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9 호랑이가 무서워하는 것
< 축하합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갑자기 무슨 퀘스트? 히든 퀘스트인가?
의아한 마음에 꿀태창을 확인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을 비비지 않을 수 없었다.
< 메인 퀘스트 : 불러봐요, 웅비어천가 (1 / 3) >
< 달성 조건 >
- 저스티스 길드원들이 고미에게 특별교관의 자격이 있다고 느낄 것. (완)
- 저스티스 길드원들이 고미의 제자가 되고 싶어할 것. (완)
- 고미가 최소한 다섯 명의 헌터에게 가르침을 줄 것 (2/5)
······.
아직 끝나지도 않았잖아. 달성률이 40퍼센트 밖에 안 되는데.
심지어 십 단위에서 반올림을 해도 완료는 아니잖아.
게다가 무신은 저스티스 소속도 아니고.
아니, 심지어 헌터조차 아니지.
‘뭔가 이상한데.’
지금까지도 지극히 웅편향적인 기준을 적용해 퀘스트를 주거나 완료해준 적이 있기는 했지만, 이건 얘기가 다르다.
‘이건 단순히 낭낭한 수준이 아니라, 규정 위반이나 마찬가지잖아.’
여태까지 완료한 퀘스트의 합격 기준이 ‘일단 대충 튀김옷이 있고 닭을 원료로 하면 다 치킨입니다’ 정도 수준이었다면, 이건 ‘찜닭도 닭도리탕도 다 닭요리니까 어쨌든 통과!’라는 수준의 억지에 가깝다.
‘왜지? 이런 식으로 일하면 짤리는 거 아니었나?’
몇 번을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관리자씩이나 되는 존재가 해고와 징계를 두려워 한다는 게 어이가 없기는 하지만······.
여하튼 해고나 징계를 상당히 무서워하긴 했으니까.
어쩌면 그 해고라는 게 소멸이라든가, 우리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싫은 어떤 방식의 처벌을 의미하는 걸지도 모르고.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퀘스트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고작 4할밖에 완료되지 않았는데, 왜 완료라는 메시지를 띄워서 어그로를 끌었을까?
‘설마, 관리자가 관심이 고파서 그런 건 아닐테고.’
요즘 들어 너무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 같은데.
되짚어보면, 개업식에 찾아와 굳이 페달카트를 남기고 간 것도 상당히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그때 페달 카트를 줘서 나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게 대체 뭘까?’
그 후로도 꽤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얻지 못했다.
설마 가짜 고미는 변신이 가능한 곰이라는 의미인 걸까?
황당한 추론이지만, 너무 어이없는 일을 많이 겪다 보니 온갖 생각이 다 든다.
‘모르겠어.’
하지만 페달 카트로 주려던 힌트가 무엇이든, 관리자의 궁극적인 목표가 대균열을 복구하고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이 점을 고려해보면······.
‘설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상황이 안 좋은 건가?’
지금 주어진 단서만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결론은 그것 하나 뿐이었다.
직접 찾아와서 힌트를 남기고, 이런 억지를 써가면서까지 퀘스트를 빨리 완료시킬 이유는, 그것 밖에 없으니까.
“어떠냐, 허수아비! 이 정도라면 너도 익힐 수 있겠지!?”
그때, 잔뜩 기가 산 아기곰의 목소리가 나의 생각을 멈추게 만들었다.
하지만 광신도는 곰 선생님이 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멀뚱멀뚱 자신의 눈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 한참이나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상태창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강혁 씨는 또 왜 저러지?’
고미가 말을 하는데 딴짓을 하는 사람이라면, 광신도라고 부르지도 않을 거다.
즉, 지금 그의 상태창에도 무언가 이상한 것이 뜬 게 분명했다.
그 열렬한 신앙심, 아니, 신웅심마저 잠시 잊게 만들 무언가가.
“이강혁 씨.”
내가 자신을 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광신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상태창을 가시모드로 만들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 고미류 검술 – 파천대웅검결 (SS) >
- 위대한 곰의 가르침으로 인해 더욱 강력해진 검결. 본래는 사파 검술의 정수를 모아 창안한 검법이었으나, 이제는 웅혼한 기상이 깃든 검결이 되었다.
비고 : 초식을 사용할 때마다 이름을 외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뭐야, 이게······.
설마 승웅참, 대웅강검, 웅혼참으로는 모자랐던 거냐.
게다가 이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스킬이잖아.
그걸 SS급으로 올려주고 그 대가로 스킬 이름을 외치게 만든 거야?
‘대체 왜 이렇게 스킬 이름을 외치는 거에 집착하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를 제외한 사람에게 고미의 영향으로 새 스킬이 생긴 건 이번이 두 번째다.
토생원과 흑암을 잡으려 할 때, 그리고 오늘.
‘천마가 숲속 친구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전력차가 그렇게 크다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SS급 스킬을 던져줄 리가 없다.
관리자는 변수를 싫어하고, 불필요한 일을 하는 건 더더욱 싫어하니까.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상태창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아기곰이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솜방망이를 바르쥐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오, 오오오! 허수아비! 네 녀석의 상태창에도 위대한 곰의 웅혼한 기상이 깃든 것이냐!”
“그, 그런 것 같습니다.”
한편, 우리의 잘난 손주 분께서는 여전히 실의에 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현자타임’이 온 것 같은 눈빛.
‘음, 익숙한 표정이네.’
그래, 대학원 시절에 많이 보던 그 표정이군.
나도 자주 저랬고.
대학원생 중 대부분은 학부 시절에는 제법 성적이 좋았던 사람이고, 나름대로 전공지식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채로 대학원에 들어간다.
하지만 막상 대학원에 들어가 세부적인 연구 분야를 정하고, 그 분야를 하나하나 톺아보면,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
‘나는 쓰레기야’,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하지?’하는 자괴감에 빠져들고, 학부 때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던 박사와 교수님들을 볼 때마다 ‘공부는 저런 사람들이 하는 거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는 단계에 이른다.
아마 우리 손주분께서도 그런 상태에 빠진 거겠지.
“저기, 백천······.”
안쓰러운 마음에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려 했지만,
“괜찮습니다, 사숙조.”
천마는 약간의 회한이 묻어나오는 얼굴로 그렇게 답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으, 딱하다.’
설마 천마에게 딱함을 느끼게 될 줄이야······.
사실 숲속 친구들 중에는 고미만큼 강해지고 싶다거나, 경쟁심을 느끼는 사람이 없다.
뭐 얼추 비벼볼 구석이라도 있어야 그런 생각을 하지.
하지만 여전히 저 우주 먼치킨을 따라잡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손주분은, 우리처럼 ‘우와, 대단하다’라는 정도의 감정으로는 끝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하님, 사손분은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니, 저희는 이제 흑암이 일러준 약초를 찾아보죠.”
그때, 줄곧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토생원이 입을 열었다.
“저도 스승님과 연금술 대결을 펼친 후 한동안 자괴감에 빠졌었습니다. 저것도 다 성장의 과정이니, 스스로 극복하도록 두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는 생긋 웃으며 자신의 경험담을 덧붙였다.
‘그래, 입장이 비슷하구나.’
연금술로 초월자가 된 토생원이 수다르님에게 패배했을 때의 감정과, 무공으로 초월자가 된 천마가 고미에게 패배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아무래도 비슷할 수 밖에 없겠지.
“허허, 고미님. 이번에는 이것입니다.”
토생원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수다르 님이 고미에게 두 번째 메뉴를 내밀었다.
“역시 꽈배기는 설탕이 녹기 전에 먹어야 제맛이지요. 시간이 오래 지나면 설탕이 녹아버리니 어서 드셔 보십시오.”
“오오, 역시 수다르 너는 대단하구나! 어찌 그리 아는 것이 많단 말이냐!”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꽈배기를 받아든 아기곰은 잽싸게 그것을 한입 베어물며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허허, 언제봐도 고미 선생은 참 대단하구만. 어떻게 이런 넓은 던전에 들어와서도 척척 목표를 찾아가는지 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자연스럽게 길을 찾아가는 아기곰의 모습에 노인국 씨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고,
“웅려일검(熊麗一劍)!”
이강혁 씨는 앞장 서서 몬스터를 베어가며 길을 뚫었다.
‘음, 앞으로 매번 초식 이름을 외치시면서 싸우는 건가.’
설마 모든 초식에 웅자가 들어가는 건 아니겠지.
“파천대웅참(破天大熊斬)!”
맞네, 맞아.
그런데, 봉식이에게 새로운 권법을 가르치면, 그 스킬명은 한문일까, 한글일까, 영어일까.
이전에 생긴 스킬이 ‘갓-베어 크래쉬’와 ‘갓-베어 차지!’였지 아마······.
‘쓸데없지만, 몹시 궁금하군.’
그렇게 고미와 이강혁 씨의 뒤를 따라 10분 정도를 걸어갔을 무렵, 커다란 나무 둥치 아래에 있던 낯익은 형상의 식물 하나가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토생원님, 설마 저게······.”
나는 흑암에게 호랑이 기운을 물리치도록 도와준다는 약초의 생김새나 냄새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다.
하지만 실물을 보는 순간, 내 눈앞에 놓인 ‘저것’이 틀림없이 그 약초라는 확신이 들었다.
“네, 맞습니다.”
‘휴······. 미치겠군.’
왜 이렇게 한숨을 쉬냐고?
호랑이 기운을 물리쳐준다는 약초가······. 곶감처럼 생겼는데, 한숨이 안 나오게 생겼냐.
저 어두운 주황색, 쪼그라든 감 같은 생김새, 겉면에 묻은 새하얀 가루 같은 물질까지! 그냥 곶감이잖아! 온몸으로 자신이 곶감이라고 외치고 있잖아!
호랑이니까 곶감으로 물리친다니!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후우, 아니야······. 침착해라 김수하, 개연성은 있잖아.’
이게 무슨 종류의 개연성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숱하게 겪어온 일이다. 흥분하지 말자.
마늘에 쑥 사건도 있었고, 비토섬에 사는 초월자의 정체가 토생원이었는데, 뭘 곶감 정도로.
“허허, 곶감 버섯이라······. 이미 오래 전에 멸종한 약재라 생각했는데, 이런 곳에 남아 있었군요.”
심지어 이름까지 곶감버섯이군.
그러니까, 우리가 대전까지 온 이유는 ‘곶감을 따기 위해서’였구나.
하지만 이름이 어찌됐든, 생김새가 어떻든, 이게 호랑이 기운을 물리쳐 준다는데 별 수 있나, 열심히 따야지.
“혹시나 하여 드리는 말씀인데, 절대로 맛을 보셔서는 안됩니다. 약재로 사용하지 않고 그냥 먹으면 환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음, 그래도 꼴에 버섯이라고 독까지 있는 거냐······.
여하튼, 이후 우리는 수다르님의 지시에 따라 가장 건강하고 질이 좋은 곶감들을 챙긴 뒤 곧장 던전을 빠져나왔다.
* * *
“자, 그럼 이제 돌아가 볼까요?”
던전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블랙 드래곤으로 변한 이유찬 씨가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치며 말했다.
“아뇨, 돌아갈 때는 제 토끼굴로 가죠.”
하지만 나는 정중히 유찬호에 타는 것을 거부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절대 무서워서는 아니다.
웅혼한 기상을 가슴에 품게 된 나에게 시속 300킬로미터는 전혀 두려운 속도가 아니니까.
다만 게이트를 열면 5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걸, 굳이 드래곤을 타고 이동하며 시간낭비를 할 필요가 있겠냐는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로 게이트를 이용하려는 것 뿐이다.
“그럼 게이트로 돌아가는 편이 효율적이겠군요.”
합리주의자인 제르보나씨는 곧장 내 의견에 동의를 표했지만,
“삐이······.”
하늘을 나는 것을 좋아하는 꼬마용 알틴은 서운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고,
“우웅······.”
효율성보다는 재미가 최우선인 아기곰 역시 은근히 게이트는 싫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후······.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냐. 내가 나쁜 소리라도 한 것 같잖아.
“알았어, 그럼 그냥 날아서 가자.”
결국 두 아기의 눈빛을 이겨내지 못한 내가 이유찬 씨의 등에 올라타려는 순간,
“허허, 수하씨, 곰 선생, 내가 우리 곰 선생이 좋아할 것 같아서 준비한 게 있는데, 그걸 타고 돌아가는 게 어떤가?”
New인국 씨가 매력적인 절충안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