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06화 (206/300)

EP.206 쿨가이, 위백천.

“수하씨, 고미님! 어떻게 된 거예요?”

“수하님! 고미님! 괜찮으십니까?”

“삐이이이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삼룡이 패밀리와 토생원, 그리고 수다르 님이었다.

“아, 네. 괜찮아요.”

음, 소식도 빠르네.

하긴, 갑자기 하늘에 검은 게이트가 열리고,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으니, 용왕에도 당연히 소식이 들어갔겠지.

그래도 죽은 사람도 없고, 재산피해도 없…… 지는 않구나.

본사 앞 광장이 모조리 박살 났으니까.

‘괜찮아, 초월자가 나타났는데 그 정도 재산피해로 끝났으면 잘 수습했지 뭐.’

그래, 이 정도면 충분히 잘 했다.

히어로물에서도 이런 적이 나타나면 빌딩 몇 개는 예사로 날려 먹는데.

“후훗, 모두 이 몸을 위해 달려와 준 것이냐!”

한편, 자신을 걱정해 한달음에 달려온 숲속 친구들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고미는 헤실헤실 웃음을 흘리며 연신 꼬리를 흔들어댔다.

“허허, 고미님, 역시 무사하셨군요.”

적잖이 놀란 듯한 삼룡이 패밀리와 달리, 수다르 님의 표정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리 큰 싸움이 났는데 누구 하나 다치지 않았다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음, 고미가 당했을 거라고는 애초에 생각도 안 했고, 다른 사람들이 다쳤을까 걱정이 되어 달려오신 모양이다.

어떤 맥락에서는 제자인 나보다도 더 고미를 믿으시는 것 같단 말이지.

“사숙조, 저분들이 바로 그 웅 노사님의 친구들입니까?”

그때, 말없이 숲속 친구들을 바라보던 무서운 손주분께서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응.”

그리고는 즉시 포권을 취하며 숲속 친구들에게 예를 갖추었다.

“7대 천마, 위백천이라고 합니다. 웅 노사님을 돕기 위해 당분간 현세에 머물기로 하였으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신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나는 숲속 친구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고, 덕분에 그는 간단하게나마 웅 노사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특징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네? 노사요?”

처음 들어보는 괴상한 호칭에 한유진 씨는 당황한 듯 커다란 두 눈을 깜빡였다.

‘음, 그러고보니 수다르 님과 토생원 님은 천마보다 연상이려나?’

족보가 꼬이다 못해 박살이 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나이로 따지면 핏덩이에 불과한 나까지 사숙조라고 부르는 마당에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그냥 궁금하잖아.

“아니, 아니, 그보다 방금 전까지 싸웠다면서, 왜 이렇게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요? 게다가 왜 저희를 노사라고 부르는 거죠?”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한유진 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초지종을 물었고,

“어……. 그게…….”

나는 무신과 고미의 관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준 뒤, 그가 우리를 도와주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굉장하네요……. 무신의 정체가 천마였구나. 게다가 천마신공이 고미님의 가르침으로 완성된 무공이라니…….”

천마신곰, 아니, 천마신공의 비밀을 알게 된 한유진 씨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몇 번이나 천마를 훑어보다가, 번뜩 무언가가 떠오른 듯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패왕 길드의 배후인 무신이 우리 편이 되면, 패왕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음, 마침 나도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적절한 타이밍에 말을 꺼내 주시네.

내가 보기에, 저스티스와 패왕은 합병을 하지 않는 편이 나은 조직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쌓인 앙금이 많은데 ‘윗분들이 그렇게 결정하셨습니다’라는 한마디로 억지로 합쳐놓으면,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클 테니까.

게다가 아직 웅왕 연맹조차 탄탄한 조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패왕처럼 문제아들이 많은 길드까지 끌어들였다가는 골치 아픈 일만 늘어날 게 뻔하다.

“백천, 내 생각에는…….”

하지만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무서운 손자분이 먼저 답을 내놓았다.

꽤나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무신의 답은 실로 간단했다.

“원하신다면 문파를 해산하겠습니다.”

…….

바로 해체해 버린다는 소리가 나올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정 없는 거 아니냐…….

뭐 이렇게 쿨하냐고.

“네!?”

시원하다 못해 차갑기까지 한 무신의 답에, 한유진 씨의 입에서는 말 대신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음, 확실히 놀랄만하지.’

무신이 우리와 손을 잡았다면, 패왕도 웅왕 연합에 들어오거나, 최소한 평화조약 정도는 체결하는 게 상식적인 흐름이니까.

천마의 성격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나도 놀랄 지경인데, 한유진 씨는 오죽하겠나.

“어차피 현세의 인간들의 문제에 크게 개입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가끔 필요한 게 생길 때마다 부리려고 약간의 도움을 준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웅 노사를 만났으니, 이제 저에게 그 문파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더 화끈하시네, 우리 손주님.

고작 잔심부름이나 시키려고 사대 길드 중 하나를 밀어주고, 이제 궁극의 무에 대한 단서를 찾았으니 없애도 그만이라는 이 마인드.

호방하다, 호방해.

“그래도 되는 거예요?”

“제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직이라면, 애초에 강호에서 살아남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눈치껏 시류에 편승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싸워 이겨내지도 못한다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결과지요.”

정말이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대쪽같은 가치관이다.

아마 초월자와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크게 개입하지 않았던 것도 저런 이유였겠지.

과연 약육강식의 강호에서 정상에 오른 무인다운 생각이랄까.

“아니야, 백천. 일단 패왕은 그대로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외부에 적을 두어 내부의 결속을 꾀한다, 게다가 두 세력의 사이가 좋지 않으니, 억지로 붙여놓았다가는 반발만 커질 수 있지요. 현명하십니다, 사숙조.”

단박에 내 속내를 읽은 천마는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나를 칭찬해 주었다.

처음부터 내 속을 알고 있어서 저렇게 세게 나온 걸까, 아니면 정말로 이러나 저러나 관심이 없어서 그렇게 말한 걸까.

심히 궁금하다.

‘게다가 아무리 봐도 내가 아랫사람 같은데 말이야…….’

그렇게 이 아랫사람인지 윗사람인지 구분이 안 가는 손자분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고미 선생! 수하 씨! 괜찮은가!”

이번에는 New인국 씨가 사무실 문을 열고 달려 들어왔다.

“사숙조, 친구분들과 교분이 정말 두텁군요.”

삼룡이 패밀리에 이어 New인국씨 까지 나타나자, 천마는 못 당하겠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 네, 괜찮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혹시나 우리가 무슨 일을 당했을까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온 모습에, 고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후훗, 문어 할아범! 오랜만이구나! 너도 이 몸을 걱정해 준 것이냐!”

“아, 고미 선생! 무사하구만!”

으음, 소개할 사람이 자꾸 늘어나네…….

그래도 잘됐다. 어차피 대전 던전에 가려면 노인국 씨를 찾아가야 할 상황이었으니까.

“노인국 씨, 이쪽은 7대 천마인 위백천입니다. 백천, 이쪽 분이 노인국 씨야.”

짧은 소개를 마친 뒤,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인데, 언제까지 소개만 하고 있을 수도 없고.

“노인국 씨, 혹시 대전에 있는 던전에 좀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응? 지금? 갑자기 왜? 게다가 방금 전까지 무신과 일전을 벌인 것 아니었나?”

그건……. 그렇네.

설마 New인국 씨가 내 워라밸을 걱정해 줄 정도로 너무 바쁘게 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김수하. 그럴 리가 없다.

본래 보람찬 일과를 보낸 끝에 맞는 휴식이 더욱 달콤한 법.

이건 더욱 달콤한 휴식을 위한 워밍업이라 생각하자.

“흑암이 그곳에 만수왕의 위압 스킬을 막아줄 약초가 있다고 해서요.”

“아, 그렇구만. 안 될 게 어디 있겠나. 지금 당장이라도 상관없네.”

나의 대답에 노인국 씨는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응, 나다. 길드장이라고! 아니, 이게 이제 길드장 전화도 귀찮아하네!”

음, 블랙 메이지는 밝은 걸 넘어서 상당히 막 나가는 조직이 되고 있는 모양이군.

조만간 흑암을 데리고 블랙 메이지에도 찾아가야 하는데……. 왠지 무지막지하게 기를 빨리고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놀이공원에서도 그렇고, 개업식 때도 그렇고, 너무 에너지가 넘쳐서 나 같은 집돌이는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hp가 빠지는 느낌이었거든.

“껄껄껄! 그래, 대전에 좀 가보려고 말이야. 내가 직접. 아참, 곰 선생이랑 수하 씨랑, 하여간 귀빈들이 많으니까 맛있는 거라도 좀 사놓고.”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통화를 마친 노인국 씨가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사이가 좋아진 건 좋은데, 이것들이 아주 위아래가 없어, 껄껄껄!”

말로는 위아래가 없네 뭐네 했지만, 그의 표정은 전혀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자, 나가지.”

“오오! 문어 할아범! 이 몸을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해 주는 것이냐!?”

‘맛있는 것을 준비해 놓는다’는 말에 잔뜩 신이 난 먹보 아기곰은 잽싸게 소파에서 날아올라 나의 어깨 위에 안착했고,

“그럼 그럼, 우리 곰 선생이 직접 출두하시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오오! 그럼 어서 가보자 꾸나!”

나는 평소처럼 갈색 솜뭉치를 어깨에 올린 채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 * *

로비로 내려가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뻘쭘하게 서 있는 문경준과 그 주위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있는 저스티스 길드원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으음, 이걸 생각을 안 했네.’

무신과 고미의 관계가 너무 궁금하기도 했고, 일단 무신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급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이 황당한 사태에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무신님!”

천마가 나타나자, 늘 거칠고 오만하기 짝이 없던 문경준은 곧장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천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모든 걸 일임한다는 듯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문경준 씨, 오늘은 일단 돌아가세요. 아, 임준우 씨는 두고 가시고요. 대련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니까, 조만간 찾아오시고요.”

나의 대답을 들은 문경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물끄러미 천마를 바라봤다.

‘으이그, 이 사람아. 본다고 뭐가 나오겠냐.’

문경준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그 역시 무신을 본다고 뭔가 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고.

다만 상황이 너무 황당하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일단 무신의 명을 기다리는 거겠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신이 패한 건 둘째치고, 갑자기 오래된 벗을 만난 것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우리와 함께 사라졌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을 거다.

굳이 비유하자면, 신나게 두들겨 맞고 싸움 잘하는 형을 불러왔더니, 그 형이 복수를 해주기는커녕 상대와 친구가 되버렸다는 상황이랄까.

뭐, 속사정은 다르지만, 문경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밖에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라는 의미지.

“사숙조의 명대로 하거라.”

무신의 짤막한 한마디에, 문경준의 얼굴이 의아함과 당혹감, 공포로 물들었다.

‘동네 형에게 때려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알고 보니 내가 부른 형 집안의 어르신이었다’라는 이야기니까.

어지간히 당혹스럽겠지.

“아,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문경준은 황망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로비를 빠져나갔고, 저스티스의 헌터들은 이게 어찌된 일이냐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사숙조? 왜?”

“설마 고미 교관님과 무신이 아는 사이인가?”

“그럼 왜 처음에 봤을 때는 못 알아본 거야?”

“사숙조라며, 그럼 고미 교관님이 사조라는 의미 아니야?”

“그게 그렇게 되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저스티스의 길드장인 이강혁 씨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나섰다.

“자자, 다들 조용. 이 일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해 주겠다.”

그리고는, 우리를 바라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저는 못 갈 것 같군요. 일단 제가 길드원들에게 상황을 좀 알려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빨리 다녀올게요.”

뭐, 삼룡이 패밀리에 고미, 무신은 물론이고 약초를 알아볼 토생원과 수다르님까지 있으니 굳이 이강혁 씨를 데리고 갈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이강혁 씨를 남겨두고 막 몸을 돌리려는 찰나, 줄곧 우리의 결정에 대해 심드렁한 반응으로 일관하던 무신이 입을 열었다.

“사숙조, 이 노사도 함께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응? 왜?”

패왕이나 문경준의 처분에 대해서도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다는 듯한 태도를 유지하던 천마가, 왜 이강혁 씨한테 관심을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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