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02화 (202/300)

EP.202 고수끼리는 통하는 게 있나보다.

“흥! 무슨 소리냐! 위대한 이 몸의 권능을 흉내내고 있는 것은 네 놈이 아니더냐!”

졸지에 도둑곰으로 몰린 고미는 벌컥 성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인가?”

“아니야, 교관님이 무신보다 더 강하신 거 같은데? 방금 전에 검기 되받아 치는 거 봤잖아. 어떻게 훔친 기술로 더 강할 수 있겠냐.”

“에이, 그래도 무신씩이나 돼서 거짓말을 하겠어?”

갑작스레 벌어진 원조 논쟁에, 천마의 위압감에 눌려있던 헌터들도 분분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음……. 무신한테 타격을 주면 위압 효과도 풀리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것도 아니면 신경이 다른 쪽으로 쏠렸기 때문이라던가…….’

A급은커녕 B급도 안되는 헌터들까지 멀쩡해진 것으로 보아, 위압 효과가 사라진 건 분명해 보였다.

다만,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걸 알아둬야 만수왕과의 전쟁에서 써먹을 텐데.’

물론 만수왕과 천마의 위압이 동일한 원리로 작동한다는 게 보장되어야 하겠지만, 확인해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대전에도 가봐야 하는데.’

예전에 흑암이 호랑이 기운을 물리치는데 도움이 될 약초가 그곳에 있다고 했으니까.

‘저스티스에서 외문 제자를 뽑고 나면 바로 블랙 메이지로 가봐야겠네.’

그렇게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웃기는 소리, 네 무공은 틀림없이 본교의 신공이다. 어떻게 마물이 본교의 신공을 사용할 수 있는지 바른대로 고하거라.”

무신이 싸늘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놈이야말로 웃기는 소리 하지 말거라! 위대한 이 몸이 따라하는 것은 오로지 위대한 영웅, 스틸 맨 뿐이니라!”

…….

고미, 팬심은 알겠는데……. 지금 그런 말을 할 타이밍이 아니잖아…….

“스틸 맨?”

스틸 맨의 이름이 나오자, 무신은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모르시는구나.

아니, 모르는 게 정상이지. 이분은 이 시대 사람이 아니니까.

‘안돼, 나까지 고미에게 휩쓸려 버리면……. 얼른 본론으로 돌아가자.’

여하튼, 내가 보기에 이 ‘오리지널’ 논쟁의 승자는, 고미가 될 것 같았다.

우선, 저 순수한 영혼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하더라도 누가 봐도 거짓말인 게 티가 나고.

게다가 천마신교가 얼마나 오래됐는지는 몰라도, 대균열의 수호자보다 역사가 깊은 조직은 아닐 거다.

즉, 수천 년을 산 수호자가 천마신교의 무공을 훔쳤다기보다, 그들의 개파조사가 고미랑 꿀도 묵고! 물장구도 치고! 뭐 그러면서 한 수 배웠다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지.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고미의 성격이라면…….

「오오오! 이 몸에게 꿀을 바치다니, 네 녀석은 신의를 아는구나!」

「좋다, 너는 아주 훌륭한 녀석이니, 이 몸이 너에게 몇 가지 쓸만한 재주를 알려주마!」

같은 대화가 오고 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뭐, 진실은 이 승부가 끝나고 나면 밝혀지겠지.

“하하하하! 본교의 신공을 훔친 것으로도 모자라, 감히 본교의 조사(祖師)가 마물의 잔재주를 보고 배웠다는 말을 내뱉는 것이냐!”

고미의 답을 들은 무신은 엄청난 모욕을 당한 사람처럼 광소를 터뜨렸다.

뭐, 우리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할아버지가 아기곰한테 무술을 배웠다고 하면…….

‘황당하기는 해도,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내 기준에서는 그냥 또 김태평 사장님이 심심하신가 보다, 하고 지나갈 것 같은데…….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기껏해야 그 정도 수준의 문제지만, 천마에게는 아닌가 보다.

뭐, 무협지에 나오는 사람들은 사문의 명예니 뭐니 하는 걸 목숨처럼 여기니까.

그런데, 마교도 그런 설정이던가?

“감히 본좌를 능멸한 죄, 죽음으로 갚거라.”

내가 잠시 무협지의 설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이, 분노한 천마는 또다시 고전적인 대사를 내뱉으며 진기를 끌어올렸고, 그의 몸에서 또렷한 회색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그 순간, 무언가를 느낀 고미가 번개처럼 몸을 날리며 우리를 향해 외쳤다.

“수하! 비실이들을 데리고 뒤쪽으로 물러나거라! 이놈이 본격적으로 달려들 모양이다!”

이어서 고미는 꿀색 스카프를 풀러 우리에게 내던지는 동시에 흑곰 덫을 펼쳐 저스티스 빌딩과 주위의 건물들과 자신 사이에 벽을 만들었다.

“하하하! 직접 눈으로 보니 더욱 재미있구나! 이 결계는 어디서 훔쳐 배운 것이냐!”

흑곰 덫이 펼쳐지자, 천마는 또다시 즐거운 건지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음, 이미 저 사람 머릿속에서 고미는 도둑곰이 되어 버렸네.’

이런 무죄추정의 원칙도 모르는 인간 같으니라고.

한편, 무신과 일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저스티스 길드원들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이 휘말리지 않게 신경 쓰는 진정한 히어로의 모습에, 헌터들의 얼굴에는 감격한 표정이 떠올랐다.

‘끝났군.’

이걸로 저스티스 길드원들은 모두 곰빠가 되겠구만.

강하고, 착하고, 귀엽다.

그야말로 완벽한 조합이지.

쾅!

무신의 몸이 고미와 맞부딪히는 순간, 무시무시한 파공음이 울리며 사방으로 충격파가 뻗어 나갔다.

이어서 두 사람의 주먹과 발이 교차하며 벼락이 내리치는 것 같은 소음과 함께 돌풍이 일고, 바닥에는 거대한 균열이 생겨났다.

‘으아아, 장난 아니네.’

하지만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무리 헌터의 감각이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다고 해도……. 두 사람의 주먹과 발이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으니까.

‘뭐가 이렇게 빨라.’

지금 두 사람은 스케일이 큰 기술의 사용을 자제하고, 완전히 착 달라붙어 정신없이 치고 받고 있었다.

감각 강화 스킬을 가진 내 눈으로도 쫓아갈 수 없는 수준으로 손발이 오고 가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 눈에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겠지.

‘빠른 건 알고 있었지만…….’

잔상에 의해 지금 고미의 팔과 다리는 열 개 혹은 그 이상으로 늘어나 보였다.

더욱 놀라운 건, 무신이 그 폭풍 같은 꿀주먹 연타를 모두 막아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가지 의문은, 고미의 주먹이 많이 약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마치 일부러 무신을 봐주는 듯한…….

‘왜지?’

하지만 이건 지금 당장 알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 나는 일단 감각 강화 스킬의 등급을 S급까지 올려보았다.

이 정도 수준 높은 싸움이라면, 견학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 될 테니까.

< 해피 곰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잔여 포인트 : 2521 >

< 개보다 낫다(B) 스킬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B -> S >

안력이 올라가는 순간, 저도 모르게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두 사람의 손놀림과 발놀림은 S급의 안력으로도 제대로 볼 수 없을만큼 빨랐다.

옆구리를 노리는 줄 알았던 주먹이 뱀처럼 각도를 틀어 머리로 올라가고, 그것을 막아내기 무섭게 반대쪽으로 주먹이 쇄도한다.

날아오는 무릎을 팔꿈치로 찍어 방어하고…….

‘어떻게 저렇게 복잡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손가락, 손바닥, 주먹, 손날, 팔꿈치, 무릎, 발끝, 팔꿈치, 급하면 이마에 어깨까지.

두 사람(?)은 그야말로 자신이 가진 몸의 모든 부위를 총동원해 쉴 새 없이 공방을 주고 받고 있었다.

“서로 큰 기술을 날릴 틈을 보고 있는 것 같군요.”

그때, 이강혁 씨가 나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그런 건가요?”

“네,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뭐,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지금 이강혁 씨의 곁에는 봉식이와 신 팀장님, 그리고 문경준이 서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 중 대다수는 커다랗게 변한 꿀 스카프 뒤에 숨어 빼꼼히 고개만 내밀고 있었고, 몇몇 배짱도 좋고 실력도 좋은 사람들만이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 어이……. 꼬맹이, 아, 아니, 김수하라고 했나? 저 곰돌이, 대체 정체가 뭐냐?”

줄곧 나에게 꼬맹이니 어쩌니 하면서 험한 말을 쓰던 문경준이었지만, 원조 곰의 실력을 보고는 낯빛이 새파랗게 질려 갑자기 바른 말 고운 말 캠페인에 동참했다.

‘역시 고미의 물리치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반응.

“비밀이에요.”

“저, 저런 게 있다면 언제든 나를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전 사람 죽이는 거 싫어해요. 고미도 그런 거 안 좋아하고요.”

무신과 대등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맞서는 아기곰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문경준의 얼굴에서는 완전히 핏기가 가셔 있었다.

‘역시, 무신을 부른 게 정답이었어.’

연맹원들에게 고미의 대단함을 단번에 각인시키고, 문경준이 우리와 각을 세울지언정 선을 넘을 수는 없게 만들려면 무신을 부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거든.

궁극의 무를 보고 싶다는 초월자니 당연히 고미와 한판 할거고, 저 슈퍼먼치킨 아기곰이 패배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게다가 고미도 무신을 부르기를 원했으니까.’

- 콰르르르!

그 순간, 고미와 무신의 주먹이 부딪히며 싸움의 여파로 갈라져 있던 바닥의 커다란 돌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곧바로 싸움을 이어가지 않고 잠시 숨을 고르듯 살짝 뒤쪽으로 물러났다.

‘뭐지?’

갑작스레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을 때,

“하하하! 설마 본좌의 공격을 이만큼이나 받아낼 줄이야.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무신이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도 말하지 않았더냐! 이 몸은 인세에 강림한 위대한 수호자이자, 사, 삼세를 음……. 삼세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곰이라고 칭할 수 있는 위대한 곰! 고미 님이시다!”

으음……. 저 멘트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네.

하지만 조금 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저렇게 더듬어서야…….

“하하하하! 그래, 고미란 말이지?”

고미의 자기 소개를 들은 무신은 이전과는 달리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고수들은 주먹을 주고 받으면서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고 하던데, 아마도 고미의 저 멘트에 악의는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곰이요?’라고 되묻지 않고 한 번에 ‘고미’를 알아들은 사람도 처음이네.

“그렇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을 만난 탓일까, 고미 역시 기분이 좋은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대체 뭐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공을 도둑질 했네 뭐네 하면서 죽일 듯이 굴지 않았나? 왜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건데?’

손을 섞다 보니 고미가 쓰는 게 천마신공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건가?

아니, 그렇다 쳐도 갑자기 기분이 좋아질 이유는 없잖아.

그것도 고미까지 같이.

‘대체 뭐냐고요!’

궁금하다. 궁금해. 이 둘이 대체 왜 이러는 건지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내 호기심이 풀리기도 전에, 무신의 몸에서 또다시 흉흉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뒤에 있는 놈들이 다칠까 걱정하는 것 같은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설령 그대가 본좌와 싸우다 죽는다 하더라도 저 녀석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뭐, 뭐야, 방금 전까지는 웃었잖아.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냐고요.

“흥! 네 놈도 제법 신의를 아는 녀석이구나! 좋다! 목숨만은 살려주마!”

심지어 고미까지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하하하! 마두라는 말은 셀 수 없이 들어봤지만, 신의를 안다는 말은 처음이구나!”

이어서 천마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회색 안개가 빠른 속도로 응집되어 거대한 검의 형상으로 변했다.

“호오, 제법 훌륭한 초식을 가지고 있구나. 이토록 스스로를 잘 단련한 녀석은 처음 보는구나.”

무신의 ‘기’로 만들어진 검을 본 고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저, 정말이냐.’

눈이 높기로 따지자면 세계, 아니 우주제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아기곰 선생의 입에서 저런 칭찬이 나오다니.

쩌적, 쩌저적…….

무신의 검이 완전히 형태를 갖추자, 심지어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흑곰덫에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고미의 결계에 금이 간 것을 발견한 이강혁 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치켜떴다.

흑곰 덫의 위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드래곤이 부딪혀도, 초월자인 흑암의 공격에도 끄떡조차 하지 않던 흑곰 덫이…….

‘이 정도면 고미가 이긴다고 해도 이 주위는 완전히 초토화가 되고 말 거야.’

바로 그때, 우리의 히어로, 슈퍼 아기곰이 나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 수하, 뒤쪽으로 물러나라. 이대로 가면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고 말 것이다. 이 몸의 신기술을 사용해야겠다. ]

응? 신기술? 그 사이에 또 그런 걸 익혔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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