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08화 (208/300)

EP.208 뛰는 천마 위에 나는 아기곰 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강혁 씨의 질문에 천마는 마치 흑역사를 들킨 사람처럼 살짝 곤혹스러운 표정을 내비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소싯적에 만류귀종에 대해 연구한답시고 사파의 검술 몇 개를 종합하고 발전시켜 만든 검법입니다. 설마 현세에 그 검술을 익히고 있는 자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네?”

자신이 익힌 검법의 창안자가 눈앞에 있다는 말에, 이강혁 씨의 입에서 보기 드물게 큰 소리가 나왔다.

“하아, 면구스럽군요. 검식 자체도 형편없거니와,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검법이라······.”

음, 정말 형편없는 검법일까······.

이강혁 씨는 회귀자다.

즉, 회귀까지 해가면서 얻은 검법 중에 가장 훌륭한 게 파천귀검인지 뭔지라는 소리인데, 그런 검법이 결함 투성이일리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파천귀검은 S급 검술입니다. 내공이 부족해서 제대로 쓰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후반부를 익히기 시작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강혁 씨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마의 말에 이의를 표했다.

‘역시.’

내 예상대로, 파천귀검은 아주 강한 검술이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세의 기준이고, 우리의 생각일 뿐, 천마의 눈에는 ‘형편없는’ 검술에 불과한 거겠지.

“물론 8성 정도의 성취만 있어도 천하 십대 고수에는 들어갈 테고, 자질이 뛰어난 자가 대성한다면 천하오절이나 삼존 급의 당대를 호령하는 무인은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게 한계입니다. 진정한 지존의 자리에 오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검술이지요.”

이게 무슨 소리야······.

그렇게 공부하면 서울대 연고대 정도는 쉽게 가겠지만, 결국 전국 수석은 못하니까 잘못된 공부법이라고 말하는 거냐 지금.

‘아니지, 이건 더 심하지. 천하오절이나 삼존이면 천하에서 세 손가락,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고수라는 소리인데.’

고미만 눈이 높은 줄 알았는데, 더한 사람이 있었군······.

왠지 매번 전국 1등 하다가 2등 됐다고 참고서를 찢어버리며 발광하는 친구가 옆에 있으면 이런 느낌일 것 같네.

여하튼, 잘나도 너무 잘나신 손주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불현듯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제 아무리 눈이 높고 실력이 대단하다 한들, 천마가 고미보다 나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저 녀석이 가만히 있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설마 저 슈퍼 먼치킨도 눈치채지 못한 문제를 천마가 짚어 냈을 리는 없고······.’

우리 애(?)라 그런 게 아니라, 팩트가 그렇잖아.

내가 그런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천마가 진중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게다가 파천귀검결의 후반부는 반드시 그에 걸맞은 내공 심법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전반부는 초식만 알고 어느 정도의 내공만 있으면 그럭저럭 사용할 수 있지만, 후반부는 반드시 그에 맞는 심법과 내공 운용법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군, 아직 그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라 고미도 알지 못했던 건가?

그 순간, 나는 이강혁 씨의 움직임이 왜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는지를 알아차렸다.

“그래서 검법의 후반부가 그렇게 매끄럽지 못했던 거군요······.”

이강혁 씨 역시 무언가를 깨달은 듯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줄곧 말없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미가 우리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어째서 그런 복잡한 과정이 필요한 것이냐?”

설마, 아직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해서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

해결책을 이미 알고 있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냐!

천마도 골머리를 앓을만한 문제를!?

“웅 노사, 이건 아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파천귀검과 그 후반부에 필요한 내공심법이 이 노사의 체질이나 성품과는 너무나도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후반부를 익히려 들었다가는······.”

고미의 지적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천마 역시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확실히, 천마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소싯적 무협지 좀 읽어본 경험에 따르면, 이쪽이 정론이지.

“그러니까, 왜 억지로 익혀야 하느냐?”

그러나 고미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마와 이강혁 씨를 바라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는 살짝 입술을 비죽이며 짤막한 손가락을 꼬물거려 손에 들린 초코 크루아상을 만지작거렸다.

마치 ‘겨우 이런 문제로 내 초코 크루아상 시식회를 늦춘 것이냐?’라고 묻는 듯한 제스처.

즉, 위대한 웅 노사님 입장에서 이 문제는······.

‘느긋하게 디저트나 먹으면서 생각해도 해결될 문제라는 소리지.’

겨우 그런 문제 가지고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으니, 답답한 거고.

“자기에게 맞지 않는 무공이 어디 있느냐? 그런 것은 자기에게 맞게 바꿔서 익히면 그만 아니더냐?”

아니나 다를까, 고미는 너무나도 심플한 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게 답이라고 할 수 있는 거냐.’

그 대답을 들은 천마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살짝 인상을 구겼다.

“웅 노사, 그게 가능하다면 왜 무인들이 모든 무공을 한번에 익히지 않고 한두 개만 골라 익히겠습니까? 저 역시 하늘이 내린 체질을 가지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여러 개의 내공심법을 동시에 운용하지는 못합니다.”

“아니, 동시에 운용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너희들이 이 몸처럼 모든 무공을 마음대로 익히지 못하는 것쯤은 이 몸도 알고 있다. 하지만 심법을 못 고치겠다면 초식을 그에 맞게 바꾸면 그만이고, 초식을 못 고치겠다면 심법을 적당히 변용하면 그만 아니더냐.”

못 따라가겠다······. 이 우주급 먼치킨의 사고방식은 도저히 못 따라가겠어.

적어도 내가 봤던 무협지에서는 그런 수련법을 사용했다가는 곧장 주화입마에 빠졌던 것 같은데.

이게 바로 그 진짜 천재들만 한다는 ‘그게 왜 안돼?’ 신공인 건가?

“흠······. 그렇다면 제가 파천귀검결의 후반부를 보여드릴 터이니, 웅 노사께서 한번 이 노사에게 맞게 변형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결국 고미와 작은 언쟁(?)을 벌이던 천마께서는 살짝 입술을 앙다물며 시범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나름대로 무의 정점에 섰다고 자부하는 자신조차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을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니, 적잖이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으, 으음······.”

하지만 이상하게도, 고미는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왜 저러지?’

안 되는 걸 된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우기는 녀석은 아니다.

틀림없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 답을 안 하는 게 분명한데······.

그 순간, 나의 시야에 또다시 초코 크루아상을 든 통통한 손가락이 초조한 듯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설마······. 빵이 먹고 싶어서 저러는 건가?’

하긴, 저 녀석 성격에 이 정도면 오래 참았지.

먹는 것, 특히 단 거라면 눈이 뒤집히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곧바로 몸부터 움직이는 녀석이니까······.

그러고 보니 저 단내가 진동하는 빵을 손에 들고만 있고, 먹지는 못한지 벌써 십분은 지난 것 같은데······.

먹기 위해 사는 아기곰 입장에서는 이미 진즉에 한계를 넘었다고 볼 수 있지.

게다가 우리 무서운 손주분과 일전을 벌인 뒤에 먹방도 못하고 사탕과 초코바만 먹다 곧장 여기까지 왔으니까, 슬슬 배가 고플······.

- 꼬르륵······.

그때, 내 추측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녀석의 배에서 어서 빨리 그 달콤한 것을 맛보여 달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역시······. 초코빵이 먹고 싶어서 그런거군.’

“웅 노사님, 설마 이제와서 무르는 것은 아니겠지요?”

자존심이 상한 천마의 한마디에, 고미는 잠시 망설이며 손에 든 초코 빵과 허수아비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음, 이강혁 씨에게는 나름 중요한 문제인데, 빵이 먹고 싶다는 말을 하기가 미안한 모양이군.’

“곰 선생님, 시장하신 것 같은데 먼저 그 빵부터 드시고 하시지요.”

그때, 뒤늦게 이 단맛 중독자가 왜 답을 하지 못하는지 눈치챈 원조 호구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 오오오! 허수아비!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이냐?! 사, 사실 내심 신경이 쓰였느니라. 이 녀석이 시시각각 말라가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러다가 퍼석하게 변해버리면 그 맛을 온전히 느낄 수가 없지 않느냐!”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광신도의 한마디에, 신이 난 아기곰의 꼬리가 정신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음, 설마 계속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던게, 빵이 마를까 봐 걱정되서 그랬던 거냐······.

그 슈퍼 먼치킨급 촉각으로 빵의 식감을 느껴보고 있었던 거냐고.

“그럼 작은 살쾡이 너는 검술을 펼쳐보거라! 이 몸은 이 녀석이 촉촉함을 잃기 전에 어서 시식을 해보아야겠다!”

잽싸게 초코 크루아상을 입에 가져다 대는 아기곰의 모습에, 천마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으, 무서워.’

우리 손주분, 원래도 무섭지만, 인상까지 쓰니까 더 무섭네.

하지만 천마의 심정도 조금은 이해가 가긴 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패배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중원을 일통하고 초월자까지 되신 양반 아닌가.

자신의 한마디면 벌벌 떨며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사람, 아니, 어쩌면 진짜로 죽어버리는 사람들이 수천이었을 텐데, 고작 초코 빵의 ‘촉촉함’ 따위에 밀려버렸으니, 어지간히 자존심이 상하겠지.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손주분께서는 곧장 자신의 손을 검으로 삼아 서너개의 초식을 펼쳐 보였다.

고미와의 대결에서 보여줬던 것과는 달리, 이 움직임은 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어쨌든 사람의 몸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움직임에는 한계가 있는 거니까.

- 쿠릉, 쿠르르릉!

다만, 그 초식의 위력은 아무리 봐도 인간이 펼치는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강맹했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가히 천재지변을 방불케 했다.

“후우······. 대충 이 정도입니다.”

시연을 마친 천마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고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작 네다섯 개의 초식을 펼쳤을 뿐인데, 방원 수십 미터에 달하는 지역의 몬스터는 모조리 사라져버렸고, 빽빽하게 들어서 있던 초목과 바위는 물론이고 지향 자체가 변해 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파괴력.

역시 천마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검법이었다.

한편, 우리의 우주 먼치킨께서는 홀린 듯한 표정으로 지면 곳곳에 생긴 균열과 검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하나하나의 초식이 지극히 흉폭하고 패도적입니다. 정말로 이 초식과 내공 운용법을 이 노사에게 맞게 바꾸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런 반응이 없는 고미의 모습에 무언가 착각을 한 천마는 이미 이 논쟁에서 승리한 듯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저 녀석이 가만히 있는 이유는 파천귀검 ‘따위’ 때문이 아니었다.

‘빵이 입에 맞나 보군.’

그렇다.

지금 고미는 초코 크루아상의 맛에 흠뻑 빠져있을 뿐 이었다.

평소보다 곱절은 씹는 게 느린데다, 동글동글한 귀는 빳빳하게 일어났다 눕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꼬리는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풀마냥 흔들흔들······.

뭐, 꼬리가 조금 짧기는 하지만, 대충 그렇게 부드럽게 흔들린다는 의미다.

“오, 오오······. 수다르! 역시 너는 굉장하구나!”

한참동안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아기곰은 초코 빵을 말끔히 먹어치운 후에야 정신이 돌아온듯 감격한 표정으로 수다르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수다르, 이 몸을 위해 또다른 빵을 골라줄 수 있겠느냐? 그 사이 이 몸은 작은 살쾡이와 허수아비에게 가르침을 주겠느니라.”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식 수달에게 다음 메뉴 선정을 맡긴 뒤 손에서 곰기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허수아비, 잘 보거라. 이 몸이 너를 위해 아주 천천히 검술을 펼쳐보겠다.”

말을 마친 아기곰은 평소처럼 대충 손을 한두 번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춤을 추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톰한 솜방망이와 젤리가 움직일 때마다 허공에는 새하얀 섬광이 궤적을 남겼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의 얼굴은 점점 더 새파랗게 질려갔다.

“어, 어,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금 고미의 검술은 분명히 파천귀검을 베이스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다른 검술이 되어 있었다.

움직임은 간결해졌지만 위력은 더 강해졌고, 모든 것을 부술 듯 호쾌하고 패도적이었던 검초는 정교하면서도 깔끔하게 변해 있었다.

천마의 그것이 하늘을 부수는 검이었다면, 이건 거대한 산을 가르는 검이라고 해야 할까.

“어찌 형을 유지하면서도 검의 성격이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하늘 밖에 또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천마는 절망과 환희로 뒤범벅이 된 표정으로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고,

< 축하합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그와 동시에 꿀태창이 퀘스트 완료 메시지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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