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4 두곰두곰 개업식
띠링.
꿀 스카프가 걷히기 무섭게 알림음과 함께 꿀태창이 반짝 빛을 발했다.
그리고는, 기다릴 새도 없이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떠올랐다.
< 축하합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저, 정말? 이렇게 빨리?’
음, 어머니라면 고미의 작품을 반드시 알아봐 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보자마자 고민도 없이 한 번에 이해하신 거지?
그것도 세계 최고의 곰, 아니, 고미 학자인 나조차 분석이 어려웠던 작품을······.
< 해당 작품에 ‘내 눈에 곰깍지’ 스킬이 적용됩니다. >
이어서 스킬이 적용됐다는 메시지가 떠오르자, 이유찬 씨가 돌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뭔가 이상하군요······.”
“어······.”
봉식이 역시 이유찬 씨와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느낀 듯 고미의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상해. 이걸 보고 있으니까 뭔가 마음이 따뜻해져.”
“저도 그렇습니다. 미술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갑자기 뭔가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뭔지는 여전히 모르겠는데, 그냥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한 기분이 드는군요.”
[ 우웃! 봉식이! 검은콩! 정말이냐? 너희들도 이 몸의 작품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것이냐? ]
두 사람이 홀린 듯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에 웅티스트 선생님의 꼬리콥터가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고미의 작품에 빠진 것은 부모님과 숲속 친구들뿐만이 아니었다.
출근을 하던 직장인도,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하던 아이들도, 지나가던 행인들도, 고미의 작품을 보는 순간 약속이나 한 듯 잠시 발걸음을 멈춰 섰다.
[ 우우웃! 수, 수하! 인간들이! 인간들이 이 몸의 걸작을 알아보고 있다. ]
누군가는 몇 초, 누군가는 몇 분.
저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고미의 작품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저게 뭐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막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냐?”
“그러게······. 유명한 미술가 작품인가?”
“현대 미술인가 뭐 그런 거 아니야?”
“엄청 괴상하게 생겼는데, 보고 있으니까 괜히 엄마 생각나고 그런다.”
“어? 너도?”
감각을 강화해 귀를 기울이자, 곳곳에서 고미의 작품에 대한 감상평이 들려왔다.
웅티스트의 역작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첫 번째로는 발걸음을 멈추고, 두 번째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손에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것.
“어, 엄마······. 어, 아니, 그냥 잘 지내나 해서. 이번 주말에 시간 비는데······. 고기라도 사 갈게, 오랜만에 가족끼리 밥이나 먹을까?”
“응, 아빠······. 아니, 그냥 생각나서 전화해 봤어. 응, 운전 조심하고.”
사람들의 반응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졌다.
‘곰깍지’ 스킬에는, 틀림없이 매력 보정이 붙어있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잘 만든 미술 작품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상과는 조금 궤가 달랐다.
스킬의 효과는 매력 보정과 감상자가 작품에 담긴 고미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
그러니까, 저게 뭔지 정확히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가족들에게 전화를 건다는 건······.
‘저 안에 담긴 가족에 대한 사랑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는 거겠지.’
하지만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스킬 효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있었으니,
“우리 막내가 엄마 아빠 주려고 만든 거예요? 아이고, 예뻐라.”
“허허허, 이렇게 멋진 선물은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네. 우리 고미는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다 했을까?”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선물을 받고 기쁘지 않았을 리는 없다.
달성 조건 중 하나는 선물을 받은 사람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었고, 두 분이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면 퀘스트가 완료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저 처음부터 스킬의 효과 따위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감동했던 거겠지.
자식이 뭘 만들었는지,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와 무관하게, 부모에게는 그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선물이니까.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 대체 엄마는 어떻게 저걸 알아본 거지?’
혹시 감정스킬을 가지고 있다던가, 마인드 리딩 같은 능력을 각성한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 후훗! 어떠냐, 엄마, 아빠! 선물이 마음에 드느냐? ]
고미의 질문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약속이나 한 듯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고미가 이런 재주가 있는 줄은 몰랐네. 아웅이랑 다웅이가 가게 일도 도와주고, 고미가 이런 멋진 선물까지 만들어 줬으니까, 이제 엄마가 열심히 돈 벌어서 우리 아들들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장난감도 사주고 그래야지!”
“아빠도 열심히 일해서 우리 고미 갖고 싶은 거 다 사줄게!”
애정이 가득 묻어나는 두 분의 시선에 고미의 입가에도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 후훗! 걱정 말거라! 이 몸의 작품이 있으니, 더욱 많은 인간들이 가게를 찾을 것이다! ]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그럴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도 이걸 보고 저렇게 되지는 않지?’
한 가지 의문은, 나 역시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스킬 효과가 적용된 후에도 딱히 달라진 것을 못 느낀다는 점이었다.
‘제자라서 스킬 효과가 적용이 안 되는 건가? 아니면 정신방벽 때문에?’
뭐, 아무렴 어때. 사람들이, 가족들이, 고미의 마음을 알아줬으니 그걸로 충분하지.
“자, 그럼 오늘부터 장사 시작해야 하니까, 얼른 준비해야지.”
흐뭇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고미의 걸작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아버지의 어깨에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런 멋진(?) 선물을 받았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게 당연하지.
“그래, 얼른 일해서 우리 고미 맛있는 거 사줘야지.”
아버지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머니 역시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 오오! 이 몸도 돕겠다! ]
* * *
이후 우리는 힘을 합쳐 가게를 한 번 더 청소하고, 테이블과 주방을 정리했고,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을 점검한 뒤에 가게의 문을 열었다.
장사는 꽤 이른 시간에 시작됐다.
대체로 횟집이라는 게 술과 함께 먹기 위해 찾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보니, 이전에는 오후 늦은 시간부터 시작해 다음 날 새벽까지 장사를 했었다.
하지만 오늘 부모님은 12시부터 가게 문을 열었다.
횟집치고는 좀 이른 시간에 문을 여는 게 아닌가 했지만, 금세 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장사를 시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이고, 김 사장님! 드디어 장사 시작했네!”
“사장님, 오랜만이네요. 건강한 거 보시니까 너무 좋다. 이제 몸은 진짜 괜찮으신 거죠?”
가게 문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에 근처에서 장사를 했던 분들이 찾아오셨으니까.
갈비집 임 사장님과 사모님.
같이 밥도 자주 먹고, 우리는 고기 먹고 싶으면 임 사장님네 가게로 가고, 임 사장님은 회 먹고 싶을 때마다 우리 가게에 찾아오곤 했었지.
“어, 수하 많이 컸네. 못 알아보겠다.”
“봉식이는 여전히 크네.”
임 사장님 내외는 우리를 만나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다른 손님들도 대부분 예전 가게 주변에서 장사를 하셨던 분들이었다.
부모님은 그 골목에서 꽤 오래 가게를 운영했고, 주위 상인들에게 평판이 좋은 편이었으니까.
덕분에 이렇게 제법 먼 곳에서 가게를 열었는데도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있는 거고.
“어머! 언니, 왜 가게에 곰이 있어요?”
그때, 곰돌이 삼 형제를 발견한 사모님이 화들짝 놀라며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음······. 횟집에 아기곰이, 그것도 셋이나 있으면 놀라는 게 당연하지. 나라도 놀랐을 거다.
“우리 아들들이야. 불곰이 고미, 백곰이 아웅이, 판다가 다웅이.”
어머니가 밑반찬을 내오며 그렇게 말하자, 아웅이는 곧장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고, 이어서 다웅이가 느릿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어머, 귀여워라! 인사도 하네! 설마 말도 알아듣는 거예요?”
“아웅!”
아웅이가 절도있게 답하자, 갈비집 사모님은 귀여워 어쩔 줄 모르며 녀석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말만 알아듣게? 우리 아웅이랑 다웅이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데.”
어머니의 답에 봉식이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을 한다고? 무슨 일?’
아까도 아웅이 다웅이가 일을 도와준다고 했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지? 저 둘이 요리를 할 리는 없을 테고······.
“임 사장님은 광어회에 카스죠?”
“하하하, 사모님이 아직도 내가 뭐 좋아하는지 기억하시네.”
“그럼, 얼굴 본 게 몇 년인데.”
주문이 들어가기 무섭게, 우리는 아웅이와 다웅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웅아, 카스 두 병.”
냉장고 앞 의자에 앉아있던 다웅이는 문을 열어 맥주 한 병을 꺼내 건네주자,
‘서, 설마······.’
술병을 건네받은 아웅이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얘, 얘네들이 서빙을 맡은 거야?’
그것도, 문자 그대로 ‘마법의 서빙’이다.
‘둘 다 키가 작으니, 다웅이가 의자에 앉아 음료나 술을 꺼내주고, 아웅이가 그걸 받아서 서빙을 하는 거구나.’
그래도 얼음 마법으로 맥주를 식혀주다니······.
아니, 그보다, 다웅이가 그냥 널브러져 자는 게 아니라 일을 돕고 있다는 게 더 충격적이다.
“어머! 어머, 어머! 그거 펫이에요? 마법도 써요?”
“습, 펫이 아니라 아들!”
어머니가 가볍게 눈을 흘기며 그렇게 말하자, 사모님이 민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아, 아들. 그런데, 마법도 써요?”
“응, 아웅이가 마법을 건 맥주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김도 안 빠지고 미지근해지지도 않아요.”
뭐, 뭐야 그게······. 진짜로 마법의 맥주야?
“이야, 신기하네.”
어머니의 설명을 들은 임 사장님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맥주를 따서 술잔에 따랐다.
그리고 차갑게 식은 마법의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캬아!”
곧바로 CF에서나 본 것 같은 시원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와! 내가 평생 먹어본 맥주 중에 제일 맛있네, 진짜 마법의 맥주야!”
······.
백곰이 서빙하는 마법의 맥주라니.
어머니, 아버지. 이래도 되는 겁니까.
[ 호오······. 아웅이, 이 몸이 내린 임무를 아주 잘 수행하고 있었구나. 훌륭하다. ]
그 모습을 바라보던 고미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 대체 무슨 임무를 내린 거야. 단순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호위를 붙여둔 게 아니었단 말이야?
[ 고, 고미. 이거, 네가 시킨 거야? ]
[ 그렇다. 위대한 이 몸의 엄마 아빠가 운영하는 가게이니, 당연히 일을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 ]
“아웅!”
“다웅.”
고미의 말에, 아웅이는 물론이고 다웅이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하하하, 이거 굉장하네요. 그럼 저는 일식 견학도 좀 할 겸 아버지를 도우러 가보겠습니다.”
그때, 그 광경을 바라보던 이유찬 씨가 흐뭇하게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버님! 약속을 지키러 왔습니다!”
“오! 유찬 씨!”
“뭐부터 도와드리면 될까요?”
“우선 야채 좀 손질해주고······.”
······.
뭐냐, 이 미리 합의된 듯한 자연스러움은.
바다에서 친해진 건 알겠는데, 대체 언제 그런 약속을 한 건데.
“그럼 저희는 앉아서 회라도 시키죠. 개업식에 왔으면 뭘 먹는 게 예의 아니겠어요?”
한편, 한유진 씨와 제르보나 씨는 이미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훑어보고 있었다.
“역시 광어가 좋겠죠?”
[ 무엇을 시키든 다 맛있을 것이다! ]
“그거야 그렇죠. 이강혁 씨는 언제 오려나. 이제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한유진 씨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이강혁 씨가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왔다.
“수하 씨, 허가 났습니다.”
“아이고, 이 사장! 얼른 앉아, 저기 우리 아들들하고 한유진 씨 있는 테이블로.”
“개업 축하드립니다, 아버님.”
사실 우리도 일을 도와드리려 했지만, 오늘 아침부터 쫄쫄 굶었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일단 밥부터 먹으라며 성화였다.
게다가 때맞춰 고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 덕에, 고미와 나, 봉식이 셋은 나란히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음, 아침부터 회라니······. 좀 부담스럽긴 한데.’
그래도, 횟집에 와서 고기를 먹을 수는 없잖아?
뭐, 일단 회부터 먹고, 그 다음 매운탕으로 식사를 하면 되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막 젓가락을 들려던 찰나,
“응?”
예상치 못한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 뭐야. 저놈이 왜, 아니, 어떻게 여기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