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15화 (215/300)

EP.215 리모델링은 계속 된다.

< 특수 퀘스트 :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1) >

- 고미는 언제나 가족들과 함께 웅장한 저택에서 오순도순 사는 것을 꿈꿔왔습니다. 고미와 아웅이, 다웅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새집을 마련해 주세요!

비고 : 본 임무에는 후속 퀘스트가 이어집니다.

뭐, 대충 예상했던 내용이군.

‘후속 퀘스트는 인테리어 관련된 거겠지. 곰돌이 삼형제가 좋아할만한 걸 넣어줘라, 뭐 그런 거.’

그런데 ‘웅장한 저택에서’라니, 역시 웅장한 걸 좋아하는 아기곰이라 작은 집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거냐.

‘지금 집에서도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기는 한데······.’

설마, 단순히 관리자가 원하는 걸 끼워 넣은 건 아니겠지.

‘뭐, 어쨌든, 돈을 준다고 해서 새집이 아닌 건 아니지’하고 생각하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순간,

‘이게 진짜······.’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게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 달성 조건 >

- 고미와 아웅이, 다웅이, 가족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할 것.

- 삼룡 어멈의 선물을 ‘조건 없이’ 받을 것.

< 달성 보상 >

- 없음

- 단, 퀘스트 미달성시 패널티가 주어집니다.

- 1년간 모든 능력치 90% 하락 및 스킬 등급 3단계 하락.

이거······. 조금 험한 말로 번역하면 ‘닥치고 받아’인거냐.

게다가 달성 보상도 없는데, 미달성시 패널티가 너무 세다.

‘이게 내 속에 들어갔다 나왔나······.’

꿀태창이 반짝였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보상을 포기하고 열심히 일해서 집값을 치르는 거였다.

예전 같았으면 갚겠다는 말도 못할만큼 큰 금액이지만, 이미 통장 잔고도 꽤 넉넉하고, 나머지도 1년만 바짝 일하면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달성시 보상은 없고, 미달성시 패널티만 있다.

그것도 이제 전업 헌터가 된 나에게 있어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치명적인 패널티.

지금 상태에서 능력치 90% 떨어지고 스킬 등급 떨어지면······.

‘잘해야 E급이나 되려나······.’

스킬 등급은 그래도 C급이지만, 능력치가 아주 바람 한번 불면 날아갈 수준까지 떨어진다.

한마디로, 실직자 되는 거지.

“하아······.”

사실상 밥줄을 끊어버리겠다는 협박이나 다름없는 퀘스트에, 저도 모르게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 게 밥줄 가지고 협박하는 건데, 이 악덕 관리자 놈이······.

‘이걸 확 노동청에 고발해 버릴 수도 없고.’

이놈이 사장이라면, 이런 악덕 사장이 또 없을 거다.

게다가 전쟁이 코앞인데 이런 짓을 하겠다는 건······.

‘내 파업만큼이나 엄청난 트롤링이군.’

나쁜 놈, 확 잘려 버려라. 너도 노동자의 설움을 알아야 해.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또 이런 건 부담스럽네 뭐네 할까 싶어서 브리핑까지 준비했는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내 모습에 무언가 오해를 한 모양인지, 한유진 씨는 서운하다는 듯 입을 비죽이며 가볍게 나를 째려봤다.

“아, 아니, 한유진 씨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에요.”

“생각을 해봐요. 수하 씨가 저한테 사도 만들어 줬으니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신 적 있어요? 자기가 다른 사람한테 뭐 해줄 때는 공짜인데, 다른 사람이 공짜로 뭐 해준다고 하면 죽어도 안 받겠대. 이건 염치가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나쁜 사람 만드는 거예요!”

내가 변명을 한다고 생각한 한유진 씨는 잔뜩 흥분한 채 숨조차 쉬지 않고 나를 몰아붙였고,

“허허, 수하 씨, 너무 안 받겠다고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야. 이강혁 씨도 그렇고, 한유진 씨도 그렇고, 나도 마찬가지고. 자네한테 받은 게 있으니까 돌려주려고 하는 거지. 거꾸로 생각해 보게, 자네가 공짜로 받는 게 불편하고 민망한 만큼, 우리도 마찬가지일세.”

New인국 씨 마저 한유진 씨를 거들었다.

“아, 아니, 진짜 그것 때문에 한숨을 쉰 게 아니라니까요.”

이에 나는 변명 대신 꿀태창을 가시모드로 바꾸어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흠흠! 거봐요! 오죽하면 시스템이 이런 퀘스트까지 주겠어요, 그놈이 보기에도 수하 씨가 너무 호구라서 그런 거라니까! 벌써 몇 번이나 초월자를 물리쳤는데, 그 대가로 뭐 받았어요? 아무것도 안 받았잖아요. 얘가 봐도 너무 한 거라니까.”

음······. 고미가 대균열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말을 하면 더 혼(?)이 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냥 죄송하다고 해야지.

그나저나, 저 무서운 손주님이 두눈 새파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이런 말을 내뱉다니······. 나보다 용감하시네.

“죄, 죄송해요. 받을게요.”

“그래요! 내가 참, 뭘 해준다는데도 싫다는 사람은 처음이네! 집은 실물을 봐야 하니까, 이번 주 내로 시간 한번 내시고요!”

“네······.”

“큭큭큭······. 제가 부모님 가게 내드릴 때랑 비슷하네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강혁 씨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한유진 씨를 바라보며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 축하합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결국 나는 신종 호구와의 싸움에서 패배했고, 승패가 갈리기 무섭게 시스템이 퀘스트 완료 메시지를 보내왔다.

‘휴, 다행이다.’

어찌됐든, 이걸로 실직자 신세는 면했군.

워라밸에서 워크가 빠지고 라이프만 남아버리면 그건 그거대로 곤란하지.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어요’는 ‘돈이 많은데 시간이 없어요’보다 처참한 상태니까.

“아참, 수하씨, 그런데 흑암은 언제 만나게 해줄 건가?”

그때, 노인국 씨가 먼저 흑암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렇지 않아도 그 얘기 드리려고 했는데, 흑암이 노인국 씨를 만나고 싶대요. 이제 결심이 섰나 봐요.”

“허허, 그래, 그 친구가 용기를 내주니 고맙군. 언제 보면 좋을까?”

“오늘 가요, 오늘.”

노인국 씨의 답을 들은 숲속 친구들 최고의 불도저, 한유진 씨는 곧바로 불꽃 같은 추진력을 발휘해 만남을 추진했고,

“그것도 나쁘지 않지. 그럼 삼겹살이라도 사서 만나러 가볼까?”

노인국 씨 역시 흔쾌히 그 의견에 동의했다.

“아참, 저도 드릴 말씀 있어요. 이번에 저스티스에서 첩자를 하나 잡았거든요.”

집 문제는 이걸로 대충 넘어갔다고 판단한 나는 곧장 용왕과 블랙 메이지에도 첩자가 있다는 것을 알렸다.

이건 느긋하게 처리할 문제가 아니니까.

“수하씨, 그 문제는 이미 처리가 끝났습니다. 아까 신 팀장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용왕과 블랙 메이지에서도 이미 그 둘의 신병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수하씨가 돌아오시면 바로 흑암에게 보낼 수 있도록 저스티스에 잡아뒀다고 하니, 돌아가셔서 처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이강혁 씨는 내가 신경을 쓸 것도 없이 이미 그 일이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고 보고했다.

‘음, 일 처리 빠르네.’

확실히 숲속 친구들끼리 일일이 발로 뛰어야 하는 때랑은 다르구나.

모든 걸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어.

‘하긴, 다들 자기 분야에서 몇 년씩 일하시던 분들이니, 내가 걱정할 정도로 일 처리가 서툴지는 않겠지. 믿고 맡기자.’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깔끔한 일처리에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이런 일까지 일일이 다 내가 신경을 써야 한다면 내 인생은 대학원 때랑 별반 다르지가 않을 테니까.

“저희 쪽은 이미 포션 제작자랑 힐러 양성 커리큘럼 지원자 모집 끝났어요. 수다르님이랑 토생원님만 오케이 하면 당장 내일부터도 오픈 가능해요.”

이어서 한유진 씨가 용왕측에서 맡은 일도 이미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허허허······. 저야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 말을 들은 수다르 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든지 교관 일에 착수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음, 그야말로 일사천리네.

“그럼 이번 주 내로 시작해보죠. 고미가 마음에 드는 사람 몇 명 뽑고 나면, 저희가 곧바로 용왕쪽으로 넘어갈게요.”

수다르 님이 정식으로 초월자가 되려면, 일단 제자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세 개의 퀘스트로 구성된 ‘웅비어천가’ 퀘스트의 나머지 두 개는 각각 용왕과 블랙 메이지에서 진행해야 할 테고.

‘그럼 이번 주 내로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으려나?’

나머지 퀘스트 내용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테니, 길어야 2주일이면 모든 퀘스트를 끝마칠 수 있겠지.

그렇게 일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무렵······.

곧 있으면 용산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멘트가 차내에 울려퍼졌다.

“수하씨, 이제 고미님 깨워야 할 것 같은데요.”

한유진 씨가 알틴을 깨우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중요한 일이 떠올랐다.

“잠깐만요.”

“네? 왜요?”

한유진 씨의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잽싸게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사진, 사진 찍어야죠.”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미에게 더 많은 추억을 남겨주려면, 이제부터는 잊지 말고 사진을 찍어둬야지.

“아! 그렇네요! 이런 건 영구소장각이죠.”

나의 말을 들은 한유진 씨는 아이돌을 만난 팬처럼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고, 나 역시 어색한 손놀림으로 양머리를 뒤집어 쓴 채 잠든 고미와 알틴의 사진을 찍었다.

[ 우, 우웅? ]

‘삐, 삐이······?’

잠시 후, 새근새근 잠든 두 아기 먼치킨이 약속이나 한 듯 눈을 비비며 일어났고, 우리는 아직 잠이 덜 깬 아기곰과 아기용의 모습을 남김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 우, 우웃······. 수하! 이 몸의 사진을 찍는 것이냐!? ]

정신을 차린 아기곰은 팬들이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자못 근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창가에 기대어 포즈까지 잡아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굉장하군······.’

양머리를 쓴 채로 창가에 기대 사색에 잠긴 아기곰이라니······. 인터넷에 올리면 다들 합성이라고 생각할만한 사진이군.

그나저나,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대도 민망해하기는커녕 곧바로 포즈부터 잡는 것을 보면, 영락없이 슈퍼스타 기질을 타고난 녀석인 것 같다.

[ 후훗, 수하! 다 같이 사진을 찍자꾸나! ]

짧은 화보 촬영(?)을 마친 고미는 자신의 핸드폰에도 즐거운 추억을 남겨두고 싶다는 듯 잽싸게 자신의 꿀폰을 내밀었다.

“자, 자, 다 모이세요.”

이에 나는 잽싸게 숲속 친구들을 불러모은 뒤 ‘허곰섭물’로 터치펜과 꿀폰을 들어 ‘한 명도 빠짐없이’ 친구들의 모습을 사진첩에 남겨주었다.

‘나도 이렇게 되는구나······.’

고미더러 언제나 사소한 일에 굉장한 능력을 사용한다고 말했는데,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저 녀석과 비슷해진다는 느낌이 드는군.

[ 오, 오오! 이럴 수가! 생각해보니 이렇게 하면 빠지는 사람 하나없이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구나! 수하, 역시 너는 이 몸의 제자답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였느냐!? ]

허곰섭물 촬영술에 감탄한 아기곰은 연신 솜방망이를 두드리며 나를 칭찬해 주었고, 사진 촬영을 모두 마쳤을 무렵에는 이미 열차가 용산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 * *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역사를 벗어난 후, 우리는 곧바로 한적한 곳을 찾아 게이트를 열었다.

어차피 내 토끼굴은 가게와 연결되어있고, 가게 뒷마당을 통해 화원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1분이면 충분히 흑암을 만나러 갈 수 있지.

‘최고야, 이거야.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삶이야.’

지금까지 얻은 모든 스킬 중에, 이게 가장 마음에 든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스킬 다 제쳐두고 이것부터 S급을 만들어서 집이랑, 가게랑, 회사랑, 마트에 각각 게이트를 만들어두고 싶다.

그야말로 운송 대혁명.

극한까지 줄어든 이동 시간을 활용해 최대한의 여가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완벽한 스킬이다.

토생원 만세.

“자, 그럼 나는 삼겹살이라도 사 올 테니, 자네들은 먼저 들어가 있게.”

하지만 막상 뒷마당에 도착하자, 노인국 씨는 약간의 긴장과 기대, 걱정이 섞인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고기를 사러 가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말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만큼 간단한 게 아니니, 아무렇지 않은 척 하셔도 이래저래 생각이 많으시겠지.

“그럼 저는 길드로 돌아가서 첩자들을 인계해 오겠습니다.”

“그래도 A급 셋이라 혹시 모르니, 저희가 따라갔다 오겠습니다.”

이강혁 씨가 저스티스에 다녀오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제르보나가 곧장 그 뒤에 따라붙었다.

“야, 뭐해. 따라와. 둘이면 나머지 하나는 너지.”

그리고는 우리와 함께 게이트로 들어가려는 이유찬 씨의 뒷덜미를 덥석 붙잡아 반강제로 연행조(?)에 끼워넣었다.

“평소에도 요리하네 집안일 하네 어쩌네 하면서 농땡이 피우더니, 이제는 핑계가 없어도 일 안하고 빠지려고 하고 있어.”

······.

이유찬 씨, 설마 워라밸에서 워크를 빼고 라이프만 즐기고 계셨던 겁니까.

설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었던 비결이 그거였던 겁니까?

그렇게 이유찬 씨의 다양한 취미 생활의 근원이 농땡이는 아닌가 의심하며 게이트로 발을 들이는 순간······.

[ 웅? ]

“응?”

“어때요? 멋지죠?”

또다시 새로워진 화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이게 뭐냐······.’

아니, 이건 리모델링 수준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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