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9 마무리는 화려하게.
< 축하합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 보상이 지급됩니다. >
- 능력치 강화 (+3)
- 특별 던전 입장권 (1)
…….
특별 입장권? 장난하냐, 이게 왜 보상이야 퀘스트지!
이게 가면 갈수록……. 이제 보상은 대충 주고, 보너스 대신 업무를 추가해 주려는 거냐!
하지만 특별 던전 입장권을 열어보는 순간, 심장이 쿵하고 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 특별 던전 입장권 (1) >
- 던전 내 균열이 생성될 예정인 A급 던전의 정보가 적혀있습니다. 던전 내 균열의 몬스터를 처치할 시 특별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말? A급 던전에서 던전 내 균열이 생성될 예정이라고?
아니, 그보다, 던전 내 균열 생성은 예측 불가능한 현상이 아니었어?
‘아니지, 관리자라면 그 정도 정보는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어찌 됐든, 미리 알아서 다행이다.
던전 내 균열이 발생하면 틀림없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테고, 풀려나온 몬스터들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 나가겠지.
제아무리 고미가 있다고는 해도 미리 아는 것보다 빠를 수는 없으니까.
‘이 문제는 이따가 이강혁 씨와 따로 얘기해서 대응팀을 꾸려야겠네.’
…….
갑자기 든 생각인데, 어째서 요즘 들어 어디를 가든 사건 사고가 팡팡 터지는 걸까?
도통 이유를 모르겠네.
“자, 그럼 수하! 이제 비실이들을 위한 선물을 가지러 가자꾸나!”
내가 ‘비웅참’을 외친 덕분인지, 다시 기분이 좋아진 아기곰은 곧장 솜방망이를 들어 앞쪽을 가리켰다.
“그럼 이번엔 나도 좀 해보자.”
그때, 줄곧 나 때문에 자신의 신기술(?)을 확인해보지 못했던 봉식이가 입을 열었다.
음……. 사실 처음부터 둘이 함께 싸웠으면 될 문제인데.
“그래, 알았어.”
“민 헌터님, 또 강해지셨습니까?”
봉식이가 앞으로 나서자, 뒤쪽에 있던 헌터 중 하나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스킬 이름을 외치는 게 진심으로 멋있다고 생각했던 젊은 헌터.
‘이분도 좀 특이하군. 어쩌면 고미하고는 파장이 맞을지도 모르겠네.’
성별은 남자, 헌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체격이 왜소한 편이다.
나이는……. 우리보다 조금 어리려나?
아마도 각성이 꽤 빨랐던 모양이다.
겉보기에는 약해 보이지만, 그래도 저스티스의 길드원이니, 제법 앞날이 창창하고 실력도 쓸만한 사람이겠지?
“어, 그래. 잘 봐둬라.”
봉식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렇게 답하고는 고미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젊은 헌터의 눈길에는 동경이 가득했다.
학창 시절에도 봉식이는 유달리 몸이 약하거나 체격이 작은 애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곤 했다.
원래 약한 사람은 강한 사람을 동경하는 법이니까.
생긴 거랑은 다르게 약한 애들을 잘 챙기기도 했고.
‘음, 그래도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나 보네.’
저스티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늘 혼자 다녔으니, 길드에 들어가서도 잘 어울리지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중간중간 다른 헌터들이랑 대화도 꽤 나누는 것 같았고……. 역시 이 녀석을 저스티스에 가입시키길 잘했군.’
그렇게 또 몇 분을 걸어가자, 저 멀리 몇 마리의 거인들이 보였다.
거인들을 발견한 고미는 곧바로 코를 킁킁거리며 봉식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봉식이! 저놈들을 해치워라! 저놈들 뒤편에 있는 약초를 수다르에게 가져다주면 비실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음, 역시, 약초였군.
아이템이나 약초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래도 고미가 직접 만들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무엇을 재료로 하든, 제조 과정이 어떻든, 일단 마법의 곰손을 거친 것을 먹고 나면 다들 길드를 탈퇴하려들지도 모르니까.
“포션입니까?”
그때, 학생들을 인솔하고 있던 이강혁 씨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근골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단약이니라! 천도환처럼 큰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테지만, 그래도 힘과 체력을 기르는 데 제법 도움이 되는 물건이지! 네 뒤의 비실이들은 모두 기초가 부실하니 말이다.”
‘기초가 부실하다’는 말에 자리에 있던 헌터 중 몇몇이 조금 자존심이 상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육체적인 능력만 놓고 따지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못해도 대한민국 헌터 중 상위 10%에는 들어간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비실이’라느니, ‘기초가 부족하다’는 말을 해대니, 조금 받아들이기가 어렵겠지.
“교관님, 그럼 어느 정도가 돼야 기초가 부실하지 않은 것입니까?”
아니나 다를까, 불쾌한 내색을 드러냈던 헌터 중 하나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은 고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먹다 만 초코바를 들어 나와 봉식이, 그리고 이강혁 씨를 가리켰다.
“이 녀석들 정도는 되어야 이 몸에게 배운 것을 조금이나마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흠, 흠!”
곰 선생님의 칭찬에, 이강혁 씨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어깨를 쫙 폈다.
음, 지금 좋아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학생이 교관님을 의심하고 있잖아, 당신이 나서서 한마디 해줘야지!
칭찬받았다고 좋아서 웃지 말고!
“곰 선생님의 인정을 받을만한 헌터는 우리나라 전체를 뒤져봐도 한 손에 꼽을 거다. 그건 차차 알게 될 테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기다려라.”
그래, 그래. 광신도의 본분을 잊어버리지 말아달라고요.
[ 고미, 아무래도 이따가 한 번 더 네 실력을 보여줘야 할 것 같아. 불도장이나 만천화웅 같은 화끈한 거로. ]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음을 보내자, 고미는 씨익 웃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간다!”
짤막한 대화를 마쳤을 무렵, 봉식이가 가볍게 몸을 풀며 몸에서 또다시 번쩍번쩍한 금빛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어째 점점 더 밝아지네.’
달라진 것은, 조도(照度)만이 아니었다.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금광은 주로 주먹과 발에 집중되어 있었고, 머리와 몇몇 급소를 제외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옅은 금빛이 감돌고 있었다.
“호오…….”
그 모습을 본 고미는 흥미롭다는 듯 도톰한 솜방망이로 턱을 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기다릴 새도 없이 전투가 시작됐다.
- 부웅!
거인족 전사 하나가 커다란 망치를 휘두르며 달려들자, 봉식이는 그것을 왼손으로 가볍게 받아냈다.
- 콰드득!
이어서 녀석의 손가락이 거대한 쇳덩이를 두부처럼 으깨버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미, 미친…….’
나는 S급 아이템에 곰기까지 씌워서 벴던 걸, 맨손으로 부숴버린다고?
“흠, 봉식이도 점점 더 강해지고 있군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강혁 씨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위대한 이 몸의 가족답구나. 스스로 해답을 찾아내다니.”
더욱 강해진 봉식이의 모습에 고미의 입가에도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 퍽!
바로 그때, 거인의 거대한 주먹이 봉식이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저 녀석도 역시 인간 중에는 거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엄청난 체격의 소유자지만, 진짜 거인 앞에서는 평범한 사이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쓰읍…….”
하지만 봉식이는 자신의 몸통과 맞먹는 크기의 주먹에 맞고도 짜증이 난다는 듯 인상을 한 번 찌푸릴 뿐이었다.
그 순간, 나는 저 새로운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급소만 제대로 가리고 맞아도 되는 부분은 데미지를 받도록 놔둔 거구나.’
- 쾅!
녀석이 주먹을 휘두르자, 묵직한 광음과 함께 화려한 금빛 섬광이 터져 나오며 거인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녀석의 몸은 언제나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즉, 데미지를 안 받은 건 아니라는 소리지.
“후훗, 방어를 보완하라고 했더니, 방어는 최소한만 갖추고 공격력을 더욱 높이는 방법을 택했구나. 나쁘지 않다.”
그 모습을 본 고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을 칭찬해 주었다.
‘무, 무식한 놈…….’
사실 생각해보면, 꽤 합리적인 전략이었다.
방어력을 너무 높이면 맞을수록 강해지는 녀석의 스킬을 살릴 수 없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치명타만 피하고, 사왕의 기운을 통해 강화된 힘을 모두 공격으로 돌린다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제정신이 아니야…….’
내 친구지만,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은 아니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후훗, 훌륭하다. 어쩌면 다음번 멧돼지와의 싸움은 조금 더 기대할 만하겠구나.”
고미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폭탄이라도 터진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드는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는 삼 미터에 달하는 거인이 그대로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으, 으아……. 저게 뭐냐…….’
주먹 한 방에 A급 몬스터가 저 꼴이 되는 게 말이나 되냐고…….
고개를 돌려보니, 다른 헌터들도 나만큼이나 충격을 받은 듯 입을 쩍 벌린 채 봉식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 진짜 장난 아닌데…….”
“쟤는 왜 볼 때마다 저렇게 말도 안 되게 강해져 있냐? 길드 들어올 때만 해도 C급 아니었어?”
“저 정도면 문경준이랑 비슷한 수준 아니야?”
마치 다른 세계의 생물을 보는 듯한 눈빛과 표정.
하지만 단 한 명, 봉식이의 힘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봉식이! 아직도 힘이 흩어져 있지 않느냐!”
그렇다. 우리의 곰 선생님께서는, 눈이 높아도 너무 높으셨다.
말을 마친 고미는 더는 시간을 끌고 싶지 않다는 듯 곧바로 거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비실이들, 잘 봐두거라!”
- 쉭!
다음 순간, 우리의 눈앞에서 초코바를 할짝거리고 있던 갈색 솜뭉치가 돌연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불쑥 솟아났다.
“어!?”
“응!?”
그리고, 우리가 서 있던 곳부터 고미가 나타난 곳까지는 엉덩이를 흔들며 뛰어가는 갈색 솜뭉치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서, 설마…….’
지금까지 고미는 한 번도 잔상 같은 걸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냥 순간이동을 하듯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적은 많았지만…….
그러니까, 지금 이 잔상은 나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부러 남긴 거라는 소리.
‘진짜로 이런 만화 같은 짓을 할 수 있구나…….’
특별교관이 본격적으로 힘을 쓰기 시작하자, 학생들은 완전히 넋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
아니, 아직도 제대로 힘을 쓰지는 않았지만, 이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
- 쾅!
다음 순간, 고미의 몸이 하늘 높이 솟구치며 짤막한 다리를 들어 거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이야아아압-!”
…….
기합은 왜? 평소에는 그런 거 안 하잖아…….
하지만 기합을 지르냐 아니냐는 지극히 사소한 문제였다.
고미의 발에 걷어차인 거인의 몸에, 커다란 바람구멍이 생겨나 있었으니까.
“이렇게 힘을 모아서 치란 말이다!”
봉식이에게 가르침을 내린 아기곰은 곧바로 몸을 돌려 다른 거인을 향해 주먹을 날렸고,
- 쾅!
또 한차례 포성과도 같은 굉음이 울리며 거인의 상반신이 무언가로 도려낸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보아라! 네 녀석처럼 공격하면 이렇게 쓸데없이 힘이 낭비된단 말이다!”
…….
보기에는 그쪽이 더 굉장해 보이는데?
솔직히 말해서, 무슨 원리인지도 모르겠고, 시각적인 충격은 두 번째 공격이 더 크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었다.
이걸 보고도 특별 교관님에게 이의를 제기할 배짱 좋은 인간 따위는 없을 거라는 거.
“그럼 이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구나.”
순식간에 두 마리의 거인을 처리한 슈퍼 아기곰은 곧바로 우렁찬 기합을 내뱉으며 손바닥에서 푸른 빛을 내뿜기 시작했고,
“하아아아압! 웅왕 비이이이임!”
흑암을 쓰러뜨렸던 자신의 필살기로 나머지 거인들을 일거에 쓸어버렸다.
고미, 그런데, 방금 그 빔 때문에 약초도 없어진 것 같은데……. 약초도 신경 좀 써주지…….
[ 아, 아아아앗! 수, 수하! 크, 큰일이다! 야, 약초들이! ]
하아……. 역시…….
* * *
“교관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저, 저도!”
“고, 고미 님! 부디 저에게도 가르침을 주십시오!”
시연회가 끝나자, 저스티스의 헌터들은 앞다투어 고미에게 달려가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애걸했다.
‘음, 역시, 이렇게 되는군.’
이강혁 씨 때도 그렇고, 고미의 진짜 실력을 보고 나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정상이지.
“후후후…….”
근 사십에 달하는 헌터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제자로 받아달라고 애원하자, 고미는 오만한 표정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없이 웃음을 지었다.
다행히도, 주위에 있던 약초 중 대부분이 빔에 맞아 불타 사라졌지만, 서너 뿌리 정도의 약초가 남아 있었다.
자신이 약초를 모두 태워버린 줄 알고 당황했던 아기곰은 약초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걸 화원에 옮겨심고 대량으로 수확해서 단약을 만들면 되겠지.’
그렇게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하며 던전 밖으로 나가자,
“기, 길드장님! 조정위원님!”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박 실장님이 황급히 달려와 더듬더듬 보고를 올렸다.
“이, 임준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