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4 고미 vs 신종호구
[ 우웅!? 삼룡 어멈, 그것은 무엇이냐!? ]
한유진 씨의 손에 들린 ‘엄청난 물건’을 확인한 아기곰은 계란을 굴리던 손마저 멈추고 호기심으로 반짝 반짝 눈을 빛냈다.
지금 그녀의 손에는…….
노란 수건으로 만든 황금색 ‘양머리’가 들려있었다.
“쨔잔! 찜질방은 아니지만, 계란도 있고 바닥도 따뜻해서 만들어 봤어요!”
몰래 저걸 만드느라 구석에서 꼼질대고 계셨던 거구나…….
그런데, 굳이 숨어서 만들 필요가 있는 걸까?
아니, 그보다, 수건은 대체 어디서 난 거지?
‘아까 족욕실에 비치되어 있던 수건을 가져온 건가?’
그렇게 잠시 수건의 출처를 궁금해 하고 있을 때,
“자, 이렇게! 머리 위에 씌워주면!”
어린아이처럼 잔뜩 신이 난 한유진 씨가 환히 웃으며 자신이 손수 만든 양머리 1호를 알틴의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
[ 오! 오오오! ]
“정말 귀엽군요.”
“이거 정말 깜찍하구먼.”
“허허, 아주 잘 어울리는군요.”
개나리처럼 노란 양머리를 머리에 얹은 아기용의 깜찍한 모습에 숲속 친구들의 입에서 일제히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심지어 ‘귀여움’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는 것 같던 천마마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 정도로 압도적인 귀여움.
“삐! 삐이이이!”
숲속 친구들이 입을 모아 자신을 귀엽다고 해주자, 기분이 좋아진 꼬마 드래곤은 양머리를 뒤집어 쓴 채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커다란 눈을 연신 깜빡였다.
“삐, 삐이!”
그때, 양머리를 뒤집어 쓴 알틴을 바라보던 고미가 말없이 한유진 씨의 얼굴 위로 시선을 옮겼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에, 쫑긋 선 두 귀, 쉴 새 없이 좌우로 왕복하는 꼬리까지.
저 양머리가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고미님도 만들어 드릴까요?”
그 몸짓의 의미를 알아차린 한유진 씨가 웃으며 노란색 수건을 흔들자,
[ 우, 우웃! 정말 이 몸에게도 저 멋진 것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 ]
고미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알틴의 머리 위에 얹어진 양머리를 바라봤다.
으음,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멋있다’의 기준이 우리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아무리 봐도 저건 ‘멋있다’보다는, ‘귀엽다’에 가까운데 말이지.
“잠깐만 기다리세요!”
고미에게 양머리를 씌울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난 한유진 씨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노란 수건을 착착 접어 순식간에 양머리 2호를 완성했고, 조심스레 고미의 동글동글한 머리 위에 그것을 얹어주었다.
[ 오, 오오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구나. 바닥도 따끈하고, 머리도 따뜻해지니 온몸이 나른해지는 느낌이다. ]
꿀색 스카프에 황금색 수건으로 만들어진 동글동글한 귀까지 장착한 고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아빠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 이건 정말 귀엽다.’
팔불출 같아서 귀엽다는 말은 삼가는 편이지만, 이건 정말이지……. 감당이 안 되는 귀여움이군. 어떻게 이렇게 귀여울 수 있지?
[ 자! 그럼 이런 멋진 것을 선물 받았으니, 이 몸이 직접 깐 첫 번째 계란을 너에게 하사하겠다! ]
황금색 양머리를 머리에 올린 아기곰은 냉큼 자신이 깐 –사실은 나와 함께 까기는 했지만 - 첫 번째 삶은 계란을 한유진 씨에게 내밀었다.
“고미 선생, 나도 삶은 계란 하나 까줄 수 있나? 기차는 내가 예약했는데 말이야.”
그 모습을 바라보던 노인국 씨가 귀여운 손주에게 간식을 받고 싶은 할아버지처럼 넌지시 농을 던지자,
[ 오, 오오! 그렇구나! 미안하다, 문어 할아범! 이 몸이 너에게도 선물을 주겠다! 잠시만 기다리거라! ]
신의를 아는 아기곰은 잽싸게 계란 하나를 집어 조심스레 바닥에 굴리기 시작했다.
‘으음,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제법 잘 하네.’
힘이 너무 들어가서 계란을 터뜨리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아까 가르쳐 준 대로 제법 잘 하고 있다.
하긴, 손으로 직접 뭘 만드는 세심한 작업이 아니라면, 이 슈퍼 먼치킨이 힘 조절에 실패하는 게 더 이상한 거겠지.
계란 전체에 자잘한 균열이 생겨나자, 양머리를 쓴 아기곰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 후, 후후후! 이것으로 이 몸이 할 수 있는 요리가 한가지 더 늘었구나! ]
…….
설마, 계란은 원래 삶은 상태로 나오는 거고, 그걸 까는 걸 요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계란말이도 자주 먹는데, 그럴 리는 없겠지.
[ 으, 으음……. ]
그러나 아직 삶은 계란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커다란 난관이 남아 있었으니…….
[ 수하, 여기부터는 너에게 맡기겠다. ]
금을 가게 하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성공했는데, 아직 껍질을 까는 건 무리인 모양이다.
하긴 저 짤막하고 도톰한 손가락으로 계란 껍질을 깔끔하게 까는 건, 다소 무리가 있지.
‘그래도 발전했네.’
이전이라면 끝까지 자기가 하겠다며 고집을 부렸을 텐데, 스스로 도움을 청하는 모습이 왠지 대견하다.
“알겠어.”
껍질을 깐 계란을 넘겨주자, 녀석은 해맑게 웃으며 노인국 씨에게 그것을 건넸다.
[ 자! 이 몸이 직접 만든 것이다! 마지막에는 수하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몸이 깐 두 번째 계란이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말거라! 다음 번에는 문어 할아범에게도 이 몸의 주먹밥을 대접하마! ]
그리고는 기차 여행을 준비해준 노인국 씨에게 두 번째 계란을 주는 게 조금 미안했는지, 다음 번에는 자신의 비장의 무기인 ‘주먹밥’을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내가 우리 고미 선생한테 계란도 다 받아보고, 아주 기분이 좋네.”
이후 잠시 고민에 빠져있던 아기곰은 이강혁 씨와 수다르 님은 물론이고, 토생원을 비롯한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각각 계란 하나씩을 까주었다.
[ 너희들도 모두 이 몸을 위해 많은 것을 해주었으니, 이 계란을 받을 자격이 있느니라. 후후, 너희들에게 선물을 주니 이 몸도 기분이 좋구나. ]
“허허, 이런 귀한 것을 받게 될 줄이야. 영광입니다, 고미님.”
선물을 받은 수다르님은 언제나처럼 인자한 웃음을 지었고,
“감사합니다.”
토생원은 커다란 귀를 쫑긋 세운 채 공손하게 계란을 받아들었다.
그렇게 모두에게 계란이 돌아갔을 무렵, 나는 이 힘든 작업(?)을 마친 아기곰을 위해 삶은 계란 하나와 사이다를 내밀었다.
[ 오, 오오. 역시 수하 너는 언제나 이 몸을 생각해 주는구나. 그럼 이 몸도 이 삶은 계란과 사이다라는 것을 맛보겠다! ]
잽싸게 삶은 계란을 집어삼킨 아기곰은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처럼 사이다를 한모금 들이켰고,
[ 캬, 캬아! ]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탄성을 내지르며 민들레 씨앗같은 보송보송한 솜털을 빳빳하게 곤두세운 채 바르르 몸을 떨었다.
[ 괴, 굉장하구나! 이, 이런 것이 있었다니……. ]
이후 숲속 친구들은 노인국 씨가 사 온 삶은 계란을 하나하나 까먹었고, 계란이 모두 동난 후에는 호두과자를 까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호두과자가 절반쯤 사라졌을 무렵,
[ 우, 우웅……. 수하, 이 몸은 왠지 노곤하구나……. ]
온돌 바닥에 눌어붙어 있던 초콜릿색 솜뭉치의 두 눈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하더니, 이내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드러낸 채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삐, 삐이…….”
고미가 잠들자, 양머리를 얹은 아기용 역시 녀석에게 기댄 채 꿈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아참, 수하씨, 저 할 얘기 있어요.”
그때, 행복한 표정으로 잠든 두 아기 먼치킨을 바라보던 한유진 씨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기차에 타기 전부터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었지.
“네, 말씀하세요.”
나의 답을 들은 한유진 씨는 해맑게 웃음을 지으며 곧장 핸드폰을 내밀었다.
“집이요, 집. 집 구했어요.”
그녀의 핸드폰 화면에는 TV에서나 본 것 같은 마당이 딸린 전원주택의 사진이 떠 있었다.
“어…….”
생각보다 훨씬 더 비싸보이는 새집의 모습에, 고마운 것 이상으로 부담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이 집, 얼마예요?”
안 물어봐도 뻔하다.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족히 몇 억은 하겠지.
아무리 원조호구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고, 고미 덕분에 사도가 됐다고는 해도, 이걸 공짜로 받기에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일단 보세요.”
하지만 한유진 씨는 언제나처럼 막무가내로 핸드폰을 들이밀었고,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고집(?)을 이기지 못했다.
다만, 그것이 공짜로 집을 받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한유진 씨가 알아봤다는 집이 마음에 쏙 든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부모님과 나, 봉식이는 물론이고 아기곰 삼형제가 함께 살기에도 충분한 넓이에, 고미에게 약속한 욕조를 넣어도 제법 공간이 남을 것 같은 욕실, 가끔 숲속 친구들과 함께 바비큐 파티를 해도 될 것 같은 넓은 마당까지…….
“보세요, 벽면도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정원에 식물을 기르면 정말 멋질 거예요.”
으, 으음……. 멋지긴 하지만, 정원을 관리할 자신이 없는데…….
‘아니지, 워라밸을 찾으면 정원 관리할 시간 정도는 있을 거야.’
그래, 틀림없이 그럴 거다. 아니, 그래야 한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이거 얼마나 해요?”
“제르보나가 경매로 나온 걸 싸게 샀어요. 12억 정도.”
…….
싸게 나온 게 12억 이라고?
아니 그런데, 요리나 정원 가꾸기 같은 건 다 이유찬 씨가 하면서, 막상 이런 일은 제르보나 씨가 처리하는 거야?
흑룡 셰프는 집사가 아니라 가정부였던 거냐!?
아니, 아니지, 지금 흑룡 셰프의 직업(?)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본론으로 돌아가자.
“어……. 역시, 그냥 받기에는 너무 비싼 것 같아요. 그리고 일단 부모님이 이 집을 마음에 들어하실 지도 확인해봐야 하고…….”
“이거, 저스티스 근처에 있는 집이에요. 수하씨 부모님 가게도 근처잖아요. 회사랑도 가깝고, 가게랑도 가깝고, 집 크기도 좋고……. 솔직히 이 정도로 괜찮은 집에 위치까지 좋은데, 놓치면 너무 아깝지 않겠어요?”
다, 달콤하다. 유혹이 너무 달콤해.
나야 게이트로 출퇴근하는 입장이니 집하고 회사가 멀든 가깝든 크게 상관이 없지만, 새벽까지 장사를 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확실히 집하고 가게는 가까운 편이 좋긴 하지.
한 가지 의외인 점은, 한유진 씨가 기꺼이 원조호구와 가까운 곳에 있는 집을 알아봐 줬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용왕에 가까운 집을 사서 고미를 자주 보려고 할 줄 알았는데, 이런 걸 보면 또 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으시단 말이지.
‘어떻게 하면 이 사람에게 돈을 줄 수 있지?’
하지만 12억이나 되는 걸 덥석 받을 수는 없다.
이건 단순한 호의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금액이 크다.
헌터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아, 경매로 나온 매물이라 집은 이미 샀어요. 혹시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하면 제가 알아서 처분하고 다른 집 알아봐 드릴게요.”
이 불도저 같은 추진력 보소…….
헌터 아니라 뭐가 됐어도 크게 됐을 인물이다.
“그럼 일단 집은 부모님하고 상의해서 결정하고, 돈은…….”
내가 어떻게든 돈을 쥐여주려 하자,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제르보나 씨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제르보나, 시작해.”
그 모습을 본 한유진 씨는 재벌집 사모님처럼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
지금 이게 뭐하는…….
“웅왕 연맹의 설립으로 인해 저희 용왕에 가입하겠다는 중소 길드 출신 헌터의 숫자는…….”
“또한 마법 계열 헌터로 치중되어 있던 문제점이 개선되면서 더욱 효율적인 던전 공략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던전 입찰로 인해 발생하는 경비의 감소로 인해 발생할 순이익 증가는 대략 5%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이 밖에도 포션 제작 및 연금술 커리큘럼 개설로 인해 포션을 자체제작함으로서 던전 클리어를 위해 필요한 경비가 대폭 감소…….”
“가장 큰 건 역시 유진과 저, 제르날, 알틴의 전력 증강입니다. 사도가 된 이후 저희의 등급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현재는 SS급 던전까지 단독으로 클리어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굉장하다, 12억 짜리 집을 공짜로 넘기기 위해 브리핑까지 준비하는 거냐.
“저기……. 집을 주시려고 이런 것까지 따로 준비하신 거예요?”
나의 질문에 한유진 씨는 한껏 오만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수하씨 성격이라면, 또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대면서 제 선물을 거절할 거라고 생각해서요.”
그리고는 내 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수하 씨는 아직 본인의 가치를 잘 모르시는 것 같네요. 고미님, 수다르님, 토생원님에 흑암까지, 전부 수하 씨와 고미님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죠. 이제와서 발을 빼시지는 않겠지만, 제 입장에서 이건 선물인 동시에 투자이기도 해요. 엄밀히 말하면, 공짜는 아니라고요.”
으음, 이건 조금 설득력이 있군…….
‘아, 아니야, 김수하. 말려들지 말자.’
그렇게 어떻게든 돈을 받지 않으려는 자와, 어떻게든 돈을 주려는 자의 한판 승부가 본격적으로 불이 붙으려는 찰나…….
<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
예상치 못한 사람(?)이 이 문제에 개입했다.
‘뭐야, 여기서 네가 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