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70화 (170/300)

EP.170 갓-고미님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

“민봉식!”

나의 외침에 봉식이의 눈에 다시 초점이 돌아오며 녀석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설마……. 천하의 민봉식이 맞아서 정신이 흐려질 줄이야.

“하, 젊어서 그런가, 기운이 좋네.”

정신을 차린 봉식이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문경준은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지긋이 아래로 내리눌렀다.

“아아, 주먹이 너무 약해서 잠깐 졸았다.”

이, 이 자식이 그 와중에 허세를…….

너 지금 맞아서 얼굴 퉁퉁 부었거든? 오른쪽이랑 왼쪽이랑 얼굴이 다르게 생겼다고.

위에서 누르는 힘과 일어나려는 힘이 팽팽하게 맞서며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지만, 결국 봉식이는 그 힘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켰다.

“이것 봐라? 힘이 제법이구나.”

봉식이의 힘에 문경준은 조금 놀란 듯 감탄 섞인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내가 몸에 좋은 걸 많이 먹거든. 아저씨도 식단 관리 좀 하지 그래. 식단 관리 안 하고 운동만 하니까 배가 나오는 거야.”

음, 입은 아직 살아있군.

보기보다 데미지가 심하지 않은 건가?

“푸하하하하! 어린 노무 새끼가 배짱도 좋구나.”

문경준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봉식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고, ‘쾅’하는 소리와 함께 2차전이 시작됐다.

[ 수하 씨, 고미님, 정말 안 도와줘도 되겠어요? ]

그때, 한유진 씨가 웅톡방을 통해 질문을 던졌다.

[ 가만히 있거라. 너희가 힘을 보태면 상황이 더 어려워지기만 할 것이다. ]

고미의 답을 들은 한유진 씨는 조금 자존심이 상한 듯 살짝 이를 악물었다.

[ 저, 예전하고는 달라요. 잠깐만 멈추면 정확하게 문경준만 노릴 수 있다구요. ]

지금 두 사람은 찰싹 달라붙어 주먹과 발을 날려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번개나 불꽃을 날리면 봉식이도 같이 튀겨지거나 구워질 가능성이 높겠지.

그런데, 왜 나도 끼어들면 안 된다는 거지?

[ 그런 의미가 아니다. 너희들이 손을 보태면 저 멧돼지가 더 강해질 거라는 뜻이니라. 아마도 그게 저 멧돼지의 새로운 능력인가 보구나. 지난번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게다가 이 싸움은 봉식이에게 아주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다. 때가 되면 내가 싸움을 끝내줄 테니, 일단은 가만히 있거라. ]

‘전에는 없던 능력이 생겼다고?’

사도가 되면서 생긴 새로운 스킬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문경준이 사도가 된 이유도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설마, 우리가 동맹을 맺은 게 무신을 자극한 건가?’

우리가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문경준을 사도로 임명한 거라면, 이보다 적합한 스킬은 없겠지.

하지면 이 가설이 사실이라고 해도,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무신이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는 초월자였나?’

패왕이 최고의 길드가 되기를 바랐다던가, 다른 길드와의 권력 다툼에서 밀리지 않기를 바랐다면 진즉에 그를 사도로 임명했을 거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문경준을 사도로 임명하고, 이 사람을 움직여 싸움을 걸 이유가 대체…….

‘아!’

그 순간, 어떤 깨달음 하나가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노리는 건, 우리가 아니라 고미인가?’

고미는 검성, 이강혁 씨조차 감탄할 정도로 뛰어난 검웅(劍熊)이다. 나 역시 검의 달인 스킬을 얻은 후로 녀석의 손짓 하나하나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나날이 실감하고 있고.

하지만 ‘대력곰강장’이나 ‘웅조수’ 같은 기술은 검술보다는 권법에 가깝다.

그 외에도 고미가 사용하는 기술은 대부분 기공술이나 무협지에 나오는 무공의 변형이다.

‘추구하는 게 궁극의 무(武)라면……. 고미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야.’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고미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고, 우리와 고미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눈치챘다면?

‘대충 아귀가 맞아.’

물론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몇 가지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추론이었다.

콰드득!

바로 그때, 봉식이의 주먹에 맞은 문경준의 발이 바닥에 거대한 뱀 같은 흔적을 남기며 그의 몸이 뒤쪽으로 밀려났다.

“어째 맞을수록 강해지는 것 같구나. 변태냐, 꼬맹이?”

“아, 이게 근성의 힘이라는 거다. 사도가 됐다고 거들먹거리면서 깽판 놓는 양아치랑은 다르게 근성이 살아있거든. ”

이 둘, 어째 비슷한 듯하면서도 굉장히 궁합이 안 맞는다는 느낌이…….

“큭큭, 쓸만한 스킬 몇 개 가지고 있다고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이어지는 문경준의 말에 봉식이의 입꼬리가 묘하게 뒤틀렸다.

“이게 단순히 스킬 빨로 보여? 난 각성하기 전부터 셌거든. 아저씨랑은 다르게 말이야.”

동족 혐오네, 동족 혐오야.

자꾸 다르다는 거 강조하는 거 보니까 확실하네.

“어린놈이 귀엽다고 오냐 오냐 받아주니까 자꾸 기어오르는구나.”

“귀여우면 주먹 대신 용돈을 주지. 상식이 통하는 인간이라면 말이야.”

그렇게 쓸데없는(?) 입씨름이 끝나고, 2미터에 가까운 두 사람이 다시 한번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주먹과 발이 교차할 때마다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빗맞아도 죽을 것 같은 살벌한 펀치가 서로의 얼굴과 몸통을 두드리기를 몇 번…….

“컥!”

또다시 봉식이가 먼저 무릎을 꿇었다.

녀석의 몸은 이미 용광로에 들어간 쇠처럼 붉게 변해 있었다.

즉, 지금 ‘광기의 마수’ 스킬은 최대치로 활성화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말도 안 돼, 풀파워의 민봉식을 주먹으로 무릎 꿇릴 수 있는 인간이 있다니…….’

등급이나 실제 실력과 무관하게, 봉식이가 진다는 건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서 저놈은, 힘의 상징 같은 거니까.

게다가 각성까지 했는데…….

‘물론 문경준 급의 상대를 만난 적은 없었지만…….’

“입만 산 꼬맹이 같으니.”

문경준이 무릎을 꿇고 있는 봉식이를 향해 다가서는 순간, 나와 한유진 씨, 제르보나가 반사적으로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것들이 아주…….”

그 순간, 돌연 문경준의 강철 같은 근육이 더욱 단단하고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아, 아차!’

하지만 문경준이 나를 향해 주먹을 날리려는 찰나…….

퍽!

“억!”

초코바를 든 수도(手刀)가 문경준의 뒷목을 내리치며 그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 흥, 오늘은 여기까지다. ]

문자 그대로 일격.

[ 이제 됐느니라. 엄마 아빠가 기다릴 테니, 돌아가자꾸나. ]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에 나와 한유진 씨, 봉식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미를 바라봤다.

“이, 이대로 두고 가자고?”

정신을 차린 내가 질문을 던지자, 고미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 그렇다. 이놈은 아주 좋은 수련 도구가 되겠구나. ]

수, 수련 도구라니…….

“고미, 설마 봉식이랑 문경준이 싸우게 둔 이유가…….”

그리고는, 나에게 답을 하는 대신 봉식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 봉식이, 너와 허수아비는 꽤 오래 서로 합을 맞추며 수련을 해왔겠지? ]

“으, 응…….”

자신을 패배시킨 상대가 초코 수도 한방에 기절하는 것을 본 봉식이는 다소 기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해서는 진정으로 강해질 수 없다. 아무리 진심으로 대련을 한다 한들, 진짜 적의를 가진 상대를 만나는 것과는 다르니 말이다. 게다가 허수아비의 검술은 너와는 결이 다르니, 이 녀석과 싸우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니라. ]

봉식이를 바라보는 고미의 표정은 전에 없이 진지했다.

음, 꼭 무협지에 나오는 스승님 같은 표정이군.

“고미, 그래도 꼭 이렇게 위험한 방식으로 할 필요는 없잖아.”

강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봉식이가 이렇게 다칠 걸 뻔히 알면서도 이런 방식을 취하는 건, 아무래도 고미답지 않았다.

평소에는 틱틱거리며 시비를 거는 게 일상이지만, 봉식이가 다치는 걸 보는 나도 마음이 좋지 않고.

[ 봉식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

그러나 고미는 봉식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했고,

“찬성. 다음에는 꼭 내 손으로 쓰러뜨릴게.”

봉식이는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야, 민봉식.”

“괜찮다. 이대로는 분해서 잠도 못 자. 저 덩어리는 조만간 내 손으로 작살내 줄 거야.”

결국 두 사람의 뜻을 꺾지 못한 나는 쓰러진 문경준을 발로 차주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제르보나 호의 등에 올라탔다.

* * *

가게로 돌아가자, 이강혁 씨가 문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하 씨, 생각보다 늦으셨… 응? 야, 봉식이, 너 얼굴이 왜 그래?”

문경준에게 맞아 퍼렇게 변해버린 봉식이의 얼굴을 본 이강혁 씨가 당혹감과 의아함이 서린 얼굴로 물었다.

지금 봉식이의 실력이라면 A급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에게 이렇게 다칠 일도 없고, 고미와 한유진 씨, 내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애가 이 꼴이 돼서 돌아왔으니, 놀라는 게 당연하지.

“아, 그게, 일이 좀 있었어. 들어가서 얘기하자.”

“그 꼴로 들어가긴 어딜 들어가. 엄마한테 맞아 죽을 일 있냐?”

날카로운 나의 한마디에 봉식이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봉식이 이상으로 굳어버린 존재가 있었으니…….

[ 아, 아차! 이, 이걸 생각하지 못했구나! ]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협지에 나오는 근엄한 스승처럼 굴었던 아기곰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공포에 질린 채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솜방망이로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

에휴, 설마 뒷수습은 생각도 안 하고 그런 거냐…….

게이트 처리한다고 나갔다가 얼굴이 이 꼴이 돼서 돌아오면 공포의 군주가 분노할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을 했어야지…….

‘에휴, 할 수 없지.’

[ 아웅아! ]

나의 부름에 콜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북극곰이 잽싸게 문밖으로 달려 나왔다.

“아, 아웅!?”

그리고는 시퍼렇게 멍든 봉식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 손에서 하얀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아웅이의 회복 마법 덕분에 퍼렇게 멍들었던 봉식이의 얼굴은 금세 평소처럼 무시무시한 상태로 돌아왔고, 그 모습을 본 아기곰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 후, 훌륭하구나, 아웅이! 과연 이 몸의 분신답다! ]

음, 설마 아웅이가 회복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생각못할 정도로 당황했던 거냐.

“아웅!”

칭찬을 받은 아웅이가 절도있게 고개를 숙이자, 고미는 웃으며 미니 모드로 변한 G-3를 꺼내 들었다.

[ 좋다, 상으로 다음에 이 몸의 버스에 태워주마! ]

“아웅!?”

마도 공학 페달 카트에 타는 것을 허락받은 아웅이는 대단한 포상을 받은 사람, 아니, 곰처럼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이건 또 신선한 방식의 포상이네. 초코바나 꿀을 줄줄 알았는데.’

[ 오오, 그리고, 이것을 받거라. 수다르의 항아리에서 숙성시킨 초코바이니라. ]

이어서 고미는 자신의 귀한 숙성 초코바를 아웅이의 손에 쥐여주며 연신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고미하면 초코바지.

“아, 아웅!”

초코바를 받아든 백곰은 신이 나서 새하얀 꼬리를 흔들며 가게로 들아갔고, 우리는 평소처럼 흉악한 인상으로 돌아온 봉식이와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아들들, 주변에서 게이트 열렸다는데, 거기 갔다 온 거야? 다친 데는 없어?”

예상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어머니가 달려 나와 우리의 상태를 살폈다.

[ 우, 우웅! 거, 걱정할 것 없느니라! 위, 위대한 이 몸이 있는 한 무, 무엇도 가족들을 다치게 할 수 없느니! ]

음……. 고미에게 이럴 때는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다는 걸 가르칠 필요가 있겠군.

그렇게 더듬더듬 대답하면 없던 의심도 생기지.

“흐으음…….”

아니나 다를까, 순수한 아기곰의 행동에 공포의 군주의 눈이 의심으로 물들었다.

“사모님!”

하지만 뒤쪽에 있던 손님 하나가 타이밍 좋게 어머니를 불러준 덕에 상황은 무사히(?) 종료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도 아니고, 두 눈 말똥말똥 뜨고 봉식이가 두들겨 맞는 걸 지켜봤다는 사실이 발각됐다면, 공포의 군주의 등짝 스매싱이 날아왔을지도…….

[ 우우, 수하. 여, 역시 엄마는 무섭구나. ]

공포의 군주가 잠시 물러난 사이, 나는 고미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고미, 꼭 그런 방식으로 해야 해?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봉식이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가족 바라기인 이 녀석이 갑자기 평소답지 않게 군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

적어도 나와 수련을 할 때는 내가 최대한 다치지 않는 방식을 취해왔고, 숲속 친구들을 강하게 만들어 줄 때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 질문에, 고미는 나와 봉식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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