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00화 (200/300)

EP.200 무신, 강림.

문경준의 등장에 저스티스의 헌터들은 말벌을 발견한 꿀벌들처럼 속속 로비 근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방금 왔나 보네.’

적대 관계에 있는 길드의 길드장이 갑자기 찾아왔으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다만 이제 막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 같은 모양새를 보니, 문경준이 도착한 것은 고작해야 몇 분 전 일이 분명해 보였다.

‘또 전화 온 걸 몰랐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보았지만, 부재중 전화도, 메시지도 없다.

‘아니, 이 사람이, 연락하고 찾아오라니까!’

나는 울컥하는 마음을 뒤로 하고 천천히 회사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라도 쓸데없는 싸움이 벌어질까 봐 미리 연락하고 오라고 한 건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면 내 노력은 뭐가 되냐고요.

지금도 봐, 사람들이 당신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 보잖아!

그나마 다행인 건, 로비에 이미 이강혁 씨와 신 팀장님, 박 실장님이 모두 내려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강혁 씨가 있으니, 예정에 없던 싸움이 벌어지는 일은 없겠지.

그때, 페달을 밟던 아기곰의 동글동글한 두 귀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연달아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기곰 연구가의 관찰일지에 따르면 저건 ‘흥미’ , ‘호기심’을 뜻하는 동작이다.

[ 호오······. ]

“왜 그래, 고미?”

[ 제법이구나. 일부지만 이 몸의 점혈을 풀 수 있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

“일부?”

고미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문경준의 뒤에 서 있는 임준우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까 봤을 때는 분명히 서 있었던 것 같은데······.

저게 점혈이 다 풀린 상태가 아니라고?

‘응? 저게 뭐야······.’

그제야 나는 임준우의 몸이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확실히 임준우는 서 있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서 있기만’ 했다.

목 위로는 조금 움직임을 되찾은 것 같지만 두 팔은 여전히 부자연스럽게 몸통에 붙은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고, 다리도 한쪽만 간신히 움직일 뿐, 나머지 한쪽은 거의 목석처럼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음······.’

휠체어에 태워서 와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상태인데 굳이 저렇게 세워두다니, 참 너무 하는군.

‘하긴 저런 흉악한 아저씨가 다 큰 남자를 업고 다니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긴 하지.’

보통은 응급환자를 업고 뛰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봉식이나 문경준 같은 사람이 그런 짓을 하면······. 사체 유기범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을 거다.

“뭐야 저거, 상태가 저런데 왜 끌고 왔대?”

봉식이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인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왜 너는 저 아저씨의 마음을 몰라주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라면 알아줘야지’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이건 마음속으로만 하자.

아무리 죽마고우라고 해도 저렇게 싫어하는 사람이랑 비교하면 화가 날 테니까.

“모르지, 일단 가보자.”

말을 마친 나는 곧바로 속도를 높여 로비 앞으로 이동했고,

“응!?”

[ 좋다! 어서 가보자꾸나! 이 몸도 간만에 흥미가 동하는구나! ]

임준우의 상태에 흥미를 느낀 아기곰은 갑자기 속도를 높여 문경준을 들이박을 것 같은 기세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고, 고미!”

아, 안돼, 이 속도라면 틀림없이 사고가······.

당황한 내가 별안간 난폭 웅전자로 돌변한 고미의 진로를 막으려는 찰나,

- 끼이이익!

꿀색 페달 카트가 낚싯바늘 같은 궤적을 그리며 임준우와 문경준 사이의 작은 틈을 아슬아슬하게 파고 들었다.

‘괴, 굉장해. 등장 방식이 점점 화려해 지고 있어.’

번쩍번쩍한 황금색 카트를 타고 환상적인 드리프트로 적들의 틈을 파고 들어 악당의 앞을 막아선다.

아마 조금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연출이겠지······.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보고 배운 걸까.

‘이런 건 영화나 게임에서만 가능한 거 아니었냐······.’

게다가 카트를 몰기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는 거냐······.

운전도 운동신경과 관련이 있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나 보네.

[ 후훗, 수하. 보거라! 모두가 이 몸의 위엄을 느끼고 있지 않느냐? ]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고미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설마 카트를 타고 등장하는 편이 더 위엄이 있을 거라는게······. 이런 테크닉을 보여주면 모두의 시선이 쏠릴 거라는 의미였냐.’

황금 카트를 끌고 환상적인 드리프트를 선 보이는 아기곰이라니, 확실히 시선 강탈이기는 한데······.

그게 위엄하고는 조금 맥락이 다르지 않니?

한편, 갑자기 나타난 초콜릿색 솜뭉치의 모습에 문경준은 놀란 고양이처럼 뒤쪽으로 펄쩍 뛰며 물러났다.

나나 봉식이, 이강혁 씨나 저스티스의 길드원들이 우르르 몰려왔을 때도 덤빌 테면 덤벼보라는 식으로 자신감이 넘치던 사람이, 고미를 보자마자 이렇게 경기를 일으키는 걸 보면, 다웅이에게 당한 패배가 충격적이기는 했나 보다.

‘음, 초코바 공포증에 이어 곰 공포증인가.’

하긴, 이강혁 씨도 초코 소드에 참패를 당한 뒤로 한동안 초코바만 봐도 움찔거렸지.

문경준 씨는 다웅이의 꿀주먹에 만취 상태가 될 때까지 당했으니, 곰 비슷한 것만 봐도 이러는 게 당연하다.

“네 이놈! 아직 이 몸의 점혈을 완전히 풀지도 못했거늘, 어째서 이 몸의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와서 행패를 부리느냐!”

사람들의 시선을 한껏 즐긴 귀여운 관심웅자(?)는 카트에서 내려 위엄있는 목소리로 문경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뭐야, 말을 해?”

화려한 주행 테크닉으로 자신의 앞을 막아선 아기곰이 사람의 말을 하자, 문경준의 부리부리한 두 눈이 더욱 커다랗게 변했다.

지난 번에 만났을 때 고미는 전음으로만 말을 했으니까.

그리고는,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입을 쩍 벌린 채 오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 아기곰을 바라봤다.

“이 놈에게 점혈을 한 게 저 녀석이 아니라, 너였다고!?”

“흥, 그렇다!”

으음······. 어째서 계획을 미리 말해주지 않아도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발언을 하는 걸까.

뭔가 ‘지금이야! 지금!’이라고 알려주는 센서라도 달려 있지 않고서야······.

설마 관심이 고픈 나머지 언제 나서면 가장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지 알 수 있는 능력이라도 가지게 된 걸까?

‘하여간······. 본능적으로 자기가 나설 타이밍을 아는 것 같단 말이지.’

내 계획에 따르면, 지금이 고미가 나설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무신에게 곧바로 고미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이런 방식으로 끌어내려 한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성격을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어떤 성격인지도 모르고 일단 불러들였다가 트롤 연맹 - 만수왕+황금의 군주+세 번째- 과 손을 잡아버리면 상황이 최악으로 굴러갈 테니까.

이에 나는 시간을 두고 그의 성격을 차분히 분석해 보았다.

수다르 님을 죽이려는 계획에도 동참하지 않았고, 딱히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과거의 흑암처럼 세상을 멸망시키겠다던가, 만수왕처럼 고미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경준이나 패왕 길드원들의 성향을 보면, 그들의 배후가 되어준 무신도 딱히 성격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그의 성향은······.

‘악당은 아니지만, 자기 관심사 외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하고, 성격이 좋지는 않아.’

그래, 아마 그럴 거다.

악당이라면 만수왕이나 황금의 군주와 손을 잡았을 테고, 그게 아니라도 이강혁 씨의 지난 삶에서 뭔가 뚜렷한 악행을 보였겠지.

‘하지만 무신은 끝까지 중립을 유지했지. 패왕의 배후가 되어주기는 했지만, 인간들을 위해 직접 손을 쓰지는 않았어.’

심지어 전생의 봉식이가 패왕을 박살냈을 때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이번에도 결계를 친 자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문경준을 사도로 임명했으면서도, 정작 그가 비오는 날 먼지나게 두드려 맞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즉, 패왕의 배후가 되어준 것은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지, 인간에게 애정이 있다거나, 부하들이 당했다고 그걸 자신과 연결짓는 성격은 아니라는 의미.

‘일단 성격은 합격이야.’

착한 건 아니지만, 내가 구상한 그림에 딱 들어맞는, 그런 성격이다.

그리고 고미는 내 계획에 딱 맞게, 그것도 가장 훌륭한 타이밍을 택해, 스스로 움직여 주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출근해서 문경준이 나타나면 점혈을 한 게 너라고 밝혀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어이, 꼬맹이, 정말 이, 곰새, 아니, 아기곰이 점혈을 한 거냐? 너나 이강혁이 아니라?”

“네 이놈! 입버릇이 아주 고약하구나! 이 몸에게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자신에게 ‘곰새끼’라고 하려다가 말을 바꾼 것을 눈치챈 고미가 꼬리를 바짝 세우며 눈을 부라리자, 문경준은 차마 녀석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더듬더듬 질문을 던졌다.

안쓰럽네. 이제 평생 동물원은 못 가겠어. 가더라도 곰쪽은 거들떠도 안 보겠네.

적어도 사파리는 확실히 못 가겠지.

“네, 맞아요. 무신한테 점혈 풀어달라고 부탁은 해봤어요? 사도 되셨다면서요. 설마 사도 말도 안 들어줘요?”

나의 질문에 문경준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 그건······.”

역시, 연락은 해봤나 보네.

하지만 천하의 무신이 보송보송한 털뭉치가 짚어놓은 혈도를 풀지 못해서 임준우가 반신불수 꼴로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차마 제 입으로 하지는 못하는 거겠지.

“어때요? 관심이 좀 생긴대요? 아저씨가 다웅이한테 두들겨 맞았을 때는 아예 반응이 없길래 다른 방법을 좀 써봤는데, 이번에는 직접 강림할 마음이 좀 생긴대요?”

“뭐!?”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두들겨 맞았다는 이야기를 떠들어대자, 문경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그리고 또 한 명, 문경준 못지 않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으니······.

“우, 우웅!? 그런 것이냐!?”

······.

역시, 내 의도를 읽고 나서준 건 아니었구나.

그런데도 이렇게 적절한 타이밍에 나서다니, 언제 봐도 참 신기한 녀석이란 말이지.

“결계만 가지고는 아직 직접 강림할만큼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아서 일부러 선물을 보내봤는데, 뭐라고 해요?”

무신이 ‘흑곰 덫’에 강렬한 호기심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여태 사도로 임명하지 않았던 문경준을 사도로 만들면서까지 조사를 시킨 거겠지.

다만, 직접 강림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꼈겠지.

그건 다웅이가 출격해서 자신의 사도인 문경준을 두들겨 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것 때문에 나는 조금 더 강하게 무신을 도발하기 위해 점혈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사도가 된 문경준을 쓰러뜨린 것 정도로는 부족하다, 흑곰덫도 직접 느껴본 것은 아니니 부족하다고 느꼈을지 모르고.

하지만 이런 간접 대결에서 패배하면, ‘궁극의 무’를 추구한다는 무신 님께서도 도저히 직접 나서지 않고는 못 베기겠지.

“꼬맹이, 너, 네가 불러들이려는 존재가 뭔 줄은 알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냐?”

나의 도발에 무신보다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문경준이었다.

“흥! 알고 있느니라!”

그리고 문경준의 말에 대답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고미였다.

“감히 위대한 이 몸을 앞에 두고 스스로를 무의 신이라 칭하는 건방진 녀석이 아니더냐!”

자신이 섬기는 초월자를 깔아뭉개는 듯한 고미의 발언에, 문경준의 몸이 탁한 회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오냐, 그럼 한 번 그 힘을 직접 느껴봐라.”

말을 마친 문경준은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주먹만한 새카만 돌멩이 하나를 꺼내 들었고,

- 으드득!

마치 사과를 부수듯 손아귀에 힘을 주어 순식간에 그것을 가루로 만들었다.

- 쿠르릉······.

부서진 돌덩이가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리자, 뇌성과 함께 하늘 위에 커다란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어서 시커먼 구름이 빠르게 한 점으로 모여들며 게이트가 형성됐고······.

그 틈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감히 본좌를 불러내다니,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위압감을 머금은 그림자가 입을 여는 순간······.

- 쿵!

‘자, 잠깐 이건······.’

아주 익숙한 파동이 퍼져나가며 자리에 있던 헌터들이 하나둘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웅기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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