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2 특제 벌꿀의 위력
“이게 뭐지? 망고 수박?”
한유진 씨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이유찬 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흑룡 셰프라면 이 기묘한 수박(?)의 정체를 알지 않을까 기대하는 표정.
그러나 이유찬 씨 역시 이런 기묘한 과일은 처음 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망고 수박은 속 전체가 노란색이야.”
망고 수박은 또 뭐지……. 세상에는 정말 내가 모르는 다양한 음식이 존재하는구나.
어쨌든, 토 사장님의 수박은 기괴하다면 기괴하고, 신기하다면 신기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마블링이 섞인 소고기처럼, 새빨간 속에 군데군데 금가루를 뿌린 것처럼 금빛이 반짝이고 있었으니까.
“하하! 이것이 바로 저의 야심작, 황금 수박입니다!”
이름이나 모양은 둘째치고, 왜 세계 최고의 연금술사가 황금 수박 같은 걸 만들고 있냐고 묻고 싶다.
“오오! 토생원! 참으로 훌륭하다! 수박에 이 몸이 좋아하는 꿀가루를 뿌린 것 같구나! ”
“아, 아우웅!”
“다웅!”
하지만 곰돌이 삼 형제는 황금 수박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다같이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물개 박수를 쳐댔다.
정말이지, 먹을 것 앞에서는 언제나 사이가 좋구나.
“자, 어서 드셔 보십시오! 이 수박을 맛본 순간, 여러분의 우주가 더욱 넓어질 것입니다!”
아니, 그 정도로 거창한 수박을 만들지 말라고.
우주는 안 넓어져도 된다고.
토생원의 말이 끝나자, 잔뜩 흥분한 먹보 아기곰은 앙증맞은 입을 벌려 황금 수박을 베어 물었고,
“오, 오오옷!”
꿀가루(?)가 뿌려진 수박이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흥분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아웅!”
“다, 다웅!”
고미랑 똑같은 입맛을 가진 둘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어째서 성격도, 능력도, 생김새도 다른데, 공유하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 식탐과 음식 취향일까.
“어머! 토생원 님,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요? 정말 달다, 어머, 앞으로 야채말고 과일도 토생원 님에게 사야겠네.”
심지어 어머니도 눈동자가 주먹만하게 커져 토생원을 바라봤다.
어머니는 과일을 좋아하신다. 좋아하는 만큼 까탈스럽기도 하고. 그런 분이 이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일 정도면…….
‘나도 한입 먹어볼까?’
이미 속이 꽉 찬 느낌이긴 하지만, 호기심 때문에라도 먹어봐야겠다.
그렇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황금색 가루가 알알이 수 놓인 수박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헐…….”
저도 모르게 동공이 확장되고,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지, 진짜로 우주가 넓어지는 느낌이야.’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맛의 신세계.
적당히 아삭한 식감, 촉촉하고 달콤한 수박 특유의 맛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단맛이 섞여 있다. 특히 이 황금색 알갱이(?) 때문에 식감과 수박의 맛, 단맛이 모두 두 배, 아니 세 배는 강하게 느껴졌다.
“이거 진짜 수박 맞아요?”
“어떻습니까? 저의 연구 성과가!”
나의 반응을 살펴보던 토생원은 커다란 귀를 바짝 세운 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굉장하네요.”
과장이 아니라, 이렇게 맛있는 과일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이 정도면 초월자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오, 오오오오! 토생원! 후, 훌륭하다! 실로 훌륭해! 네가 이렇게 훌륭한 녀석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느니라! 역시 너를 거두기를 잘 했구나!”
…….
음, 과일 농사를 잘 지으면 훌륭한 사람이구나.
정말이지 고미다운 기준이다.
하긴, 원래 맛있는 거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긴 하지.
“허허허, 그 황금 수박에는 전신의 기를 활성화하고, 오감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어주며, 피로를 씻어주는 효과가 있으니, 맛있는 약이라고 생각하고 드십시오.”
숲속 친구들이 게걸스럽게 황금 수박을 먹어치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수다르님이 인자하게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정말요? 이거 약이에요?”
한유진 씨의 질문에, 수다르 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허허, 약까지는 아니지만, 토생원과 함께 최대한 여러분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수박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잠깐……. 이렇게 맛있는 걸 만드실 수 있으면서, 왜 단약은 죄다 그런 맛?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수다르 님의 단약을 가장 많이 먹은 건 바로 나다.
민트부터 시작해서 홍삼, 고수에, 독약까지, 참 골고루도 맛봤지.
‘설마, 일부러 그런 맛으로 만드시는 건 아니겠지?’
의심스럽다. 의심스러워.
막 뒤통수를 맞은 참이라 그런지, 괜히 의심이 간다고.
“허허, 이것은 평범한 수박에 이계의 다른 식물을 섞어 만든 것이라 그렇습니다. 하지만 약초가 들어간 것은 아니니, 약 같은 맛이 나지 않는 것이지요.”
나의 눈빛을 읽은 수다르 님은 웃으며 혐의(?)를 부정했다.
황금 수박 이후에는 딸기와 참외 시식회가 열렸지만, 아쉽게도 황금 수박만큼 특별한 맛을 자랑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손님상에 내놓으면 돈 주고라도 사 먹을만큼 달콤하고 싱싱했다. 과연 초월자의 화원에서 기른 과일은 다르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맛.
전부 단맛이 나는 과일을 키운 건, 역시 고미 때문이겠지.
“흐아, 이제 더는 못 먹겠습니다.”
테이블 위의 과일이 모두 사라지자, 이강혁 씨가 긴 한숨을 토해내며 입을 열었다.
나와 더불어 먹는 것에 숲속 친구들 중 가장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 황복 코스에 이어 과일 세트까지……. 여태 본 것 중에 가장 많이 먹은 것 같다.
‘으, 나도 오늘은 좀 과식한 것 같은데.’
그렇게 약간의 더부룩함을 느끼고 있을 때,
“자, 그럼……. 드디어 대망의 특제 벌꿀 시식회가 있겠습니다.”
토생원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자그마한 상자 하나를 꺼내들었다.
상자를 열자,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며 손바닥만하게 잘린 벌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 우웃! 토생원……. 너는 정말이지…….”
초월자가 직접 만든 특제 벌꿀이 그 영롱한 자태를 드러내는 순간, 고미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누, 눈물까지 흘릴 건 없잖아.’
게다가, 방금 전에 그렇게 단 과일을 먹었는데, 또 단 게 들어간단 말이야?
“그런데……. 왜 벌집을 그대로 가지고 오신 거예요?”
나의 질문에, 고미는 보기 드물게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수, 수하! 진정한 꿀은 원래 벌집째 먹는 것이다! 설마 네가 그것을 몰랐단 말이냐!”
그, 그런가, 내가 아는 먹는 벌집이라고는 마트에서 파는 벌집 모양 과자 뿐인데…….
하긴, 야생의 곰들이 꿀만 짜내서 먹지는 않겠지.
다큐에서 벌집째 꿀을 먹는 걸 본 것 같기도 하고…….
“응? 수하 씨, 정말 몰랐어요? 벌집도 꽤 맛있어요. 왜, 옛날에 벌꿀 아이스크림이라고, 벌집 얹어주는 아이스크림도 잠깐 유행했었잖아요.”
한유진 씨가 벌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신이 난 아기곰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오오! 삼룡 어멈, 역시 너는 맛에 대해 일가견이 있구나! 그, 그나저나, 아이스크림이라면 전에 그 아포가토라는 음식에 들어있던 것이 아니냐! 설마 커피 대신 꿀을 뿌려 먹는 아이스크림이 존재한단 말이냐!”
먹은 것에 대해서는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는구나.
어째서 다른 부분에서는 맹하면서, 먹을 것에 관해서만 이렇게 정확한 기억력을 보유하고 있는 걸까.
“수, 수하!”
고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는, 굳이 들어볼 필요도 없었다.
“알았어, 사줄게. 조만간 먹으러 가자.”
“오, 오오오! 수하, 역시 너는 최고다!”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부어 먹고도 그렇게 좋아했는데, 벌집이 올라간 아이스크림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그나저나, 벌집 아이스크림이라니,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난 디저트류, 특히 단 음식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자, 한 번 드셔 보시지요. 아직 본격적으로 양봉을 시작하지 못해 양은 그리 많지 않지만, 맛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고미에게 벌꿀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약속을 하는 사이, 토생원이 손바닥만한 벌집을 쪼개 곰돌이 삼형제에게 나누어 주었다.
“음?”
벌집이 부서지는 순간, 달콤한 꿀 내음과 함께 이루 말할 수 없는 은은한 꽃향기가 후각을 자극했고,
“아, 아아…….”
초콜릿색 솜뭉치는 그 향기만으로도 반쯤 혼이 나가 장탄식을 내뱉었다.
“아, 아웅…….”
심지어 언제나 바른 자세를 유지하던 아웅이마저 반쯤 눈이 풀린 채 털썩 주저앉았고, 다웅이는 판다 인형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광기 어린 눈빛으로 벌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원래 고미가 꿀을 나눠주기로 한 것 아니었나?’하는 의문이 머리를 스쳤지만…….
이미 아기곰 삼 형제의 머릿속에는 한시라도 빨리 저 달콤한 것을 입안에 넣고 싶다는 욕망 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아기곰 삼 형제는 섣불리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말없이 손에 들린 벌집을 바라볼 뿐.
더없이 신성한 무언가를 영접하는 듯, 세 아기곰의 표정에는 경건함이 가득 묻어났다.
눈앞에서 신을 마주한다면, 저런 표정일까?
숨조차 함부로 내쉬지 못하고 손에 들린 벌집을 바라보는 아기곰들의 모습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덩달아 숨을 죽였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염원이 담긴 경건한 예배.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어 그 의식을 방해할 수 없었다.
한 줌의 숨소리, 한점의 향기, 점점이 떨어지는 한 방울의 꿀.
이 거룩한 의식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고귀하고, 신성했으며, 더할 나위 없이 숭고했다.
세 아기곰 중, 그 누구도 섣불리 그 보물에 손을 대지 못했다.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서로를 바라보던 아기곰 삼 형제는, 약속이나 한 듯 천천히 손을 들어 벌집을 입으로 가져갔다.
- 바삭.
벌집을 씹는 순간, 작은 소음이 울리고, 주위에는 다시 짙은 적막이 깔렸다.
그 엄숙한 분위기에, 감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아아…….”
그 숨 막힐 듯한 정적을 깨뜨린 것은, 감격에 젖은 불곰 사제의 탄식이었다.
“아, 아아…….”
이어서 백곰 사제가 털썩 무릎을 꿇었고,
“다…….”
마지막으로 판다 사제가 팔을 들어 눈물을 훔쳤다.
‘뭐, 뭐가 이렇게 경건한 건데!’
고미의 반응은, 생각보다 격렬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한입, 한입, 마치 영겁의 시간 동안 그것을 음미할 것처럼, 아주 천천히 벌집과 함께 그 성체에서 떨어지는 성결한 황금빛 액체를 음미할 뿐.
마침내 세 아기곰의 솜방망이에 들려있던 벌집이 모두 입안으로 사라지는 순간…….
“아아, 토생원…….”
고미가 긴 탄식과 함께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고맙다, 참으로 고맙다. 이, 이 몸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느니라…….”
그리고는…….
“고, 고미!”
“고미야!”
“아, 아웅아!”
“다, 다웅아!”
그대로 자리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 * *
곰돌이 삼 형제가 깨어난 것은, 대략 5분 정도가 흐른 뒤였다.
“우, 우웅?!”
“아웅!?”
“다, 다웅!?”
다행히도,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였다.
그러기는커녕, 두 눈에서는 여태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생기가 흘러넘쳤고, 보송보송한 솜털에서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고미, 괜찮아?”
나의 질문에 고미는 홀린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거라, 그저 꿀의 맛과 향기에 취해 잠시 의식을 잃었을 뿐이다. 참으로 황홀한 경험이었다.”
…….
의식을 잃었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하냐.
게다가 너무 맛있다고 의식을 잃는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
“죄, 죄송합니다. 최, 최선을 다해 만든다는 것이 그만…….”
한편, 이 사태(?)를 유발한 장본인은 대역죄인이 된 것처럼 무릎을 꿇은 채 연신 숲속 친구들과 공포의 군주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고미, 앞으로는 절대 꿀 그냥 먹으면 안돼요!”
어찌나 놀라셨는지, 아기곰 삼 형제와 함께 혼절할 뻔했던 어머니는 촉촉하게 젖은 누가를 훔치며 고미에게 ‘꿀 원액 섭취 금지령’을 내렸다.
음, 확실히 먹을 때마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원액은 먹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아, 알겠다. 지, 진정하거라.”
눈자위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어머니의 모습을 본 갈색 솜뭉치는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원액을 섭취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뭐, 진짜로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신의를 아는 곰이라도, 꿀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 축하합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그때, 또다시 새로운 퀘스트가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뭐야, 그냥 꿀을 먹었는데 무슨 퀘스트가 완료돼…….’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타이밍.
하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퀘스트의 보상으로 주어진 스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