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4 가짜고미 vs 숲속친구들.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익숙한 말투에, 저도 모르게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이 망할 관리자 놈이! 가짜 고미가 나오는 곳이라고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상상도 못 했다.
갑자기 던져준 퀘스트가, 가짜 고미와 관련이 있을 줄이야.
이런 엄청난 게 나올 줄 알았다면, 신 팀장님이나 이주혁 씨가 아니라 삼룡이 패밀리를 데리고 왔을 텐데.
“우하하하! 도망가지 말거라! 너희는 모두 위대한 이 몸의 먹이가 되어야 하느니라!”
고미와 비슷한 말투, 심지어 목소리도 비슷하다.
하지만 밝고 순수한 느낌이 가득한, 그래서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원종 아기곰의 그것과는 달리, 가짜 고미의 목소리에서는 포악하고 흉흉한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고 있었다.
“수하씨!”
이강혁 씨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자, 불길한 기운이 풍기는 시커먼 앞발이 검은색 균열을 비집고 나오는 것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 쩌적, 쩌적······.
이어서 녀석의 앞발이 균열을 강제로 잡아 찢으며 커다란 벽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이잇! 참으로 귀찮구나! 그 무엇도 위대한 이 몸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느니라! 어서 열리란 말이다! 맛있는 녀석들이 이 몸을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가짜 고미는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기를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 쩌적, 쩌적······.
녀석이 앞발에 힘을 주어 공간을 잡아 찢자, 균열이 더욱 빠른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고, 고미! 왜 그래! 정신 차려!”
하지만 원조 아기곰은 멍한 표정으로 커져가는 균열을 바라보고 있을 뿐, 마치 혼이 나간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때, 상황을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메시지가 시스템 창에 떠올랐다.
<< 던전이 폐쇄됩니다. >>
<< 퀘스트 변경 >>
<< 던전내 균열에서 나온 ???를 물리치기 전에는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
‘우리끼리 가짜 고미를 막아낼 수 있을까?’
이런 중요한 상황에 원조 아기곰이 멈춰버린 이유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고미가 움직이지 못한다면, 우리가 목숨을 걸고 막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수행한 거니까.
“이강혁 씨, 봉식아! 우리가 막아야 해! 이주혁 씨, 최대한 멀리서 지원 사격 부탁해요! 신 팀장님은 고미 데리고 뒤로 물러나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이강혁 씨와 봉식이가 앞으로 튀어나가고, 신 팀장님과 이주혁 씨가 반대편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위대한 이 몸을 보자마자 줄행랑부터 치는 것이냐! 이 웅졸한 놈들!”
‘옹’을 ‘웅’으로 바꿔서 말하는 것까지, 고미와 똑닮은 그 말버릇에 왠지 모르게 울컥하고 화가 치밀었다.
‘가짜 주제에······. 진짜인 척 하지 말란 말이야!’
- 콰드드드득!
그때, 검은색 균열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가짜 고미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토생원이 왜 이 녀석을 보자마자 달아났다고 했는지 알 것 같군.’
마력이 상승하면서 더욱 거대해진 이유찬 씨나 제르보나 씨의 두 배에 육박하는 크기.
칼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뻣뻣하고 단단한 검은색 털.
고미의 동글동글한 그것과는 사뭇 대조되는 뾰족한 귀와 솜방망이에, 커다란 갈고리를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발톱까지.
토생원의 말대로, 가짜 고미의 외모는 실로 흉악하기 짝이 없었다.
“우웅? 비실이 놈들, 감히 위대한 이 몸의 앞을 가로막아 보겠다는 것이냐?”
균열에서 빠져나온 거대한 흑곰이 오만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봉식이의 몸에서는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이강혁 씨의 장검에서는 한층 더 선명해진 백색의 검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S급을 넘어선 두 사람의 힘으로도 가짜 고미를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 그 검은 곰은 훨씬 더 흉폭하고 무서운 생김새를 하고 있었습니다. 」
「 드래곤보다도 거대하고, 드래곤을 맨손으로 찢어죽일 정도로 강력했지요. 저는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져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습니다. 」
토생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가짜 고미의 전투력은 최소한 SS급,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전혀 승산이 없는 건 아니야.’
나는 최고의 곰, 아니, 고미 학자다.
동시에 고미의 유일한 제자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가짜 고미 따위에게 지지는 않는다.
‘단숨에 승부를 내야 해.’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면, 우리에게 한 번, 어쩌면 두 번 정도는 기회가 있을지도 몰랐다.
< 해피곰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
< 웅신입기혈의 스킬 등급이 임시로 상승합니다 S -> SS / 잔여포인트 5252 >
< 고미류 기공술 – 곰기의 스킬 등급이 상승합니다. A -> SS / 잔여 포인트 4752 >
< 검의 달인의 스킬 등급이 상승합니다. S -> SS / 잔여포인트 4252 >
< 허곰답보의 스킬 등급이 상승합니다. C -> SS / 잔여포인트 3552 >
주력 스킬의 등급을 모두 SS급으로 향상시키자, 1700점에 달하는 해피곰 포인트가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내 몸에는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강한 힘이 넘쳐 흘렀고, 고미와 이유찬 씨의 뜨거운 영혼이 담긴 흑염대웅신검에서도 전에 없이 강렬한 불길이 치솟았다.
[ 봉식아! 넌 왼쪽으로 가! ]
[ 이강혁 씨는 반대 편으로 가주세요! 정면은 제가 맡을게요! ]
이어서 나는 전음의 등급을 A급까지 향상시킨 뒤 이주혁 씨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이주혁 씨와 신 팀장님은 아직 숲속 친구가 되지 못해서, 웅톡방의 메시지를 들을 수 없었으니까.
[ 이주혁 씨, 제가 지시 내릴 때까지 쏘지 마세요! 신 팀장님은 언제든 이주혁 씨와 고미를 데리고 달아날 준비를 해주세요! 저희가 시간 버는 동안 계속 고미 정신 차리게 도와 주시고요! ]
봉식이와 이강혁 씨가 좌우로 갈라지기 무섭게, 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 자리는 내가 리드해야 한다.
고미를 가장 잘 아는 건 바로 나고, 그만큼 가짜 고미를 상대할 방법도 잘 알고 있으니까.
“이 덩치만 큰 가짜 곰 놈아! 내가 너 따위를 무서워할 것 같냐!”
아기곰 관찰일지 1. 아기곰의 성격에 관한 논의.
1-1. 아기곰은 도발을 참지 못한다.
“뭐, 뭣이!? 이 코딱지만한 인간 놈이!”
아니나 다를까, 얄팍한 도발에 넘어온 가짜 고미는 이강혁 씨와 봉식이를 무시한 채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덤벼라! 미련 곰탱아!”
아기곰 관찰일지 1-2. 아기곰은 특히 위대한 곰을 모독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이놈! 감히 위대한 곰을 모욕하는 것이냐!”
“흥, 그래봤자 호랑이나 드래곤보다 인기도 없잖아!”
아기곰 관찰일지 1-3. 아기곰은 용과 호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용이나 호랑이와 비교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네 이놈! 네 놈에게 위대한 곰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마!”
좋아, 여기까지는 예상대로다.
역시 고미와 성격이 비슷해.
왠지 고미가 들으면 불같이 화를 낼 것 같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제 다음 스텝이다.’
아기곰 관찰일지 2. 아기곰의 전투력과 그 특징에 관한 논의.
‘아직 거리가 상당히 멀어, 이 정도 거리에서 사용할만한 기술은······.’
일지곰, 아니면 탄지곰.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받아랏! 탄지곰!”
역시······.
아기곰 관찰일지 2-1. 아기곰은 스킬 이름을 외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일지곰과 탄지곰은, 궤도만 미리 알고 있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어.’
< 허곰답보(SS)를 사용합니다. >
SS급까지 향상된 허곰답보를 사용하자, 가볍게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주위의 풍경이 순식간에 뒤바뀌며 순간이동을 하듯 몸이 다른 곳에 도착했다.
- 쿠르르릉!
동시에 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곳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확실히 빠르고 강력하기는 하지만, 원조와 비교하자면 조금 부족한 느낌.
‘위력은 고미보다 조금 못한 수준인가? 아니,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 함부로 정면에서 받아내려 들었다가는 한 번에 게임오버가 될 지도 몰라.’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원조 아기곰은 늘 여유를 가지고 전투에 임하니까.
이 녀석도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걸 염두에 두고 싸워야 한다.
“우, 우웅!?”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공격을 피하는 내 모습에, 흑곰의 귀가 움찔거리며 커다란 두 눈이 더욱 커다랗게 변했다.
‘당황했군.’
위력이나 속도만 놓고 따지면, SS급에 달한 허곰답보로도 그리 쉽게 피할 수 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문제는 녀석이 스킬명을 외친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스킬의 특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지.
“뭐야, 겨우 이 정도냐?”
“네, 네 이놈! 아주 혼쭐을 내주마!”
계속되는 도발에 분노한 아기곰이 이성을 잃고 나를 향해 달려드는 사이, 이강혁 씨와 봉식이는 이미 녀석의 발치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그래, 계속 나한테 집중해라.’
“웅조수!”
분노한 가짜 고미가 거대한 발톱이 달린 앞발을 휘두르자,
- 콰드드득!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허공 위에 다섯 줄의 검흔이 생겨났다.
‘웅조수의 약점은······.’
이에 나는 곧바로 허곰답보를 사용해 발톱과 발톱 사이로 몸을 날렸다.
원조 아기곰의 웅조수는 이것보다 사이즈가 작다.
하지만 내 예상대로, 크기가 커진 탓에 오히려 피하기가 쉬웠다.
“어, 어떻게 너 같은 비실이가!”
두 번이나 연달아 자신의 공격이 실패하자, 거대한 흑곰의 털과 귀, 그리고 꼬리가 바짝 곤두섰다.
아기곰 관찰일지 3. 아기곰의 감정과 신체언어에 관한 논의에 따르면······.
‘화났군.’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나는 곧바로 온 힘을 다해 첫 번째 공격을 날렸다.
“비웅참!”
- 화륵!
온 힘을 다해 곰기를 날리자, 진짜 흑룡의 브레스보다도 더 뜨거운 검붉은 화염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갔다.
- 쾅!
SS급 스킬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비웅참의 위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했고,
“우, 우웅!?”
검붉은 화염이 폭발을 일으키며 녀석의 거대한 몸뚱이가 아주 조금이나마 뒤쪽으로 밀려났다.
[ 이주혁 씨! 지금! ]
어느 정도 녀석의 시선을 끄는데 성공했다고 판단한 나는 즉시 이주혁 씨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 쉬이이익!
그러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화살이 날아와 가짜 고미의 몸 위에 내리꽂혔다.
- 쾅!
[ 봉식아! 이강혁 씨! 다리! ]
“웅혼참!”
“갓-베어 크래쉬!”
나에게 시선이 몰려있는 틈을 타 유리한 위치를 점한 두 사람은 곧바로 가짜 고미의 다리에 자신들이 가진 최강의 스킬을 퍼부었다.
“크, 크억! 이, 이놈들!”
- 쿵······!
이강혁 씨와 봉식이의 협공에 당한 가짜 고미는 비틀거리다 끝내 균형을 잃고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딱히 데미지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불의의 기습을 당해 잠깐 균형을 잃은 정도.
봉식이와 이강혁 씨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잽싸게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때, 자리에 주저앉은 아기곰이 거대한 앞발을 휘둘러 이강혁 씨와 봉식이를 공격했다.
- 챙!
새까만 앞발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순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부러진 검 조각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 이강혁 씨, 괜찮아요!? ]
[ 아직 괜찮습니다. ]
이강혁 씨는 애써 괜찮다는 듯 다시 한번 부러진 검에 검기를 불어넣었지만, 그의 안색은 이미 새파랗게 변해 있었다.
아마도 방금 녀석의 공격을 완벽히 피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반대쪽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봉식이의 전신이 달아오른 쇠처럼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럴 수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해.’
발톱 끝에 살짝 걸렸을 뿐인데, 저렇게나 데미지를 입다니······.
그래도 S급 이상이 셋이나 들러붙었는데, 빈틈을 노려서 잠시 쓰러뜨리기는 게 고작이라는 건가······.
“이놈들! 비겁한 수법으로 이 몸을 공격하다니!”
그때, 가짜 고미의 입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네 이놈!!! 감히 이 몸의 친구들을 다치게 하다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저 멀리서 더욱 쩌렁쩌렁한 원조 아기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