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91화 (191/300)

EP.191 갓-고미님의 집무실(?)

“문경준 씨? 저 김수하입니다.”

문경준에게 전화를 걸자, 임준우의 얼굴은 송장처럼 시커멓게 변했다.

“제가 패왕에서 보낸 스파이를 잡았거든요. 지금 사람 시켜서 돌려보낼게요. 그쪽 사람이잖아요.”

영문을 알 수 없는 나의 행동에 신 팀장과 박 실장님은 물론이고 이강혁 씨마저 두 눈을 치켜뜬 채 나를 바라봤다.

한편, 문경준은 스파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펄쩍 뛰며 혐의를 부인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스파이라니! 난 그런 적······.”

“발뺌하지 마세요. 이미 다 들통났으니까, 아 참, 제가 이분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들려서 돌려보낼 건데, 아마 무신이 그걸 보면 아주 흥미로워할 거예요.”

“뭐라고? 그게 무슨······.”

“그리고 대련 날짜는 언제로 하실래요? 아직 연락이 없으시길래.”

사대 길드의 길드장 중 가장 포악하고 거친 성격을 자랑하는 문경준을 놀리는 듯한 나의 말투에, 이강혁 씨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두 눈을 끔뻑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단순히 그를 놀리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이 사람이 찾아와줘야 거대 연맹의 성립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생겨날 느슨함과 안일함을 몰아내고, 보다 발전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으니까.

“설마 이번 주는 건너뛰는 건 아니죠?”

“이 빌어먹을 애송이가······. 기다려라, 곧 날짜 정해서 알려줄 테니까!”

“네, 다웅이 대기 시켜 놓을까요?”

“시끄러!”

- 뚝.

전화가 끊어지자, 임준우는 걱정과 기대가 반반씩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 정말 살려주시는 겁니까? 그, 그런데, 그 선물이라는 게 뭐죠?”

“당신이요.”

“네?”

음, 너무 로맨틱했나?

아니면 인신 공양이라던가, 뭐 그런 끔찍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다거나?

“아, 이상한 의미는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이제 곧 알게 되실 거예요.”

말을 마친 나는 곧바로 ‘점혈의 대가’ 갓-고미 선생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고미, 시간 맞춰서 점혈이 풀리거나, 뭐 그렇게 하는 것도 가능한 거지?”

고미의 능력은 대체로 무협지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무협지를 즐겨본 건 아니지만, 아버지 덕에 무협 영화는 많이 봤지.

그리고 내가 본 수많은 무협 영화의 고수들은 시간이 지나면 점혈이 풀리게 하는 것도 가능했다.

무협지로 치자면 고미의 포지션은 천마나 무림 맹주, 혹은 은거한 무림 최강자 정도 될 테니, 이 정도 일은 누워서 떡, 아니, 꿀 먹기겠지.

“후훗, 얼마든지 가능하다! 무엇을 원하느냐! 그렇지 않아도 이 배신자 녀석에게는 더 따끔한 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임준우에게 점혈을 해달라는 말에, 고미의 동그란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럼 이 사람 아까랑 똑같은 상대로 만들어줘. 대신 삼일 정도 지나면 다시 몸도 회복되고 말도 할 수 있게.”

“네!?”

다시 한번 자신을 식물인간(?) 상태로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임준우의 얼굴이 또다시 백지장처럼 새파랗게 변했다.

“싫어요?”

하지만 양심은 있는 건지, 더 험한 꼴을 보기가 두려웠는지, 그 한마디에 그만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사, 살려만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삼일 뒤에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때 당신의 처분을 결정하죠.”

말을 마친 나는 곧바로 문경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3포인트짜리 이벤트입니다. 삼 일 내로 임준우의 점혈을 풀어서 데리고 오면 3포인트. 무신에게 도움을 받아도 좋으니 한번 풀어보세요. 제 생각에는 무신이라도 풀 수 없을 것 같기는 한데, 도전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 * *

“조정위원님. 저는 납득할 수 없군요. 한 번 배신한 놈이 두 번이라고 못 하겠습니까?”

적당한 사람을 찾아 임준우를 택배(?)로 보낸 뒤, 신 팀장님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뭐,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마음이 약한 건 사실이지만, 그런 것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역시 사람을 죽이는 건 싫다.

정보를 팔아먹은 게 잘못은 맞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건 내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다.

무엇보다, 고미 교육(?)에도 좋지 않으니까.

“저한테 생각이 있어요. 그러니까 삼 일만 기다려 주세요.”

물론, 아무 대책도 없이 그런 짓을 한 건 아니다.

이런 문제에 도움을 줄 만한 특급 도우미 하나를 알고 있으니까.

아무리 고미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는 해도,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를 위험 분자를 그냥 풀어 줄 수는 없지.

“신 팀장, 이번 일은 수하 씨에게 맡겨보지. 단순히 마음이 약해져서 이런 짓을 하실 분은 아니니까. 그리고 수하 씨와 곰 선생님이 자신에게 맞서는 사람을 모두 적이라고 생각해서 죽여 없앴다면, 나도 이미 이 자리에 없을 거야.”

이강혁 씨가 나서서 내 의견을 지지해주자, 신 팀장은 조금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단, 삼일 뒤에도 대책이 서지 않는다면 저는 제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제 행동이 문제라고 느끼신다면, 지금 저를 처벌하셔도 좋습니다.”

신 팀장님의 표정은 한없이 차갑고 담담했다.

차라리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다거나, 눈을 까뒤집고 달려든다면 덜 무서울 텐데······.

아무리 봐도 사람을 죽인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의 표정이 아니라서 더 무섭다.

‘으으, 살벌해라.’

그렇게 속으로 공포에 떨고 있을 때,

“걱정하지 말거라! 수하가 대책이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이 녀석은 모리배이기는 하지만, 신의는 있는 녀석이니 말이다!”

음, 신의가 있는 모리배라니, 상당히 신박한 단어의 조합이군.

“만일 수하가 해결할 수 없다면 이 몸이 직접 나서서 모조리 혼쭐을 내줄 것이니,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지!”

우리의 해결사, 아기곰 선생님이 솜방망이를 붕붕 휘두르며 그렇게 덧붙이자,

“알겠습니다.”

신 팀장님도 더 이상 이 문제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럼 이제 고미님의 사무실로 가볼까요?”

분위기가 조금 풀어지자, 이강혁 씨가 깜짝 선물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아버지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오오! 그렇구나! 저 배신자 녀석을 혼내주느라 잊고 있었다! 어서, 어서 이 몸의 거처로 안내하거라!”

* * *

감사실을 벗어난 우리는 무려 10층을 더 올라가 건물의 최상층에 도착했다.

‘30층이라니. 너무 하잖아.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왜 30층씩이나 되는 빌딩을 쓰시는 거냐고요.’

나를 정말로 불안하게 하는 건, 단순히 30층이라는 높이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30층이라는 높이 자체도 좀 겁나기는 하지,

하지만 아래만 안 내려다보면 된다.

진짜 문제는······.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고미는 그냥 뛰어내릴 것 같다고······.’

저 녀석이 뛰어내리면, 세트 메뉴인 나도 뛰어내려야 할 거고.

‘제발, 제발 급한 일만 생기지 말아라.’

그렇게 속으로 작은 희망 사항을 읊조리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커다란 문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서, 설마······. 이 층 전체가 저희 사무실은 아니죠?”

나의 질문에 이강혁 씨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문을 열었고, 이내 사무실인지 놀이방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광활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 우오옷! 허수아비! 이, 이것은! 위대한 스틸 맨이 아니더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문 앞에 서서 손바닥을 내밀고 있는 스틸 맨의 피규어였다.

아니, 이 정도 크기를 피규어라고 하는 게 맞나?

어쨌든, 손바닥과 가슴의 원자로에 불까지 들어오는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한두 푼 하는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히어로를 만난 고미는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스틸 맨의 뒤에 서 있던 그의 동료들과 마주쳤다.

“아, 아니, 그린 몬스터와 쏘르도! 슈퍼 솔져도!”

“고미님께서 리벤져스를 재미있게 보신 것 같아서, 한번 마련해 보았습니다.”

그, 그런데 실사 크기 리벤저스 피규어면······. 가격이······.

으으, 아무리 봐도 익숙해 지지가 않는 씀씀이군.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멋진 전동 카트 몇 대와 변신 로봇 피규어가 고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색깔은 모두 황금색. 참 일관성 있네.

“오, 오옷! 저 멋진 꿀색 로봇은 무엇이냐!”

“고미님이 좋아하는 자동차로 변신할 수 있는 로봇과 실내에서 타고 노실 수 있는 전동 카트입니다.”

과연, 이 정도 선물이라면 빨리 자랑하고 싶어할만 하군.

하지만 아무리 봐도 사무실 같지는 않다.

어쨌든, 자신이 좋아하는 히어로들과 로봇, 자동차에 둘러싸인 아기곰은 황홀한 표정으로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발을 동동 굴러댔다.

“이쪽으로······.”

이어서 이강혁 씨는 피규어와 장난감이 전시된 공간을 지나 안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곰 선생님을 위한 다이닝 룸입니다. 호출만 하시면 언제든 요리사가 달려와 먹을 것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사무실의 안쪽에는 커다란 테이블과 간단한 조리기구가 늘어선 멋진 다이닝룸이 놓여 있었다.

······.

이봐요, 사무실에 무슨 다이닝 룸이 있어.

“언제까지 한유진 씨 집으로 찾아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 중요한 회의는 이곳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회의 중에도 곰 선생님이 좋아하는 간식과 식사를 맛보실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거, 아무리 봐도 한유진 씨에 대한 경쟁심으로 만든 공간 같은데, 의도가 불순해 보인다고요.

게다가 연맹을 만들기 전에는 일반 길드원으로 저스티스에 가입하기로 되어있지 않았나?

설마 이런 걸 만들어서 모신 다음 ‘일반 길드원입니다’라고 소개할 예정이었단 말이야?

“그리고······.”

- 지이잉.

다이닝 룸에 대한 설명을 마친 이강혁 씨가 리모컨을 누르자, 벽면에서 커다란 스크린이 내려왔다.

그 순간, 나의 눈에 또 다른 럭셔리한 소품이 보였다.

방의 곳곳에 세워져 있는 검은 기둥과 천장마다 배치된 검은 박스 모양의 물체······.

‘설마 저거, 다 스피커냐.’

이강혁 씨가 한 번 더 리모컨을 누르자, ‘둥둥, 둥둥!’하며 웅장한 베이스 소리가 사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

‘역시, 서라운드 스피커였군.’

미치겠다. 이건 숫제 사무실이 아니라 그냥 고미 놀이방이잖아!

“혹 원하시는 게 있다면, 다른 것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아직 공간은 많이 남았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공간이 많이 남으면 다른 곳에 사용하시라고요······.

한 층을 통째로 놀이방을 만드는 사장이라니, 이런 방만한 경영자 같으니.

“아, 수하 씨도 혹시 원하시는 취미 생활이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제 사비로 얼마든지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

이런 이 시대의 참 경영자를 보았나.

그렇지, 창의적이고 여유로운 작업 환경에서 진정한 21세기형 인재가 나오는 법이라고.

저스티스가 괜히 사대 길드 중 하나가 아니고만.

다른 길드들도 빨리 이런 선진적인 업무환경을 갖춰야 할 텐데 말이야.

“말씀해 보시죠. 정식으로 출근을 하시자마자 첩자도 찾아내셨고, 길드원들의 실력을 올려줄 약초까지 확보해 주셨으니, 제가 그 정도는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오, 그래! 수하, 어서 말해 보거라! 너도 이 몸처럼 좋아하는 것이 있지 않느냐!”

어서 좋아하는 것을 말해보라는 두 사람의 말에, 나는 문득 중대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

나, 뭐 좋아했더라?

옛날에는 뭔가 취미라는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안 난다.

학부생일 때는 분명히 취미가 있었는데······.

군대에 갔다가, 전역한 후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바로 대학원에 입학했지.

그래, 그다음에······. 음······.

기억하지 말자.

“어······. 일단 생각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생각해 보니, 지난 몇 년간 너무 워라벨이 없는 삶을 살아서 그런가, 이렇다 할 취미라는 게 없었다.

가끔 쉬는 날이나 짬이 날 때 영화나 너튜브를 보기는 했지만, 사실 좋아서 본 게 아니라 할 게 없어서 본 거다.

그나마도 집중해서 본 게 아니라 뭘 봤는지, 내용이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나고.

‘이, 이럴 수가.’

왜 좋아하는 걸 해주겠다는데, 말을 못 하니.

‘아무리 그래도 내 취미 생활이 뭐였는지도 까먹다니······.’

심히 절망스럽다.

그렇게 좋아하는 걸 해준다고 말해도 아무 것도 못하는 머저리가 되어버린 나 자신에게 절망하고 있을 때,

“흐음, 수하, 너는 언제나 이 몸을 즐겁게 해주었으니, 이번에는 이 몸이 너를 즐겁게 해주마! 어떠하냐!?”

고미가 결연한 표정으로 솜방망이를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

음······. 정말 고마운 말이다. 조금 감동적이기도 하고.

그런데, 왜 불안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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