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20화 (220/300)

EP.220 갓-고미님에게는 다 계획이 있다.

“아, 아우웅!”

“다웅!”

호두과자 냄새를 맡은 아기 백곰과 아기 판다는 잔뜩 흥분한 채 어서 빨리 먹을 것을 내놓으라는 듯 솜방망이를 허우적거렸다.

- 이, 이 안에서 굉장한 냄새가 나고 있어!

- 어서, 어서 열어봐! 당장 맛을 봐야 해!

번역하자면, 대충 이 정도쯤 되려나.

“오구오구, 우리 고미는 어쩜 이렇게 착할까? 엄마 아빠랑 동생들 주려고 선물도 사왔어요?”

한편, 어머니는 그 안에 든 게 무엇인지 열어보지도 않고 입이 귀에 걸린 채 연신 보송보송한 솜털이 돋아난 원조 아기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안에 들어있는 것이 단팥빵이든, 호두과자든, 초콜릿이든,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반응.

부모라는 건 그저 자식이 자신을 생각해준다는 마음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질 수 있는 생물이니까.

그것도 늘그막에 얻은 막내가 이렇게 선물을 사 왔으니, 그 기쁨이 오죽하랴.

“자, 그럼 아웅이 다웅이도 먹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까, 엄마가 얼른 열어줄게요.”

“아, 아웅!”

“다웅!”

어머니가 쇼핑백을 열어 호두과자가 담긴 상자를 여는 순간, 아웅이와 다웅이의 흥분은 절정에 달했다.

“어머, 호두과자네. 여행 갔을 때 엄마가 좋아했던 거 기억하고 사 온 거예요?”

가족들을 생각해주는 고미의 마음에 기분이 좋아지신 덕일까, 어머니의 목소리는 마치 노래를 하듯 경쾌했다.

“후훗, 그렇다! 이 몸의 날카로운 눈을 속일 수는 없느니라! 수많은 간식이 있었지만,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틀림없이 이 녀석이었다!”

음······. 굳이 그걸 속이려는 마음은 없으셨던 것 같지만, 어쨌든 자신의 안목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나온 말이라고 생각하자.

한편, 싸움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손주분께서는 호두과자를 향해 손을 내민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아기 판다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제, 제발 그렇게 쳐다보지 마. 불안하다고.’

호두과자를 애타게 바라보는 아기 판다와, 그 아기 판다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천마······.

그리고 그 천마의 뒤에는 아이돌을 만난 팬 같은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 50대의 주방장 하나가 서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고······.’

하긴, 시간이 날 때마다 무협 드라마와 영화를 챙겨보고, 그걸로도 모자라 매일같이 달피아에서 무협지까지 챙겨보는 무협지 마니아 입장에서 천마는 우주 최고의 스타나 다름없지.

그렇게 천마는 다웅이에게 정신이 팔려 아버지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다웅이는 호두과자에 정신이 팔려 천마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사이······.

“자, 그럼 아웅이랑 다웅이도 형이 사 온 호두과자 먹어볼까?”

어머니가 호두과자 두 알을 아웅이와 다웅이의 앙증맞은 입에 쏙 넣어주었고,

“아, 아웅!”

“다웅! 다, 다웅, 다웅!”

호두과자를 처음 맛본 두 아기곰은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바라보며 신이 나서 엉덩이 춤을 춰댔다.

“후훗, 어떠냐. 이 몸의 선물이 마음에 드느냐?”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는 의형제들의 모습에 어머니의 품에 안긴 초콜릿색 솜뭉치는 한껏 오만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아웅!”

이에 아웅이는 특유의 각 잡힌 자세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고,

“다웅!”

다웅이 역시 포권으로 고미의 은혜(?)에 화답했다.

그렇게 곰돌이 삼형제의 우애 넘치는 회식(?)이 이어지고 있을 때,

“아들, 아들.”

김태평 사장님이 작은 나의 옆구리를 찌르며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뭐야 이게?”

아버지가 내민 것은, 새하얀 메모지 하나와 펜이었다.

“사인 좀 받아줘. 팬이라고.”

하아, 아버지······.

“아빠, 좀······. 천마가 사인 같은 걸 알겠어?”

나는 흘러나오는 한숨을 애써 눌러 참으며 대체 어떻게 우리 무서운 손주분의 정체를 알아보았는지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 사람이 천마라는 걸 한눈에 알아본 거야?”

“복식이 무협지에 나오는 장포잖아. 게다가 재질은 비단이고, 섬세한 자수가 놓인 걸로 봐서는 분명히 재산이 많은 사람일 텐데, 체형은 한눈에 봐도 운동 좀 한 사람이고.”

무협지 마니아 김태평 사장님은 줄곧 천마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나갔다.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운 걸 보면, 고수인 건 분명한데, 고미한테 노사노사 하는 걸 보니 다른 차원에서 온 사람이거나 아주 아주 오래 산 사람일 테고. 그럼 최소한 등선은 했겠지?”

······.

굉장하군. 이게 바로 무협지 마니아의 추리력이라는 건가.

“등선을 할만한 무인이라면 당연히 당대 최고의 고수일 텐데, 그럼 무림맹주, 아니면 천마나 혈교주 정도 아니겠어? 그런데 혈교주치고는 예의가 바르고, 무림맹주치고는 너무 패기가 넘쳐서, 천마구나 했지.”

음······. 반쯤은 넘겨짚기인 것 같지만, 여하튼 대단하긴 하네.

어쩌면 내 관찰력이나 사고방식은 김태평 사장님에게 이어받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 아빠는 무림 맹주보다 천마가 좋거든. 멋있잖아, 내 갈 길은 내가 정한다. 누구도 나의 의지를 막을 수 없다, 이런 거. 그래서 반쯤은 천마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물어봤지.”

바로 그때, 무서운 손주분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숙조부께서는 저에 대해 아시는 바가 많군요.”

“아하하, 사실은 제가 무협지를 좀 많이 봐서······. 역시 무림맹처럼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것보다는 스스로 제 갈 길을 정하는 게 더 멋지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수줍은 듯 미소를 흘리며 그렇게 말하자, 천마의 입가에 더욱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뭐, 저 좋다는데 싫다는 사람이 어딨겠냐만······.

가만 보면 이 사람도 은근히 정상이 아니란 말이지. 아닌 척 하지만, 칭찬에 너무 약해.

내가 속으로 천마의 약점(?)에 대해 분석하고 있을 때, 호두과자를 먹는 다웅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무서운 손주분께서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휴, 다행이네.’

설마 부모님 보는 앞에서 다웅이에게 비무 신청이라도 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래도 상식은 있는 양반인 것 같다.

“어쨌든, 저는 두 분께 인사도 드렸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쉬운 표정으로 포권을 한 천마는 다시 뒷마당쪽으로 몸을 돌렸다.

“응? 뭐야, 왜 거기로 가?”

뒷마당에 있는 거라곤 토생원의 화원으로 향하는 게이트 뿐이다.

즉, 지금 ‘돌아간다’는 곳이 화원이라는 소리인데······.

왜 당신이 야채 가게 식구들 집으로 돌아가냐고요.

“저도 머물 곳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건 그렇지. 어쨌든 우리 손님이니까.

그런데 왜 그게 거기냐고 묻는 거잖아.

“거기서 지내게?”

애써 당혹감을 감추며 질문을 던지자,

“네.”

이보다 더 간단할 수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을 주십시오. 큰일이 없는 한 그곳에서 나가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물론 흑암이 블랙 메이지에 가있는 동안 수다르 님과 토생원을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설마 그런 의도로 화원에서 지내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무서운 손주분께서는 연기처럼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들, 아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스타가 떠나자, 천마 덕후 김 사장님은 초코바를 발견한 고미만큼이나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초지종을 물었고, 나는 짤막하게 무서운 손주분과 고미의 인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우리 막둥이가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야?”

천마신공이 사실은 천마신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학설에, 아버지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호두과자 시식회를 열고 있는 곰돌이 삼형제를 바라봤다.

“후훗, 그렇다. 아빠는 아직도 이 몸의 위대함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모양이구나.”

아버지의 시선을 느낀 고미는 또다시 잔뜩 거만해진 표정으로 호두과자를 오물거리며 턱을 치켜들었다.

그렇게 곰돌이 삼형제의 호두과자 시식회가 끝나갈 무렵, 나는 새집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회의의 안건으로 올리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손님이 몰려와 이야기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수하랑 고미는 먼저 집에 가서 쉬고 있어. 엄마랑 아빠는 장사 마치고 아웅이 다웅이 데리고 돌아갈 테니까.”

동시에 열 명도 넘는 손님이 들이닥치자, 어머니는 고미와 나에게 먼저 집으로 돌아가 쉬라고 말하셨다.

“아니다, 위대한 이 몸은 엄마를······.”

물론 효심이 지극한 아기곰은 가게 일을 돕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고미, 쉴 때는 쉬는 거예요. 여기는 엄마 아빠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 얼른 가서 쉬어요.”

결국 어머니의 뜻을 꺾지 못하고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 * *

다음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아침이 찾아왔다.

“아웅!”

오늘도 넓지 않은 집안을 돌아다니며 부모님을 제외한 나머지 식구들을 깨운 것은 부지런한 백곰, 아웅이였다.

‘가만보면 나보다도 잘 일어난단 말이지.’

게다가 보통 부지런한 게 아니라, 어지간한 심부름은 굳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이다.

“우우웅······.”

반면 원조 아기곰께서는 갈수록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지는지 일어날 때마다 늑장을 부리는 게 생활화되고 있다.이런 모습을 보면, 아웅이보다는 다웅이가 더 고미를 닮은 것 같다.

하지만 일단 맛있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면······.

“오, 오오! 수하! 어서 가자! 오늘 아침은 된장찌개인 모양이다!”

지금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반짝거리며 식탁으로 달려간다.

아기곰 삼형제와 부모님, 봉식이까지 테이블에 앉자, 작은 식탁이 더욱 작게 느껴졌다.

이에 나는 웃으며 부모님에게 새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님은 봉식이에게 미안해서, 봉식이는 우리가 불편해 할까 봐, 서로를 배려하느라 누구도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곰돌이 삼형제까지 함께 살기에는 이 집은 너무 작은 게 사실이니까.

“엄마, 한유진 씨가 새집 알아봤다는데, 언제 시간 내서 같이 집 보러 가자. 가게 근처니까, 하루 정도 가게 조금 늦게 열고 같이 가보면 될 것 같아.”

“그 예쁜 아가씨가 집도 알아봐 줬어?”

집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먼저 반응을 보이셨다.

다만, 김태평 사장님의 관심사는 집이 아니라 한유진 씨 인 것 같았다.

“아들, 잘 생각해 봐. 아무리 친해도 생판 남의 집까지 알아봐 주는 게, 이게 정상은 아니란 말이야. 혹시 그 아가씨가 아들을······.”

“아빠······.”

“아부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김태평 사장님의 드립(?)에 나와 봉식이는 약속이나 한 듯 한숨을 내쉬었고,

“여보, 우리 아들이 착하고 매력있는 건 사실인데, 그 아가씨 눈빛이 절대 그런 쪽은 아니었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요.”

어머니의 날카로운 눈빛 한방에 제압당한 아버지는 슬픈 표정으로 된장찌개를 비비며 마지막 저항을 하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니, 그거야 모르는 거지······.”

“후후후, 아니다, 이것은 엄마의 말이 맞다. 삼룡 어멈은 수하가 아니라 이 몸에게 푹 빠져 그러는 것이니라. 아빠는 똑똑하지만 조금 눈치가 없는 듯 하구나!”

한편, 아버지의 말을 들은 아기곰은 한껏 오만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며 한유진 씨의 진심(?)을 대변했다.

으음······.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또 마냥 아니라고 하기에는 한유진 씨가 이 왕자병 증세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갈색 솜뭉치에게 푹 빠진 건 사실이지.

아니, 그것보다, 네가 누구의 눈치를 지적해도 되는 거냐?

“여하튼, 며칠 내로 한번 갔다 와야 할 것 같으니까, 엄마 아빠가 날짜 잡아줘. 일주일 내로.”

이후 식사를 마친 나와 고미, 봉식이는 대충 준비를 마치고 일터로 향했다.

* * *

게이트를 지나 가게의 뒷마당에 도착하기 무섭게, 봉식이가 불쑥 입을 열었다.

“야, 그런데 문경준은 언제 오냐?”

이제보니, 이놈 눈빛이 천마랑 비슷하군.

벌써부터 문경준하고 다시 한번 붙어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네.

“봉식이, 아직 네 실력으로는 멧돼지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해 최고의 안목과 실력을 가진 웅 노사께서는 단박에 봉식이의 투지를 꺾어버렸다.

“정말? 아직도?”

평소라면 자존심을 세우며 고집을 부릴 법도 한데, 고미의 한마디에 봉식이는 이내 눈을 내리깔며 생각에 잠겼다.

싸움에 관해서는 고미는 단 한 번도 틀린 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렇다.”

참으로 짤막하고도 단호한 대답.

“흐음······.”

고미의 답을 들은 봉식이는 조금 분한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바로 그때, 1타 강사 아기곰 선생께서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 몸에게 다시 한번 가르침을 받는다면, 조만간 그 멧돼지 녀석을 때려눕힐 수 있을 것이다. 마침 허수아비의 수하들 중에서도 제법 재미있어 보이는 녀석들을 찾았으니, 오늘은 그 녀석들과 함께 이 몸에게 가르침을 받거라.”

응? 뭐야, 벌써 계획이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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