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63화 (163/300)

EP.163 간절함이 기적을 만든다

아웅이냐, 다웅이냐.

어차피 반반인데 그냥 확 찍어버려?

아니지, 김수하, 침착하자.

넌, 아무런 단서도 없이 대웅전의 벽화와 조각상을 해석해 낸 사람이야.

이 시대 최고의 곰, 아니, 고미 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설령 아무도 못 알아본다고 해도, 너만큼은 알아볼 의무와 책임이 있는 거야. 어쩌면 고미가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된 건, 그날 네가 그걸 알아봐 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르니까.

말하자면, 내가 마왕의 봉인을 풀어준 사람이라는 거지······.

‘그럼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게다가, 가만히 보니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본래 크게 키 차이가 나지 않는다.

고미가 그런 미묘한 키 차이를 정확히 포착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즉, 중앙에 있는 두 개의 덩어리 중 어느 쪽이 엄마고 아빠인지도 섣불리 확신할 수 없다.

“으, 으음······.”

심지어 믿었던 수다르님 마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침음을 흘리고 있었고, 제르보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려대고 있었다.

‘제르보나 씨! 차가운 이성으로 분석하면 된다더니, 내가 보기에 지금 당신 머리가 식은 게 아니라 몸이 식은 것 같은데!’

한유진 씨는 그나마 나았다.

그녀의 시선은 나와 마찬가지로 아웅이와 다웅이에게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아마 다른 수수께끼는 모두 풀고, 마지막 난제에 도전하는 중이겠지.

바로 그때, 뒤쪽에서 서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수하? 설마, 위대한 이 몸의 제자이자 가족인 네가······. 이 몸의 혼을 담은 역작을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니겠지?”

「 수하야, 설마 이 정도 논문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 그렇지? 내 지도 제자가 그럴 리는 없을 거야.」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매우 섬뜩한 말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그, 그럼! 그런데, 내가 다 설명해 버리면 다른 친구들이 네 작품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 잠깐 입을 다물고 있는 것뿐이야.”

“흐으음······.”

급하게 늘어놓은 궁색한 변명에 고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너는 이 몸의 작품이 무엇을 표현했는지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마저 읽어낸 녀석이니 말이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지.”

으으, 저렇게까지 믿어주니 더욱 어깨가 무거워진다.

좋아, 머리를 굴려보자.

봉식이, 나, 고미는 이미 밝혀진 변인이다.

남은 것은 엄마와 아빠, 아웅이, 다웅이.

모양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구분도 안 되고.

‘가장 신뢰도가 높은 변인은 위치야.’

그렇다면 나와 봉식이의 위치를 근거로, 나머지를 역산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사적인 모임이나 공적인 모임이나,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앉는 위치를 통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보통 적대적인 관계나 경쟁 관계인 경우 정면.

친밀하거나 협력적인 관계인 사람은 옆자리.

상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거나 심리적인 거리가 멀면 대각선.

‘고미가 가장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역시 엄마겠지.

그러니까, 삼층 석탑(고미+나)의 앞에 있는 게 엄마일 확률이 높다.

옆에 있는 게 아빠, 그렇다면 그 옆에 있는 게 아웅이 다웅이.

그런데 왜 아웅이와 다웅이는 양옆으로 나눠놓지 않고 세트로 묶어서 아빠 옆에 둔 걸까?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어떤 장면 하나가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 수, 수하! 어떻게든 해보거라! 이, 이 녀석이 이 몸의 전용석을 빼앗으려 들지 않느냐! 」

그래! 벽이구나.

‘아빠랑 아웅이가 벽이야.’

고미에게 있어 엄마의 사랑은 결코 빼앗기고 싶지 않은 보물이고, 다웅이는 그걸 노리는 경쟁자다.

그리고 인간은 적대적이거나 싫은 대상이 다가오면 저도 모르게 팔을 앞으로 내밀지.

이건 일종의 본능이다.

상대와 나 사이에 ‘벽’을 만들어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려는 움직임.

‘아웅이와 다웅이를 엄마 아빠의 양옆에 나누어 배치하지 않은 건, 아웅이와 아빠를 벽으로 엄마를 독차지하려는 욕심이 반영된 거야!’

그 순간······.

< 퀘스트 달성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1/5) >

- 첫 번째 달성자, 김수하.

꿀태창이 나의 ‘해석’이 정답임을 보증해 주었다.

내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자, 수다르 님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 퀘스트 달성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2/5) >

- 두 번째 달성자, 수다르.

나와 눈이 마주친 수다르 님은 흐뭇하게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해.’

설마 내 반응을 참고해서 고미의 작품을 이해한 건가?

그것도 시선 정도의 미묘한 단서만 가지고?

과연 사회생활 만렙 산신령이다.

자기가 모를 때는 아는 사람의 눈치를 살펴서 정답을 유추하다니······.

“수하! 이제 말해 보거라! 감상이 어떻느냐?”

아직 5인의 결사대 중 고작 두 명만이 자신의 작품을 알아보았건만, 고미는 어서 감상을 말해보라고 성화였다.

‘좋아, 여기서 승부수를 띄운다.’

어차피 이대로 둬봤자 스스로 답을 깨우칠 가능성은 낮다.

그럼 내가 할 일은, 저 두 사람을 믿고 힌트를 제시하는 거지.

“우선 우리 가족 구성원을 한 명도 빠지지 않고 훌륭하게 묘사했어. 특히 봉식이의 특징이 잘 살아있고, 너와 내가 늘 붙어 다닌다는 점도 잘 묘사된 것 같아. 게다가 위치상 네가 스승이고, 내가 제자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구도야.”

“호오, 그렇지. 거기까지 읽어내다니······. 역시 너는 안목이 있구나.”

나의 해석에 웅티스트 선생님의 꼬리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중심에 있는 건, 두 분이 가족의 중심이라는 의미겠지? 동시에 우리가 부모님을 지켜줘야 한다는 느낌이 잘 나타나 있어. 뒤쪽에 서서, 악당들로부터 부모님을 지켜주고 있는 거지. 위대한 대균열의 수호자다운 책임감이 잘 드러난 대목이네.”

“후훗, 그래. 참으로 훌륭하구나. 이 몸은 대균열의 수호자이자, 가족을 지키는 방패이니라.”

여기까지는 아마 한유진 씨와 제르보나 씨도 파악했겠지.

“오오, 그런 거였군요. 그럼 저쪽이 봉식 님, 저쪽이 수하님, 저게 고미님인가요?”

그때, 눈치 없는 흑룡 셰프가 감탄하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역시, 이 사람은 믿지 않길 잘했군. 나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

“음?”

“끼이잉?”

한편, 흑암과 삼돌이는 설명을 듣고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와 봉식이, 고미와 웅티스트의 데뷔작을 번갈아 바라봤다.

흑암은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빠르지만, 인류에게도 너무 이른 고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너무 부족하다.

모름지기 예술이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

봉식이와 이강혁 씨는 나의 해설을 듣고는 감탄한 듯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유찬 씨처럼 대놓고 못 알아봤다는 티를 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군.

그렇게 큐레이터가 된 기분으로 작품 해설을 해나가는 와중에도 내 머리는 쉴 새 없이 힌트를 흘릴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이제 아웅이 다웅이에 대한 힌트를 흘려야 하는데······.’

대체 어느 정도선에서 간접적인 힌트를 제공해야 시스템의 심사를 피해 두 명에게 고미의 작품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런데, 아웅님과 다웅님 중에 어느 분이 동생이십니까?”

그때, 무언가 눈치챈 수다르 님이 조금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이 타이밍에, 갑자기 서열을? 왜?

“흥! 다웅이 그놈이 가장 아래다!”

고미가 못마땅한 듯 대답을 내놓는 순간,

< 퀘스트 달성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3/5) >

< 퀘스트 달성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4/5) >

결사대 중 나머지 둘이 작품 해석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 어째서? 어디서 이해를 한 거지?’

“아, 그러니까, 어머니가 대장, 아버지, 아웅님, 다웅님 순서인 건가요?”

한유진 씨의 말에, 나는 그제야 공교롭게도 앞줄의 배치가 우리 집안의 권력 순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면에서 봤을 때 오른쪽부터 어머니, 아버지, 아웅이, 다웅이니까.

그 짧은 시간 동안 그 사실을 파악하고, 조금 맥락과 무관해 보이는 질문으로 두 사람이 정답에 도달하도록 만들다니······.

‘역시, 수다르 님이야.’

물론 관리자가 심사기준을 조금 낭낭하게 적용한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네 명을 채웠다.

“흥,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한유진 씨의 작품 해석에 고미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보다는 엄마가 가장 좋아서 가까이 있는 거고, 그다음이 아버지, 그다음이 아웅이, 다웅이 순서인 거예요.”

내가 올바른 해석을 덧붙이자, 웅티스트 선생님은 그제야 만족한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수하! 역시 너는 이 몸의 심중을 정확히 헤아렸구나! 과연 이 몸의 제자답다!”

훗, 뭘 그 정도 가지고. 위대한 이 몸에게 있어서 이 정도 문제는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라고.

‘음······. 안돼.’

이 난제를 해결했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지, 고미와 완전히 동화되어 버렸군. 자제하자.

“훌륭해, 고미. 네가 가족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주 잘 전해져. 엄마 아빠도 틀림없이 좋아할 거야.”

마지막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다.

일주일씩이나 김밥과 주먹밥, 초코바만 먹으면서 어설픈 손놀림으로 얼마나 열심히 이걸 만들었을지 생각하면, 형태는 사소한 것에 불과하니까.

초등학교 시절 어설픈 손놀림으로 만든 카네이션, 고작 한두 시간 짜리 정성이 들어간 비뚤어진 종이꽃조차 아이에게는 자랑스러운 작품이다. 그리고, 그 선물을 받은 부모님이 웃어주지 않으면 아이는 상처를 받는다.

그런데 고미처럼 성격이 급하고 먹는 걸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 무려 일주일간 놀지도 먹지도 않고 정성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다.

세상에 이것보다 훌륭한 선물이 어디 있겠어.

‘아마 몇 번이나 녹였다 다시 만들고, 녹였다 다시 만들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양을 내보려고 깎아내기까지 시도한 거겠지.’

진심으로, 이 작품은 세상 그 어떤 예술품보다 멋지고 훌륭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이 이 작품을 알아봐 주면, 다른 사람들도 이 작품에 담긴 고미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겠지.

“후훗! 그렇지! 사람들도 틀림없이 이 몸의 위대한 작품을 알아봐 줄 것이다!”

······.

미안, 그건 장담을 못 하겠다.

대신 네 마음만큼은 잘 전해지도록 최선을 다해볼게.

모양과 무관하게, 이 안에 담긴 애정만큼은 틀림없이 세상의 그 어떤 예술가도 따라갈 수 없는 진짜일 테니까.

“그럼 이제 가게로 가볼까?”

“좋다! 살곰살곰 숨어서 이 몸의 위대한 걸작을 전시해놓고, 엄마 아빠를 부르는 것이다!”

* * *

이후 우리는 한유진 씨의 거실에서 짧은 숙면을 취한 뒤 동이 틀 무렵에 부모님의 가게로 향했다.

고미는 혹여 자신의 작품이 조금이라도 상할까 동이님이 선물한 꿀 스카프를 펼쳐 그것을 잘 감싼 뒤 제르보나 호에 몸을 실었다.

A급 이상 몬스터의 공격에도 그 안에 담긴 물건을 털끝 하나 상하지 않게 지켜주는 보물이니, 배송 실수가 있어도 작품은 무사하겠지.

제르보나 호에서 내린 고미는 잽싸게 가게 앞으로 달려가 자신의 작품을 내려놓았다.

작품의 설치를 마치고, 이강혁 씨는 곧장 관청으로 향했다.

어쨌든 행정적인 절차를 마쳐야 애써 만든 웅티스트 선생님의 작품이 불법 조형물 취급을 당해 철거당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자, 마침내 저 멀리서 부모님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부모님의 곁에는 아웅이와 다웅이가 함께였다.

가게 주위에 게이트가 열리거나 던전이 나타났을 때를 대비해 고미가 붙여둔 일종의 ‘호위’랄까.

부모님이 의식을 잃은 건 유령 게이트 사건 때문이었으니까, 또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취한 조치였다.

‘다, 다웅이가 걷고 있어.’

놀라운 것은, 다웅이가 느리지만 착실히 제 발로 부모님을 따라 걷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머, 아들들, 일이 많아서 친구네서 자고 온다더니, 우리보다 먼저 가게에 와 있었네?”

[ 어, 엄마! 이 몸이 선물을 준비했느니라! ]

엄마를 만난 아기곰은 신이 나서 얼른 꿀 스카프로 가려진 자신의 걸작을 가리켰다.

“응? 선물? 이게 뭐니?”

“오, 뭔가 엄청 큰데.”

그제야 고미의 걸작을 발견한 두 분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것을 들여다보았고,

[ 엄마 아빠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이 몸이 직접 만든 작품이니라! ]

“그래? 엄청 크네? 그럼 이 아빠가 걷어봐도 될까?”

아버지의 질문에 웅티스트 선생님은 긴장과 흥분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고미의 걸작을 가리고 있던 꿀 스카프가 걷히는 순간, 숲속 친구들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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