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9 봉식이는 못 말려
“크르르르······.”
기이한 울음소리를 흘리는 봉식이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등줄기에서 소름이 돋아났다.
이성을 잃은 맹수처럼 흉포한 눈에,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뜩한 기운까지······.
거기에 이 무식한 놈의 타고난 거구가 합쳐지니, 그야말로 사자나 호랑이가 눈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사, 산신령님! 토생원님!”
당황한 나는 얼른 두 단약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걱정 마십시오, 수하님. 이는 약으로 인해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금세 괜찮아질 것입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토생원은 걱정 말라는 듯 살짝 웃음을 지었다.
“크으으윽······.”
아니나 다를까, 토생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봉식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흉흉한 기운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야, 괜찮냐?”
하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녀석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가, 가.”
봉식이가 다급히 나를 향해 손바닥을 펼치며 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녀석의 몸에서 또다시 맹수의 그것 같은 사나운 기운이 흘러나오며 통나무 같은 팔뚝에 불뚝불뚝 굵은 핏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런, 설마 스스로 이런 상태에 이르실 줄이야······. 언제나 제 예상을 벗어나는 분이시군요.”
그러자, 줄곧 평정심을 유지한 채 봉식이를 바라보던 수다르 님이 처음으로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이셨다.
“수, 수다르! 뭐, 뭔가가 잘못된 것은 아니냐? 지, 지금 봉식이의 몸에서······ 그 누렁이 놈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진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고미는 안절부절못하며 수다르와 봉식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반응을 보니, 불안한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저 녀석의 네이밍 센스상 ‘누렁이’면······.
‘금모사왕?’
그런데 왜 봉식이한테서 만수왕의 왼팔이었다는 금모사왕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거지?
고미의 말에 이강혁 씨는 불현듯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두 눈을 치켜뜨며 봉식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 봉식이의 기운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는데, 역시 그거였군요······.”
이강혁 씨도 뭔가 아는 게 있는 건가?
“하지만, 어째서 만수왕과 계약을 하지도 않았는데 사도가 되었을 때와 비슷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입니까?”
이강혁 씨의 질문에 수다르 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 반대입니다, 봉식 님은 애초에 사자와 같은 기운을 타고 나신 분이고, 그렇기에 만수왕의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만수왕이 한 짓이라고는 봉식님 안에 잠들어 있던 힘을 억지로 흔들어 깨운 것에 불과하지요.”
한마디로······. 사기당했다 이거네.
‘어휴, 단순한 놈 같으니······.’
그래도 가족들을 잃은 분노에 그랬다니, 차마 화도 못 내겠다.
봉식이가 특이 체질이라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다.
분명 인간보다는 야수에 더 가깝고, 장비니, 항우니 하는 역사적인 맹장들과 같은 체질이라고 했지.
고미도, 수다르 님도, 줄곧 우리 중에 이 녀석의 자질이 최고라고 이야기했었고.
그때, 봉식이의 눈에서 검은자가 사라지며 새하얗게 변한 한 쌍의 눈동자가 고미에게 향했다.
“크르르르!”
“보, 봉식이······.”
그 광기 어린 시선을 받은 고미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고, 고··· 미······.”
봉식이의 입에서 제대로 된 말이 나오자, 수다르 님과 토생원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녀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말이지 놀라운 정신력이군요. 아무리 제가 드린 단약을 복용해 왔다 한들, 이 와중에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니······.”
잠시 멍한 표정으로 봉식이를 바라보던 수다르 님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미님,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이번 기회에 봉식이님의 몸속에 깃들어 있는 기운을 완전히 가다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부르는 혈도에 점혈을 해주십시오!”
“아, 알겠다! 이 몸만 믿거라!”
수다르 님의 조언에 고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솜방망이를 움켜쥐었다.
“크, 크륵!”
그 순간, 봉식이가 기다렸다는 듯 고미를 향해 달려들며 통나무 같은 팔뚝을 휘둘렀다.
“좋다! 와라, 봉식이! 이 막내님이 너를 도와주마!”
이에 고미 역시 뒤로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 치고 나가며 부드럽게 팔을 휘저었다.
후웅!
고미의 팔이 부드러운 호를 그리자, 봉식이의 주먹이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그 궤적을 따라 움직였다.
지금까지 몬스터를 상대할 때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한없이 부드럽고, 유연한 움직임.
한눈에 보기에도 봉식이를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동작이었다.
“크륵!?”
봉식이의 주먹에 담긴 섬뜩한 힘은 문자 그대로 허공을 때린 것처럼 허무하게 흩어졌고, 그 모습을 본 이강혁 씨는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었다.
“이토록 완벽한 유검술(柔劍術)이라니······. 조금이라도 곰 선생님의 검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확실히 지금 고미의 검술(?)은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는 그 궤가 확연하게 달랐다.
그리고 나 역시 예전과는 달리, 약간이나마 고미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입니다, 고미님! 극천혈!”
“알겠느니라!”
그 순간, 수다르 님의 신호에 맞춰 고미의 손가락이 봉식이의 겨드랑이 아래를 지그시 눌렀다.
“크아아악!”
점혈을 당한 봉식이는 고함을 지르며 또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고미는 또다시 최소한의 힘만을 사용해 그 방향을 바꾸고, 남은 힘을 자신의 기로 흩어버렸다.
‘저기서 방향을 더 크게 틀면 무협지에 나오는 화경 같은 게 되는 건가······.’
유로 강을 제압한다느니 하는 것은 순전히 허구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헛소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눈앞에서 이런 장면을 보게 되니 나도 모르게 홀린 듯 그것에 빠져들고 말았다.
“영태혈!”
“간닷!”
두 번째 점혈을 당한 봉식이는 당황한 듯 뒤쪽으로 물러났다가 크게 도약하더니 두 손을 모아 망치처럼 내리찍었다.
쾅!
이번만큼은 고미도 그 힘을 모두 흩어버리기 어려웠는지, 발아래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뒤흔들렸다.
“흐음······.”
불과 두세 합을 겨루었을 뿐인데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공격 방식을 바꾸는 모습에, 고미마저 조금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훌륭하구나. 위대한 이 몸의 가족답다. 하지만 아직 이 몸의 상대가 될 수는 없느니!”
심지어 고미의 입에서 훌륭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위력.
아마 맞받아치려면 얼마든지 맞받아칠 수 있었겠지만, 봉식이가 다칠까 봐 그렇게 하지 않은 거겠지.
“크륵!”
그러나 수평으로 가해지는 공격은 모조리 고미의 유곰술(?)에 의해 파훼되었고, 수직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공격은 애먼 땅만 부술 뿐,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운문혈!”
“간닷!”
“옥침혈!”
“이얍!”
“중극혈!”
“정신 차리거라, 봉식이!”
그렇게 전신 곳곳에 솜방망이 마사지가 이어지자,
“으으······.”
마침내 녀석의 눈동자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온몸에 불뚝불뚝 솟아올랐던 혈관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그리고는, 전력으로 달리기를 끝마친 사람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다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안하다.”
한참을 숨을 고르던 봉식이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미안하다’는 네 글자였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제야 고미의 유곰술에 빠져 넋을 놓고 있던 나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 세 번째 약을 먹으니까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하더라고. 그리고 갑자기 무서울 게 없어진다고 해야 하나. 뭔가 무감각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
“허허허,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군요.”
봉식이의 말에 수다르 님이 웃으며 설명에 나섰다.
“이능을 가진다 해도, 인간이 만수왕이 발산하는 위압감을 상쇄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디까지나 범은 범, 인간은 인간이니 말입니다.”
“해서 스승님과 저는 잠시 뇌의 일부를 마비시키는 단약을 만들어 냈습니다. 용기를 내거나, 힘이 솟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이어지는 토생원의 설명에 나는 그 단약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일종의 편도체 마비제인 건가?’
편도체는 뇌의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부위로, 편도체가 손상되면 충동이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고, 공포나 불안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편도체를 제거한 쥐는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까지 있을 정도니까.
즉, 본능적인 수준에서 각인된 공포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진정한 의미에서 공포를 극복한다는 것과는 조금 의미가 다르지만······. 공포에 압도돼서 아무것도 못하고 무력하게 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확실히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
그래도 원하는 뇌 부위의 기능을 정확하게, 선택적으로 저하하는 게 가능할 줄이야.
어째서 이 둘은 현대 의학으로도 불가능한 걸 이렇게 쉽게 해낼 수 있는 걸까.
“예전에 인간들은 이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포션을 먹은 자들을 광전사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있을 때, 토생원이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그걸 먹고 왜 각성한 거죠?”
곁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한유진 씨가 의문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봉식님의 내면에는 스스로도 통제하기 어려운 강렬한 광기와 야수성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온전히 드러나면 더할 나위 없이 강해지지만, 점점 이성이 흐려지지요. 반대로 이성이 온전할 때는 그 힘을 제대로 끌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수다르 님의 설명에 이강혁 씨가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생의 봉식이는 혼자서 패왕을 전멸에 가까운 상태로 몰아넣을 정도로 강했지만, 그야말로 미친놈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게 야성이 온전히 드러난 상태라는 건가요?”
이강혁 씨는 그렇게 말하며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직접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난동을 부리기는 했나 보네······
“그렇습니다. 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온순해질 때까지 그 기운을 가다듬은 뒤 천천히 힘을 끌어내기 위해 일전에 약을 드린 것인데, 설마 봉식이님이 스스로 그 기운을 끌어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
그러니까, 지금 수다르 님이 안전하게 각성하라고 약까지 지어주셨는데, 제 손으로 그 야성인지 뭔지를 끌어냈다가 이 사달이 났다는 거······?
“봉식이! 이 무슨 위험한 짓이냐!”
고미의 호통에 봉식이는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미안해······. 근데 약을 먹고 나니까, 뭔가 몸속에서 꿈틀꿈틀하는 게······. 평소에는 손댈 엄두가 안 났는데, 갑자기 용기가 생겨가지고 아, 이거 건드리면 세질 것 같은데 한번 해볼까······. 막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 자식이······.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그렇다고 해서 말도 없이 갑자기 그런 짓을 벌이면 어떻게 하느냐! 내 줄곧 금방 강해질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했거늘!”
그렇지, 잘한다 고미, 혼내줘. 저 자식은 더 혼나야 돼.
하지만 노발대발하는 고미와는 달리, 수다르 님은 한없이 인자한 웃음을 띤 채 봉식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설마 큰 싸움 앞두고 걱정이 돼서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니죠, 산신령님······?’
어째 너무 인자하게 웃으시니까 불경한 생각이 슬금슬금 고개를 드는데······.
아니야, 수다르 님이 그러실 분이 아니지.
암, 이 시대의 진정한 쾌남, 불꽃 남자, 수다르 8세가······.
“헤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고미 님의 대활약으로 모든 게 무사히 끝났으니 다행 아닙니까?”
이어지는 토생원의 말에, 마음속 깊은 곳에 심어진 의심의 씨앗에서 자그마한 싹이 돋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후훗, 그렇지! 하지만 봉식이! 이 몸의 점혈술과 유곰술이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느니라! 다음부터는 절대로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으응, 미안해······.”
고미의 도움으로 무사히 이성을 되찾은 사고뭉치 형(?)은 연신 수다르 님과 토생원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으음······. 수상해. 아무리 봐도 수상해.’
한편, 토생원의 말로 인해 고개를 든 의심의 새싹에서는 어느새 줄기가 돋아나고 있었다.
‘봉식이 상태를 정확히는 몰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아셨을 것 같은데.’
물론, 수다르 님이 고미를 위해 봉식이를 위험에 몰아넣었을 리는 없다.
다만, 대체 무엇 때문에 굳이 우리 모두에게 진실을 숨기고 봉식이를 이런 방식으로 각성시켰는지 호기심이 생겼을 따름이다.
‘잠깐, 설마······.’
그 순간, 스스로 강해지고 싶다며 놀이공원에서 ‘고미의 선물’을 거절했던 봉식이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약을 먹고 각성을 하면 자존심이 상할까 봐 배려해 주신 건가?’
그렇게 온갖 추측들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니고 있을 때,
“어?”
돌연 봉식이의 몸에 기이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