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7 마도공학 페달카트 G-3
‘혹시 저 안에 뭔가 힌트가 들어 있는 건가?’
나는 빠르게 곰기에 의해 해체된 박스 위에 놓여있던 책자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책자의 표지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 기적의 마도 공학 페달 카트, G-3! >>
<< 누구나 갖고 싶다, 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는 없다. >>
<<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당신을 위한 특별한 마도 공학 페달 카트! G-3! >>
······.
하아, 이게 관리자의 개그 코드인 걸까?
혹은 정말로 이계의 고급 유아용품 판매상에게 구매한 수제 페달 카트라던가.
그런데, 다른 차원에도 페달 카트가 존재하나?
[ 오오, 수하! 그것은 무엇이냐!? ]
금세 자신의 첫 번째 애마, G-3호에 적응한 아기곰이 살살 페달을 밟아 나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 페달 카트 이름이 쥐-쓰리래.”
[ 우웅? 뭔가 묘한 이름이구나. ]
한숨을 내쉬며 책자를 넘기자, G3호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적혀 있는 페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 For the GOMI, By the GOMI, Of the GOMI. >>
고미를 위한, 고미에 의한, 고미의, 가장 완벽한 탈 것.
Golden God Gomi 호. (약칭 G-3)
<< 드라고니아산 미스릴 합금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프레임, 드래곤에게 밟혀도 부서지지 않는 단단함, 최고의 드워프 장인이 만들어 낸 완벽한 밸런스와 유려한 바디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세요! >>
진짜 아동용품 카탈로그처럼 만들어진 책자에는 전문 포토그래퍼가 찍은 것처럼 제법 멋스러운 G-3호의 사진이 떡하니 붙어있었고, 아래에는 각 부위의 상세한 규격까지 밀리미터 단위로 표기되어 있었다.
‘너무 디테일한데······. 확실히 여기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
[ 오오! 오직 이 몸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라니, 참으로 훌륭하구나! 생각해보니 쥐-쓰리라는 이름도 제법 괜찮은 것 같다! ]
한편, 드라고니아산 미스릴 합금이라는 문구를 발견한 제르보나 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G-3호의 유려한 바디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왜 그러세요?”
드라고니아라면······. 대충 드래곤하고 관련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뭔가 아시는 게 있는 건가?
“드라고니아산 미스릴은 드래곤들의 아티팩트를 만드는 데 쓰이는 최상급 금속입니다······. 저희 주군이 고미님을 위해 만들어주신 스카프 역시 드라고니아산 미스릴을 주군의 마력으로 직조해 만든 것입니다.”
······.
그러니까, 지금 그런 값을 따질 수 없는 금속으로 아동용 페달 카트를 만들었다는 소리?
“진짜 드라고니아산 미스릴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합금이라 해도 그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강도라는 면에서는 순수한 미스릴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대신 특별한 기능을 가지게 되니까요.”
“특별한 기능이요?”
나의 질문에 제르보나 씨의 뒤에서 입을 쩍 벌린 채 G-3호를 바라보던 이강혁 씨가 대신 답을 내놓았다.
“어떤 물질을 섞었느냐, 제작 과정에서 무엇을 넣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합금에 사용된 금속이나 아이템의 속성, 마법의 효과 등을 증폭시키는 기능입니다.”
이어지는 이강혁 씨의 설명에 따르면, 던전에서 나오는 S급 아이템, 혹은 그 이상의 아이템 중 상당수가 드라고니아산 미스릴 합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뭐, 아이템의 원재료가 밝혀지는 것은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에 대한 연구가 조금 더 진척된 후의 일이지만.
여하튼 엄청나게 귀한 금속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 그럼, 이거 시가로 얼마나 할까요?”
“이 정도 크기면······. 미스릴의 비율에 따라 다르지만, 집 한 채 값은 가뿐히 넘어갈 겁니다.”
그러니까, 생긴 게 아동용 페달 카트일 뿐, 가격은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같은 슈퍼카 못지않다 이건가.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슈퍼카가 눈앞에 있고만······.’
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G-3호의 가격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책자의 문구 어딘가에 숨어있을 힌트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했으니까.
물론, 생에 첫 애마를 갖게 된 아기곰께서는 나와 생각이 좀 다른 듯싶었지만.
[ 오오오! 수하, 그렇다면 이 몸의 전용 버스에 무언가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 아니냐! 어서! 어서 다음 장을 넘겨 보거라! ]
<< 갓-고미의 힘찬 페달링에도 버틸 수 있는 완벽한 강도의 미스릴 합금 페달, 웅혼한 기상을 담은 힘찬 페달링으로 진짜 자동차를 앞질러 보세요! >>
이, 이런 미친······. 이 어처구니없지만 충분히 실현 가능해 보이는 문구는 대체 뭐냐.
설마 전동 카트가 아닌 게, 고미의 발로 직접 밟으면 속도에 한계가 없을 거라는 황당한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
“고, 고미. 절대 안 돼. 절대로, 절대로 버스보다 빨리 달리면 안 돼.”
하지만 S급 아이템과 맞먹는 강도의 쇳덩이에 고미의 속도가 합쳐지면, 그야말로 도로를 달리는 흉기나 다름이 없다.
뭐, 사고가 나도 고미는 무사하겠지.
문제는 상대방이 요단강을 건넌다는 거다.
[ 우, 우웅······. 알았느니라······. ]
너무 빨리 달리면 안 된다는 말에 고미는 조금 서운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 이 몸이 직접 카트를 몰아 롤러코스터처럼 벽면을 타고 옆으로도 달려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안 되는 것이냐? ]
역시, 이미 나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충격적인 놀이 방식을 상상하고 있었군.
“아, 안 돼. 그건 사람들이 없는 데서. 다음에 나랑 놀러 가서 하자.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렇게 달리다가 부딪히면, 너랑 부딪힌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
[ 흐으음······. 알았느니라! 사람들이 다쳐서는 안 되지! 물론 이 몸은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지만, 비실비실한 녀석들은 번개 같은 이 몸의 움직임을 피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
고미의 대답에 나는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키는 녀석이니, 이걸 타고 사고를 치는 일은 없겠지.
‘아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 슈퍼 먼치킨 아기곰이 착한 심성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이 페달 카트는 S급 몬스터보다 위험한 도로 위의 흉기가 되었을 텐데······. 정말 감사합니다.
[ 수하, 어서 다음 장을 보여다오! ]
흥분한 아기곰이 카탈로그를 넘겨보라고 외치는 순간,
‘응?’
어디선가 서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 우웅!? ]
고미 역시 그 시선을 느꼈는지, 곧바로 고개를 돌려 그 한기 어린 시선의 주인을 찾아냈다.
[ 네, 네 이놈! ]
고미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자, 차가운, 아니, 뜨거운 눈으로 G-3호를 바라보고 있는 아기 판다의 모습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 감히 이 몸의 것을 탐내다니! ]
으음······. 이 두 녀석은 언제쯤 친하게 지내려나.
사실 유아교육 차원에서 보면, 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는 것은 갈등을 유발하는 행동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회성 제로의 관리자가 그런 것까지 배려해 줄 리는 없지.
심지어 다웅이만큼은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아웅이마저 힐끔힐끔 G-3호를 훔쳐보고 있었다.
다만 둘 모두 아르바이트(?) 중인지라, 밖으로 뛰쳐나와 고미와 카트 쟁탈전을 벌이지는 않았다.
‘다웅이도 의외로 성실하구나. 아니면 엄마에 대한 공포가 욕망을 압도하고 있는 건가.’
확실히 나도 한번 타보고 싶은 제법 멋진 생김새의 놀이도구이기는 하지만······.
‘안 되겠네······. 아웅이랑 다웅이도 비슷한 거 하나 사줘야겠다.’
마도 공학 페달 카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저 녀석들을 위해서도 뭔가 사주지 않으면 곰 세 마리 사이에 내전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뭐, 보기에는 제법 귀엽겠지.
하지만 이 곰돌이 셋의 싸움을 말리느니, S급 보스 몬스터를 잡는 게 훨씬 더 안전할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카탈로그를 넘기자, 더욱 황당한 기능들이 주르륵 눈에 들어왔다.
<<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수납할 수 있다! G-3호, 미니 모드! >>
그 문구를 본 고미는 잽싸게 핸들 아래를 더듬어 버튼 하나를 눌렀고,
“워어······. 개 쩌네. 이거 나도 갖고 싶다. 내 차에도 이런 기능 있으면 주차 걱정 안 해도 될 텐데.”
곧장 봉식이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게, 지금 G-3호는 거의 열쇠고리 크기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으니까.
[ 오오오! 수하! 이 정도로 줄어든다면 정말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수납할 수 있겠구나! ]
고미는 이미 G-3호에 홀딱 빠진 듯, 카탈로그에 있는 문구를 그대로 외워버리고 있었다.
미니모드 외에도 G-3호에는 몇 가지 기능이 더 붙어있었지만, 나는 어디서도 이거라고 확신할만한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더럽게 어렵게 꼬아놨네······. 퀘스트는 그렇게 쉽게 주면서.’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힌트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껄껄껄! 김수하 씨!”
저 멀리 한눈에 확 들어오는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아저씨 하나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뒤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상당히 무뚝뚝한 인상의 사내 하나를 비롯해 블랙 메이지의 길드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함께였다.
“응?”
노인국 씨? 아니, 그보다 개업식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지?
“이강혁 씨, 혹시 노인국 씨한테 저희 부모님 가게 연다고 말씀하셨어요?”
나의 질문에 이강혁 씨는 자신도 의외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와주시면 당연히 고맙기는 하지만, 그냥 궁금하잖아.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오오, 우리 고미 선생에게 아주 멋진 자가용이 생겼군.”
[ 오오, 문어 할아범! 너도 신의를 지키기 위해 온 것이냐 ! ]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갚을 줄을 알아야지! 게다가 내가 회를 아주 좋아하거든!”
고미와 노인국 씨가 인사를 나누고 있는 사이, 뒤에 있던 무뚝뚝한 인상의 사내가 이강혁 씨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박 실장? 어떻게 노인국 씨랑 같이 왔어?”
그제야 나는 그 사내가 이전에 헬리콥터를 타고 던전에 갔을 때 수제 초콜릿 선물 세트를 들고 왔던 선글라스를 쓴 남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워낙 잠깐 봐서, 잘 기억이 나지 않았거든.
“아, 길드장 님이 개업식에 꼭 오라고 하셔서, 얼마 전에 친해진 블랙 메이지의 길드원에게 연락을 했더니, 그분이 노 길드장님에게 연락을 하셔서······.”
이어지는 대화를 들어보니, 세 길드의 실무자들 간에는 벌써 이런저런 회의가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블랙 메이지의 길드원들은 순식간에 저스티스와 용왕의 길드원들과 친해졌다고.
‘음······. 블랙 메이지가 세 길드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다니, 굉장히 신선한 전개네.’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다.
히키코모리 길드라고 불리던 블랙 메이지가, 이런 역할을 맡게 될 줄이야.
그때, 박 실장이라는 분의 옆에 서 있던 30대의 여자분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블랙 메이지에서 던전 관리를 맡은 이희정이라고 합니다! 오늘 아주 중요한 행사가 있다고 해서 와봤습니다! 이분이 고미 선생님이신가요?”
이, 이분도 옷차림이 화려하시네. 게다가 텐션이 범상치 않다. 옆에 붙어있으면 지속적으로 나의 HP를 갉아먹을 것 같은 느낌이······.
“얘들아, 화환.”
이희정 씨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뒤쪽에 있던 길드원들이 후다닥 화환을 가게 앞에 내려놓았다.
“곧 있으면 저희 길드 애들 말고 용왕이랑 저스티스에서도 회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올 거예요. 제가 매너 좋고 해산물 좋아하는 사람들로 잘 섭외해 놨거든요. 적당히 시간차를 두고 가게를 찾은 다른 손님들이 그냥 돌아가시지 않게 투입하겠습니다.”
······.
아, 아니, 이렇게까지 계획적으로 움직이실 필요는 없는데.
그렇게 고마움과 당혹감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약간의 난감함을 느끼고 있을 때,
[ 수, 수하! 큰일이다! ]
고미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전음을 보냈다.
“길드장 님!”
그와 동시에 이희정 씨가 자신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노인국 씨를 불렀다.
그 순간, 가슴에서 스멀스멀 불길한 예감이 피어올랐다.
“고미, 설마······.”
[ 멀지 않은 곳에서 괴수들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
“주위에 A급으로 추정되는 게이트가 생성되고 있다고 합니다!”
여, 역시······. 왜 개업식날 가게 근처에서 게이트가 열리고 그러냐! 이건 좀 너무하잖아!
그렇게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눌러 참고 있을 때,
[ 수하! 한시가 급하다! 어서 이 몸의 카트에 타거라! ]
고미의 목소리가 나의 귓등을 때렸다.
고개를 돌려보자,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철커덩, 철커덩’하는 웅장한 효과음과 함께 G-3호의 모습이 변하는 것이 선명하게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벼, 변신? 이건 또 무슨 기능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