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27화 (227/300)

EP.227 수하의 역할.

너무나도 파격적인 보상에, 나는 대학원생 시절 논문을 보던 것처럼 꼼꼼히 시스템 창을 뜯어보았다.

가짜 고미에 대한 힌트를 주기 위해 페달 카트를 선물하고, 이제는 아예 녀석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퀘스트까지 주었다.

목적은 일목요연했다.

‘이 보상에도 틀림없이 힌트가 숨겨져 있겠지.’

< 가짜 고미와 맞서는 동안 사용한 스킬의 등급이 향상됩니다. >

< 고미류 기공술 – 웅신입기혈(S -> SS) >

< 고미류 기공술 – 곰기(S -> SS) >

< 허곰답보(C -> A) >

< 드래곤 스케일(F -> C) >

< 비웅참 (A -> S) >

< 검의 달인 (S -> SS) >

‘이, 이게 뭐야······.’

꿀태창에 주르륵 나열된 SS급 스킬의 향연에,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찔해졌다.

물론 지금까지도 관리자의 보상은 후하다 못해 퍼주는 수준이기는 했다.

심지어 동이님을 만났을 때는 모든 스킬의 등급이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자 그대로 전례가 없는 수준의 파격적인 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잠깐만······.’

그때, 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중요한 생각이 떠올랐다.

고미를 도와 세상을 지키고 악몽의 지배자를 물리치는 게 최종적인 목표라면, 그 목적에 부합하는 임무에, 그리고 그 중요도에 따라 보상을 지급하는 것이 맞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가장 강력한 원군이 되어줄만한 동이님을 만났을 때나, 고미의 아군이 될 친구를 만들 때마다 보상을 주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그 논리대로라면······.’

역대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의 보상이 의미하는 바는, 지극히 명료했다.

‘가짜 고미를 도망가게 만든 게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는 건가?’

아니, 가능하면 잡기를 원했을 거다.

혹은 아군으로 만드는 걸 원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놓쳤음에도 이만큼 큰 보상을 줬다는 건······.

‘가짜 고미를 만나는 것 자체가 그만큼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소리겠지.’

그리고 원조 아기곰은 가짜를 만났을 때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반응을 보였다.

‘왜였을까?’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또다른 힌트를 찾기 위해 다시 시스템 창으로 눈을 돌렸다.

< 새로운 스킬을 선택해 주세요. >

- 만천화웅(滿天花熊) (SS ~ Gomi)

인간들은 위대한 곰의 기곰술을 보고 강력한 암기술을 고안해 냈습니다. 온 하늘을 꽃잎처럼 뒤덮는 웅장한 기곰술로 적들을 쓸어 버리세요.

- 불도장 (SS ~ Gomi)

위대한 곰은 기곰술의 극치인 삼매진화(三昧眞火)에 이르러 모든 사악한 존재를 멸할 천벌과도 같은 초식을 창안해 냈습니다. 웅혼한 기상이 깃든 뜨거운 화염으로 악당들을 불태워 버리세요!

비고 : 본 스킬은 두 가지 중 하나만을 선택하여 익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스킬을 확인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만천화웅과 불도장은, 지금까지 내가 익힌 스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자랑하는 스킬이었다.

아쉬운 점은, 둘 중 하나 밖에 익히지 못한다는 점······.

‘응······? 잠깐.’

하지만 잠깐만 머리를 굴려보니, 하나만 익혀도 두 개를 모두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미와 나는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고, 그 차이점을 잘만 이용한다면······.

< 만천화웅(SS ~ Gomi)을 선택하셨습니다. >

이에 나는 망설임없이 불도장을 포기하고 만천화웅을 선택했다.

‘그런데, 왜 이 두 개지?’

하지만 스킬 선택을 마칠 때까지도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모르겠어, 가짜 고미가 원조의 기술을 흉내낼 수 있다는 건 확실한데······. 고작 그걸 알려주기 위해서 이렇게 복잡한 짓을 벌이지는 않을 것 같고······.’

결국 이렇다 할 답을 얻지 못한 나는 댕댕이 오형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녀석들을 칭찬해 주고 있는 아기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참으로 기특하구나. 앞으로도 토생원과 수다르에게 힘이 되어다오.”

바로 그때, 평소와 거의 같은 상태로 돌아온 이강혁 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곰 선생님, 아까 전 가짜 고미를 만났을 때 왜 그렇게 놀라셨던 것입니까?”

“그래, 나도 궁금했어. 왜 그랬던 거야?”

이강혁 씨에 이어 봉식이까지 이유를 묻자, 댕댕이 오형제와 놀아주던 아기곰은 진지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녀석에게서······. 진정한 곰의 냄새가 났느니라.”

잠깐······. 그게 무슨······.

“그게 무슨 소리야, 진정한 곰의 냄새라니? 진정한 곰은 너 하나 뿐이라며.”

나의 물음에 고미는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 하지만, 하지만! 그 녀석이 진정한 곰일 리가 없다! 그 녀석이 이 몸처럼 위대한 진짜 곰이라면, 이 몸의 친구를 공격할 리가 없단 말이다!”

고미의 표정과 목소리는, 얼핏 보기에는 상당히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마치 무언가 중요한 생각을 애써 머릿속에서 밀어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마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한 사람처럼······.

“고미,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 그렇다! 게, 게다가 그 녀석은 야, 약한 녀석들을 먼저 공격하고! 나를 이기지 못할 것 같으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지 않았더냐! 그, 그런 녀석이 지, 진정한 곰일 리가 없다!”

초점을 잃은 눈, 쉴 새 없이 쫑긋거리는 귀와 불안한 듯 흔들리는 꼬리까지······.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바, 반드시 혼쭐을 내줄 것이다! 그, 그 누구도 이 몸의 친구를······.”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 고미의 모습에,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그 녀석도 너처럼 대균열에서 태어난 곰일 가능성은 없는 거야?”

나의 질문에 불안한듯 쉴 새 없이 흔들리던 고미의 꼬리가 우뚝 멈춰섰다.

“그, 그럴 리가 없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흑암의 말에 따르면, 케르베로스는 가짜 고미를 완성하기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생물일 가능성이 컸다.

즉,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녀석이 모종의 수단으로 만들어진 고미의 복사본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능력도, 성격도 비슷한 걸 테지.’

하지만 고미 입장에서는, 혹시 자신과 똑같은 존재가 태어났던 적이 있는 건 아닐까, 자기도 모르는 또다른 곰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겠지.

늘 혼자라고 믿었던 자신에게도 혈연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대로 굳어버렸던 걸 테고.

그러나 내가 보기에, 가짜 고미는 고미의 혈연이나 조상이 아니라, 녀석을 흉내내 만들어진 클론이라는 게 거의 확실했다.

‘녀석이 고미의 클론이라면······. 다른 힌트들이 의미하는 건 뭐지?’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번쩍번쩍 빛나는 페달 카트의 모습이 떠올랐다.

‘잠깐, 드라고니아산 미스릴 합금은 다른 금속을 섞으면······. 그 특징이 그대로 발현된다고 했지?’

이어서 지금까지 모아온 퍼즐조각들이 하나하나 모이며 완성된 그림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저 아래로 곤두박질을 쳤다.

진짜 금모사왕은 가짜가 됐고, 가짜 적염낭왕은 진짜가 됐다.

골든-갓-고미 호의 소재인 드라고니아산 미스릴은 다른 금속의 속성을 그대로 흡수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짜 고미에게서 진정한 곰의 냄새가 났다······.

‘설마 녀석이 고미와 완전히 똑같은 존재로 거듭나는 건가? 그 대가로 고미는 힘을 잃는 거고?’

그리고 가짜 고미에게서 진정한 곰의 냄새가 났다는 건, 이미 그 연구가 상당한 수준까지 진척됐다는 의미일지도 몰랐다.

“고, 고미. 혹시 아웅이나 다웅이는 어때?”

이어지는 나의 질문에 고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들은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냄새가 난다. 물론 이 몸의 형제들답게 진정한 곰의 기운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가짜 녀석은······. 완전히 이 몸과 똑같은 냄새가 났단 말이다.”

내가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하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봉식이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래, 너 뭐 집히는 거 있냐?”

“아, 아니, 아니야.”

나는 저도 모르게 나의 추측을 부정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김수하, 솔직하게 말해. ”

내가 그 불길한 생각을 몰아내려 애쓰고 있을 때,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챈 봉식이가 굳은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 그 불길하기 짝이 없는 추측을 입에 올렸다.

너무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부정한다고 있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고, 고미가 힘을 빼앗길지도 몰라······.”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아니, 그건 최악의 경우고······.”

그래, 그건 어디까지나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다.

그보다는 가짜 고미가 고미와 똑같은 힘을 갖게 된다는 쪽이 더 가능성이 높지만······.

삼돌이의 몸에 붙은 금모사왕과 적염남왕의 머리를 떠올리니 도저히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흑암의 말대로라면, 저 사자머리는 진짜 금모사왕의 것이지만 생전의 힘을 잃었어. 반대로 늑대 머리는 가짜 적염낭왕의 것이지만 고미마저 착각할 정도로 진짜와 똑같고.’

왜 그런 연구를 했을까.

그냥 고미와 똑같은 존재를 만들 생각이라면, 굳이 진짜를 가짜로 만드는 연구를 할 필요는 없다.

“흥! 수하! 이번만큼은 네 생각이 틀렸느니라!”

그때, ‘원조 아기곰’이 흥분한 표정으로 솜방망이를 바르쥐며 목소리를 높였다.

“평범한 인간은 물론이고, 두더지 녀석이나 수다르 같은 존재도 이 몸의 기운을 너무 많이 받아들이면 기혈이 폭주하여 그대로 목숨을 잃고 만단 말이다!”

그래, 그렇겠지······.

그래서 ‘나눠먹기’가 없으면 나를 제외한 누구도 청심환을 먹지 못하는 거고.

“하지만 너와 완전히 똑같은 냄새가 났다며.”

“그, 그것은······.”

이어지는 나의 질문에 원조 아기곰의 커다란 두 눈이 또다시 갈피를 잃었다.

“아직 기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너와 같은 체질을 가진 거 아니야?”

그릇은 완성됐다. 내용물이 부족할 뿐.

그런 거라면, 내용물을 옮겨 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문제는······. 대체 어떻게 그 그릇을 만들었느냐 하는 점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 슈퍼 먼치킨과 똑같은 그릇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고미, 아까 그 번개, 혹시 그게 악몽의 능력 아니야?”

가능성은 하나였다.

고미와 네 번이나 일전을 벌여 살아남았다는 악몽의 지배자가, 그 싸움에서 얻은 무언가로 아웅이나 다웅이 같은 고미의 분신을 만든 건 아닐까?

“모르겠구나.”

나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아기곰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모를 수 있어? 네 번이나 싸웠다며?”

“악몽은 다시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능력을 가지고 이 몸의 앞을 막아섰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에 이 몸에게 혼쭐이 나서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그 번개가 악몽이 새로 얻은 능력일 가능성은?”

“그, 그것은······.”

그래, 너도 장담할 수 없겠지.

하지만 나는 고미의 답을 통해 그 검은 번개를 불러낸 것이 악몽의 지배자이며, 동시에 그가 만수왕과 황금의 군주와 손을 잡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악몽의 지배자는 네 번이나 고미와 싸우고도 살아남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다.

자신의 유일한 라이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슈퍼 아기곰의 힘을 빼앗는다면, 만수왕이나 황금의 군주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을 테고.

‘그런 상황이라면, 원수랑 손을 잡아도 무방하지.’

어차피 모든 게 끝나고 싸그리 죽여버리면 그만이니까.

‘관리자, 나한테 뭘 시키고 싶은 거야?’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결말에, 나는 자연스레 관리자에게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엄청난 싸움에 나를 던져넣은 이유가 무엇인지, 나에게 온갖 힌트와 보상을 던져주며 맡기고 싶은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라 김수하, 생각해.’

내가 고미보다 나은 점, 고미에게 부족했던 것, 내가 채워줄 수 있는 것.

고미와 내가 함께였기에 벌어졌던 수많은 사건들, 둘 중에 하나만 없었어도 벌어지지 않았을 수많은 일들······.

그 사이에는 틀림없이 연결고리가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하나하나의 퍼즐들을 엮으면 완성되는 그림이 분명 존재할 거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거다.

바로 그때······.

벼락과도 같은 생각 하나가 나의 뇌리를 스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