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1 갓-고미님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1) : 뱀눈이와 수수깡
이 녀석이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니······.
솔직히 말해서, 조금 의외다.
재밌는데 놀러 다니고, 맛있는 거 먹을 생각에 특별교관 임무는 진즉에 머릿속에서 지워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그보다, ‘재미있는 녀석들’을 찾을 정도로 뭘 보기는 했나?
“고미, 그런데 그 날 너랑 우리 말고는 아무도 자기 능력을 쓴 적이 없잖아.”
봉식이 역시 나와 같은 지점에서 의문을 느꼈는지, 내 어깨 위에 올라탄 채 초코바를 할짝이는 솜뭉치를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후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한들 위대한 이 몸의 날카로운 눈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더냐? 진정한 곰이라면 가만히 서 있는 것만 보아도 상대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느니라.”
음, 그렇군.
전혀 설명이 안 되지만, 완벽한 설명이야.
“몇 명이나 되는데?”
어쨌거나, 내가 궁금한 것은 신통방통한 아기곰 도사께서 점지한 인물의 ‘숫자’였다.
퀘스트를 완료하려면 최소한 다섯 명에게 가르침을 줘야 한다.
즉, 봉식이를 제외하고도 두 사람은 필요하다는 얘기지.
“후훗, 일단은 둘이니라.”
둘이라······. 그럼 퀘스트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그래도 너무 적은 거 아닌가, 명색이 우리나라 최고 길드 중 하나인데.
‘아니지, 고미의 안목을 고려하면 둘이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네.’
눈이 높기로 따지자면, 이 슈퍼 아기곰과 비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저스티스의 길드장이었던 이강혁 씨에 대한 평가가 ‘허수아비’일 정도니,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찰 리가 없지.
정말이지, 입맛이나 놀이 취향은 짠내가 날 정도로 소박하면서, 이런 쪽으로는 까탈스러워도 여간 까탈스러운 게 아니다.
“자, 어서 가자꾸나. 한시라도 빨리 허수아비의 부하들에게 위대한 곰의 권능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또다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생각에 신이 난 아기곰은 나의 어깨에 올라탄 채 전진 명령을 내렸고, 우리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이강혁 씨에게 연락을 취해 고미가 지정한 ‘두 명’을 놀이방으로 불러들였다.
* * *
“무슨 일이십니까?”
첫 번째로 고미의 놀이방을 찾은 손님은, 바로 신팀장님 이었다.
“오오, 뱀눈이! 왔구나!”
배, 뱀눈이라니, 확실히 눈매가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그거 나쁜 말 아니야?
관상에서는 뱀눈이 대표적인 흉상이라고 하던데······.
‘그래도 특징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짚어내네.’
당사자가 들으면 다소 기분이 나쁠 수 있겠지만, 확실히 신 팀장님의 이미지는 독사에 가까웠다. 그것도 아주 무서운 독사.
호리호리한 체격에 날카로운 눈매, 어딘지 모르게 음험하고 섬뜩한 분위기. 고미를 처음 만났을 때도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던 차가운 성격까지······.
굳이 동물에 비유하자면 풀숲에 몸을 숨긴 채 먹이를 기다리는 독사 같은 느낌이기는 하지.
“이제부터 위대한 이 몸이 너에게 가르침을 내릴 계획이니라!”
고미의 말을 들은 신 팀장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감사합니다.”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대단하네······.’
무신을 쓰러뜨린 슈퍼 먼치킨이 자신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는데도 거의 표정 변화가 없다.
이 사람, 감정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건가?
“다만 감사과 일이 나름대로 바빠서, 조정위원님이나 길드장 님처럼 항상 따라다니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고미에게 가르침을 받는 건, 헌터로서 다시 없을 기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신 팀장님 역시 바보가 아니니 그걸 모를 리가 없을테고.
하지만 그는 지극히 냉정한 태도로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 우웅!? 위, 위대한 이 몸의 가르침을 받고 싶지 않은 것이냐?”
처음 보는 냉담한 반응에,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던 1타 강사의 꼬리가 우뚝 멈춰섰다가 힘없이 아래로 쳐졌다.
초월자인 무신마저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겠다며 현세에 남은 판에, 일개 A급 헌터 하나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임준우 건으로 제가 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가르침을 주시면 틈틈이 수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확실히 배신자를 잡아내는 건 감사과 일이긴 하지.
고미가 하루 만에 잡아낸 걸 자신은 눈치조차 채지 못했으니, 팀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흐, 흐흠······.”
너무나도 예상 밖의 대답에 놀란 아기곰은 당황한 듯 두 눈을 데록데록 굴리며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지금까지는 줄곧 자신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뿐 이었으니, 어떻게 대꾸를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말주변이 없어서. 불쾌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고미의 반응을 본 신 팀장님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사과의 말을 건넸다.
‘이 분, 조금 이상하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왜 이렇게 감정이 없지?’
처음 만났을 때는 조금 많이 무뚝뚝한 분인가 보다 했는데, 오늘보니 그 수준이 아니다.
사회적인 상황에 맞는 말을 하기는 하는데, 고맙다고 말할 때도, 미안하다고 말할 때도, 거기에 맞는 표정이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심지어 감각 강화 스킬을 활성화하고 살펴봐도 표정이 안 보인다.
표정근은 불수의근에 해당하니, 아무리 연기에 능한 사람이라도 그 미묘한 움직임을 감출 수는 없다.
즉, 이건 표정을 감추는 게 아니라, 감정을 거의 못 느끼고 있다는 소리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
신 팀장님의 심리 상태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고 있을 때, 몬스터보다 사람을 많이 상대해 본 것이 분명하다는 고미의 말이 머리를 스쳤다.
직책은 감사과 팀장에, 사람을 죽인 경험도 많고, 감정이 거의 없다······.
‘설마······.’
그리고 헌터 중에는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이 많다.
몇 가지 단서가 합쳐지자, 안개처럼 두루뭉술했던 불안감이 또렷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아니야, 이강혁 씨는 이 사람을 꽤 신뢰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게다가 내 생각이 맞다면, 책임감 같은 걸 가지고 있을 리가 없어.’
바로 그때,
“이, 이, 이주혁입니다! 트, 특별교관님이 부르셨다는 말씀을 드, 드, 듣고 달려왔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목소리가 나의 생각을 끊어냈다.
고개를 돌려보자, 이강혁 씨의 곁에 젊다 못해 어려보이는 외모를 가진 헌터 하나가 쭈뼛대며 서있는 것이 보였다.
헌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왜소한 체격에, 소심해 보이는 인상.
게다가 어찌나 긴장했는지 오른팔과 오른다리, 왼팔과 왼다리가 같이 움직이고 있다.
“두 번째가 너였냐?”
봉식이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자,
“미, 민 헌터님!”
이주혁 씨는 또다시 목각인형처럼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넙죽 인사를 올렸다.
‘아, 그때 그 사람이구나.’
그제야 나는 눈앞의 이 어린 헌터가 누군지를 기억해냈다.
특별교관과 조정위원의 실력을 보여주던 날, 스킬명을 외치는 게 진심으로 멋있다고 생각하며 반짝반짝 눈을 빛내던 헌터.
‘설마 그런 이유로 외문 제자로 뽑은 건 아니겠지?’
왠지 고미라면 그런 이유로 이 사람을 마음에 들어할지도 모른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의심이······.
“오오! 네 녀석도 왔구나!”
자신이 슈퍼 아기곰에게 간택(?)되었다는 사실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주혁 씨의 모습에, 당혹감으로 멈춰있던 꼬리콥터가 다시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신 팀장님의 반응은 언제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기곰에게는 조금 충격적인 것이었을 테니까.
“좋다! 벌써부터 기합이 들어있구나! 참으로 마음에 든다!”
상대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확신한 아기곰은, 이주혁 씨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음, 으으으음······.”
갑자기 깊은 사색에 잠긴 듯한 아기곰의 모습에, 이주혁 씨는 자신이 무얼 잘못한 건 아닌지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나는 그 몸짓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너는 수수깡이라고 부르겠다!”
역시, 이거였군.
아마 상대의 특징에 어울리는 별명을 고민했던 거겠지.
그나저나, 수수깡이라니······. 허수아비는 칭찬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처참한 별명이군.
“버, 벌써 별명까지 지어주시다니, 가, 감사합니다!”
······.
이분은 또 왜 이래.
신 팀장님이랑은 전혀 다른 의미로 사람을 당황 시키는군.
“너무 긴장하지 마라.”
보기 딱할 정도로 잔뜩 굳어있는 이주혁 씨의 모습에, 봉식이는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피식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고,
“그래, 너무 긴장할 것 없다. 수하 씨도, 곰 선생님도, 모두 좋은 사람이니까 말이야.”
이강혁 씨도 싱긋 웃으며 이주혁 씨를 다독여주었다.
“네, 네네.”
음, 그런데, 전혀 효과가 없는 것 같은데······.
지금만 해도,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대답을 하고 있잖아.
‘정말 괜찮으려나?’
한쪽은 이상할 정도로 냉담하고, 한쪽은 이상할 정도로 소심하고······. 어째 앞날이 순탄할 것 같지가 않다.
“후훗, 수하! 이제 됐다. 어서 이 녀석들에게 가르침을 주러 가자꾸나! 허수아비, 어서 던전을 알아보거라!!”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고미는 자신의 선택에 상당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뭐, 괜찮겠지.’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드는 조합이지만, 일단 나도 신 팀장님의 상태를 좀 확인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하나 더, 해야 할 일이 있고.
어차피 던전에 가야 하니까, 겸사겸사 이것도 처리해야지.
“잠깐만 기다려, 고미. 오늘 던전은 내가 고를게.”
말을 마친 나는 곧장 꿀태창을 열어 얼마 전 획득한 ‘보상’을 확인했다.
사실 이걸 보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특별 던전 입장권(1) >
-던전 내 균열이 생성될 예정인 A급 던전의 정보가 적혀있습니다. 던전 내 균열의 몬스터를 처치할 시 특별한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 입장권을 개봉하시겠습니까? Y / N >
Yes를 선택하자, 눈앞에 커다란 지도가 펼쳐졌다.
‘좀 친절하게 해주지······. 보상이라면서 은근히 일만 떠넘기고 말이야. 몬스터 분포라든가, 무슨 아이템이 나온다든가, 이런 거라도 좀 넣어달라고.’
보상이랍시고 일을 시키는 걸로도 모자라서 너무 기본적인 정보만 주잖아.
그렇게 속으로 불만을 토로하며 상태창을 가시모드로 바꾸어 지도를 보여주자,
“이강혁 씨, 이 던전, 어디 소유죠?”
이강혁 씨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생겨났다.
“패왕입니다.”
거참······. 사분의 삼 확률로 웅왕 소유의 던전일 텐데, 이런 건 또 기가 막히게 빗겨나가는군.
난 절대로 복권 같은 건 하지 말아야겠다.
‘그래도 다행이네.’
노리고 한 건 아니지만, 패왕의 던전을 빌릴 수 있도록 거래를 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패왕의 후원자인 무신이 고미에게 패배하고 우리와 함께 사라졌으니, 아무리 막나가는 사람이라도 던전 빌려달라는 요청을 거부하지는 못하겠지.
“잠시만요.”
던전의 소유주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문경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또 무슨 일······ 이십니까.”
이분은 왜 갑자기 존댓말이래. 어색하게.
“전에 저하고 약속하신 거 있죠. 던전 빌려주신다고.”
“아직 대결을······ 아닙니다, 말씀하시죠.”
“저희 연맹에 첩자 심은 거, 용서해 드릴게요. 그걸로 퉁 치죠.”
“네······.”
평소라면 이렇게 반협박으로 뭔가를 얻어내지는 않을 테지만, 일단 던전내 균열이 생성되고 나면 패왕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거다.
그랬다가 던전 터지면 애먼 사람들만 피해를 볼 게 뻔하고.
그러니 어쩌겠나, 조금 강압적이지만 이런 방법을 쓰는 수 밖에.
“걱정 마세요. 포인트는 가불이라 쳐도, 이용 대금은 제대로 치를 테니까.”
통화를 마친 후, 우리는 간만에 헬기에 몸을 싣고 패왕 소유의 던전으로 이동했다.
* * *
“우후후후······. 비엔나 버스도 마음에 들었지만, 역시 이 시끄러운 녀석도 훌륭하구나.”
간만에 헬기에 탑승한 덕에 잔뜩 기분이 좋아진 아기곰은 거의 춤을 추듯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던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편, 집무실에서부터 목각인형처럼 굳어있던 이주혁 씨는 던전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안색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어지간히 긴장한 모양이네.’
반면, 신 팀장님의 표정에서는 줄곧 아무런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역시,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