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87화 (187/300)

EP.187 조정위원(물리), 김수하입니다.

“왜 그래, 고미?”

나의 질문에 고미는 쉴 새 없이 자그마한 코를 킁킁거리며 눈을 빛냈다.

“이곳에 아주 흥미로운 물건이 있다! 어쩌면 비실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뭐지, 비실이‘들’이라면, 약초 같은 물건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

“그래, 알겠어. 그럼 그것도 한 번 찾아보자.”

“후훗, 좋다! 그럼 출발하자꾸나!”

말을 마친 아기곰은 가볍게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듯 앞으로 걸어나갔다.

“고옴~ 고옴~♪”

심지어 콧노래까지……. 정말 기분이 좋은 모양이네.

역시 우리 애는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

소풍이라도 온 듯 손에 든 초코바를 흔들며 바위산을 걸어가는 갈색 솜뭉치의 모습에, 현장학습을 따라 나온 헌터들의 입가에도 어느새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곰 교관님 너무 귀엽지 않아?”

“난 웅왕 찬성.”

“나도.”

급기야 무언가 제대로 된 걸(?) 보여주기도 전에, 이미 곰 교관님의 매력에 빠진 신도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까 보여준 것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그 정도는 고미에게 있어 몸풀기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까.

‘설마 웅왕의 마크가 고미의 얼굴이나 젤리로 결정된다거나 하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겠지?’

그렇게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비탈진 산길을 걸어 올라가기를 수 분,

“음, 수하, 준비하거라. 두 마리다.”

고미가 초코바를 들어 10시 방향을 가리켰다.

아무런 기척도 나기 전에 몬스터가 나올 곳을 짚어내는 고미의 모습에, 체험 학습을 따라 나온 헌터들은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 쿵……!

이내 묵직한 소리와 함께 10시 방향에서 바위로 이루어진 괴수 두 마리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곰 선생님의 신통방통한 감지능력을 증명해 주었다.

“혼자 처리할 수 있겠지?”

“걱정 마.”

문자 그대로 집채만한 몬스터지만, 그래봤자 A급.

비주얼이 좀 압박이기는 하지만, 이제 이 정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도 제법 강해졌으니까.

스킬이나 스탯 분배를 하지 않고도 A급을 척척 때려잡았는데, S급 스킬이 두 개나 생긴 지금은 말할 것도 없지.

‘새 스킬이나 시험해볼까?’

- 부우웅!

그렇게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바위 거인이 기습을 가해왔다.

- 쾅!

나는 가볍게 삼색 영지버섯을 들어 거인의 일격을 막아냈다.

‘굉장한데…….’

능력치 상승 효과를 직접 느껴보고 싶어 일부러 정면으로 막았는데, A급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바위 거인의 공격을 받고도 몸이 밀려나지 않는다.

좌우로든 위아래로든, 봉식이보다 두 배 이상은 큰 바위 거인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내자,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로 왜 놀라지?’

사람들의 반응에, 나는 뒤늦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숲속 친구들은 죄다 S급 이상에, 초월자나 그에 준하는 사람들(?)이라, 내가 약하다고만 생각했다.

‘하긴, 원래 A급도 강한 거지…….’

매일 고미를 보다 보니, 강함의 기준이 엄청나게 올라버렸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좋아, 그럼 실력 발휘 좀 해볼까?’

조정위원이든 화해위원이든, 실력이 없으면 말빨이 서지 않는 게 이 바닥이다.

실력도 없으면서 지위로 찍어누르는 것도 싫고, 고미나 숲속 친구들과의 인맥질로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더더욱 싫다.

일단 그렇게 얕잡아 보이기 시작하면, 친구들의 도움없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건 물 건너 가는 거고.

아예 자리를 고사했다면 모를까, 이미 조정 위원직을 받아들인 이상, 내 실력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지.

- 쾅! 쾅!

내 몸통보다 몇 배는 큰 바위 거인의 주먹이 연달아 방패 위를 두들기자, 조금씩 몸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좋아, 이제 S급이 된 검의 달인과 웅신입기혈의 힘을 확인해 볼까?

- 화륵!

흑염대웅신검에서 검붉은 화염이 폭발하듯 흘러나오자, 실습을 따라 나온 학생들의 입에서 분분히 감탄사가 새어나왔다.

‘굉장해.’

기의 양이 늘어나서 그런가, 이전보다 화력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게 느껴진다.

‘남은 스킬 포인트는 곰기에 하나 더 투자해 볼까?’

“저거, 검기 같은데, 불꽃은 아이템 효과인가?”

“저 아이템 S급 아니야? 드래곤의 불꽃 같은데.”

“그런데, 손에 들고 계신 건 무슨 무기야? 모양만 봐서는 아무리 봐도 S급 아이템 같지는 않은데…….”

마지막 말은 무시.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볼 줄 모르는 더럽혀진 영혼이다.

진정한 정의의 용사라면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봐야지.

“망가진 건가?”

“망가진 무기를 왜 들고 다니겠어, 원래 저렇게 생긴 거 아니야?”

그때, 뒷짐을 진 채 가만히 수제자의 성장을 지켜보던 아기곰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탄성을 내질렀다.

“오, 오오! 수하! 이제야 조금이나마 제대로 된 곰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구나!”

…….

곰기는 아직 B급이지만, 웅신입기혈은 S급 찍었는데……. 평가가 박하다.

- 캉!

날아드는 주먹을 가볍게 방패로 빗겨낸 뒤 검붉은 화염에 휩싸인 검을 휘두르자,

- 크,크워어어!

바위 거인의 팔이 순식간에 까맣게 그을리며 녀석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자, 장난 아닌데…….”

“조정이라고 쓰고 물리라고 읽어야 되는 거 아니냐? 조정위원이라며…….”

“뭐지? 마검사인가?”

뒤쪽에서 들려오는 긍정적인 평가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멋지게 마무리 좀 해볼까.’

나는 곧바로 앞쪽으로 달려들며 바위 거인의 나머지 한쪽 팔을 쳐내고, 곧바로 녀석의 가슴을 향해 흑염대웅신검을 내던졌다.

- 퍼억!

그러자, 녀석의 커다란 가슴에 시커먼 화염이 타오르는 쇳덩이가 박히며 거대한 바위 거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 크워어어!

눈 깜짝할 새에 자신의 동료가 순식간에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한 두 번째 바위 거인은 곧장 거대한 발로 나를 짓밟으려 했다.

- 쿵!

녀석의 거대한 발이 지면을 내리찍는 순간, 지축이 뒤흔들리며 바위로 된 지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겨났다.

‘좋아, 드디어 타이밍이 왔군.’

그 순간, 나는 드디어 신기술을 선보일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 허곰섭물(F)이 활성화됩니다. >

- 덜걱, 덜걱.

…….

음, F급으로는 고미처럼 멋지게 검을 날아다니게 할 수는 없구나.

< 스킬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

< 허곰섭물의 스킬 등급이 향상됩니다. F -> E >

< 잔여 스킬 포인트 : 4 >

- 덜걱, 덜걱.

‘아, 아직도 안 되는 거냐.’

으으, 멋지게 허곰섭물로 검을 회수해서 반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뭐하시지?”

“갑자기 왜 멈추신 거지?”

“손은 왜 들고 있는 거야?”

죄송합니다……. 세상이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가 않네요.

그렇게 이 세상이 얼마나 모질고 냉혹한지 새삼 실감하고 있을 때,

“김수하! 뭐해!”

봉식이의 목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아, 아차.’

고개를 들자, 머리통만한 바위 몇 개가 나의 얼굴을 향해 연달아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원거리 공격도 가능했어?’

조금 당혹스러운 상황.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공격이 느리다.

아니, 느려 보이는 건가.

‘여기서는 고개를 틀면…….’

- 후웅!

묵직한 바람 소리와 함께 커다란 돌덩이가 스치고 지나가는 게 느껴진다.

두 번째는 방패로 흘리고, 세 번째는 ‘허곰답보’로.

< 허곰섭물의 스킬 등급이 향상됩니다. E -> D -> C >

< 잔여 스킬 포인트 : 2 >

‘왜 이렇게 잘 보이지?’

심지어 스킬을 찍어가면서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공격이 선명하게 보인다.

- 콰드드득!

바로 그때, 바위 거인의 손이 지면을 휩쓸며 암석이 부서지고, 수십 개의 주먹만한 돌멩이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보여.’

돌덩이의 궤적이, 생김새가, 거짓말처럼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알 것 같다.

이건, 요란하게 피할 필요가 없다.

- 탓!

가볍게 왼발을 축으로 몸을 비틀자, 부서진 암석 조각은 허탈하게 허공을 갈랐다.

- 깡! 깡!

남은 돌멩이는 방패로 쳐내고,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머지는 손으로 잡는다.

‘이, 이게 되네.’

수십 개의 돌덩이를 피하고, 막고, 급기야는 날아오는 돌멩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잡아버리는 모습에, 뒤쪽에서 나지막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뭐야, 각성한지 몇 달 밖에 안됐다고 하지 않았어?”

“왜 저렇게 잘 싸우는데?”

< 허곰섭물 (C)를 활성화합니다. >

한 번 더 허곰섭물을 사용하자, 마침내 흑염대웅신검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 쉭!

“오, 오옷! 수하!”

손을 대지 않고도 검을 움직이는 나의 모습에 고미마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 크, 크릉!

허곰섭물로 회수한 검을 가볍게 휘두르자, 검붉은 화염이 바위 거인을 그대로 녹여버렸다.

[ 고미, 나 강해진 것 같지 않아? ]

첫 번째 전투가 끝나기 무섭게, 나는 고미에게 전음을 보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 그, 그렇다, 확실히 강해졌구나! 드디어 너도 진정한 전사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

문경준을 만났던 날, 나는 처음으로 전투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해보았다.

그리고 출근 전날에는 가지고 있던 능력치와 스킬 포인트를 거의 다 사용해서 실력을 끌어올렸고.

하지만 그 결과가 이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

A급 몬스터의 공격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고,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몸이 알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은 차분하고, 머리는 맑고, 몸은 가볍다.

[ 고미, 나 더 해보고 싶어. ]

싸워보고 싶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조금 더 확인해 보고 싶다.

뒤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내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릴 정도로, 가슴이 뛴다.

아직도 시험해보고 싶은 게 많다.

난 더 잘할 수 있다.

그런 생각에 자꾸만 가슴이 설렜다.

[ 좋다, 수하! 전진이다! 그대로 앞으로 걸어가거라! ]

나는 사람들의 평가도, 지금 내가 처한 상황도 모두 잊고 오롯이 정신을 집중해 앞으로 걸어나갔다.

완벽한 몰입.

이 기분 좋은 상태를 깨고 싶지 않다.

- 크르릉!

언덕 하나를 넘어가자, 열을 넘는 거인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위 거인이 셋, 갑주를 걸친 거인족 전사가 일곱.

‘좋아.’

삼 미터도 넘는 열 마리의 거인이 나를 향해 달려왔지만, 두렵기는커녕 가슴이 뛰었다.

< 곰기의 스킬 등급이 향상됩니다. B -> A >

< 잔여 스킬 포인트 : 1 >

이제 허곰섭물로 검을 움직일 수 있으니, 남은 포인트는 나의 주력 스킬인 곰기에 투자한다.

- 화르륵!

스킬 등급이 상승하자, 검붉은 화염의 화력이 다시 한번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 수, 수하! 검기를 날려라! 지금의 너라면 할 수 있다! ]

그때, 잔뜩 흥분한 고미의 목소리가 나의 귓등을 때렸다.

[ 정말? ]

[ 그렇다! 곰기를 검에 두르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응집시켜 앞으로 날리는 것이다! ]

좋아, 해보자.

곰기를 한곳에 모으는 느낌으로…….

거침없이 날뛰며 폭발하는 검은 화염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순간,

<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 새로운 깨달음으로 인해 스킬 등급이 향상됩니다. >

<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

<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

한 개의 스킬이 강화되고, 두 개의 새로운 스킬이 생겼다는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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