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66화 (166/300)

EP.166 초보웅전자입니다

“나이스, 김수하.”

내가 손목을 붙잡기 무섭게 봉식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관리자의 어깨에 솥뚜껑만 한 양손을 턱 하니 올렸다.

“아하하하······. 김수하 씨, 이러지 말죠. 지금 이 몸은 평범한 인간이라 그쪽 힘으로 때리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관리자의 입가에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으음······. 이래봤자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건 어차피 가짜 몸이고······.”

“가짜 몸인 것 치고는 회를 맛있게 먹던데. 본체가 타격을 입든 말든, 그 몸이 느끼는 감각은 그대로 전해지는 거 아닌가?”

이강혁 씨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덧붙이자, 관리자의 얼굴이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 이러지 마시죠. 고미님, 친구분들을 좀 말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다급해진 관리자는 고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 으, 으음······. ]

언제나 정의의 편이었던 우리의 히어로마저 아동 학대범에게 베풀 자비는 가지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일단 붙잡기는 했는데,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이제 막 개업한 가게에서 이 녀석 뺨을 후려갈기는 짓을 할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이 자식, 설마 이걸 노리고 일부러 가게로 찾아온 거 아니야?’

화원이나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보자마자 뺨부터 후려갈겼을 거다.

하지만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깽판을 부릴 수는 없으니까.

[ 봉식아, 일단 놔줘. 가게잖아. ]

내가 전음을 보내자, 봉식이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녀석의 짤막한 한마디에 관리자의 이마에서는 비 오듯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가, 감사합니다.”

겁을 먹은 관리자의 표정에서, 나는 오래전 내가 세웠던 가설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자식, 약해.’

그것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시스템조차 무력으로는 고미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가짜 몸을 빌렸다고 한들 이 정도로 물리력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본체(?)는 사정이 다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놈은 일반인이나 다름이 없다.

게다가 꼴을 보아하니 이 상황에 상당히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설마 이 상태로 타격을 입으면 본체에도 뭔가 문제가 생긴다거나?’

확인할 수 없는 가설이지만, 이놈이 맞거나 다치는 걸 비정상적으로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이 상황을 어떻게 활용하는 게 가장 좋을까 하는 쪽으로 머리가 굴러갔다.

‘그래, 전에도 해고될지도 모르면서 굳이 화원에 와서 나와 접촉했지. 즉, 그 규칙이라는 게 절대적인 건 아닌 거야.’

적어도 상황이 급해지면 얼마든지 약간의 편법을 동원할 수는 있는 수준이겠지.

규정 위반이니 어쩌니 하는 말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어? 잠깐······.’

설마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중요한 정보는 제공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가······.

‘그럴 리가 없지. 이런 악랄한 놈이.’

설마, 이놈이 자기가 규정을 위반하고 정보를 제공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이런 식으로 행동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럼 안 때릴 테니까 몇 가지만 물어보죠.”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일단 우리 선에서 확인할 수 없는 정보를 가진 거의 유일한 존재가 관리자니까. 모처럼 왔는데 확인이라도 해보자.

“김수하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의외로 악당 같은 구석이 있군요.”

“그럼 그냥 맞으실래요?”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태세 전환 보소. 범퍼카 드리프트가 울고 가겠네.

“가짜 고미의 존재, 알고 있었죠?”

지금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역시 가짜 고미다.

만수왕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야 그렇다 쳐도, 그 가짜 고미의 실력은 미지수니까.

게다가 그 ‘세 번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녀석이라면, 틀림없이 그게 놈들의 비장의 패일 거다.

“음······. 한 번에 핵심을 짚으시네요.”

나의 질문에 시종일관 멍하던 관리자의 얼굴에 처음으로 진지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 자식, 정말로 이 얘기를 해주려고 일부러 이 상황을 만든 건가?’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상식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진짜 고미를 좋아하는 건지 아닌 건지, 도통 감이 안 잡히는 해괴한 캐릭터.

하나 확실한 건, 얄밉다. 보고 있으면 왠지 화나. 좋은 뜻으로 이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도, 역시 짜증난다.

[ 흥! 진정한 곰은 세상에 이 몸 하나뿐이다! 가짜 곰 따위가 이 몸의 상대가 될 리가 없느니! ]

가짜 고미 이야기에 흥분한 오리지널 곰돌이는 솜방망이를 움켜쥐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뭐, 애초에 이 슈퍼먼치킨이 자신감이 없었던 적이 있기나 하겠냐만······.

그러나, 그 말을 들은 관리자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뭐, 저도 그렇다고 대답해 주고 싶지만, 상황이 생각하는 것처럼 녹록지는 않네요.”

[ 뭣이!? 그 가짜가 위대한 이 몸보다 강하다는 것이냐!? ]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충분히 위험하다는 말씀 정도는 확실히 드리고 싶네요. 적어도 만수왕이나 황금의 군주만큼은 강할 겁니다. 그것보다는 앞으로도 더 강해질 예정이라는 게 문제죠.”

역시, 예상대로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애초에 그런 걸 만들려고 애쓰지도 않았겠지.

“약점이나, 더 강해지기 전에 처리할 방법은 없나요?”

“그런 걸 알고 있다면 상황이 어렵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겠죠? 게다가 저희 쪽도 그렇게 많은 걸 알고 있는 상태는 아니라서요.”

뭔가가 이상하다. 고작 ‘모른다’는 얘기나 하려고 여기까지 왔을 리는 없을 텐데······.

“그럼 대체 여기까지 왜 온 거예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꼭 제가 일부러 이 말을 하려고 온 것 같잖아요. 전 지금 협박을 당해서 중요한 정보를 흘리고 있는 것뿐이에요.”

······.

지금 그 말, 뭔가 더 끌어내 보라고 요구하고 있는 거로 받아들여도 되지?

약점도 모른다, 강해지기 전에 처리할 방법도 모른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녀석이 왜 온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황금의 군주나 만수왕하고도 원만하게 처리하시길 바랄게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정보는 이게 다예요. 이 이상은 때려죽여도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힌트는 여기가 끝이다’라는 선언과도 같은 이야기.

하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흘려들을 수 없는 경고의 메시지로 들리는 건 왜일까.

‘여기서 끝이다, 라는 건, 이미 단서는 다 말해줬다는 소리겠지? 그게 아니라면 애써 이런 연극을 하지도 않았을 테고.’

말을 마친 관리자는 그대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전 가봐도 되죠?”

내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자, 그는 피식 웃으며 문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참, 개업식 선물이라고는 뭐하지만, 고미를 위한 선물을 하나 가지고 왔어요. 문 앞에 있으니까, 잘 쓰세요. 고미가 좋아했으면 좋겠네요.”

[ 우웃!? 선물!? ]

선물이라는 말에 신이 난 솜뭉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오도도 달려 나갔다.

[ 오오! 수하! 이것은 무엇이냐? ]

문 앞에는 사람 하나쯤은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만한 커다란 박스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이런 게 언제부터 있었지?’

도저히 무시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닌데, 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을까.

“야, 이거 열어봐도 되는 거냐? 열면 뭐 이상한 거 튀어나오는 거 아니야?”

봉식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박스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을 줄 고미가 아니었다.

우두두둑!

갈색 솜뭉치가 가볍게 팔을 휘두르자, 곰기에 의해 커다란 박스가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지며 그 안에 들어있던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언박싱계에 새바람을 몰고 올 박스 개봉방식이군······.

[ 오오오오옷! ]

박스 안에 들어있던 황금빛 물체가 위용을 드러내는 순간, 고미의 입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

반면 봉식이는 안에 든 물건을 보고도 뭔지 모르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선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자전거인가? 아닌데.”

페달이 달려있기는 한데, 바퀴가 네 개다. 세발자전거는 봤어도 네 발 자전거는 본 적이 없는데······.

아니 뭐, 바퀴가 네 개든 다섯 개든 상관은 없지만, 핸들의 모양이 자전거의 그것이 아니라 꼭 자동차의 운전대처럼 생겼다.

“아, 이거 페달 카트네요.”

그 기묘한 물체의 정체를 알아본 것은, 바로 한유진 씨였다.

“요즘 어린애들이 많이 타는 거예요. 페달로 움직이기는 하는데, 자동차처럼 운전할 수 있어요.”

[ 우오오오오! 수하! 이것이다, 이 몸에게 딱 어울리는 탈 것이구나! 크기는 작지만, 곳곳에서 웅혼한 기상이 느껴진다! ]

뜻밖의 선물을 받은 고미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로 발을 동동 굴러댔다.

‘괴, 굉장하군.’

제2의 자아, 꼬리콥터가 풀가동된 것은 물론이고, 상식을 벗어난 속도의 발 구르기로 인해 잔상이 남을 정도.

음······. 그간 고미를 혼자 둔 것에 대한 사과의 선물이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제법 멋진 선물인 건 사실이다.

게다가 생김새도 제법 멋진 것이, 고미와 비슷한 – 정신연령이라는 측면에서 –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선물이기는 했다.

늘씬하게 빠진 차체와 힘이 느껴지는 굵직하고 단단한 프레임, 고미의 취향에 딱 맞는 커다랗고 두꺼운 바퀴에, 한눈에 보기에도 편안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시트.

그리고 핸들 아래에 붙어있는, 자동차로 치자면 보닛에 해당하는 부위에는 커다랗게 ‘G’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 오오! 수하! 보거라! 이 웅혼한 기상이 느껴지는 필체를! 위대한 이 몸의 이름의 첫 글자가 새겨져 있구나! ]

무엇보다 고미 본인이 이렇게 좋아하니, 왜 진즉에 이런 선물을 해주지 못했을까 미안할 정도다.

뭐, 내가 페달 카트라는 아동용 탈 것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점이나, 고미의 힘을 견딜만한 자전거나 페달 카트가 없을 것 같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지.

[ 오오, 오오오오······. 수하! 이 녀석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구나! ]

흥분을 이기지 못한 고미는 두 눈을 반짝이며 잽싸게 페달 카트의 시트 위로 폴짝 올라탔다.

하지만 곧 한가지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 우웅? 그런데 이 녀석은 왜 움직이지 않는 것이냐? ]

이 녀석, 페달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

“고미, 거기 아래에 등자 같은 게 있지? 거기에 발을 올려 봐.”

손가락으로 페달을 가리키자, 고미는 번개처럼 짜리몽땅한 다리를 움직여 페달 위에 도톰한 젤리를 올려놓았다.

“자, 이제 다리를 움직여봐. 이렇게, 이렇게, 원으로. 천천히 해. 갑자기 세게 밟으면 부서질지도 모르니까.”

나는 검지로 원을 그리며 페달의 원리를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보통의 아이라면 다치거나 어딘가에 부딪힐까 봐 걱정이 돼서 천천히 움직이라고 말하겠지만, 운전자가 고미라면 카트가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게 당연하지.

[ 우, 우우웃! ]

시트에 앉은 아기곰이 살얼음판을 걷듯 아주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이자, 황금색의 페달 카트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오, 오오오오! 수, 수하! 이, 이녀석이 움직이고 있느니라! ]

“음, 이런 선물까지 준비한 걸 보면, 관리자도 미안하긴 했나 봅니다. 게다가 곰 선생님 취향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군요.”

행복한 표정으로 페달을 움직이고 있는 초보웅전자를 바라보던 이강혁 씨가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런 순수한 이유일까?’

하지만 나는 그 생각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단순히 그놈에 대한 악감 때문이 아니라, 이 선물 역시 그 녀석이 남기고 간 모종의 힌트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체계를 변화시키든, 안정시키든, 놈은 확실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어. 게다가 자기 입으로 감정이라는 걸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고. 그런 녀석이 순수하게 미안하다는 이유로 선물을 한다는 건······. 믿기 어려운데.’

그렇게 생각에 잠겨 고미의 첫 시승식(?)을 감상하고 있을 때······.

박스 위에 놓인 작은 책자 하나가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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