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74화 (174/300)

EP.174 초월자, 수다르

<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

< 메인 퀘스트 : 더 높은 곳으로. >

- 지리산의 신령, 수다르 8세는 초월의 가능성을 가진 위대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스스로 지리산의 신령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수다르가 더욱 위대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설득해 보세요.

< 달성 조건 >

수다르를 설득하여 초월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하기.

< 달성 보상 >

특수 스킬 : ???

뭐야 이게…….

퀘스트의 내용은, 실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수다르 님이 초월자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니, 전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산신령은 본래 전설이나 동화 속에나 나오는 영험한 존재고, 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산 중 하나니까.

그런 커다란 산을 지키는 신비한 존재라면, 상당히 격이 높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지.

‘게다가 의술에 있어서는 초월자인 토생원을 능가하고, 다른 초월자들의 능력으로 생긴 병이나 이상까지 치료할 수 있는 분이니까…….’

뛰어난 사회생활 능력과 강렬한 캐릭터에 가려 잊고 있었다.

수다르 님은, 무력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미 초월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분이라는 걸.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수다르님께서 왜 초월자가 되지 않고 지리산의 산신령으로 남았는지 하는 점이었다.

‘대체 초월자라는 게 정확히 뭘까?’

게다가, 나는, 아니, 인간들은, 우리가 초월자라고 부르는 것의 존재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그들이 자신을 초월자라고 부르고, 그런 호칭에 걸맞은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렇게 여겼을 뿐이지.

‘초월자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하위 개념이 뭐지?’

그렇게 초월자의 정의와 개념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어머, 산신령님, 이 토끼 선생님은 누구예요?”

수다르 님의 등 뒤에 서 있던 토생원을 발견한 어머니가 방긋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어머님! 저는 수다르 8세 님의 제자이자, 수하님과 고미님의 충실한 종복이며, 앞으로 이 가게에 식자재를 조달하기로 한 토생원이라고 합니다.”

종복? 언제부터? 게다가 식자재 조달이라니?

어째 요즘 숲속 친구들이 나 몰래 뭔가를 많이 꾸미는 것 같다는 생각이…….

“식자재요?”

나의 질문에 토생원은 대답 대신 커다란 봇짐을 풀어헤쳤다.

‘저런 건 또 언제 가지고 왔대.’

수다르님이 초월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저런 커다란 보따리를 가지고 왔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자, 이것은 횟감 아래에 깔 무입니다. 감히 장담하건대 세상 그 어디에서도 이것보다 싱싱하고 맛있는 무를 찾지 못하실 것입니다.”

팔뚝만큼 굵은 무에서는 적당히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은은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걸로 뭇국을 끓이거나 국물을 낸다는 상상만 해도 꿀떡 침이 넘어갈 정도로 매력적인 향기였다.

“다음은 저의 텃밭에서 직접 기른 상추와 깻잎입니다. 상추로 말하자면 적당히 쌉싸름하고 향이 살아있으며, 깻잎은 특유의 향기를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너무 억세지 않아 식감을 해치지 않게 개량한 특별한 물건이지요.”

방문 판매냐……. 뭐 하는 건데 지금…….

“고추와 마늘은 매운 것과 맵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길렀으니 원하는 대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에, 그리고……. 이 배추로 말하자면…….”

토생원의 보따리에는 무, 깻잎, 상추는 물론이고 마늘과 고추, 파, 양파, 배추 등 가게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식재료가 들어있었다.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맛을 보시고 부족한 점을 말씀해 주시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여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한 과일이나 채소가 있다면 뭐든지 재배가 가능하고, 씹는 맛이나 향뿐만 아니라 맛도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니, 원하시는 것은 뭐든지 하명해 주십시오.”

굉장해, 굉장하긴 한데…….

설마 연금술 그만두고 아예 농사꾼으로 전직하신 겁니까?

“아이, 오늘 산신령님 대접하려고 부른 건데, 이러시면 저희가 너무 죄송하죠.”

갑작스레 쏟아지는 선물 세례에 당황한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토생원의 유기농 야채 선물 세트를 거부했으나,

“허허, 걱정 마시지요, 어머님. 혹 야채를 구매하시는 곳이 따로 있다면, 직접 맛을 비교해 보시고 값을 치러주시면 됩니다. 다만 중간 유통이 없이 직거래로 판매하는 것이니, 유기농이라 해도 가격은 조금 더 쌀 것입니다.”

수다르 님은 능숙하게 어머니의 방어를 무력화시켰다.

부모님의 성정상, 계속 공짜로 선물을 받으면 적잖이 부담스러워하실 테니, 적당히 구실을 마련하신 거겠지.

사실 꼭 우리 부모님이 아니라도, 평범한 수준의 염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건 상당히 미안하고 부담스러운 일이고.

받는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려 선물을 하다니, 언제봐도 정말로 배울 게 많은 어른이다.

“하하, 그렇습니다, 어머님. 오늘 제공되는 야채는 일종의 시제품이라 생각하시고, 맛을 보신 후에 정식으로 거래를 해주시면 됩니다. 사실 제가 새로 농사일을 시작했는데, 거래처가 마땅치 않아서 말이죠.”

이어지는 토생원의 말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잠시 망설이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역시, 굉장하다. 부모님의 성격을 파악하고 두 분이 거절하지 못할 명분까지 만들어 두시다니…….

그런데, 돈을 받는 것 자체는 나도 찬성이지만, 그 돈을 어디다 쓰려고 하시는 걸까? 심히 궁금하다.

“삐이잇-!”

거래가 성립되자, 스페셜 게스트와 함께 뒤늦게 합류한 알틴은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뱉었고,

“자, 그럼 준비한 황복부터 맛을 보시죠.”

보따리를 건네받은 아버지는 그것을 주방에 가져다 놓은 뒤 빠르게 준비해 온 회를 내오셨다.

“와아……. 예쁘네요. 이렇게 예쁜 회는 처음 봐요.”

복어 특유의 빛깔과 윤기가 흐르는 회가 등장하는 순간, 한유진 씨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시작은 황복 회입니다.”

이어서 보기 좋은 연둣빛이 도는 복어회용 소스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으음, 무 대신 배를 갈아 넣고, 레몬에 식초, 실파, 간장, 와사비를 이용해 만든 소스군요.”

시식에 들어가기도 전에, 숲속 친구들 최고의 요리 평론가 수다르 님은 한눈에 소스의 배합을 간파했다.

“과연 산신령님은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보통 복어회 소스는 무를 갈아 넣어 만들지만, 우리 집의 경우에는 배를 강판에 갈아 사용한다.

아버지께서 직접 여러 가지 소스를 시험해 보고 만든, 가장 깔끔하면서도 복어의 맛을 완벽하게 끌어낼 수 있는 소스.

단골 손님들에게 여러 가지 소스를 내드리고 그중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을 고르고 골라 만든 연구의 결정체였다.

그런데 수다르 님은 한눈에 그 소스의 배합을 알아보신 거고.

‘언제봐도 대단해. 그런데, 요리에 대한 지식은 왜 저렇게 풍부하신 걸까.’

아무리 봐도 책이나 티비에서 본 게 아니라, 직접 먹어본 경험이 많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눈썰미와 시식평이란 말이지.

설마 남몰래 돈을 모아서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신다던가……. 아니지, 저 외모로는 어디 가서 뭘 먹어도 반드시 뉴스에 나올 텐데.

“흐음, 복어회는 바닥이 비출 정도로 얇게 뜨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것은 평범한 복어회보다 조금 더 두껍군요.”

소스에 대한 분석을 마친 산신령님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커다란 접시 위에 점점이 깔린 복어회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실 복어는 살이 상당히 단단한 편이라, 조금만 두껍게 썰어도 씹는 맛이 있는 것을 넘어 질기다고 느껴지는 생선이다.

게다가 원가도 상당한데 먹을 수 있는 부위는 많지 않아서, 손질을 거치고 나면 6에서 7할은 버려야 하고.

「그렇게 얇게 써는 건 횟감 아끼려고 그러는 거라니까. 원가 줄이려고 그러는 거야.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맛이 있어야지.」

그리고 복어회를 그토록 얇게 써는 것은, 식감의 문제도 있지만, 가격과 수고에 비해 한 마리당 나오는 횟감의 양이 너무 적다는 문제 때문이라는 게 아버지의 분석이었다.

물론 아버지의 생각이 맞는지 틀린 지는,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다수의 손님들이 아버지가 고심해서 연구해낸 ‘최적의 두께’가 더 맛있다고 느낀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이제 맛을 보아야겠군요.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앞에 두고 너무 말이 많은 것도 예의가 아니니 말입니다.”

말을 마친 산신령님은 한없이 평온하고 담담한, 동시에 진지한 표정으로 첫 번째 복어회를 소스에 찍어 천천히 입안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미나리에 돌돌 만 복어회가 수다르 님의 자그마한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허…….”

산신령 님의 목구멍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설마 회가 입에 안 맞으십니까?”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수다르 님은 대답 대신 다시 한 번 회 한 점을 집어 입안에 집어넣었다.

“허허……. 실로 완벽합니다. 아니, 이것은 완벽 이상의 그 무엇이군요. 손톱만큼만 더 두꺼웠다면 미나리를 모두 씹고 소스의 맛이 사라진 뒤에도 횟감만 입안에 남았을 것이고, 반대로 조금만 더 얇았다면 미나리와 소스의 맛이 너무 강해 회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겠지요.”

최고의 미식 수달, 수다르 님은 이제껏 보았던 것 중 가장행복하고 감동에 젖은 표정으로 시식 평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두 점의 회가 완벽하게 같은 두께로 썰려 있습니다. 아아, 이것은 단순한 기술이나 노력, 재능의 영역을 넘어 집착에 가까운 집념과 고집, 의지로 만들어 낸 진정한 장인의 작품이군요.”

수다르 님의 장엄한 시식평이 끝나기 무섭게 먹보 아기곰은 곧장 젓가락을 들어 거의 눈에 비치지도 않는 빠르기로 복어회를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오, 오오오! 괴, 굉장하구나! 이, 이것은! 위대한 이 몸만큼이나 위대한 맛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늘어놓았다.

심지어 씹어 삼키는 것마저 아깝다는 듯 미동조차 하지 않고 천천히 회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아, 아버지!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월급은 주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가게에 와서 일을 돕게 해주십시오!”

“아, 아니, 일을 하면 돈을 받아야지……. 그러면 안돼요.”

이어서 흑룡 셰프는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며 애걸했고,

“아, 아웅!?”

“다웅!”

아웅이와 다웅이마저 석상처럼 굳은 채 멍하니 아버지를 바라봤다.

“하하하, 아니, 뭘 그렇게까지……. 부끄럽습니다.”

쏟아지는 찬사에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행복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분이니, 숲속 친구들의 반응은 쉼 없이 더 나은 맛을 내기 위해 연구해 온 아버지의 삶에 대한 가장 큰 보상이겠지.

“오오! 아버님! 이 토생원, 미나리와 배를 길러보겠습니다! 더욱 좋은 미나리와 배를 만들어 올 테니, 부디 더 좋은 회를 만들어 주십시오!”

토생원 역시 농사일(?)에 대한 의욕을 더욱 불태우며 한 점 한 점 회를 집어삼켰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접시 두 개에 빙 둘러 있던 복어회가 모조리 동이 나고 말았다.

“자, 그럼 복어 껍질 요리와 샤브를 내오겠습니다.”

코스 요리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복어회 시식이 끝나자, 아버지는 곧바로 다음 요리 준비에 들어가셨다.

그렇게 폭풍 같은 식사가 잠시 중단되고 약간의 소강상태에 들어갔을 때, 잊고 있던 문제 하나가 떠올랐다.

‘그런데……. 수다르 님이 초월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연맹 일을 부탁드려도 되는 걸까?’

물론 수다르 님은 굳이 초월자가 되지 않더라도 좋은 선생님이 되어줄 능력이 차고도 넘쳤다.

의원으로서의 지식이나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철학과 인품까지 두루 갖춘, 훌륭한 선생의 표본이라고나 할까.

‘문제는, 이 이야기를 꺼내면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기꺼이 초월자가 되겠다고 하실 분이라는 거지.’

하지만 여태 고미와 나는 물론이고 숲속 친구들과 가족들까지 넉넉히 품어주신 수다르님에게, 그분이 원하지 않는 일을 부탁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아, 어떻게 하지?’

무엇보다 걱정이 되는 것은, 수다르님이 초월자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어째서 초월자가 되지 않으신 건지, 전혀 짐작이 가는 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만일 무언가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문제라면, 수다르님에게는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허허, 수하님. 무언가 고민이 있는 얼굴이신 것 같군요. 혹 무슨 일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산신령님이 언제나처럼 인자한 웃음을 띤 채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수다르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이 위대한 산의 수호자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무언가를 각오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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