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2 갓-고미님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2) : 명의, 아기곰 선생
저감정자.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영향으로 인해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거나, 느끼더라도 그 강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저감정자 중에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많다는 거지······.’
물론 저감정자라고 모두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보이는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감정과 공감 능력의 결여니까.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 것은, 신 팀장님이 암살계, 그것도 ‘몬스터보다 사람을 많이 상대한’ 헌터라는 사실이었다.
한 가지 의문은, 회귀자인 이강혁 씨가 신 팀장님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는 상당히 ‘책임감’이 강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리고 ‘책임감’은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즉, 가능성은 둘 중 하나였다.
아주 교묘하게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있는 위험한 사람이든가, 뭔가 다른 종류의 심리적인 문제가 있든가.
어느 쪽이든, 별로 좋은 일은 아니고.
‘일단 확인해 봐야겠어.’
* * *
<< 야수의 무덤 >>
< 몬스터 등급 A ~ S >
< 클리어 조건 >
야수의 땅을 어지럽히는 무법자를 찾아 사냥하세요.
< 클리어 보상 >
‘???’의 심장, ‘???’의 발톱, ‘???’의 가죽, ‘???’의 뿔.
- 꾸르륵, 꾸륵
- 크릉······.
던전 안으로 들어서자, 진한 풀내음과 피 냄새, 시체 썩는 냄새가 뒤섞인 불쾌한 악취가 코를 자극했다.
‘욱······.’
살면서 맡아본 것 중에 가장 심한 악취.
아니, 이보다 심한 악취를 한 번 맡아본 적 있구나······.
심지어 그걸 삼키기까지 했지.
‘아, 안돼. 생각하지 말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그 끔찍한 냄새와 불길한 형광색의 알갱이······.
혀와 위장뿐 아니라 전신의 모든 세포가 비명을 내지르게 만드는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가진 맛까지······.
“우욱······..”
그때, 이주혁 씨가 헛구역질을 하며 코를 움켜쥐었다.
비단 그 뿐만 아니라, 봉식이와 나, 이강혁 씨, 모두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 중에서 가장 뛰어난 후각을 가진 슈퍼 아기곰은 그 냄새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고미, 이 냄새 안 느껴져?”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의문을 느낀 내가 코를 틀어막은 채 질문을 던지자,
“후후, 걱정하지 말거라. 이미 이 몸은 후각을 차단했으니 말이다.”
참으로 부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으으, 어떻게 하면 스스로 코를 마비시킬 수 있는 건데!’
어째서 이런 편리한 능력은 배울 수가 없는거냐······.
스스로 후각이나 미각을 차단할 수 있었다면, ‘그걸’ 먹었을 때도 고통받지 않았을 텐데!
아니지, 후각만 차단해도 거의 맛을 느끼지 못 하니까······.
‘아, 안돼.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지. 어차피 지나간 일이야. 현재에 집중하자.’
그래, 지금은 신 팀장님의 상태를 살피는 게 더 중요하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보자, 코만 틀어막았을 뿐, 여전히 무표정한 신 팀장님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훨씬 심각해.’
그 순간, 나는 신 팀장님의 상태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나쁘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단순한 저감정자가 아니야.’
감정은 뇌의 작용이다. 특히 편도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리고 후각피질은 편도체와 가까운만큼 아주 직접적으로 어떤 감정을 끌어낸다.
즉, 이 정도로 강한 냄새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건, 내가 예상한 것보다 신 팀장님의 상태가 훨씬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 이강혁 씨, 신 팀장님은 전생에도 전부터 알던 사람인가요? ]
더욱 불안해진 나는 곧장 웅톡방을 활용해 이강혁 씨에게 말을 걸었다.
[ 네, 그렇습니다. ]
[ 이 분, 정신적인 문제는 없나요? ]
나의 질문에 이강혁 씨는 잠시 망설이다 어렵게 입을 뗐다.
[ 있었습니다. ]
[ 있었습니다라는 건, 지금은 없다는 건가요? ]
[ 최대한 막아보고 있습니다. ]
이강혁 씨의 대답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전생에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그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또 하나,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그런 수고를 하면서까지 신 팀장님을 데리고 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의미겠지.’
[ 사실 최근에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져서, 수하 씨나 수다르 님에게 말씀을 드려보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곰 선생님이 신 팀장을 딱 짚어서 불러내시길래······. ]
그때, 고미가 여유로운 웃음을 흘리며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 후훗, 걱정 말거라, 허수아비. 위대한 이 몸이 네 부하를 도와줄 테니 말이다. ]
뭐야, 고미도 신 팀장님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던 건가?
그래서 첫 번째 외문 제자로 이 사람을 택한 거고?
[ 너도 신 팀장님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느낀 거야? ]
하지만 나는 고미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기도 전에 신 팀장님이 칼을 빼들고 나섰으니까.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지금 신 팀장님의 손에는 어중간한 길이의 비수 두 자루가 들려 있었다.
단도라기에는 조금 길고, 일반적인 검보다는 꽤 짧은, 상당히 애매한 길이.
[ 일단 이 녀석의 검술을 보고 이야기하자꾸나. 수하, 너도 잘 보거라. 이 녀석의 움직임은 틀림없이 너에게도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
말을 마친 고미는 또다시 무협지에 나오는 엄격한 스승같은 표정을 지은 채 가볍게 솜방망이를 흔들어 신 팀장님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신 팀장님의 몸이 투명하게 변하며 주위의 풍경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호오······. 제법이구나.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그 모습을 본 웅 노사는 흥미롭다는 듯 꼬리와 귀를 쫑긋 세우며 솜방망이를 들어 동글동글한 턱을 매만졌다.
······.
모, 몰랐냐.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가만히 서있는 것만 봐도 실력을 알 수 있다며!
‘으음, 잠깐 잊고 있었네.’
그렇지, 웅 노사께서는 약간 허세가 있으시지.
물론 근거없는 허세는 아니지만······.
여하튼, 신 팀장님의 스킬은 실로 암살계 헌터에게 딱 맞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놀라운 건, 감각 강화를 S급까지 끌어올려도 신 팀장님의 위치를 거의 파악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소리도 거의 나지 않아서, 인간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감각인 시각과 청각 모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래서 고미가 오감을 활용하라고 한 거구나.’
나는 그제야 비로소 1타 강사가 말한 ‘후각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 신 팀장님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각이나 청각이 아니라 후각을 활용하는 수 밖에 없었으니까.
만일 개보다 뛰어나게 변해버린 코가 없었다면, 이런 능력을 가진 적을 만나는 순간 황천길을 걸었을 거다.
- 크륵!
다음 순간, 신 팀장님의 냄새가 나는 곳에서 붉은 빛이 두어 번 번득이더니 단단한 비늘로 뒤덮인 검은 맹수 한 마리가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진짜 A급 맞아?’
한눈에 보기에도 A급 상위에 속하는 몬스터가,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은신술 뿐 아니라, 공격력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의미였다.
“후······.”
그러나 이강혁 씨는 그 모습을 보고는 무언가 안 좋은 장면을 본 사람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 흐음······. ]
고미 역시 보기 드물게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신 팀장님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하거라.”
이어서 고미는 곧바로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마치 그가 다시 검을 휘두르는 것을 막으려는 듯한 반응이었다.
- 스르륵······.
특별교관의 한마디에, 적어도 십 미터 이상은 떨어져 있던 신 팀장님의 냄새가 내 옆에서 다시 나타났다.
‘순간 이동?’
그 순간, 나는 그의 능력이 단순한 은신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빠르게 이동한 것이라면 몬스터의 사체에서 이곳까지 냄새가 남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그의 냄새는 하얀 도화지 위에 찍힌 두 개의 점처럼 서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까는 그냥 움직였는데······. 미리 지정된 위치로 돌아오거나, 뭔가 조건을 달성해야 쓸 수 있는 스킬인 건가?’
그렇게 신 팀장님의 능력이 무엇인지 추측해 보고 있을 때,
“후우······.”
어느새 비수를 거두어들인 신 팀장님이 이상할 정도로 숨을 몰아쉬며 고미와 이강혁 씨,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뭐, 뭐야.’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금 신 팀장님의 눈은······. 마치 피에 절은 것처럼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후우······.”
나와 눈이 마주친 신 팀장님은 애써 무언가를 털어내려는 사람처럼 세차게 고개를 흔들더니 이전보다 더욱 무표정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 죄송합니다. 은퇴할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네?”
이렇게 갑자기? 아니, 그보다, 왜 얘기가 그렇게 튑니까!
“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나는 물론이고 이주혁 씨 역시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신 팀장님을 바라봤다.
하지만 정작 이강혁 씨는 이미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직이야, 곰 선생님의 답을 기다려라.”
“제 상태는 제가 스스로 압니다. 여기서 더 나가면 틀림없이 잘못된 판단을 하고 말 것입니다.”
이어지는 신 팀장님의 말에, 불현듯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저렇게 된 게 스킬의 부작용 때문인가?’
처음부터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강혁 씨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전생에서도 마주친 경험이 있다면 더욱 그렇고.
아무리 교활해도, 인류가 멸망하는 순간까지 본성을 숨길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스킬을 사용한 뒤 보여주었던 이상한 모습, 더욱 무표정해진 얼굴과 은퇴를 하겠다는 말까지······.
[ 사기(邪氣)와 살기를 통제할 수 없는 것이냐? ]
그때, 줄곧 신 팀장님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 이능 및 무공 한정- 명의, 고미 선생께서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역시, 모두 꿰뚫어 보고 계셨군요.”
고미의 답을 들은 이강혁 씨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나의 질문에 이번에는 이강혁 씨 대신 신 팀장님이 입을 열었다.
도저히 자기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
아니, 자신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이 정도로 무관심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을 거다.
“제 스킬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살기에 지배당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등급이 오를수록 감정이 무뎌지고, 살기가 끓어오르더군요.”
음······. 무협지로 치면 사파나 혈교의 무공이나 마공이라고 불리는 종류의 능력을 가지고 계신건가.
“설마 신 팀장님이 감사팀에 계신 이유가······.”
나는 그제야 신팀장님이 왜 감사과에 몸을 담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감사과의 헌터는 평상시에도 던전이나 게이트를 도는 평범한 헌터들보다 훨씬 싸울 일이 적다. 물론 그 상대가 사람이라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네, 최대한 스킬을 사용할 일을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게다가 신 팀장의 스킬은 생물을 죽일 때마다 더욱 강해지고, 부작용도 더욱 심해집니다. 심지어 그 대상이 몬스터라고 해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감사과에 뒀습니다.”
이어지는 답에, 나는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굳이 제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강혁 씨의 결정은, 신 팀장님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다른 길드에 들어가서 뭣 모르고 던전을 돌아다녔다면,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겠지.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 팀장님을 영입해서 감사과에 배정한 걸 테고.
이런 좋은 사람이 숲속 친구들 중 하나라서, 진심으로 다행이다.
“후후, 참으로 잘했다. 조금만 더 살생을 했다면 위대한 이 몸이 나서도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것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고미는 흡족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거라. 위대한 이 몸이 너의 문제를 해결해주마. 단,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무공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려 이주혁 씨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 수수깡. 이제 네 능력을 보여 보거라. 기왕 너희들을 이끌고 던전에 왔으니, 뱀눈 녀석의 문제만 해결해 주어서는 안되겠지.”
“네, 네네. 아, 알겠습니다.”
······.
대답은 한 번만 하셔도 될 것 같은데.
이렇게 소심하셔서 어떻게 헌터 일을 하시려고 그러나.
- 우우웅!
하지만 수수깡의 능력을 보는 순간······.
‘방금 한 말, 취소.’
속으로 했던 말을 주워담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