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5 가긴 어딜 가
“아, 안녕하세요.”
흰 셔츠에 청바지. 말끔하게 빗어 올린 머리.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말을 할만한, 평범함을 형상화한 것 같은 차림새와 외모.
무엇보다 사회생활 능력이 한없이 제로에 수렴할 것 같은 강렬한 너드의 향기······.
“당신이 여기······ 왜?”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이강혁 씨와 한유진 씨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어서 고미도 꼬리를 바짝 세운 채 관리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 상황을 요약하면, ‘개업식에 신이 찾아왔습니다’ 정도일까?
농담이라고 하기에도 지나치게 어이가 없고, 맥락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뭐, 본인은 부정했지만, 어쨌든 가장 비슷한 대상을 찾아보자면 역시 신에 가까운 존재니까.
“어······. 뭔가 이상하네요. 결혼식, 장례식, 졸업식, 개업식, 이런 건 찾아가는 게 예의라고 들었는데. 제가 잘못 찾아온 건가요?”
······.
언제부터 졸업식, 개업식이 결혼식, 장례식과 동등한 지위를 얻었는지는 차치하고, 우리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정말 이해를 못 해서 물어보는 건가?
[ 오오, 그렇구나. 너도 신의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더냐! 훌륭하다! 어서 이리 와서 앉거라! 아빠의 요리는 최고이니라! 한 번 맛을 본다면 너도 틀림없이 또 오고 싶어질 것이다! ]
하지만 우리와 달리 관리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순수한 아기곰은 솜방망이를 두드려대며 녀석을 반겨주었다.
심지어 어설프지만, 단골을 만들기 위한 호객 멘트까지······.
‘아니지, 고미 성격에 그런 걸 생각하고 말한 건 아닐 테니까.’
어쨌든, 관리자씩이나 되는 존재가 정말 순수하게 개업을 축하해 주러 올 리는 없었다.
전에 만났을 때, 이놈은 ‘허가 없이 나온 거라 인간으로 치자면 해고 사유다.’라는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그것도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곳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러니까, 아마 이곳에 찾아온 건 틀림없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겠지.
“응? 수하야, 이분도 네 친구니?”
회를 내오시던 어머니가 관리자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 이걸 뭐라고 답해야 하나.’
“안녕하십니까. 김지훈이라고 합니다.”
응? 이름도 생기셨어? 뭐야 그 생김새 못지 않게 흔한 이름은.
설마 지난번 그 일로 잘려서 진짜 평범한 인간으로 강등당했다던가, 그런 이유로 찾아온 건 아니지?
“안녕하세요. 수하 엄마예요. 요즘 우리 아들이 새 친구가 많이 생겼네. 이분도 헌터니?”
어머니의 질문에 관리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극히 평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저는 그런 게 아니고요. 관······.”
이, 이런 미친 돌아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어, 어, 헌터는 아니고, 저스티스에서 관리직하고 계신 분이야.”
당황한 내가 말을 가로막자, 정신 나간 관리자는 잠시 망설이다 이내 말을 멈추었다.
“아, 그럼 이강혁 씨 회사 동료분이구나. 아이고, 고마워요. 개업했다고 이렇게 찾아와 주고.”
어머니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생긋 웃으며 회를 내려놓았다.
“힘든 일 하시는데, 항상 몸조심하시고, 우리 아들들도 잘 부탁드릴게요.”
“아닙니다. 지금 제가 부탁을 하는 입장이라, 아들분이 보기보다 단호한 구석이 있더군요. 얼마 전에는······.”
“흠흠!”
내가 헛기침을 하자, 관리자는 또다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이 자식이······. 혹시 시스템 창 뒤에 숨어서 관리만 하는 이유가 이런 성격 때문은 아닐까?
장담하는데, 이놈이 직접 나서서 일을 진행하면 될 일도 안 될 거다.
대체 뭘 잘못 먹으면 남의 집 개업식에 와서 ‘제가 신이랑 비슷한 건데요’라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댈 수 있는 거냐.
“어, 엄마. 얼른 손님 받아야지.”
다른 손님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는 살짝 미소를 지은 뒤 이내 자리를 옮겼다.
눈치가 빠르신 분이니, 뭔가 일 이야기나 자신이 있으면 불편한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생각하신 거겠지.
나는 어머니가 완전히 테이블을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온 거예요? 설마 관리자 자리에서 잘리거나 그런 건 아니죠?”
“푸하하하하!”
해고당한 건 아니냐는 질문에 관리자는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이전에 홀로그램으로 나타났을 때와는 달리, 정말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소리와 표정.
게다가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해보려던 이전의 억지 웃음과는 달리, 진짜로 엄청난 농담을 들은 것처럼 웃고 있다.
“아하하하, 아, 수하 씨, 그새 유머 감각이 느셨군요.”
······.
이거, 웃긴 대목이었나?
하지만 나를 비롯해 자리에 있던 누구도 웃지 않자, 관리자의 표정은 다시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멍한 상태로 돌아왔다.
“아, 농담이 아니었구나. 뭐, 어쨌든, 오늘은 그때랑 달라요. 정식으로 허가받고 외근을 나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임시지만 몸도 받았고요.”
말을 마친 관리자는 묻지도 않고 젓가락을 들어 회를 한 점 집더니 잽싸게 초장에 찍어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오오, 맛이 좋네요. 장사가 잘 될 것 같습니다. 이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이 자식이······.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안 하고 대뜸 음식부터 손을 대는 거냐.
그리고 왜 관리자씩이나 돼서 가게의 성공 여부까지 걱정하고 있는 건데.
[ 후훗, 위대한 이 몸의 아빠가 만든 요리이니, 맛이 없을 리가 없지 않느냐. ]
그러거나 말거나, 음식에 대한 칭찬에 신이 난 고미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아니야, 고미······. 지금 네가 그런 리액션을 해주면 안 된다고, 이 순박한 영혼 같으니.
“이봐요. 당신 사회성에 문제 있는 건 알겠는데, 먹을 때 먹더라도 최소한 물어는 보고 먹어야죠. 갑자기 남의 테이블에 턱 하니 앉아서 냉큼 집어먹는 건 어디서 배운 짓거리예요? 게다가 하면 안 되는 소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픽픽해대면서,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안 하고.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때, 관리자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난 한유진 씨가 앙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그렇네요. 이곳의 음식 맛이 궁금했거든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래도 좋은 소식 들고 왔으니까 너무 화내지 마세요.”
“좋은 소식이요?”
어째 불안하다. 이놈이 좋은 소식이라고 해도 우리한테는 전혀 좋은 소식일 것 같지가 않다.
“네, 우선, 여러분이 대균열을 지켜주시면 정식으로 대가를 지급하기로 했어요.”
······.
노인국 씨, 감사합니다.
일을 하면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아름다운 상식이, 이런 비상식적인 놈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그래서 대가는?”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봉식이가 위협적인 표정으로 입안에 든 회를 우물거리며 물었다.
마치 ‘개소리하면 널 이렇게 씹어 먹어버릴 거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험악한 표정.
거기에 봉식이의 살벌한 외모가 더해지니, 그 짤막한 말이 거의 살해 협박처럼 들릴 지경이다.
“음, 그런데 저희가 현금 지급은 좀 어려워서요. 금 같은 거로는 안 될까요?”
······.
이 자식이, 지금 월급을 현물로 주겠다는 거냐.
“아니, 무슨 관리자가 돈도 못 만들어요?”
“음······. 특정한 지역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만드는 건 불법이라서요.”
“금을 주는 건 괜찮고?”
“네.”
정말이지 황당하군.
대체 무슨 근거로 되는 것과 안 되는 게 정해진 걸까. 금은 줘도 되고, 현금은 안 된다니.
“얼마나 줄 건데요?”
“으음, 이곳 시세로 따지면······. 한 번 근무를 설 때마다 100g 정도가 될 것 같네요.”
“봉식아, 금 시세 쳐봐라.”
나의 말에 봉식이는 잽싸게 스마트폰을 꺼내 금 시세를 검색해 보고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관리자를 바라봤다.
“하루 근무에 800만 원을 주겠다고?”
관리자님, 감사합니다.
제가 선생님을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워라벨 라이프가 이미 눈앞에 펼쳐져 있었네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무례를······.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면 어떻습니까. 결국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 우, 우웃! 그럼 초코바를 백 개, 아니 천 개는 살 수 있구나! ]
구체적인 액수를 들은 고미는 잽싸게 그것을 자신의 기축 통화라고도 할 수 있는 초코바로 환산해 보고는 놀란 듯 두 눈을 치켜떴다.
이번에도 계산이 한참 잘못된 것 같지만, 그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넘어가자.
“그건 기본 수당이고, 몬스터가 나왔을 때 그걸 처리하면 등급에 따라 추가 수당이 나갈 거예요. 아마 이쪽이 더 수입이 클 거고요.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야말로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는 제안.
고미의 안전과 복지는 확보됐으니, 이런 현실적인 문제도 따져볼 때가 됐지.
먹고 살려면 돈이 필요하고, 가족들이 모두 일하느라 바쁘면 외로움을 잘 타는 우리 아기곰 선생께서는 매일매일 우울한 하루를 보내게 될 거니까.
모처럼 대균열을 벗어나 현세에 머물게 됐는데, 매일 가족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삶을 살게 할 수는 없지.
어쨌든, 기껏해야 일주일에 하루 이틀 일하고 회당 800이면······.
적어도 나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한 달 내내 일하고 8000을 받는 것보다 더 좋은 조건이다.
난 죽도록 일하고 쓰지도 못할 만큼 엄청난 돈을 통장에 쌓아두고 사는 것보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벌어서 여유롭게 사는 게 목표인 사람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출처 불명의 금붙이를 매번 팔아대면 분명히 문제가 생길 테니까.
‘그렇다고 장물아비를 섭외해서 밀거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관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걱정 마세요. 그 부분은 저희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밀거래라던가, 그런 건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대체 왜 기본적인 예절이나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눈치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이런 쪽에서만 눈치가 빠른 거냐.
“그리고 두 번째 좋은 소식.”
[ 오오, 어서 말해 보거라! ]
초코바 천 개라는 거금에 눈이 먼 아기곰은 신이 나서 아무런 의심 없이 두 번째 좋은 소식에 관해 물었다.
“무신과 패왕 길드가 당신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게 어딜 봐서 좋은 소식이죠?”
무심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놀리던 이강혁 씨가 기가 차다는 듯 관리자를 노려보며 물었다.
“어······. 좋은 소식 아닌가요? 무신은 초월자입니다. 흑암처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면 근무자가 한 명 더 늘어날 텐데요. 문경준인지 뭔지 하는 그 인간도 사도가 되었으니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면 최소한 둘은 확보되는 건데······.”
“문경준이 사도가 돼요?”
이번에는 한유진 씨가 눈을 부릅뜨며 질문을 던졌다.
문경준이 사도가 됐다니, 뭐 이런 특급 정보를 예고도 없이 던져대는 거냐.
“네, 곧 당신들한테 싸움을 걸 것 같던데요.”
······.
이봐요, 좋은 소식이라며.
여태 중립을 유지하던 초월자 하나에 사도 하나가 적이 됐는데, 지금 진심으로 그걸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마 흑암 때보다는 훨씬 일이 쉬울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일을 이렇게 빨리, 그것도 이렇게 원만하게 해결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거든요.”
말을 마친 관리자는 황급히 회를 몇 점 더 집어먹더니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왠지 이번에도 제 할 말만 끝낸 다음 바람처럼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
“저, 저기요. 잠깐.”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친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관리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네?”
그러자, 예전과는 달리 진짜 사람의 팔목을 잡은 것처럼 생생한 촉감이 팔을 타고 전해졌다.
“이렇게 바로 가려고요? 물어볼 것도 있고, 아직 우리 사이에 해결할 것도 남은 것 같은데.”
“아, 물어보시는 거에 다 대답해 드릴 수는 없어요. 그것도 규정 위반이라. 그리고 제 생각이 맞다면, 지금 궁금해 하시는 것 중에 대부분은 대답해 드릴 수 없는 문제일 것 같은데요.”
말을 마친 관리자는 또다시 허공을 올려다보며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