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3 깽값
< 어둠의 손길(S)이 적용됩니다. >
< 힘이 10 감소합니다. >
< 민첩이 10 감소합니다. >
갑작스레 상태창에 떠오른 메시지에,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
‘저주!?’
숲속 친구들 중에서 저주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건 흑암과 노인국 씨 둘 뿐이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저 둘 중 하나가 나에게 저주를 걸었겠지.
궁금한 것은 이 타이밍에 나에게 저주를 거는 이유가 뭐냐는······.
- 빡!
“아악!”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검은 몽둥이가 인정사정없이 나의 어깨를 내리쳤다.
“정신 차리십시오.”
이, 이······. 이강혁 씨 하나도 벅찬데, 나한테 왜들 이러냐!
서러움과 배신감이 가득한 눈길이 자신을 향하자, 노인국 씨는 민망한 듯 입을 가린 채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흐흠! 수하 씨, 미안하네. 하지만 고미 선생과 흑암이 자네에게 저주를 걸어보라고 해서 말이야.”
“김수하, 내가 보기에 네 신체 능력은 명백히 이강혁보다 한 수 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저 녀석을 제압하지 못해 절절매고 있지. 설마 가짜 고미를 상대로도 네 능력치가 높을 거라고 생각하나?”
이어서 노인국 씨의 어깨 위에 서 있던 흑암이 자신의 V자형 선글라스를 살짝 밀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 수하. 너는 지금부터 너보다 몇 배는 강한 상대와 싸우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느니라.”
심지어 고미마저 흑암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보기 드물게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할 말이 없네.
그건 그렇지······.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고는 해도, 가짜 고미의 신체 능력은 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할 테니까.
“수하, 나는 네가 죽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 네 능력으로는 작은 살쾡이의 도움을 받는다 한들 십중팔구는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더없이 진지한 고미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그래, 나도 죽는 건 싫다.
게다가 내가 가짜 고미를 막지 못하면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르는데, 언제까지 드립이나 치면서 구시렁거릴 수는 없지.
‘좋아, 간만에 진지하게 해볼까?’
나 김수하, 드립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지만, 또 할 때는 하는 남자라고.
좋아, 구를 때 확실하게 구르고, 왕창 강해져서 한 방에 가짜 고미를 물리치자.
그 다음에 푹 쉬는 거다.
“오, 오오! 수하! 투지가 느껴지는구나!”
내가 자세를 고쳐잡자,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기곰은 열렬하게 솜방망이를 두드리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드디어 흑암에게 맞서실 때의 표정이 나오시네요.”
그 모습을 본 이강혁 씨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도 본격적으로 가보겠습니다. 이제 기본적인 공방에 대해서는 확실히 감을 잡으신 것 같으니까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새카만 몽둥이가 채찍처럼 휘어들며 사선으로 나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검의 달인과 감각 강화 스킬 덕분인지, 이제 검의 궤도는 확실하게 보인다.
문제는······.
‘느려.’
몸의 반응이 느리다.
이 정도면 충분히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검이 지척까지 다가와 있다.
이에 나는 뒤쪽으로 크게 물러서며 상체를 가볍게 뒤로 젖혔다.
- 쉬익!
그러자 나의 아래에서부터 사선으로 치고 올라왔던 검이 돌연 궤도를 틀어 수직으로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 깡!
‘아, 아슬아슬했어.’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막아내는 순간,
- 퍽!
“욱!”
복부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발?’
그렇구나. 검사라고 해서 꼭 칼만 쓰라는 법은 없지.
나의 몸이 뒤쪽으로 밀려나자, 이강혁 씨는 마치 기회를 잡은 맹수처럼 더욱 맹렬한 기세로 공격을 이어나갔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몽둥이가 그린 호선이 끊임없이 연결되며 먹이를 쫓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잔영이 허공을 수놓았다.
< 힘이 3 감소합니다. >
< 민첩이 3 감소합니다. >
그때, 또 한차례 능력치가 감소됐다는 메시지가 시스템 창에 떠올랐다.
- 깡! 깡!
동시에 이강혁 씨의 공격을 막는 손에서 점점 힘이 빠지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지속적인 디버프 스킬인가?’
무언가 조건이 충족되면 계속해서 능력치가 떨어지는 건지, 단순히 천천히 힘과 민첩을 갉아먹는 스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져.’
게다가 가짜 고미를 상대로 이렇게 수비만 할 수도 없고.
‘좋아, 차라리 적극적으로 공격을 해보자.’
결단을 내린 나는 이를 악물고 앞쪽으로 대차게 검을 휘둘렀다.
- 부웅!
갑작스런 반격에, 이강혁 씨는 처음으로 공세를 멈추고 내 공격을 피했다.
“응?”
이어지는 나의 움직임에 이강혁 씨의 한쪽 입꼬리가 낚싯바늘처럼 휘어 올라갔다.
‘아래에서 위로.’
축발을 내디디며 사선으로 휘두른다.
이강혁 씨가 했던 그대로.
- 깡!
하지만 이강혁 씨의 선택은 나와 달랐다.
뒤로 물러서는 게 아니라, 검이 채 휘둘러지기도 전에 맞받아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후속 공격을 막는 거구나.’
좋아, 한 수 배웠다.
연속 공격을 막을 때는 수비가 아니라 반격으로.
공격이 시작될 때 차단하는 게 가장 좋고.
공격을 막아낸 이강혁 씨는 번개처럼 몸을 회전시켜 나의 허벅지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건 맞아도 돼.’
검이라면 다리를 베였겠지만, 이건 몽둥이다.
아프지만 참을만 하다.
차라리 이걸 맞고 반격을······.
- 뻐억!
“아아악!”
그러나 허벅지에 몽둥이가 닿는 순간, 나는 곧바로 바닥을 나뒹굴고 말았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통증.
앞선 공격들이 각목으로 때리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쇠파이프로 있는 힘껏 다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불필요한 부상을 피하기 위해 가검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게 실전에서 쓸 수 없는 전술을 사용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뭔가 착각을 하신 것 같네요.”
고개를 들어 이강혁 씨의 손에 들린 몽둥이를 올려다보자, 그의 검에서 은은한 백색 빛이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거, 검기 써도 되는 거예요?”
“진짜 검기였으면 다리가 잘렸겠죠. 그냥 기공술로 몽둥이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 것 뿐입니다.”
이, 이게 ‘조금’이라고?
‘많이’ 단단하게 만들었으면 초상 치르겠네,이 사람아!
절뚝거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기다렸다는 듯 상태창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 힘이 5 감소합니다. >
< 민첩이 5 감소합니다. >
······.
설마 이거, 처음에 큰 폭으로 능력치를 깎고, 그 다음부터는 데미지를 받을 때마다 능력치가 감소되는 스킬인 건가?
‘망했군.’
저주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안다고 해서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감소된 능력치는 힘과 민첩 각각 18 포인트.
‘이 정도면······. 이미 B급 수준까지 떨어진 거잖아.’
S급 수준의 능력치로도 이강혁 씨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는데, 이 정도로 능력치가 떨어져 버리면······.
- 퍽!
아니나 다를까, 이제는 눈으로 보나 마나 손발이 따라주지 않아 곧바로 다음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 힘이 3 감소합니다. >
< 민첩이 3 감소합니다. >
“음······. 저주가 생각보다 강력한 것 같군요. 이제 더 이상 해봐야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것 외에는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이쯤에서 그만할까요?”
내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자, 이강혁 씨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나의 의견을 물었다.
“음······.”
이에 웅 노사는 조금 아쉬운 듯 침음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싫어요.”
정작 나는 이대로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우웅?!”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음에도 수련을 멈추지 않겠다는 나의 결연한 태도에, 고미는 조금 놀란 듯 두 눈을 치켜떴다.
“끝까지 해보죠.”
뒤이어 내 입에서 나온 말에, 흑암은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호오, 김수하. 너에게 그런 오기가 있는 줄은 몰랐군.”
아니, 난 오기 같은 거 없다.
남자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승부욕, 그런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러면 지금까지 얻어 터진 게 헛고생이 되잖아!’
맞는 건 싫다.
난 아픈 걸 즐기는 변태가 아니다.
그러나 아픈 것보다 더 싫은 건, 실컷 두들겨 맞고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가는 거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맞고 끝나면 ‘피로야, 가라!’ 스킬의 효과를 제대로 볼 수가 없잖아.
그것만큼은 절대로 싫다.
‘일을 했으면, 돈을 받아야지!’
그래, 대학원 시절에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
아무리 잠을 줄여가며 일을 하고 공부를 해도, 보상이 없다는 그 억울한 감각.
‘차라리 뒤지게 맞고 강해질 거야!’
어중간하게 얻어터지고 아무런 소득도 없느니, 차라리 처절하게 불사르고 확실한 보상을 받고 말 거다!
그리고 내 힘으로 당당하게 가짜 고미를 무찌르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노닥거리는 거다!
굴러라 김수하!
그 끝에는 반드시 워라밸이라는 낙원이 기다리고 있을지니!
“제가 못 일어날 때까지 한 번 해보죠.”
이를 악물고 내뱉은 말에, 이강혁 씨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투지는 좋네요. 좋습니다. 그럼 저도 인정사정없이 가겠습니다.”
······.
아니요, 그렇게까지 하실 건 없······.
“오오, 좋다! 수하! 훌륭하다! 나의 제자다운 웅혼한 기상과 투지가 느껴지는구나! 가라, 허수아비! 전력으로 수하를 때려눕히는 것이다!”
아니야, 고미, 그러지 마. 너 나한테 왜 그러냐? 혹시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
- 퍽!
“아악!”
<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
- 퍽!
<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
“어억!”
* * *
어머니, 오늘도 안녕하신지요.
아웅이와 다웅이는 가게 일을 잘 돕고 있을지, 김태평 사장님은 무협 드라마 보신다고 게으름 피우는 일 없이 장사를 잘 하고 계실지, 조금 걱정이 됩니다.
아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숲속 친구들과 함께 본격적인 훈련을 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아버지의 낚시 친구 이 사장은 생각보다 과격한 면이 있더군요.
앞으로는 마음속으로라도 원조 호구니 광신도니 하며 드립을 치지 말아야겠다고, 새삼 저의 언행을 돌아봤습니다.
아참, 오늘 돌아가신 할아버지 얼굴을 봤습니다.
경치 좋은 꽃밭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강을 건너 꽃밭으로 가려 하니, 아직 올 때가 아니라며, 어서 돌아가라고 손짓을 하더라고요. 그래도 오랜만에 할아버지 얼굴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오늘따라 어머니의 집밥이, 따스한 손길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부디 먼저 가는 불효자를 용서하소서.
* * *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낯선 천장··· 은 아니고, 제법 익숙한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대웅전?”
“오오, 수하! 정신을 차렸느냐?”
이어서 유리알처럼 맑은 아기곰의 낭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죄송합니다. 설마 그렇게 마지막까지 달려드실 줄은 몰랐네요.”
이강혁 씨는 연신 미안하다며 고개 숙여 사과의 말을 건넸고,
“큭큭큭, 그러게 왜 괜히 이를 악물고 달려드냐. 너 카운터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봉식이는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나에게 포션과 단약을 내밀었다.
“먹어. 삼돌이가 가져다 준 약이다. 수다르님이랑 토생원도 곧 돌아온대.”
하지만 봉식이가 내민 포션을 입에 털어넣으려는 순간······.
놀랍고도 끔찍한 사실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야, 안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아.”
몸이······. 가볍다.
어깨부터 시작해 옆구리, 배, 팔다리 할 거 없이 어디 한군데 성했던 곳이 없었는데······.
내 인생에서 이렇게 컨디션이 좋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다.
‘이럴 수가······.’
설마 여태 스스로도 몰랐을 뿐, 나는 그런 체질?
아니, 아니지. 드립이지만 너무 멀리 갔다. 취소.
나는 지극히 건전하고 정상적인 취향을 가진 남자라고.
“우웅!? 수하, 어째서 자고 일어나니 멀쩡해진 것이냐? 그것은 진정한 곰에게나 가능한······.”
그때, 무언가를 눈치챈 열혈 아기곰의 눈에서 화르륵, 불꽃이 일었다.
‘아, 안돼.’
여기서 ‘피로야, 가라!’ 같은 스킬이 생긴걸 고미가 알아버리면······.
“수하! 어서 그 상태창이라는 녀석을 열어보거라! 네가 진정한 곰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모양이다!”
망했군······. 망했어.
‘대체 가시모드 따위는 왜 존재하는 거냐.’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지못해 꿀태창을 여는 순간······.
< 축하합니다.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
< 축하합니다.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
내가 기절해 있는 사이 ‘깽값’이 도착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