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6 청천벽력
< 달성보상 >
새로운 친구의 스킬을 일부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획득 스킬 : 노화의 손길 (B)
- 일정한 범위 내에 존재하는 적의 속도와 힘을 감소시킵니다.
‘응? B급이야? 정말?’
여태 얻은 스킬은 죄다 F급에서 시작했는데…….
상대가 초월자라 스킬도 그만큼 강력한 걸 주는 건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로?
‘잠깐……. 그럼 토생원이나 수다르 님의 스킬을 받으면?’
생각해보니, 토생원이나 수다르 님은 고미에게 ‘직접’ 음식을 받은 적은 없다. 같이 식사를 한 적은 많지만 말이지.
‘그럼 고미가 두 사람(?)에게 간식을 먹여주면, 치유 계열 스킬도 생기는 건가?’
이건 단순히 스킬의 개수가 많고 적음을 떠나,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의무병은 부족하고, 뛰어난 힐러는 더더욱 부족한 상황.
내가 치료 스킬을 얻어서 ‘해피 곰 포인트’를 사용해 사람들을 치료해 준다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거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하루라도 빨리 수다르 님에게 제자를 찾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월자가 되는 조건이 자기를 섬기는 사람을 만드는 거였지…….’
일단 초월자가 되시고 나면, 그다음에 고미에게 부탁해서 스킬을 얻는 게 좋겠어.
스킬의 등급은 높은 편이 좋으니까.
“저, 수다르 님, 토생원 님…….”
생각을 마친 나는 토생원과 수다르 님에게 내가 퀘스트를 통해 스킬을 얻는 방식에 관해 설명했다.
속이고 먹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설명을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으니까.
“허허허, 그것참 신통한 방식이군요. 그럼 이 수다르, 고미 님이 직접 하사한 먹거리를 맛보는 것은 제자를 받은 뒤로 미루도록 하지요.”
이야기를 들은 수다르 님은 굳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덧붙이며 인자하게 웃음을 지으셨고,
“하하, 그럼 저는 지금이라도 상관없는 것 아닙니까? 제가 가진 능력 중에 어떤 것이 수하님의 힘이 되어줄지 궁금하군요.”
토생원은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고미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오오, 토생원. 그렇다면 이 몸이 너에게 사탕을 주마. 자, 어서 먹거라!”
말이 나오자, 신이 난 고미는 곧장 꿀 스카프 안쪽에서 동글동글한 알사탕 세 개를 꺼냈다.
‘저, 저기였어?’
어디에 알사탕을 챙겨왔나 했더니…….
아니 근데, 그냥 목에 묶어놓은 스카프 어디에 알사탕이 들어갈 공간이 있는 건데?
“하하, 고미 님이 하사하신 음식을 맛보게 되다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내가 신통방통한 스카프 활용법에 놀라고 있는 사이, 알사탕 세 개가 토생원의 입으로 들어갔고,
< 축하합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 달성 보상 >
새로운 친구의 스킬을 일부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획득 스킬 : 교토삼굴(狡免三窟) (B)
- 영리한 토끼는 본래 굴을 여러 개 파두는 법입니다. 마력을 소모해 ‘토끼굴’을 생성하여 미리 지정한 장소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토끼 굴의 지속시간은 5분이며, 가보지 못한 장소에는 굴을 팔 수 없습니다.
비고 : 스킬 등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거리와 지정할 수 있는 장소의 개수가 달라집니다.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스킬이 보상으로 돌아왔다.
“어떤 스킬을 얻으셨습니까?”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내 곁에 다가왔던 토생원은, 결과를 보고는 다소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아쉽군요. 제작 스킬이 생겼다면 좋으셨을 텐데.”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즉시 회복시켜주는 스킬은 전장에서도 유용하지만, 포션 제조라면 굳이 내가 아니어도 ‘포션 제작자 커리큘럼’을 통해 모집된 제작자들에게 맡겨도 그만이었다.
게다가 마력이 너무 낮아서 제작 스킬이 생긴다 해도 생산량은 대단치 않을 거고.
등급을 올린다 해도 고작 몇 포인트 투자하는 걸로는 원조 약쟁이인 토생원을 따라잡을 수는 없으니, 초월자급의 진짜 귀한 포션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거다.
‘이게 훨씬 나아.’
게이트의 지속 시간이 5분이라는 사실이 조금 아쉽지만, 활용도로 따지자면 몇 배는 더 값어치가 있는 스킬이다.
“아니에요. 충분히 좋은 스킬을 얻었는데요.”
일단, 출퇴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삶의 질을 보장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다. 출퇴근 시간이 5분, 아니 1분 이내로 줄어든다면, 삶의 질은 수직으로 상승한다는 걸.
대학원에 다닐 때는 왕복 두 시간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자취를 했었다.
대학원생에게 두 시간은 생존이 직결된 문제거든.
‘서, 설마……. 출퇴근 시간마저 아껴서 일을 하라는 관리자의 의도는 아니겠지?’
순간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에비! 이런 생각은 하는 거 아니야. 착한 생각, 좋은 생각, 착한 생각, 좋은 생각.’
어쨌든, 저스티스 건물이야 가게와 가까우니 그냥 걸어가면 되지만, 용왕과 블랙 메이지 건물은 출퇴근을 하기에는 너무 멀다.
나의 워라밸을 위해서는 가장 유용한 스킬이라고 할 수 있지.
게다가 고미가 가지지 못한 몇 안 되는 능력 중 하나가 바로 게이트를 여는 것이니 – 수다르 님의 동굴로 이동했던 건 고미의 스킬이 아니라 아이템의 효과니까 -, 이건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지.
“흠, 그럼 내가 가진 능력 중에는 어떤 걸 익혔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그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흑암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네. 이거예요.”
이에 나는 곧바로 내가 얻은 ‘노화의 손길’이라는 스킬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흠, 너는 검사였지……. 검사에게 적합한 스킬을 얻었군.”
엄밀히 말하면 잡캐에 가까운 것 같지만, 그래도 검사에 가까운 잡캐지.
“처음에는 대범위로 사용해라. 빗나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상대가 느려졌을 때, 그 한 명에게 범위를 좁혀 사용하면 더 강한 효과를 볼 수 있지.”
이어서 흑암은 스킬 사용에 관한 간략한 팁을 주었다.
시스템 창은 제공하지 않는, 스킬의 활용에 관한 노하우였다.
“감사합니다.”
“뭐, 내 마력을 모두 쏟아부어도 고미에게는 먹히지 않았지만 말이야.”
그, 그랬구나…….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저주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게 아니었어.
설마 그때 그게 저주에 걸린 상태로 싸운 거?
아니, 역시 저주 면역이 있는 건가?
“흥! 저주에 걸리는 것은 마음이 흐리기 때문이다! 이 몸처럼 뛰어난 정신력을 가진 위대한 존재는 결코 저주에 걸리지 않지!”
저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고미는 또다시 솜방망이를 붕붕 휘두르며 자신만의 전투 철학을 설파했다.
‘으음, 고미, 그건 아닌 것 같아.’
아무리 그래도, 초월자의 저주가 정신력으로 극복이 가능하지는 않지.
어찌 됐든, 네크로맨시보다는 저주가 유용하니, 이번 뽑기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력이 딱히 높지도 않거니와 스킬 하나를 위해 이제 와서 마력에 능력치 포인트를 투자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찝찝하거든.
‘죽은 애들이 되살아나서 날 쫓아다닌다니… 으으, 생각만 해도 소름 돋네.’
노인국 씨나 흑암이 하는 걸 몇 번이나 봤지만, 해골이나 언데드는 내 취향이 아니란 말이지.
게다가 네크로맨시보다는 이런 종류의 스킬이 내 다른 능력들과 궁합도 잘 맞고.
“아, 수다르 님, 그리고 이걸 재배해서 단약을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대강 할 일을 모두 마쳤다고 느낀 나는 인벤토리에 넣어둔 약초를 수다르 님에게 건넸다.
“호오, 거인족의 풀이군요.”
“고미 말로는 이걸 먹으면 저스티스의 길드원들이 더 강해질 수 있을 거라던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이것으로 만든 단약을 복용하면, 처음에는 힘과 체력이 강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그 효과가 크게 떨어져, 일시적인 효과밖에 볼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첫 번째 복용 시에는 영구적인 능력치 증가, 두 번째부터는 버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건가.
‘그 정도면 충분해.’
일단 영구적인 능력치 상승효과를 가진 아이템은 구하고 싶다고 구해지는 것도 아니고, 가격도 만만치 않다.
약초 몇 개로 그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면 충분하고도 남는 수준이지.
“감사합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허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토생원 님과 수다르 님의 제자를 찾아보려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허허, 저는 언제든 준비되어 있으니, 때가 되면 일러 주시지요.”
그렇게 1차 청심환 배달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시간은 어느새 9시가 넘어 있었다.
‘아무리 친해도 이 시간에 불쑥 찾아가는 건 좀 무례하겠지?’
이에 나는 2차 청심환 배달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집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자, 그럼 가게로 돌아갈까?”
* * *
뒷마당으로 돌아간 후, 나는 나의 첫 번째 굴을 가게에 파둘지, 저스티스에 파둘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일단 실험이나 해볼까?’
< 교토삼굴(B)을 사용합니다. >
< 토끼굴을 열 장소를 지정해 주세요. (0/3) >
스킬을 사용하자, 눈앞에 새하얀 점들이 생겨났다.
‘최대치는 세 개네. 이 하얀 점이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장소인 건가?’
벽면이나 건물 틈새, 너무 좁은 공간에는 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정한 면적의 공간이 있어야 사용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지정.’
눈 앞에 펼쳐진 점들 중 하나에 정신을 집중하고 마력을 방출하자,
< 첫 번째 토끼굴이 지정되었습니다. 토끼굴의 명칭을 정해주세요. >
음, 이름까지 붙일 수 있구나.
< 첫 번째 토끼 굴의 명칭이 ‘가게’로 지정되었습니다. >
‘토끼굴 생성.’
다시 한번 마력을 사용하자, 내가 서 있는 곳 바로 옆에 새하얀 게이트가 생겨났다.
“오, 오오! 수하, 이것이 새로 얻은 이능이구나!”
내가 만든 게이트를 발견한 고미는 신기하다는 듯 나의 첫 번째 굴에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하며 연신 웃음을 흘리다가,
“참으로 편리한지고……. 이 몸도 공간 통로를 여는 연습을 해보아야겠구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발언을 내뱉었다.
‘설마, 늘 대균열 앞에만 있었으니 굳이 공간 통로를 만들 필요가 없어서 안 익혔던 건가?’
정말 능력의 끝이 어딘지 모를 슈퍼 먼치킨이구나…….
“굉장하네요. 마침 웅왕의 길드 건물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헬기라도 붙여드릴까 고민 중이었는데…….”
하지만 이강혁 씨가 헬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곧장 귀를 쫑긋거리며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다.
“응!? 우리에게도 헬기를 선물해 주는 것이냐!? 그, 그렇다면 이 몸은 공간 통로를 만드는 방법을 익히지 않을 것이다!”
으, 으음……. 아무리 그래도 헬기를 내놓으라는 건 너무하잖아, 고미.
“하하, 걱정 마십시오. 회사 헬기지만, 특별 교관님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어째 불안하군. 그런 말을 하면 매일 헬기를 타고 놀러 다니자고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자, 자, 그만하고. 이제 엄마한테 가보자.”
고미라면 정말로 헬기를 뜯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얼른 대화를 끝마친 뒤 뒷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의 앞문에는 아직도 서너 팀은 되는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나는 이강혁 씨를 배웅한 후, 봉식이와 함께 식사가 끝난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수하! 이 몸도! 이 몸도 엄마를 돕고 싶다! ]
효자가 되고 싶은 아기곰 역시 테이블 정리를 돕겠다고 했으나,
“아니야, 고미. 그냥 앉아서 쉬어. 오늘 종일 바빴잖아.”
고미, 아니, 더 정확히는 고미의 ‘곰손’을 믿을 수 없었던 나는 그냥 가만히 휴식을 취할 것을 권했다.
허곰섭물을 이용해 상을 치운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고, 저 키에 저 손으로 테이블을 치우다가는 청소할 게 더 늘어날 것 같거든.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사건을 불러일으킬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테이블 정리를 마치고 가게 한구석에 앉아있던 고미에게 돌아갔을 때,
[ 수하, 스틸 맨은… 죽은 것이냐? ]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나의 귓등을 때렸다.
고미의 손에는……. 영화 리뷰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꿀폰이 들려있었다.
[ 말해보거라, 스틸 맨이……. 죽었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