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3 출근 준비.
< 축하합니다. 새로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 히든 퀘스트 : 진정한 꿀을 찾아서. >
- 위대한 곰은 달콤한 음식을 사랑합니다. 특히 곰과 꿀은 결코 떼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극상의 꿀은 위대한 곰에게 더할 나위 없는 지고(至高)의 행복을 제공합니다. 최고의 꿀로 고미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세요!
< 달성 조건 >
- 고미를 만족시킬 최상의 꿀을 대접하세요.
< 달성 보상 >
- 능력치 강화 (+5)
- 특수 스킬 : 달콤함에 취한다 (Gomi)
< 달콤함에 취한다 (Gomi) >
- 위대한 곰은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는 진정한 천하무적입니다. 하지만 달콤한 음식을 먹음으로써 잠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비고 : 아웅이와 다웅이에게는 좀 더 좋은 효과가 있을지도······?
장난하냐, 그럼, 저 단맛 중독자마저 기절할 극상의 단맛을 자랑하는 초월자의 특제 꿀이 고미 전용 버프 아이템이라는 거야?
‘으으, 난 절대 입에도 대지 말아야겠다.’
초콜릿만 많이 먹어도 속이 안 좋은데, 저런 무시무시한 꿀을 먹으면 곱게는 안 끝날 게 분명하니까.
그나저나, 강해지기 전에 기절을 해버리면 의미가 없지 않나······.
게다가 아웅이랑 다웅이한테 무슨 효과가 있는지는 왜 제대로 설명을 안 하는 거냐.
언제나 그렇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어이가 없군.
‘이것도 천천히 연구해 봐야겠다. 어지간한 단 음식으로는 버프 효과를 볼 수 없겠지.’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따져보자면, 이 슈퍼 아기곰에게 버프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부터 의문이지만 말이야.
‘게다가, 이걸 왜 스킬로 주는 거지? 그냥 꿀에 따라오는 부가효과가 아니라는 건가?’
그렇게 이 황당한 스킬의 효과와 한계에 대해 이런저런 가설을 수립하고 있을 때,
“아, 아웅!”
돌연 아웅이가 눈을 반짝이며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더니,
“아, 아우우웅!”
새하얀 얼음 방패를 완성해 나의 손에 쥐여주었다.
“응?”
그래, 자기가 강해진 걸 느낀 거구나.
분명히 아웅이랑 다웅이에게는 더 좋은 효과가 있다고 했지?
일단 확인이나 해보자.
< 감정에 실패했습니다. 아이템의 등급이 너무 높아 감정할 수 없습니다. >
호기심이 동한 나는 잽싸게 곰정사 스킬을 사용해 보았지만, 결과는 감정 실패였다.
‘말도 안 돼.’
현재 내 곰정사 스킬의 등급은 C다.
이전에 아웅이가 얼음 방패를 만들었을 때 방패의 등급은 D.
즉, 꿀을 먹은 거로 스킬 등급이 최소한 두 단계는 올라갔다는 소리인데······.
“오, 오오! 수하! 아웅이의 얼음이 왠지 더 시원해진 느낌이구나!”
심지어 눈으로 보기에도 아웅이의 얼음 방패가 강력해진 걸 알 수 있었다.
전에는 그냥 얼음이었는데, 이번에는 번쩍번쩍 광이 나는 것이······.
그런데, 엄마 아빠는 왜 안 놀라지?
“엄마, 아웅이가 얼음 만드는 거 본 적 있어?”
나의 질문에 엄마는 대견하다는 듯 아웅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게 얼음은 아웅이가 다 만들고 있는걸?”
······.
아웅아, 여기서 너의 역할은 대체 어디까지니.
서빙도 하고, 마법의 술도 만들고, 요리에 쓰일 얼음까지 만드는 거냐.
거기다 종종 심부름까지 다녀오는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이 녀석 월급은 평범한 직원 두 배는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웅!”
어머니의 손길이 닿자, 아웅이는 기분이 좋은 듯 꼬리를 흔들며 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뭐든 확실한 게 좋으니까.’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해피 곰 포인트’를 사용해 다시 한 번 아웅이가 만든 방패의 등급을 확인했다.
< 아웅이의 얼음 방패 (B) >
- 아웅이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얼음 방패. 매우 단단하고, 차갑다. 화염 계열 마법에 대해 높은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비고 : 여름에는 더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
꿀 한 잔에 스킬 등급이 두 개나 올라가 버렸네.
이게 대체 뭐냐고. 아무리 주인공 보정이라고는 해도, 정도가 지나친 거 아니냐.
어찌 됐든, 초월자의 특제 꿀의 효과는 실로 굉장했다.
일시적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 버프 효과를 가진 포션이 있다면, 부르는 게 값일 텐데······.
고작 꿀 따위로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게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토생원 님, 그 꿀은 계속 만드실 건가요?”
나의 질문에 토생원의 눈동자가 곰돌이 삼 형제를 훑었다가 빠르게 공포의 군주의 얼굴 위로 향했다.
이 집안의 지배자는 대균열의 수호자도, 그 슈퍼 먼치킨의 두 분신도 아니다.
토생원 역시 돌아가는 분위기로 보아 그 사실을 인지한 모양이고.
자신에게 허락을 구하는 듯한 토생원의 눈빛에, 어머니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대신, 원액은 절대 먹이면 안 돼요. 원래 생꿀은 함부로 먹는 거 아니에요.”
“그럼, 그럼. 꿀을 너무 많이 먹으면 복통이 생길 수도 있다고.”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간만에 지식을 자랑할 타이밍을 찾은 아버지는 꿀에 대한 지식을 늘어놓기 시작하셨다.
“꿀에는 적은 양이지만 보틀리눔균이 들어있다고. 그래서 아기들한테는 꿀을 함부로 먹이면 안 되는 거고. 게다가 무슨 꽃에서 꿀을 따왔는지에 따라 그 안에 독이 들어있을지도 모르고.”
독 이야기가 나오자, 토생원은 환히 웃으며 자신이 만든 특제 꿀에 대해 설명했다.
“아! 그건 걱정 마십시오! 이 꿀에는 아무런 독소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계의 꽃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독은 없는 것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다만, 당분이 너무 많아 평범한 인간이 섭취하려면 100분의 1 비율로 희석해서 드셔야 합니다.”
이봐요, 토 사장님. 그걸 먼저 설명했어야지.
100분의 1 비율로 희석해서 먹어야 하는 거면, 그건 이미 꿀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이나 다름없잖아.
평범한 인간이 먹으면 당뇨고 뭐고 곧바로 골로 가는 수준 아니야?
‘어쩐지······. 아기곰 삼형제한테만 시식을 시킨다 했더니만.’
더욱 놀라운 건, 그걸 먹고도 아무런 이상이 없을뿐더러, 맛있다고 기절까지 해버린 ‘곰은 사제들’의 충격적인 입맛이지만.
“허, 그것참 굉장하네. 그런데 토 사장, 그럼 이 꿀을 잘 희석해서 쓰면 뭔가 괜찮은 요리를 만들 수 있으려나?”
“하하! 역시 수하님의 아버님다운 날카로운 안목이십니다! 실은 이 꿀을 희석한 벌꿀주를 개발 중이온데······.”
“오오! 벌꿀주라니! 이 몸도······.”
“고미! 술은 안 돼요!”
술이라는 말에 공포의 군주는 곧장 입술을 앙다물며 No 사인을 보냈다.
음······. 외모와 달리 나이가 많은 아기곰이기는 하지만, 역시 이 녀석에게 술은 먹이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혹여 술주정이라도 부린다면, 적어도 지구에서는 말릴 사람이 없을 것 같거든.
- 으어어어······. 이 몸이 누군 줄 아느냐! 이, 이 몸이 바로, 위대한······. 딸꾹, 대균열의 수호자이니라! 우하하하!
- 꿀, 꿀을 내놓거라! 우하하하!
- 초코바, 초코바를 바쳐라!
술에 취해 진상을 부리는 슈퍼 먼치킨의 모습을 상상하자,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만독불침이라 술에 취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야.’
여하튼······. 그렇게 특제 벌꿀 시식회와 작은 사고(?)를 끝으로 시끌벅적한 개업식이 마무리되었고, 숲속 친구들과 우리 가족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단잠에 빠졌다.
* * *
다음 날 아침.
“으음······.”
나는 조금 동이 트기 전부터 잠에서 일어나 상태창을 열었다.
오늘은 ‘조정 위원’ 김수하의 첫 번째 출근일이었다.
근무지는 저스티스의 본사 빌딩.
앞으로 나와 고미, 수다르 님과 토생원은 주로 저스티스의 건물에 상주하며 각자 맡은 바 역할을 해나갈 예정이었다.
다만, 조정위원 자체가 세 길드를 아우르는 직책이다 보니, 용왕이나 블랙 메이지의 건물에도 우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고 들었다.
‘잘 할 수 있으려나.’
본래 나와 고미는 어느 정도 등급이 오르면 저스티스의 헌터가 될 예정이었다.
덕분에 저스티스에는 이미 고미와 내가 머무를 공간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당시에는 평범한 헌터로 계약을 했지만, 이제는 웅왕 연맹의 조정위원이라는 직함을 달고 입사하게 됐다는 게 차이점이랄까.
‘낙하산 같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그렇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렇다 할 전적이나 능력도 없이 갑자기 연맹의 높은 자리를 꿰찬 사람으로 보이겠지.
그러니 가장 먼저 할 일은 사람들에게 나와 고미의 실력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지금 내 고민은, 어느 길드의 길드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인정을 받느냐 하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었고.
저스티스의 길드원들은 대체로 인성이 괜찮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착하니까, 잘 받아들여 주겠지.’라고 생각하면, 그건 큰 오산이다.
올바른 사람들일수록 낙하산에게 혐오감을 느끼기 쉬우니까.
그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실력을 보여주는 것밖에 없지.’
물론, 실력만 보여준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닐 거다.
‘사람들하고 친해지고, 유망한 헌터들 찾아서 특별 교관한테 맡기고, 고미랑 수다르님, 토생원의 제자도 찾아봐야 하고······.’
잠깐만 머리를 굴려봐도 해야 할 일들이 태산이다.
‘어, 언제쯤 워라밸 을 되찾을 수 있는 거지?’
생각해 보니 내 인생에 워라밸이 있었던 적이 있기는 했나 싶기는 하지만······.
아기곰 삼 형제와 놀아주고, 대균열 근무자를 찾는 것만도 버거운데, 왜 자꾸 일이 늘어나는 거냐고.
‘아니야, 그래도 대학원 때보다는 낫지.’
그럼, 그럼. 지금이 백 배 낫지.
그때를 떠올리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고미와 놀아주는 건 꽤 재미있고, 돈도 벌고 있고, 잠도 제때제때 자고, 컵라면과 삼각 김밥 외에도 식사라는 걸 하고는 있으니까.
훗, 역시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의욕이 샘솟는군.
큭큭, 이게 바로 어둠의 힘이라는 건가.
절망을 딛고 일어선 자는 강한 법이지.
‘어디 보자♪’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니, 저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정신 승리가 꼭 나쁜 게 아니다.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는, 정신 승리가 최고지.
새벽부터 일어나서 일을 하면 어떤가.
어제는 12시가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으니, 수면 시간은 충분하다.
아니, 잠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감사할 일이다.
< 김수하 (A / Gomi ~ F ) >
< 칭호 >
- 위대한 고미님의 부하 1호 (A)
- 제법 훌륭한 안목을 가진 고미님의 제자 (B)
- 위대한 고미님의 중급 견습공 (C)
- 위대한 고미님의 첫 번째 가족 (Gomi)
- 산신령의 가호를 받은 자 (희귀)
- 위대한 고미님의 훌륭한 조력자 (A)
상태창에는 그간 내가 이룩해 온 업적인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음, 보면 볼수록, 고미랑 잘 놀아줬다는 이야기밖에 없는 것 같군······.
분명 보스 몬스터도 잡고 초월자도 잡은 것 같은데, 아무리 고미가 마무리를 했다고는 해도······. 숫제 ‘특급 집사’라는 이름이 어울릴 것 같은 칭호들뿐이다.
현재 나는 기공 계열 헌터에 가깝다.
사실 위대한 마법사의 후예(F)와 드래곤 스케일(F), 폴리모프(F), 웅톡방과 나눠먹기 등 숲속 친구들을 위한 몇몇 스킬 정도를 제외하면, 그냥 기공 계열 헌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지.
내가 첫 번째 근무지로 저스티스를 선택한 것 역시 이것 때문이었다.
심리학적으로, 친근감을 쌓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얼굴 마주할 일 없으면 서로에 대해 알아갈 기회조차 없고, 설령 가까운 사이라도 오랫동안 안 보면 멀어지기 마련이니까.
두 번째로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건 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패스.
그리고 친밀감을 쌓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유사성’이다. 뭐라도 비슷한 점이 있고, 공통의 관심사나 화제가 있어야 친해지지.
그런 의미에서,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저스티스를 선택하는 게 가장 이론적인 근거가 있다.
‘여기에, 기공 계열 헌터들이 동경할만한 능력 몇 개만 있다면······. 딱이지.’
< 새로운 스킬을 선택해 주십시오. >
생각을 마친 나는, 곧장 남아있는 스킬 획득권을 사용해 이전부터 꼭 익혀야겠다고 생각한 스킬 하나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