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6 느껴보아라, 특별 교관님의 위대함을!
이강혁 씨의 한마디에, 주위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허, 허수아비! 부하에게 칼을 겨누다니! 왜, 왜 이러는 것이냐! 겁이 많은 것은 잘못이 아니다! 비실이들은 원래 겁이 많은 법이 아니더냐!”
자신이 내분을 초래했다고 오해한 아기곰은 허둥지둥 달려가 이강혁 씨의 앞을 막아섰다.
“임준우, 두 번은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넌 분명 C급 상위에 속하는 헌터였다. 그런데 불과 1년 사이에 A급이 됐는데, 보고조차 하지 않고 계속 C급인 척 해왔다고?”
하지만 이강혁 씨는 더욱 싸늘한 표정으로 검기를 발출하며 다시 한번 대답을 요구했다.
‘스파이인가.’
생각할 수 있는 답은, 그것뿐이었다.
C급과 A급의 대우는, 말할 것도 없이 천지 차이다. 단순히 돈으로 따져도 최소 몇 배는 벌 테고, 그 외에도 온갖 혜택이 주어지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등급 상승을 비밀로 해왔다면······.
‘뭔가 말할 수 없는 방법으로 강해진 거겠지.’
저 사람은 기공 계열의 헌터니까, 이강혁 씨처럼 천도환 같은 영약으로 강해지는 게 가능했을 거다.
세상에 그런 걸 먹고 강해질 수 있는게 이강혁 씨 밖에 없는 건 아니니까.
문제는, 그런 물건을 구하는 게 쉽지가 않다는 거지.
‘뻔하지. 그 영약의 출처가 무신이나 문경준인 거야.’
기공 계열 헌터에게 필요한 아이템이나 강해지는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는건, 저스티스를 제외하면 그 쪽이니까.
그리고 김춘식이 문경준에게 참교육을 당했던 날, 이강혁 씨는 패왕에 심어놓은 첩자를 활용해 정보를 얻어냈었다.
당연히 그 반대의 상황도 가능할 테지.
‘으으으, 첫날부터 피곤하네.’
패왕과 저스티스는 사대 길드 중 가장 심하게 갈등을 겪고 있는 조직이다.
가치관은 정반대에 현실적인 이익갈등까지 더해졌으니, 관계가 좋은 게 이상한 거지.
그러니 문경준이 스파이를 심어 저스티스의 내부 정보를 빼내려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내가 궁금한 건, 어떻게 이강혁 씨의 눈을 속였느냐, 그 강해진 방법이 정확히 뭐냐 하는 점이었다.
입사 당시에 분명히 상태창을 확인했을 테고, 저 사람은 그 사이에 성장했다는 소리니까······.
‘재주도 좋네. C급을 1년 새에 A급으로 만드는 방법이라니.’
물론 그리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닐 거다.
그럼 패왕은 A급 헌터로 넘쳐날 테니까.
‘다음에 만나면 문경준을 한번 떠봐야겠군.’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임준우가 입을 열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길드장 님. 설마 저 곰돌이의 말 한마디에 길드원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다. 거의 확실하군.
“상태창을 가시 모드로 바꿔라. 네가 나를 속인 게 아니라면, 못할 이유는 없겠지.”
이강혁 씨의 요구에 임준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제가 최근에 등급이 오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배신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 그냥, 갑자기 상급 던전에 들어가기 두려워 등급이 올랐다는 사실을 보고드리지 않은 것뿐입니다.”
거짓말이군.
등급 상승이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저딴 걸 변명이라고 늘어놓는 걸 보면 머리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임준우 씨, 죄송하지만 거짓말로 이 자리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말이 거짓이라고 단정하자, 임준우의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하게 질려갔다.
“이, 이제 막 길드에 들어온 놈이 뭐, 뭘 안다고!”
이에 나는 곧바로 ‘구라창’을 가시 모드로 바꾸어 임준우와 자리에 있는 헌터들에게 보여주었다.
< 진실의 눈 (S) >
- 상대의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할 말 없으시죠?”
뭐, 이 사람들한테 내가 –불쌍한- 대학원생 출신이고, 표정과 관련된 연구를 했는데, 감각 강화 스킬을 통해 표정을 관찰해서 거짓말을 가려낼 수 있다고 설명하기보다는, 이렇게 하는 편이 설득력이 높겠지.
“뭐, 뭣이!? 그러면 정말로 저 녀석이 허수아비를 배신한 것이냐!”
그제야 자신이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기곰은 곧장 보송보송한 솜털을 바짝 곤두세우며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음······. 이걸로 길드원들도 모두 깨달았겠군.
특별 교관님은 싸움은 잘할지언정, 다소 맹한 구석이 있다는 슬픈 사실을 말이야.
뭐, 상관없겠지. 고미 정도로 몸이 좋으면, 머리가 고생할 일이 없다는 것도 곧 알게 될 테니까.
“네 이놈! 감히 친구들을 배신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으음, 뭔가 한발 늦게 분노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니까······.
“이, 이익!”
바로 그때, 임준우가 바닥을 박차고 엄청난 속도로 반대편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강혁 씨는 굳이 그 뒤를 쫓지 않고 장검을 손에 든 채 고미에게 시선을 돌렸고,
“훗.”
원조 광신도의 시선을 받은 고미는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 신앙에 보답하기 위해 보송보송한 솜방망이를 들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탄지곰!”
······.
미안해, 고미. 지금 나 조금 부끄러워.
난 괜찮은데, 정말 괜찮은데······.
사람들 앞에서 기술 이름 외치는 건 안 해주면 안 될까?
퍽!
“어억!”
잠시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고 있을 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수십 미터 밖에 있던 임준우의 몸이 각목처럼 뻣뻣하게 굳으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후훗.”
한달음에 수십 미터를 날 듯이 이동하던 임준우가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는 모습에, 자리에 있던 헌터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마, 말도 안 돼.”
“지금 저거 기공술이지?”
“단순히 지풍을 날린 게 아니라, 점혈을 한 것 같은데?”
“저 정도 속도로 움직이는 대상한테 점혈을······?”
역시, 기공술 계통의 헌터가 많으니 한눈에 고미의 대단함을 알아보는군.
첫 번째 길드로 저스티스를 선택하길 잘했어.
뭐, 어딜 가든 이런 걸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할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끌고 와라.”
이강혁 씨가 명령을 내리자, 자리에 있던 헌터 중 몇몇이 쓰러진 임우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번뜩 좋은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위대한 곰 선생님의 권능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아이디어 말이지.
[ 고미. 네가 허곰섭물로 저걸 옮겨줘. ]
자신의 능력을 보여달라는 말에, 아기곰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 오, 오오오! 그, 그렇구나! 이 몸의 권능을 보여줄 기회로구나! ]
또다시 진정한 곰의 위대함을 자랑할 기회를 잡은 아기곰은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비실이들! 기다리거라! 이 몸의 권능으로 저 녀석을 옮겨주마!”
헌터들이 발걸음을 멈추자, 한껏 흥이 오른 갈색 솜뭉치는 만세를 외치듯 두 팔을 높이 들고 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음, 저런 걸 안 하는 편이 더 강해 보일 텐데 말이야.’
전에 ‘고미 빔’을 쏠 때도 그렇고, 저런 연출없이 평소대로 하는 편이 더 자신의 강함을 어필할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저런 모션을 집어넣는 걸까.
어린애의 정신세계라는 건,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단 말이지.
“보아라! 허곰섭물!”
충분히 시선이 모였다고 판단한 아기곰이 짤막한 팔을 교차 시켜 원을 그리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임준우의 몸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라 빠른 속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모션······.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어째서 본체가 분신이 하는 걸 따라 하는 거냐.’
게다가 허곰섭물이랑 별로 어울리지도 않아.
그냥 손가락을 까딱이는 편이 더 카리스마가 느껴질 것 같은데.
“저, 거리에서 허공섭물을?”
“마, 말도 안 돼······.”
그러거나 말거나, 쉴 새 없이 펼쳐지는 슈퍼 먼치킨 아기곰의 초능력 쇼(?)에 자리에 있던 헌터들은 완전히 혼이 빠져 버리고 말았다.
“읍! 읍읍!”
아기곰 특송을 통해 배달된 살아있는 택배물은 공포에 질린 채 몸을 움직이려 안간힘을 썼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읍! 읍!’하는 소리만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감사합니다, 곰 선생님.”
아기곰의 특급 배송(?) 서비스에 생각보다 빨리 원하던 물품을 배송받은 이강혁 씨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고,
“저, 저도 던전에 가보고 싶습니다!”
마침내 슈퍼 아기곰의 강력함을 조금 더 가까이서 느껴보고 싶어 하는 첫 번째 지원자가 나타났다.
“저, 저도!”
“저도 가고 싶습니다!”
일단 한 명이 손을 들자, 한 명, 또 한 명 지원자가 줄을 이었고,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서 있던 사람 중 일부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거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에헴! 비실이들, 드디어 이 몸의 위대함을 깨달은 것이냐!?”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하나하나 내려다보는 고미의 모습에, 괜스레 기분이 좋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 애가 이렇게 대단해!’라는 팔불출 같은 이유나, 고미를 등에 업고 강한 척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고미는, 줄곧 이렇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칭찬을 받아 마땅한 아이였고, 수천 년을 기다린 끝에야 그 보상을 받은 거니까.
그저 내가 이 위대한 아기곰의 꿈을 이루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는 게 기쁠 따름이었다.
[ 후후! 수하, 역시 너는 최고다! ]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저 한없이 순수하고 착한 아기곰의 칭찬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보상이었다.
저 행복한 웃음소리와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도,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꼬리도.
“그럼 이 녀석은 감사과로 넘기고, 일단 던전으로 가볼까요?”
이강혁 씨 역시 나와 같은 기분이었는지, 좀전의 살기등등하던 기세는 어디로 가고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음, 그렇게 처리해도 괜찮을까요?”
“별일은 없을 겁니다. 감사과에는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보다 더 강한 녀석들도 많고, 저 녀석이 곰 선생님의 점혈을 풀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리고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무엇보다, 곰 선생님이 저렇게 기뻐하시는데 흥을 깨고 싶지가 않군요.”
* * *
우리가 ‘곰 선생님의 특별 체험 학습’ 장소로 선택한 것은, 본사 빌딩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A급 던전이었다.
던전에 발을 들이는 순간, 반가운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 ‘산신령의 진짜 가호를 받은 자’의 칭호 효과로 인해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산악 지형이네.’
이강혁 씨는 내 칭호 효과와 스킬을 거의 다 알고 있다.
숲속 친구들에게는 꿀태창의 내용을 숨김없이 보여줬으니까.
그러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칭호 효과를 고려해 산악 지형을 골라준 거겠지.
<< 거인족의 바위산 >>
< 몬스터 등급 A ~ S >
< 클리어 조건 >
바위산 깊은 곳에 감추어진 거인족의 유적을 찾아내 파괴하세요.
< 클리어 보상 >
‘???의 강철’ , ‘???’의 비약, ‘???’의 갑주.
“후훗, 좋다. 마음에 드는구나.”
내 허벅지까지도 오지 않는 갈색 솜뭉치는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젖혀도 그 꼭대기를 볼 수 없는 거석들이 늘어선 산길을 바라보며 자신만만하게 웃음을 지었다.
“허수아비, 봉식이, 너희는 만일을 대비해 비실이들을 지켜주거라. 물론, 위대한 이 몸이 있는 한 누구도 너희들을 해칠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
고미의 말에 봉식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음······. 고미, 나도 끼면 안 될까? 좀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흐음, 알겠다, 허수아비. 너에게 부하들을 맡겨도 되겠느냐?”
말을 마친 고미는 곧장 커다란 청심환 하나를 만들어 이강혁 씨에게 내밀었다.
“걱정 마십시오, 곰 선생님.”
< 특수 스킬 ‘나눠 먹기(Gomi)’가 활성화됩니다. >
< 스킬 적용 대상 : 허수아비 >
음, 관리자도 정말 너무하군.
어째서 숲속 친구들은 죄다 고미가 부르는 별명으로 뜨는 거냐.
본래 청심환은 나와 봉식이밖에 먹을 수 없지만, ‘나눠 먹기’를 사용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이강혁 씨에게도 청심환 맛을 보여주는 게 좋겠지.
청심환까지 주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잠시 고민에 빠져있던 고미는 자신의 꿀 스카프를 풀어 이강혁 씨의 손에 넘겨주었다.
“자, 너희들은 대열을 유지해라. 무슨 몬스터가 튀어나오든 걱정할 것 없으니, 절대로 대열을 이탈하거나 내 앞으로 나가지 말고. 너희가 괜한 짓을 하지만 않는다면 절대로 위험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졸지에 인솔 교사(?)가 된 이강혁 씨는 한 손에는 스카프를, 한 손에는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청심환을 든 채 올망졸망 곰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비실이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길드장님, 손에 든 그건 뭡니까?”
“설마 고미 교관님께서는 버프 스킬도 가지고 있으신 겁니까?”
“그 스카프는 뭡니까?”
종전의 인원에서 열 명이 더해져 총원 사십여 명이 된 학생들은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앞다투어 질문을 던져댔고, 이에 이강혁 씨는 간략하게 그 질문에 답해주었다.
“이 스카프는 황금의 군주가 곰 선생님을 위해 만든 특별한 아이템이다. 손에 들린 이 빛덩이는 곰 선생님의 기가 담긴 구슬이고.”
“초, 초월자가 교관님에게 선물을 주었단 말입니까?”
“그래.”
“저, 저도 그 버프를 받아보고 싶습니다!”
음, 아기곰 선생님의 초능력 쇼(?)가 효과가 있긴 있었나 보네.
이렇게 빨리 고미의 매력에 빠질 줄이야.
‘그럼 나도 슬슬 활약을 좀 해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영지버섯과 흑염대웅신검을 꺼내 드는 순간,
“우, 우웃! 수하!”
갑자기 고미의 꼬리가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지? 또 뭔가 좋은 걸 발견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