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0 얄미운 놈도 가끔은 도움이 된다
지금 봉식이의 몸에서는 꼭 후광처럼 기묘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평소 내가 이렇게 무섭게 생겼다는 걸 강조하려는 듯 짧게 자른 머리가 빠른 속도로 자라나고, 온몸의 혈관이 꿈틀대며 터질듯한 근육이 더욱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응?”
그 모습을 본 이강혁 씨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와, 이게 뭐죠?”
한유진 씨는 마술쇼라도 본 사람처럼 눈을 빛내며 봉식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곧이어 그 빛이 살아있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며 자신이의 몸을 감싸자,
“뭐, 뭐야 이거!”
당황한 봉식이는 벌레라도 붙은 듯 황급히 팔을 털어댔다.
그러자, 빠르게 머리카락이 다시 원래의 길이로 돌아오고, 팽창하던 근육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래 봐야 팔뚝이 웬만한 여자 허벅지보다 굵다는 건 변함이 없었지만······.
“후훗, 그것이 이제 네 힘이 되어줄 것이니라. 호랑이가 아니라서 다행이구나.”
그 모습을 본 고미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호랑이면 안 되는 거야?
사실 사자도 곰이랑 라이벌 아닌가······.
‘백수의 왕’ 하면 사자잖아. 만수왕이랑 묘하게 겹치는 포지션인데.
호랑이는 숲에 살고 사자는 초원에 사니까 곰하고 서식지가 안 겹친다던가, 뭐 그런 이유로 사자는 괜찮다는 건 아니겠지?
내가 ‘고미는 왜 사자는 싫어하지 않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봉식이의 입에서 시작부터 실패한 드립이 터져 나왔다.
“뭐야 이게, 불상 같잖아. 이러고 어디 가면 사람들이 나한테 절하는 거 아니야?”
······.
이 자식이, 실컷 사고 쳐놓고 뭐가 어쩌고 어째?
그리고, 머리카락 자란 거랑 몸이 커진 것보다 후광을 신경 쓰는 거냐?
뇌 구조가 어떻게 생겨먹으면 그쪽이 더 신경 쓰일 수 있는 건데?
하지만 그 불만 아닌 불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어? 등급 올랐다. 근데 표시가 뭐 이래.”
“특이하네요. 괄호 안에 등급이 있는 것도 그렇지만, S+는 처음 봐요. SS는 아니고, S급 이상이라는 소리인가?”
봉식이의 상태창을 본 한유진 씨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상태창에 떠오른 봉식이의 등급은 A(S+).
꿀태창에 나오는 Gomi~F만큼은 아니지만, 꽤 특이한 형태의 등급 표기였다.
“네 몸에 잠들어있는 사왕의 힘을 끌어내면 S+, 평상시에는 A급이라는 의미일 거다. 아마 지금 당장은 그렇다는 소리일 거고. 더 강해질지도 모르지. 내가 알던 너는 틀림없이 그 이상이었으니까.”
전생의 봉식이를 알고 있던 이강혁 씨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 그럼 난 변신 로봇 같은 게 된 건가?”
······.
이 돌아이가, 그걸 드립이라고 치고 있는 거냐.
변신 로봇은 무슨.
“오오! 변신 로봇이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멋이 느껴지는 이름이구나!”
내가 듣기에는 실패한 드립이지만, 순수한 아기곰은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애란 모름지기 변신과 합체, 빔에 열광하는 법이기는 하지만, 아직 변신과 합체의 참맛을 모르는 고미가 그걸 이해할 리는 없을 테고······.
아마도 봉식이가 강해졌다는 소리에 일단 기분이 좋아진 거겠지.
“으음······.”
한편, 봉식이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몸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후광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네. 아직 각성이 불완전한 거 아니야? 내가 전생에 알고 있던 것하고는 외모가 조금 다른데.”
이강혁 씨가 전생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자, 봉식이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 전생에는 어땠는데?”
“진짜 사자 같았지. 발톱도 자라고, 어금니도 자라고, 머리 길어지는 건 비슷한데.”
“변신을 하다 말아서 그런가?”
이강혁 씨의 말에 봉식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한번 변신을 시도해볼까 말까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겠어. 힘이 세진 건 확실한 것 같은데······. 그보다 이 후광 좀 어떻게 못 하나. 이대로 놔뒀다가 또 변하면 어떻게 해? 그러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거 아니야?”
얼핏 쓸데없는 걱정 같지만, 제법 현실적인 고민이군.
봉식이는 평소에도 꽤 시선을 받는 편이다.
2미터에 가까운 키에 100키로를 넘는 거구라는 게 어디서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거기에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 분노조절장애가 저절로 치료될 것 같은 얼굴이 더해져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꽤 시선을 강탈하는 외모지.
그런데 그 외모에 사자처럼 어금니에 발톱까지 자라고 후광이 더해진다?
이건 뭐 몬스터로 오해받아서 공격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거다.
“후훗, 아직 기운을 잘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니라. 차분히 정신을 가다듬어 보거라. 숨을 참고 들이마신 공기를 명치 근처에 모은다는 느낌으로 기를 모으면······.”
고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봉식이의 몸에서 새어 나오던 후광이 거짓말처럼 잦아들기 시작했다.
“아, 됐다. 이런 거구나.”
······.
되긴 뭐가 돼.
왜 간단한 조언 한 번 들은 걸로 그걸 할 수 있는 건데.
이러면 매번 뭘 배울 때마다 고생하는 내가 뭐가 되냐.
“음······. 그럼 반대로 이렇게 하면 변신이 되는 건가?”
말을 마친 봉식이가 가볍게 숨을 내뱉자, 잦아들던 금빛 섬광이 다시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것도 이전보다 훨씬 더 밝고, 깨끗한 느낌.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게 이런 건가.
“역시 봉식이는 다르군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강혁 씨는 못 당하겠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 봉식이와 어울리며 수련을 하셨으니, 이놈의 특별함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으셨겠지.
“뭐, 이러나저러나 빨리 이 사왕의 힘인지 뭔지를 컨트롤 하는 법을 배워야겠네. 그럼 나도 1인분 하는 거잖아.”
봉식이는 말을 하는 내내 금빛 후광을 뿌렸다가 거두어들이기를 반복했다.
고장 난 백열전구처럼 깜빡이는 녀석의 입가에는 오랜만에 흡족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래도 고미 가족인데, 자기만 1인분을 하지 못한다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겠지.
‘나도 힘내서 S급 찍어야겠네.’
그렇게 봉식이의 각성에 자극을 받아 나도 빨리 S급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허허허, 참으로 운이 좋았습니다. 처음 사왕의 기운을 자극했을 때는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럼 일단은 이 배합법으로 약을 만들어 두겠습니다.”
수다르 님이 웃으며 남은 재료들을 가지고 밭으로 걸어가셨다.
음······. 아무리 봐도 ‘각성 당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아무렴 어때, 수다르 님도 나쁜 뜻으로 그런 게 아니고, 큰 싸움 앞두고 강해지면 좋은 거지.’
“흥, 이리 가져와라. 내가 심지.”
수다르 님이 이계의 마늘과 쑥을 들고 다가가자, 그 사이 꽤 넓은 밭을 만드는 데 성공한 토목왕, 흑암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아참, 노인국 씨가 첫사랑 꿈도 꾸게 해줄 수 있냐고 전해 달래요. 그리고, 마음 정리 끝나면 삼겹살에 소주라도 한잔하면서 마음 풀자고 하시던데요.”
벌써 농사일이 제법 손에 익은 듯 능숙한 솜씨로 약초를 심는 흑암의 모습에 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며 노인국 씨의 말을 전해주었다.
“뭐, 에, 에잇, 여기는 왜 아직도 돌이 남아있는 거야! 이, 이래서야 약초가 뿌리를 모, 못 내린단 말이다!”
그 말을 들은 흑암은 얼굴이 빨갛게 변해 황급히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흥, 사, 삼겹살도, 소, 소주도 먹어본 적이 없다! 그, 그러니까······. 아, 아무거나 괜찮다고 해라······. 또······.”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정말로······. 미안했다고······. 전해다오.”
* * *
화원을 나서는 우리의 발걸음은 나는 듯이 가벼웠다.
“후후, 참으로 잘 되었구나. 이걸로 흑암과 문어 할아범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겠지?”
고미 역시 두 사람(?)이 화해한 것이 퍽 보기 좋았는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짤막한 꼬리가 신이 나서 춤을 춰댔다.
삼룡이 패밀리와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이강혁 씨가 중요한 문제가 떠올랐다는 듯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 참, 수하님, 이제 개업식이 코앞입니다.”
“아, 벌써 날짜가 그렇게 됐나요?”
자식 된 입장에서는 참으로 죄송한 말이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다.
흑암 문제도 뒤처리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고미 데리고 놀이공원도 다녀오고, 그 뒤에 곧바로 만수왕 이야기가 나와서 정신이 없었으니까.
“이이, 이럴 수가!”
갑작스레 나온 개업식 이야기에, 고미는 충격을 받은 듯 손에 들고 있던 초코바를 툭, 하고 떨어뜨렸다.
“크, 큰일이다 수하! 엄마 아빠에게 줄 선물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음······. 그 선물 설마······.
“허, 허수아비! 어, 어서 마력 철을 구해다오! 등급은 상관이 없으니, 최대한 빛깔이 고운 것으로!”
역시, 그거였구나······.
진심으로 가게 앞에 네 작품을 전시하려고 했던 거냐.
고미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뭐, 전혀 할 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거짓말을 하면 온몸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사인을 보내는 편이지.
게다가 빈말도 할 줄 모르니, 벽화 이야기도, 조각상 이야기도, 모두 진심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대재앙(?)이 현실로 다가오니, 그간 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미리 준비해 놓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고, 고미, 진짜로 조각상을 만들려고?”
“그렇다! 이 몸의 위대한 가족들이 함께 있는 조각상을 만들어 가게 앞에 전시해 둔다면, 틀림없이 많은 인간들이 그것을 보고 가게를 찾아오지 않겠느냐!?”
자신이 만든 작품의 훌륭함에 대해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는 고미의 모습에 숲속 친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아아, 수다르 님이 있는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해야 했는데. 산신령 님이라면 어떻게든 말을 돌려 교묘하게 고미의 마음을 바꾸게 도와주셨을 텐데······.
그러나 고미의 열정에는 이미 불이 붙어버렸고, 이 와중에 수다르 님에게 다시 돌아간다면 아무리 눈치가 없는 녀석이라고 해도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채겠지.
‘여기서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마음 같아서는 벽화도 그리라고 하고 싶지만, 고미가 매력덩어리인 것과, 고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 녀석의 작품세계를 이해해주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으으, 애써 만든 조각상이 사람들한테 비웃음을 사고, 그것 때문에 장사가 안되면 고미도 상처를 받을 게 뻔한데······.’
숲속 친구들이야 고미를 아니까 이 녀석이 뭘 만들든 귀엽게 봐주고, 나쁜 말을 하지 않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결과물만 놓고 보면······. 망작도 그런 망작이 없으니까.’
나뿐만 아니라, 숲속 친구들도 어떻게 하면 이 순진무구한 자뻑 아기곰의 마음을 돌릴까 고심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귓가에 ‘띠링’하는 알림음이 울리며 꿀태창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아, 안돼. 이 자식아.’
이제 안 봐도 무슨 퀘스트가 왔을지 알 것 같다.
“허, 허수아비! 뭘 하고 있느냐!? 어서 마력 철을 구해오래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고미가 발을 동동 구르며 재촉하자,
“죄, 죄송합니다, 곰 선생님. 마침 길드 내에 마력철이 동이 난 탓에······.”
당황한 이강혁 씨의 입에서, 실로 요령없는 거짓말을 튀어나왔다.
“그, 그럴 수가! 사, 삼룡 어멈!”
다급해진 고미는 삼룡 어멈에게도 도움을 요청해 보았지만, 한유진 씨는 잠시 망설이다가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 날 보면 어떻게 해요!’
그런다고 해결책이 나올 상황이 아니잖아!
“아, 안 되겠다! 마력철이 없다면 이 몸이 직접 구해오겠다! 삼룡 어멈, 허수아비! 이 몸이 들어갈 던전을 알아보거라!”
믿었던 삼룡 어멈마저 대답을 하지 않자, 더욱 조급해진 고미는 직접 재료를 공수해 오겠다며 난리를 피워댔다.
그래, 사실 마력 철이 떨어졌다고 변명을 해봐야 이런 말이 돌아올 게 뻔했지······.
하지만 이강혁 씨를 탓하기에는, 나도 딱히 대책이 없다.
그렇게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모면하고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꿀태창이 한 번 더 반짝, 하고 빛을 발했다.
마치 ‘내가 도와줄게, 얼른 열어 봐!’라고 말하는 듯한 그 모양새에, 나는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응? 정말?’
실로 훌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