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9 입구에서 김수하를 찾아주세요
“아저씨! 아저씨! 일어나요!”
“야, 이거 안 되겠다. 완전히 갔는데? 죽은 거 아니야?”
“숨은 쉬고 있습니다.”
[ 에이잇! 다웅이, 이런 비실이를 그렇게 두들겨 패면 어떻게 하느냐! 적당히 때렸어야지! ]
“다웅!?”
- 찰싹, 찰싹!
“아저씨! 일어나라니까요!”
“거봐, 마지막에 너무 많이 때렸다니까.”
“다웅!”
“포션이라도 먹여볼까요?”
- 찰싹, 찰싹!
“끄으으······.”
“어? 일어났다.”
“역시, 이 정도로 죽을 인간은 아니군요. 포션은 넣어두겠습니다.”
“다웅! 다웅, 다웅!”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꿀주먹 선물 세트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있던 아저씨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다.
“으윽!”
하지만 이미 그 달콤함이 전신에 퍼진 탓인지, 상반신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다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강혁 씨, 포션 주세요. 이 상태로는 대화도 안 될 것 같네요.”
나는 이강혁 씨에게 회복 포션을 건네받아 골골대며 누워있는 문경준 씨의 입에 흘려 넣었다.
“왜······?”
두들겨 팰 때는 언제고, 포션까지 먹여가며 정신을 차리도록 도와주자, 문경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물어볼 거 있다고 했잖아요.”
물론, 호의가 있다거나, 숲속 친구로 만들기 위해 깨운 건 아니다.
문경준은 이강혁 씨나 한유진 씨, 노인국 씨와는 다르다.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달랜다고 우리 편이 되어줄 만한 사람도 아닌 것 같으니까.
아니, 같은 편이 되고 싶다고 애걸해도 거절할 거다.
적어도 ‘지금은’ 이 사람이 우리 편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설마 이제 와서 무르는 거 아니죠?”
나의 질문에 문경준은 치욕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봐라. 궁금한 게 뭐지?”
그래도 약속은 지키네.
아니면 단순히 다웅이의 꿀주먹이 무서운 건가.
너무 맛보면 당뇨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
“어떻게 찾아왔어요?”
“저스티스 근처에 게이트가 열렸다길래, 이강혁이 저 새끼 잡으러 왔지. 근처에 게이트만 열리면 착한 척하려고 부리나케 달려오는 놈이니까.”
역시, 게이트 근처에서 우리랑 마주친 건 반쯤 우연이었구나.
노렸던 건 우리가 아니라 이강혁 씨였나.
“이강혁 씨는 왜요?”
“흥, 저 새끼가 대가리니까, 대가리 잡아서 어떻게 수습해 보려고 했다.”
응? 잠깐······.
설마 삼대 길드가 연합하게 된 게, 이강혁 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하긴, 상식적으로 그게 맞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숲속 친구들을 모아놓고 이 중에 대장이 누구일 것 같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이강혁 씨나 한유진 씨를 가리킬 거다.
나 같은 애송이가 삼대 길드를 규합해서 연맹을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지.
그 애송이 머리 위에 올라타 있는 귀염뽀짝한 갈색 솜뭉치가 진짜 최종보스일 거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못할 거고.
“그 다음에는요? 우리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아낸 거죠?”
“흥, 사대 길드의 길드장 중에 셋이 한 곳에 모여서 축하 파티를 하는데, 눈에 안 띄길 바랐던 거냐? 일어나서 애들한테 연락 돌려보니까 근처에서 다 같이 모여서 회식한다고 하던데.”
아, 그거 개업식인데, 오해하셨구나.
설마 개업식이라고 다 같이 모여있던 게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줄이야······.
하지만 이렇게 다짜고짜 찾아와서 싸움을 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 그런 것까지 주의할 수는 없지.
“그런데, 왜 혼자 오신 거예요?”
계속되는 질문 공세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문경준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자, 잠깐, 설마······. 이강혁이가 아니라, 네가 대가리냐?”
“문경준, 입 조심해라.”
이강혁 씨의 날선 반응에, 문경준은 완전히 넋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자신에 대해서는 이 새끼 저 새끼 해대도 가만히 있던 사람이,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순간 곧장 반응을 보였으니까.
‘생각보다 머리가 좋네.’
그리고 이 짧은 대화를 통해, 나는 문경준이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임을 깨달았다.
주도적으로 질문을 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 그리고 다웅이와 고미가 내 펫이고, – 실제로 그런 관계는 아니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영락없이 그렇게 보일 테니까 – 그 펫의 실력이 이강혁 씨보다 강하다는 것, 이 세 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내가 삼대 길드를 집어삼킨 거라는 결론을 내렸겠지.
뭐, 집어삼켰다는 것도 헛다리기는 하지만, 그 정도 생각만 할 수 있어도 머리가 제법 잘 굴러가는 사람이라는 건 마찬가지지.
‘역시, 사대 길드장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한 가지 의문은, 이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 어째서 차근차근 뭔가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정면으로, 그것도 혼자서 쳐들어왔냐 하는 점이었다.
“왜 혼자 오셨냐니까요.”
“흥, 애들 다 끌고 움직이면 그 길로 전쟁인데, 니들이 쪽수로 몰아붙이면 답 있겠냐? 우리 애들 다 죽고, 선제 공격했으니까 책임도 우리가 다 뒤집어 쓰겠지. 이강혁이 저 가식적인 새끼가 언론 플레이 해서 가뜩이나 이미지도 나빠졌는데.”
일종의 특공대라는 건가······. 그것도 자기가 직접?
“흥, 날 죽인다고 저스티스의 길드원들이 널 따를 거라고 생각한 거냐?”
이강혁 씨의 질문에, 문경준은 꽤 신선한 대답을 내놓았다.
“죽이긴 뭘 죽여. 그냥 넌 나한테 안 된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던 거다. 아, 물론 실제로도 그렇지만.”
실로 황당한 대답.
더욱 어이가 없는 건, 지금 이 사람이 계속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뭐야 그게, 연합에 대응하기 위해 대장을 꺾고 자기가 더 강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죽이는 것도 아니고? 그게 무슨 황당한 논리야?’
“그게 무슨 소리야. 말이 되냐? 너 우리 죽이려고 왔던 거 아니야?”
봉식이가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 쏘아붙이자, 문경준의 눈빛이 또다시 험악하게 변했다.
“하, 이건 아까부터 새파랗게 어린놈이 따박 따박 반말이네. 야, 이 새끼야. 백주 대낮에 내가 이강혁이 저 새끼 죽이면, 뭐 군대나 경찰은 호구 새끼들이라 아이고, 잘하셨습니다, 그러고 지켜보겠냐? 나머지 길드원들은 뭐 병신이라 가만히 있고?”
의외로 생각이라는 걸 하고 움직이고 계시구나.
군데군데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애들 단속하려고 그랬다. 내가 최강이라는 걸 보여줘야 붙어있을 새끼들이 하도 많아서. 거기다, 내가 이강혁이 저 새끼보다 세다는 걸 보여줘야 연합 새끼들도 함부로 우리 애들 못 건드릴 거 아니야.”
그제야 나는 문경준이 무슨 의도로 우리를 찾아왔는지 깨달았다.
‘일종의 무력시위였군.’
문경준은 오로지 무력으로 패왕을 지배한다.
애초에 본인의 무력 하나로 일군 길드기도 하고.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오로지 주먹과 돈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실히, 이런 상황에서는 길드원들이 이탈하거나 딴마음을 품을 가능성이 높겠지.’
그렇다고 삼대 길드와 패왕이 전면전을 벌이면, 문경준이 사도가 아니라 사도 할아버지가 됐다고 해도 승산이 높다고는 할 수 없다.
문경준도 그 사실을 모를만큼 머리가 안 돌아가는 사람은 아닐 테고.
그러니까, 이 사람이 혼자 온 건, 여차하면 물 수 있는 이빨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겠지.
동시에 길드원들에게는 ‘내가 이강혁도 이기는데, 배신자 하나 못 잡아 족칠 것 같냐?’ 하는 메시지를 줄 수 있을 테고.
‘똑똑하시네.’
얼핏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전략이다.
하지만 웅왕과 무신 전체로 보면 전력차가 명확하고, 각 조직의 수장 간에는 전력차가 크지 않다는 가정이 성립하면, 제법 효과적인 대응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기가 최강이라는 것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한 선택지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여차하면 둘러싸여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배짱 하나는 알아줘야겠네.
“킥킥, 게다가 내가 이강혁이를 정면에서 때려 눕혔는데, 삼대 길드가 연합해서 날 죽이면 갈 때 가더라도 사람들이 이강혁이 저 새끼가 나한테 일 대 일로 안 되니까 다구리 놨다고 떠들어대지 않겠냐?”
또 한 가지 이유는, 퍽 유치한 것이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말이지.
갈 때 가더라도 자기가 최강이라는 건 보여주고 가겠다, 뭐 이런 건가.
머리는 좋지만, 정상은 아닌 것 같다.
“그럼 사도는 어떻게 되신 거예요?”
마지막으로, 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길드 간의 세력 다툼에 대해서는 이미 스스로 패배를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니, 내가 생각한 대로 진행하면 되겠지.
“무신님이 나에게 누군가를 찾으라고 계시를 내리셨다. 그리고 그 대가로 힘을 내려주셨지.”
역시, 고미를 찾으라고 사도로 만들어준 거구나.
그런데, 왜 당사자를 눈앞에 두고도 못 알아보지?
“그 누구가 누군데요?”
“놀이공원에 결계친 놈.”
······.
음,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시작됐네.
정확히 고미를 찾으라고 한 게 아니라, 그냥 그 결계를 친 사람을 찾으라는 명령이었구나.
그 결계를 친 게 고미라는 건 무신도 모르고 있는 상태인 거고.
“무신님의 말로는, 그게 단순한 결계가 아니라더군.”
[ 후훗, 당연하지! 이 몸의 흑곰 덫을 단순한 결계라고 생각했단 말이더냐! ]
평범하지 않다는 말에, 슈퍼 먼치킨 아기곰은 오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정말이지, 언제, 어느 때, 어떤 상황이든 자신의 대단함을 어필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아기곰이군.
어쨌든,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삼대 길드의 연합 건에 대해서 알아차린 것도 고미의 ‘흑곰 덫’ 때문이라고 했다.
결계가 나타나자 무신이 그 결계를 만든 자가 누구인지 알아보라며 연락을 취해왔고, 뒷조사를 해 본 끝에 삼대 길드가 손을 잡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 흐, 흐흠! 이, 이 몸의 실수구나! 그토록 웅장한 결계를 만든다면, 누군가가 위대한 이 몸의 존재를 알아차리라는 것을 예상했어야 하는데······! ]
그 말을 들은 고미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해댔지만······.
꼬리가 흔들리는 걸로 보아 누군가 자기 기술을 알아본 것이 못내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칭찬에 너무 약해······. 애초에 이게 칭찬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도 고작 그런 걸로 고미를 탓할 생각은 없다.
‘엄밀히 말하면 내 실수기도 하고.’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고 배려한다는 게, 설마 이런 결과를 낳을 줄은 몰랐다.
[ 아니야 고미, 걱정하지 마. 잘했어. ]
[ 우웅? ]
게다가, 그 실수가 만든 건 위기가 아니라 기회였다.
이 상황을 잘 이용하면 근무자도 하나 추가하고, 연맹이 성립하는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문제까지 단번에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음, 그러니까, 그 결계를 만든 사람도 찾고, 연맹이 패왕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찾아왔다. 이거죠?”
“그래, 설마 판다한테 얻어터져서 실패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아까 날 기절시킨 것도 저 판다냐?”
아뇨, 쿵푸 판다보다 훨씬 무서운 거요.
원조 꿀 주먹에 그렇게 맞았으면 취하는 정도로는 안 끝났을 겁니다.
“글쎄요. 그건 비밀로 하죠.”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문경준은 모든 걸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날 어떻게 할 생각이지?”
죽일 거면 진즉에 죽일 수 있었는데 그러질 않았으니, 대체 왜 이러나 싶겠지.
“말해두지만, 길드는 못 넘긴다. 패왕을 내놓으라고 하면······.”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아마 아저씨도 구미가 당길만한 제안일 거예요.”
이어지는 나의 말에, 문경준은 물론이고 고미와 봉식이, 이강혁 씨마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먼저, 앞으로 싸움을 걸고 싶으면 미리 연락을 주세요. 이상한 음모 같은 거 꾸미거나, 주변 사람들 건드리면 바로 전쟁입니다.”
그래, 그런 거 하지 마라.
간만에 머리 쓸 일 없어서 심신이 안정을 되찾았는데, 다른 놈들처럼 이상한 짓 하면 나 정말 화낸다.
“기회는 일주일에 한 번, 아니, 두 번 드릴게요.”
“뭐?”
“단, 죽이는 건 안돼요. 음······. 그래요, 스파링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내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문경준의 얼굴은 곧바로 분노와 모욕감으로 일그러졌다.
“이 새끼가······.”
“단, 저희 쪽에서 내보낼 사람은 저희가 정할 겁니다. 패왕 쪽에서도 문경준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와도 상관없고요. 그리고 그쪽이 이기면, 포인트를 드릴게요. 그 포인트를 모으면 저희 쪽 던전을 하나씩 가져갈 수 있는 걸로.”
하지만 던전을 내주겠다는 말에, 모욕감은 의심으로, 분노는 기쁨으로 변했다.
“저, 정말이냐? 하지만, 어째서 그런 손해 보는 제안을 하는 거지?”
기뻐하면서도 도저히 내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
영락없이 자신이 애써 쌓아 올린 모든 게 사라질 거라고 믿었던 상황에서, 상대가 이런 제안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지.
“정말이에요. 이유는······. 음, 비겁하게 음모 같은 걸 꾸미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싸움을 걸어온 패기에 반한 거라고 치죠.”
내가 한 말은, 절반은 진심이었다.
흑암이나 세 번째, 만수왕 같은 친구들에 비하면 이 아저씨는 나의 심신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천사나 다름이 없으니까.
그리고 절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