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7 갓-고미님의 우울
어, 언제부터 검색 기능을 저렇게 잘 활용할 수 있게 됐지?
언제부터 너튜브를 할 줄 알게 된 거야?
[ 수하, 대답해 보거라……. 정말로 스틸 맨이 죽은 것이냐? ]
전에 없이 잦아든 목소리,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듯한 눈망울, 힘없이 축 처진 꼬리와 귀…….
일 났네.
“아, 아니야, 고미, 진정해.”
[ 거짓말하지 말거라! ]
고미는 그렇게 외치며 내 눈앞에 리벤저스 리뷰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꿀폰을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스틸맨이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의 스틸컷과 함께 너튜버의 나래이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스, 스틸 맨이, 스틸 맨이……. ]
고미가 꿀폰을 제대로 활용하게 된 것은 기쁘지만, 설마하니 그게 이런 재앙이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다.
‘아, 아직 대책이 없는데.’
이틀, 아니, 하루만 있었어도 어떻게든 고미를 납득시킬 변명을 마련했을 거다.
하지만 재앙이 덮쳐온 타이밍이 너무 빨랐다.
“고, 고미. 일단 진정해봐. 스틸 맨은 죽었지만…….”
[ 어째서 스틸 맨이 죽은 것이냐! 스틸 맨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던 진짜 영웅이 아니더냐! 정의의 용사가 왜 죽어야 하는 것이냐! 리벤저스 친구들은, 리벤저스 친구들은 어디에 있었느냐! ]
그 순간, 나는 고미가 스틸 맨에게 그토록 몰입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멋진 강철 수트와 빔 같은 것에 매료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미는…….
‘분명 스틸 맨과 자기를 동일시하고 있는 거야.’
어린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에 깊이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흔히 말하는 ‘과몰입’과 비슷한 건데, 이건 어린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더 다른 대상에게 감정이입을 잘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어른들에게 ‘스틸 맨’은 외부에 존재하는 ‘타인’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스틸 맨=나’가 되기 쉬운 것이다.
‘새, 생각보다 일이 심각한데.’
게다가 고미는 ‘대균열의 수호자’라는 자신의 위치와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라는 스틸 맨의 포지션을 겹쳐보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고미에게 있어 스틸 맨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이나 마찬가지라는 거다.
바로 그때, 테이블을 정리하던 어머니가 잔뜩 풀이 죽은 고미를 발견하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고미, 왜 그래? 우리 애기가 완전히 풀이 죽었네? 수하야, 무슨 일 있니?”
그러나 고미는 어머니가 말을 걸었음에도 꿀폰을 손에 쥔 채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고미?”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 어머니는 이유도 묻지 않고 곧장 고미를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었지만, 녀석은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지, 진짜냐.’
엄마의 쓰담쓰담조차 먹히지 않는 상태라니…….
“아, 아웅!”
아웅이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콜라를 가지고 와 고미에게 내밀었다.
[ 치우거라……. 먹고 싶지 않구나. ]
자, 잠깐, 지금, 고미의 입에서 ‘먹고 싶지 않다’는 말이 나온 거야?
먹는 게 삶의 목적인 먹보가……. 먹고 싶지 않다고?
이후 어머니는 한참이나 고미를 안고 녀석을 달래주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수하야, 오늘 고미가 기분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얼른 데리고 들어가서 쉬어. 엄마가 들어갈 때 고미 좋아하는 것 좀 사 갈게.”
또다시 손님이 몰려든 탓에 더이상 고미를 안아줄 수 없었던 어머니는 녀석을 데리고 돌아가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두 눈이 퀭해진 아기곰을 업고 집으로 돌아갔다.
* * *
“고미, 고미.”
[ 놔두거라. 이 몸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고미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겨 있었다.
[ 수하, 이 몸은 먼저 자겠다. 고단하구나. ]
그리고는, 여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 무섭게 달짝지근한 고기를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아웅!”
“다웅!”
코끝을 간질이는 달콤한 갈비 냄새에 아웅이와 다웅이는 신이 나서 식탁으로 달려왔다.
“고미, 고미? 엄마가 우리 고미 좋아하는 갈비 했는데, 안 먹을 거야?”
“우웅……. 알겠느니라.”
갈비 냄새에 기운을 차린 건지, 고미의 꼬리가 아주 조금이나마 반응을 보였다.
어제는 녀석이 던전에서 나온 이후로 처음으로 잠을 설친 밤이었다.
고단하다며 먼저 잠자리에 들었던 녀석은 한두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베란다에 서서 달을 바라보다가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고, 녀석이 걱정되어 나도 같이 밤잠을 설쳤다.
“다, 다웅…….”
고미가 테이블에 앉자, 다웅이가 갈비 한 점을 집어 녀석의 밥그릇에 얹어 주었다.
“오오, 다웅이, 고맙구나…….”
‘다, 다웅이가 고미를 먼저 챙기다니.’
가족들도, 나도, 눈이 동그래져 그 광경을 바라봤지만, 정작 고미는 힘없는 목소리로 감사를 표한 뒤 무표정한 얼굴로 갈비를 입에 넣을 뿐이었다.
“수하야, 고미 진짜 괜찮은 거니?”
잔뜩 풀이 죽어 시무룩해진 고미의 모습에 어머니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웠고, 봉식이도 어떻게 하면 고미의 기분을 풀어줄지 고민하는지, 연신 녀석의 눈치를 살피며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몰랐다. 고미가 기운이 없어지면, 우리 집 분위기가 이렇게 가라앉는다는 걸.
“고미, 아빠가 복어회 한 번 더 해줄까? 아니면 우리 고미 좋아하는 연어 해줄까? 아니면 오늘은 장사 쉬고, 엄마 아빠랑 같이 소풍 갈까?”
엄마, 아빠, 나에 아웅이, 다웅이, 말은 안 해도 봉식이까지 모두 자신을 걱정해주자, 착한 아기곰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 우웅……. 알겠느니라. 아빠의 요리는 언제나 맛있으니, 아무것이나 해주어도 좋다.”
누가 봐도 억지로 짓는 웃음.
게다가 꼬리도, 귀도, 반응이 없다.
“하지만 이 몸은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 엄마 아빠도 손님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니, 소풍은 다음에 가자꾸나…….”
고미는 그 말을 끝으로 숟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하, 가자. 이제 새로운 제자들을 거두어……. 악당들에게……. 흑…….”
그리고는 문 앞으로 걸어가다 말고, 끝내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의무를 잊지 않는 모습이 더 안쓰러워, 도저히 출근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고미, 그러지 말고, 오늘은 쉬자, 응? 기분도 안 좋은데.”
깊은 슬픔에 빠진 아기곰을 위해, 나는 출근을 미루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 고미의 증상은, 전형적인 사별에 의한 애도 반응에 가까웠다.
애도 반응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잦아들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애도 반응이 지나치게 강하고, 오래가면, 우울증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고미는 이대로 두면 ‘우울증에 걸린 아기곰’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고미, 우리 얘기 좀 할까?”
결국, 나는 짧게나마 고미와 심리 치료를 진행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쳐서 문제인 녀석과 심리 치료를 진행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중에, 나중에 하고 싶구나…….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다.”
아니나 다를까, 고미는 이번에도 No 사인을 보냈지만, 나는 녀석을 이대로 둘 마음이 없었다.
지금 고미는 스틸맨의 최후에 대해 상당히 왜곡된 형태로 받아들이고 슬픔에 빠져있는 거니까. 이럴 때는 우선 상황을 명확히 알 필요가 있다.
“고미, 그러지 말고, 차라리 나랑 같이 마지막 편을 보자.”
얼핏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는 결정이지만, 영화를 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상상하는 비극은, 실제 영화의 결말보다 훨씬 더 비극적일 수 있다.
끝도 없이 상상 속의 비극을 계속 곱씹고 있으니, 더욱 괴로울 수 밖에.
무엇보다 나쁜 것은, 이런 상상에는 ‘끝’이 없다는 점이다.
현실의 비극은 반드시 그 끝이 존재하지만, 상상 속의 비극은 끝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영화를 제대로 보고, 그에 대해 고미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낫다.
‘이럴지도 몰라’, ‘저럴지도 몰라’하는 상상을 반복하며 공회전을 하는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눈앞에 닥친 상황을 명징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의 의미를 찾는 것. 지금 고미에게 필요한 건, 그것이었다.
“나는, 보고 싶지 않다. 스틸 맨의 최후 따위…….”
“고미, 스틸 맨은 절대로 헛되이 죽지 않았어. 네가 그걸 알아주지 않으면, 스틸 맨도 슬프지 않을까?”
나의 말에 고미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하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출근마저 미루고 고미와 함께 티비 앞에 앉자, 봉식이는 물론이고 어머니와 아버지, 아웅이와 다웅이까지 모두 우리의 주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정은 몰라도 고미가 슬퍼하니, 다 같이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겠지.
영화가 시작되자, 고미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홀린 듯이 화면에 빠져들었다.
“쏘르, 잘했다! 그래! 그것이다!”
악당이 쏘르의 손에 최후를 맞는 장면에서는 솜방망이를 바르쥐며 흥분했고,
“우, 우웃! 주, 죽은 동료들이 살아났다!”
리벤저스가 사람들을 되살리는 장면에서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스틸 맨이 장엄한 최후를 맞이하고, 영화가 막을 내리자…….
“으허헝! 스틸 맨, 너는 네가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스스로를 희생한 것이냐!”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대성통곡을 하며 한참이나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 아우우웅!”
“다웅!”
고미에 이어 아웅이와 다웅이도 눈물이 터져버렸고, 이후 곰돌이 삼 형제는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한참을 엉엉 울어댔다.
그렇게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후, 아웅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콜라 한 병과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는 끈적한 액체가 담긴 병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우, 우웅? 그, 그것은…….”
“엄마 아빠가 고미가 너무 슬퍼하는 것 같아서, 어제 토생원님 한테 꿀을 받아왔지. 자, 우리 고미 꿀 먹을까?”
시원하게 울고 나서였을까, 아니면 가족들이 모두 옹기종기 모여 자신을 달래줘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스틸 맨의 죽음이 무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고미의 꼬리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아웅!”
고미가 조금 기운을 차린 듯하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아웅이가 커다란 물잔에 콜라를 쪼르륵 따르더니, 거기에 꿀 과 얼음을 넣고 가볍게 잔을 휘휘 움직였다.
‘칵테일이냐……. 아니면 양주? 저런 건 어디서 보고 배운 거지…….’
아무리 봐도 저 동작은 양주에 얼음을 넣고 돌리는 걸 따라 하는 것 같은데…….
- 꿀 탄 콜라, 록으로. 오늘은 내가 사지.
머릿속에 아웅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군…….
“아웅!”
저 음료를 뭐라고 해야 하냐, 꿀콕……?
그렇게 연달아 세잔의 꿀콕을 주조(酒造)한 아웅이는 그것을 고미와 다웅이에게 각각 한 잔씩 나누어준 뒤 말없이 잔을 높이 들었다.
이것도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아, 아우우웅! 아웅! 아웅!”
-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날 수는 없었지만,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또다시 머릿속에 아웅이의 목소리, 아니, 굉장히 유명한 삼형제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다웅!”
“오오!”
과연 다웅이와 고미는 아웅이의 말을 알아듣고 같이 잔을 들고 있는 걸까?
심히 의심스럽다.
더 의문스러운 건, 고미가 제법 기운을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고미, 아웅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들은 거야?”
“아니, 알아듣지 못했다!”
…….
그럼 왜 갑자기 회복된 건데.
“하지만 아웅이의 마음은 확실히 전해졌다!”
저, 정말? 정말 그걸로 충분한 거냐?
그 순간, 나는 고미가 왜 그렇게 슬퍼했는지, 영화를 보고 나서 실컷 울고,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렸는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아기곰이 완전히 기운을 차릴 수 있게 할 방법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은……. 고미가 그토록 슬퍼한 이유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히 스틸맨과 자기를 동일시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봐도, 뭔가 트라우마가 될만한 아주 구체적인 사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설마 예전에 뭔가 이거랑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