이전에 보았던 것만큼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제르보나와 이유찬 씨에 비교해도 두 배에 이를 정도로 거대했다.
아마 사람들이 놀랄 것을 고려해 적당한 크기로 변신을 하신 거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 크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했고, 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아기곰은 잔뜩 신이 나서 동이님의 등 위에 올라탔다.
“자! 가자! 이 몸이 용궁을 구경시켜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