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07화 (207/300)

EP.207 누구한테 칼질 배웠니.

“이강혁 씨를요?”

“네.”

나의 질문에 무서운 손주분께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얼굴로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어차피 따로 조치할 건 없는 거잖아. 일 생기면 연락할 테니까, 강혁이 형 데리고 갔다 와. 내가 남을게.”

천마가 이강혁 씨에게 관심을 보이는 듯 하자, 무언가를 눈치챈 봉식이가 제꺽 손을 들고 나섰다.

굳이 던전에 데리고 가자고 말하는 건, 틀림없이 검술에 관련해서 할 얘기가 있는 걸 테니까.

저 녀석도 그런 의미라는 걸 알아차리고 손을 들고 나선 거겠지.

“허수아비, 무엇을 망설이느냐! 어서 가자꾸나!”

한편, ‘맛있는 것’이 준비되어 있다는 말에 이미 흥이 오를 대로 올라버린 아기곰께서는 초코바를 할짝거리던 것마저 멈추고 이강혁 씨를 재촉했다.

“알겠습니다.”

이강혁 씨가 합류하자, 이유찬 씨와 제르보나는 말없이 로비 밖으로 걸어가 본 모습으로 변했다.

이제는 어딜 간다고 하면 거의 자동으로 비행기 모드가 되는구나.

간만에 드래곤으로 돌아간 두 사람의 모습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확실히 커졌어.’

흑암과의 싸움에서도 커진 걸 느끼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욱 거대해진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마력의 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뿔도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는 것 같고.

‘이쪽도 착실하게 파워 업 중이구나. 이 정도면 숲속 친구들이 다 타도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아, 안돼.

나도 모르는 새에 제르보나 호와 유찬 호에 너무 익숙해졌어.

드래곤의 강력함보다 최대 탑승 인원에 신경을 쓰게 되어 버렸다고!

“흐음, 적룡 노사와 흑룡 노사는 용족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인 모양이군요.”

본 모습으로 돌아간 두 드래곤의 모습을 본 천마는 흥미롭다는 듯 턱을 매만지며 눈을 빛냈다.

“그렇다, 딸기와 검은콩은 제법 강력한 도마뱀이지.”

“네, 확실히 지금까지 보았던 용들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고미의 대답을 들은 천마는 자꾸만 불온한(?) 눈으로 두 드래곤을 훑어보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불안하다, 불안해. 싸워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렇게 쳐다보지 말라고.’

‘지금까지 보았던 용들과는 다르다’니, 어디서 그렇게 드래곤들을 많이 보셨을까.

동네 뒷산에 드래곤이 살 것 같지는 않고, 무협지에 용이 나오는 건 거의 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설마······. 무림일통하고 심심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용 사냥이라도 즐기신 건 아니겠지.

“이 정도면 용족이 자신들의 강함에 자부심을 가질만 하군요. 제가 그동안 만났던 용들은 덩치만 컸지 영 시원치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래, 그랬구나······.

거기까지만 들어도 우리 손주님이 어디서 뭘 하고 다녔는지 대충 알겠다.

“자, 흑룡호 출발 준비 끝났습니다! 얼른 타세요.”

그때, 이유찬 씨가 더욱 거대해진 날개를 활짝 펼치며 우리를 재촉했다.

이 열혈 드래곤은 이미 숲속 친구들 전용 비행기가 된 걸 납득한 걸 넘어서 일종의 즐거움마저 느끼는 모양이군.

“자, 그럼 가볼까요?”

뭐, 나 역시 오랜만에 유찬 호에 탑승하는 거라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고.

용 타고 다니는 거, 꽤 재미있거든.

“갑니다!”

하지만 유찬 호가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는 순간, 용을 타고 다니는 게 더이상 재미있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 * *

“헉, 헉······. 유, 유찬씨, 제르보나 씨, 너무 빨라진 거 아니에요?”

30분 컷이라니······.

서울에서 대전까지 거리가 대충 140~150킬로미터 정도니까, 시속 300이잖아!

“오오! 검은콩! 실로 훌륭하다! 덩치만 커진 것이 아니구나!”

반면 스릴 중독자인 아기곰께서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제르보나 호와 유찬 호의 속도에 크게 만족한 듯 솜방망이를 붕붕 휘두르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으으, 속이 안 좋은 것 같아.’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전혀 반갑지 않은 업그레이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법 덕분인지 뭔지는 몰라도, 등에 타고 있는 사람이 바람에 날아가거나 그 속도를 오롯이 느낄 수는 없다는 점 정도랄까.

숲속 친구들이 무사히 바닥에 내리자, New인국 씨가 활기찬 발걸음으로 우리를 던전까지 안내해 주었다.

“자, 그럼 얼른 가보자고.”

“오, 길드장님! 여기입니다, 여기!”

짙푸른 이끼와 넝쿨로 뒤덮인 커다란 동굴 형태의 던전 입구에는, 무려 개나리색의 셔츠를 입은 중년의 남자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굉장하군, 개나리색이라니.’

이제 어딜 가든 원색 계열의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헌터를 보면 블랙메이지의 길드원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다.

“오오! 수하, 저 녀석을 보거라! 꿀색 옷을 입고 있느니라!”

“하하, 그 유명한 고미 선생님을 직접 뵐 수 있다고 해서, 특별히 선생님의 스카프색과 똑같은 색깔로 맞춰보았습니다!”

······.

정말이냐.

그런 정보가 퍼졌다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그렇다고 노란색 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는 거냐.

“자, 그리고 이건 부탁하신 먹을 것입니다.”

고미와 간단한 인사를 마친 노란옷의 아저씨는 잽싸게 커다란 쇼핑백 하나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고미보다도 큰 쇼핑백 안에는 온갖 종류의 빵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오오! 이것은 무엇이냐! 전에 삼룡 어멈과 카페라는 곳에서 먹었던 케이크와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 가득하구나!”

언제봐도 굉장한 기억력이군.

게다가 빵은 먹어본 적이 없지만, 카페에서 파는 케이크는 몇 번인가 먹어봤으니 그걸 바탕으로 빵과 케이크가 비슷한 거라는 걸 유추해내는 연상력까지.

먹을 것에 한해서는 영재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기억력과 추론 능력이다.

그렇게 이 먹보곰의 영재성(?)에 감탄하고 있을 때,

“오오, 이것은, 대전의 명물이라는 성신당의 빵이군요.”

쇼핑백 안에 든 물건의 출처를 알아본 미식 수달, 수다르 옹께서 반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먹을 것에 조예가 깊은 건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어째서 빵집 이름까지 정확하게 알고 계신 겁니까.

‘안되겠어, 다음 번에 화원에 가면 와이파이 수신기가 달려 있는 건 아닌지 찾아봐야겠어.’

이쯤 되니, 은밀하게 스마트폰과 현대문명의 혜택을 즐기고 있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오, 수다르! 네 녀석이 이름을 알 정도로 굉장한 곳이더냐!?”

메뉴 선정과 시식평에 있어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백전불패의 미식가, 수다르 옹의 한마디에 고미의 꼬리는 이미 확신에 찬 회전운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자, 수다르! 그렇다면 네 녀석이 이 몸을 위해 가장 훌륭한 음식을 골라다오!”

무서운 손주분과의 일전으로 열량을 써서 시장했던 탓일까, 먹보 아기곰의 두 눈이 식탐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것이 느껴졌다.

“허허, 기다려 주십시오.”

이에 미식 수달은 곧장 쇼핑백에서 초콜릿으로 뒤덮인 크루아상 하나를 꺼내들었다.

“일단은 이것으로 시장함을 달래 보시지요.”

전혀 고민하지 않고 고르는 것으로 보아, 이 빵집의 메뉴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장면이군.

“우, 우웃! 이, 이 녀석은······. 생긴 것부터가 위대한 이 몸을 위해 준비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니나 다를까, 달콤한 초코향이 진동하는 크루아상의 모습에 단맛 중독자 아기곰의 작은 콧구멍이 쉴 새 없이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웅 노사, 우선 마물굴로 이동하시지요.”

먹을 것에 빠진 아기곰이 잠시 이곳에 온 목적을 잊은 듯 하자, 겁 없는 손주분께서는 태연한 얼굴로 우리의 목표를 상기시켜 주었고,

“오, 오오, 미안하구나, 이 몸이 잠시 잊을 뻔했다! 그래, 허수아비의 검술을 봐주어야지! 어서 던전으로 가보자꾸나!”

먹을 것보다는 친구가 더 중요한 아기곰께서는 초코 크루아상을 손에 든 채 앞장서서 던전으로 달려갔다.

* * *

<< 오염된 엘프의 숲 >>

< 몬스터 등급 A ~ S >

< 클리어 조건 >

타락한 엘프 군단을 처치하고, 숲을 정화하세요.

< 클리어 보상 >

‘???’의 활, ‘???’의 포션(x20), ‘???’의 망토······.

던전 안에 들어서자, 언제나처럼 관련된 정보가 주르륵 떠올랐다.

‘타락한 엘프라······.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 중에 가장 머리가 좋은 종이네.’

당연한 얘기지만, 머리가 좋은 몬스터일수록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엘프는 인간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머리가 좋은 종족이니 같은 A급이라고는 해도 처리 난이도는 다른 몬스터와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테고.

“자, 이쪽, 이쪽으로 가면 된다.”

던전에 들어오자, GomPS로 변한 아기곰은 곧장 초코 크루아상을 손에 꼭 쥔 채 엘프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가리켰다.

그렇게 고미의 뒤를 따라 이동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 끄트머리에 서너마리의 엘프가 나무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 그럼 이 노사, 한번 솜씨를 보여주시겠습니까?”

천마의 요구에 이강혁 씨는 사뭇 긴장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고미와 싸울 때 천마가 보여준 검술은 그야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무의 끝자락에 닿아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딱 집어 불러내니, 긴장하지 않으려야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한편, 고미는 초코 크루아상을 먹는 것마저 잊고 얌전히 이강혁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러다 초콜릿이 녹아버리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천마에 고미까지 진지한 눈빛으로 이강혁 씨를 바라보고 있으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이강혁 씨는 곧장 지면을 박차고 이동해 나무둥치에 기대어 있는 엘프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 쉭!

기습을 당한 엘프들은 민첩하게 대형을 갖추며 적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 챙!

하지만 이강혁 씨는 검성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유려한 칼놀림으로 화살을 쳐낸 뒤 순식간에 놈들에게 다가갔다.

‘대단하네.’

그 사이에 또 실력이 늘었다.

삼룡이 패밀리도 그렇고, 이강혁 씨도 그렇고, 고미와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실로 멋진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뭔가가 부족한 것 같아.’

이강혁 씨의 움직임이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미와 천마라는 무의 양대산맥이 펼치는 대결을 본 직후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감각 강화 스킬과 검술 스킬의 레벨이 올라서일까.

전에는 흠 잡을 곳이 없다고 느꼈던 이강혁 씨의 검술이, 뭐라고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묘하게 부족해 보인다.

‘내가 성장한 건가?’

이강혁 씨의 움직임은 분명히 예전보다 나아져 있다.

그런데도 부족해 보인다니, 실력과는 별개로 나도 보는 눈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걸까?

“일단은, 이 정도입니다.”

눈 깜짝할 새에 네 마리의 엘프를 처리한 이강혁 씨는 차분한 표정으로 장검을 집어넣으며 우리를 향해 다가왔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는 애매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다 입을 열었다.

“웅 노사님, 혹시 이 노사에게 직접 검술을 사사하신 적이 있습니까?”

“가벼운 시범 정도는 보여준 적이 있느니라. 그리고 체질이 워낙 좋지 않아 천도환을 먹여 기맥을 늘려주었느니라.”

“흐음······.”

고미의 답을 들은 천마는 또다시 뜻 모를 침음을 흘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 노사, 웅 노사님을 만나기 전에 누군가에게 검술을 배우신 적이 있습니까?”

“검보 몇 개를 손에 넣어 익힌 적이 있습니다.”

이강혁 씨의 답을 들은 천마는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는 듯 옅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아마도 여러 가지를 익히다 그 중에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를 골라 익히셨겠지요?”

“그렇습니다.”

“혹 그 검법의 이름이 파천귀검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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