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3 예기치 못한 재앙.
“우, 우웅!?”
우리의 몸에서 흘러나온 빛을 본 아기곰은 꼬리를 바짝 세우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왜 항상 자기가 한 일을 가지고 이렇게 놀라는 걸까. 누가 보면 다른 사람이 한 줄 알겠네.
어쨌든, 새로운 능력이 무엇일지는 안 봐도 대충 짐작이 갔다.
‘친구들을 한군데 불러모으는 스킬이려나.’
하지만 고미의 다음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허, 허수아비! 괘, 괜찮느냐? 기, 기혈이 뒤틀리거나 몸이 아프지 않느냐?”
응?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강혁 씨의 질문에 고미는 무언가 큰일이 벌어진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단순히 놀란 것과는 명백히 다른 반응.
“고미, 왜 그래?”
“지, 지금 허수아비에게 위대한 곰의 낙인이 생겼단 말이다! 이대로 두면 허수아비가 죽을지도 모른다!”
“뭐!?”
이전에 수다르님과 고미가 했던 말에 따르면, 평범한 인간에게 고미의 기운이 흘러들면 몸이 받아들이지 못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봉식이는 특이 체질에, 한번 쓰러졌을 때 웅기조식으로 고미의 기운을 받아들인 적이 있다.
나는 제자이기 때문에 괜찮고.
하지만 이강혁 씨는 아직 고미의 기를 흡수한 적이 없다. 아까도 청심환을 받기만 했지, 그걸 써보지는 않았으니까.
“?”
하지만 고미의 우려와는 달리, 이강혁 씨는 태연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허, 허수아비! 괜찮느냐!? 미안하다, 이, 이 몸이! 리, 리벤저스를 보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아닙니다, 곰 선생님,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우, 우웅!?”
고미가 놀라거나 미안해할까 봐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잠시 후, 이강혁 씨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알 것 같습니다. 사실 던전에서 살짝 웅왕청심환을 먹어봤거든요.”
“네?”
이어서 그는 자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가볍게 몸을 풀어 보인 뒤 설명을 이어나갔다.
“모처럼 곰 선생님의 기를 받았는데, 세 분이 너무 잘 싸우시니 할 게 없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냥 조금만 먹어보았습니다. 모처럼 곰 선생님의 기운을 직접 느껴볼 기회가 왔는데, 그냥 지나가기는 아쉬워서 말이죠.”
…….
잘 되긴 했는데, 솜사탕도 아니고 왜 그걸 야금야금 뜯어먹습니까.
어찌 됐든, 허수아비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아기곰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안도한 듯 긴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튀어오르듯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수, 수하! 다른 친구들! 다른 친구들에게도 위대한 곰의 낙인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녀석은 아직 청심환을 먹어본 적 없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낙인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고미, 진정해. 별일 없을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곧장 꿀태창을 열어 새로운 스킬의 설명을 확인해 보았다.
< 고미류 소환술 - 숲속 친구들, 모여라! (Gomi) >
- 위대한 곰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생긴 새로운 능력입니다.
- 아무리 강력한 영웅들이라도, 힘을 합치지 않으면 거대한 악에 맞설 수 없는 법입니다. 이제부터 고미는 위대한 곰의 기운을 가진 친구들을 언제든 자신의 곁으로 소환할 수 있습니다.
비고 : 소환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눠먹기’를 통해 위대한 곰의 낙인을 새겨야 합니다.
‘역시…….’
고미의 새로운 능력은 ‘나눠 먹기’와 연계된 스킬이었다.
아마도 ‘나눠 먹기’를 통해 자신의 기운을 대상의 몸속에 남기고, 그 기운을 활용해 소환하는 원리겠지.
‘모처럼 생긴 동료들인데, 관리자 입장에서도 숲속 친구들이 다치게 둘리는 없지.’
그러니, 숲속 친구들에게 해가 되는 방식으로 스킬이 작동할 리가 없는 게 당연했다.
“걱정 마, 고미. 다른 친구들한테는 낙인이 안 생겼어.”
“저, 정말이냐?”
“제가 전화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꿀태창을 보여줬음에도 고미가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자, 이강혁 씨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강혁입니다. 혹시 몸에 이상한 문양이 생기거나 빛이 새어 나오지는 않습니까? 네, 네. 아닙니다.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네. 그럼 수고하십시오.”
통화를 마친 이강혁 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십시오, 곰 선생님. 수하 씨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낙인은 수하 씨와 봉식이를 제외하면 저에게만 생겼습니다.”
음, 유독 ‘저에게만’이라는 네 글자를 강조하시는군.
아마 전화를 받은 건 한유진 씨겠지.
저렇게 기뻐하는 건, 자기가 신종 호구보다 먼저 고미의 기운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기뻐서 그런 걸 테고.
정말이지 저 두 사람은 이상한 걸로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구나.
“그럼 한번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흥분과 기대가 가득 묻어나는 표정.
자신이 고미의 소환에 응할 수 있는 첫 번째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못내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인정. 앞으로 몇이나 되는 외문 제자를 받든, 당신이 원조 호구, 원조 광신도다.
마음 같아서는 원조 광신도 인증마크라도 찍어주고 싶은 수준의 충심(?)이군.
“우, 우웃! 좋다! 그럼 일단 멀리 떨어져 보거라!”
“알겠습니다. 그럼 5분 뒤에 저를 소환해 주십시오.”
신이 난 이강혁 씨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고미류 소환술, 허수아비!”
고미가 도톰한 젤리로 바닥을 내리찍으며 기술명을 외치자,
- 펑!
작은 폭음과 함께 흐릿한 안개가 피어오르며 이강혁 씨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오, 오오!”
…….
고미, 네가 소환한 거잖아. 왜 놀라는 거야.
“굉장합니다! 고미 님의 소환술이라는 건 거리에 제약이 없는 텔레포트 같은 거군요.”
숲속 친구 중 첫 번째 소환물(?)이 된 이강혁 씨가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무슨 느낌이야?”
고미의 소환술을 처음 본 봉식이 역시 신기한 마술을 본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감상을 물었고,
“음, 네가 직접 체험해 봐.”
이강혁 씨는 대답 대신 씨익 웃으며 직접 체험해 볼 것을 권했다.
…….
구, 궁금하다. 이건 진짜 궁금하다.
“고미, 나도!”
“나도, 나도!”
봉식이와 내가 연달아 소환 체험에 지원하자, 신이 난 고미의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후훗! 알겠다! 그럼 너희 둘도 최대한 먼저 멀리 떨어져 보거라! 정확히 5분 뒤에 이 몸이 너희를 소환하겠느니라!”
“야, 나가자, 나가자! 빨리.”
나는 봉식이와 함께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신난다.
이제 나도 텔레포트라는 걸 체험해 볼 수 있는 건가?
- 띵동.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봉식이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반대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최대한 멀리 가보자!”
‘소환되면 게이트가 열리나? 아니면 갑자기 슉 사라지나?’
그렇게 소환을 당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하며 정신없이 다리를 놀리기를 몇 분…….
- 우웅…….
돌연 나의 어깨 위에서 백색에 가까운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푸른 안개 같은 것이 내 몸을 감쌌다.
이어서 청백색의 안개에 의해 시야가 흐려지고, 동이 님의 이공간에 들어갔을 때 같은 기이한 부유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 * *
“우와! 우와!”
“이야, 이거 최고다!”
전신을 뒤덮은 청백색의 안개가 사라지자, 우리의 눈앞에 다시 사무실 – 이라고 쓰고 놀이방이라고 읽어야 하는- 의 전경이 펼쳐졌다.
“후후후……. 어떠냐, 이 몸의 권능이!”
“굉장해. 봉식이랑 나랑 정반대로 달려갔는데도 똑같은 시간에 도착했네.”
방향도 반대, 거리도 달랐을 텐데,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똑같다.
즉, 고미의 소환술은 일정한 속도로 소환물을 이동시키는 개념이 아니라, 텔레포트처럼 거리를 무시한 공간도약에 가까운 능력인 모양이었다.
그것도 순차적으로 물체를 이동시키는 게 아닌, 동시다발적으로 표적물을 순간이동 시키는 개념.
다른 스킬들도 마찬가지지만, 완전히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굉장한 능력이다.
물론, 이 아기곰은 이게 왜 대단한 건지 전혀 이해를 못 하겠지만.
“으음,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이강혁 씨가 애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하 씨와 봉식이는 상관이 없지만, 저는 한 번 소환을 하고 나니 표식이 사라졌습니다. 아마 한번 소환을 할 때마다 몸 안에 축적된 고미 님의 기가 소모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으음……. 그렇다. 너희들은 괜찮지만, 허수아비는 다시 소환할 수가 없었느니라.”
그렇군.
표식만 남겨 놓으면 언제 어느 때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라는 건가.
“괜찮아. 나눠 먹기로 표식을 남겨두었다가 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만 쓰는 거로 하자.”
하지만 이 정도 제약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친구들을 불러대지만 않는다면, 급박한 순간에는 반드시 도움이 되겠지.
한 번 소환을 한 뒤에는 다시 청심환을 나눠주면 될 테고.
“오, 오오, 그렇구나! 그럼 어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 몸의 청심환을 나누어 주자꾸나!”
친구들을 소환할 수 있게 되어 잔뜩 흥이 오른 아기곰이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 아앗!”
하지만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식어버린 피자를 발견하고는 좌절한 표정으로 털썩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피, 피자가……. 피자가……. 식어버렸구나…….”
“괜찮아, 피자는 다시 데우면 되잖아. 친구들은 영화 다 끝나고 보러 가자. 급한 것도 아닌데 뭘.”
내가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자, 다시 기운을 되찾은 고미는 헤실헤실 웃으며 피자 위에 손을 올렸다.
“우, 우웃! 그렇구나! 잠시만 기다리거라. 이 몸이 너희들을 위해 다시 이 피자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마!”
…….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면 된다는 의미였는데, 자기한테 데워달라고 말한 거로 받아들인 모양이군.
“간다아, 고미류 기공술…….”
굉장하군, 전에 핫바가 식지 않게 했던 것도 기공술이었던 거냐.
어찌 됐든, 위대한 갓-고미님의 소소한 기공술로 우리는 다시 따끈따끈한 피자를 맛보며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스, 스틸 맨이! 위대한 스틸 맨이!”
“그, 그렇지! 진정한 영웅이라면 친구를 버려서는 안 되느니!”
“아, 아앗! 이럴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충격의 연속이었고, 절망에 빠진 아기곰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이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무래도 순수한 아기곰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결말이었나보다.
“수, 수하!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 정말로 리벤저스가 패배한 것이냐?”
리벤저스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한 아기곰은 몇 번이고 이게 끝일 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음, 다음 이야기가 있어.”
절망에 빠진 아기곰에게 넌지시 다음 편이 있다고 이야기해주자,
“흥! 그러면 그렇지! 위대한 리벤저스가 저런 비겁한 녀석에게 패배했을 리가 없다! 아이템의 힘을 빌려 승리하다니, 저런 것은 진짜 전사가 아니다!”
신이 난 아기곰은 금세 신이 나서 주먹을 붕붕 휘둘러 댔다.
그 순간,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
큰일 났네. 다음 편에서 스틸 맨은 죽는데…….
리벤저스는 승리하지만, 고미가 제일 좋아하는 스틸맨은 죽는다.
‘고, 고미가 그걸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어쩌면 사흘 밤낮으로 대성통곡을 할지도…….
‘생각이 짧았어.’
생각지도 않은 대목에서 엄청난 실수를 해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고미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고, 아직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영화를 골랐을 뿐인데…….
“수하! 어서 다음 편! 다음 편을 틀거라! 이 몸은 저 비겁한 악당이 정의 앞에 무릎 꿇는 모습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겠구나!”
…….
어, 어떡하지?
이대로 다음 편을 틀었다가는……. 대재앙을 마주하게 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