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55화 (155/300)

EP.155 물만두 값이다

흑암의 말은, 어찌 보면 단순한 추측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이 두더지는 그 ‘세 번째’를 만나본 적도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 녀석을 믿는다.

물론 고미나 숲속 친구들을 믿는 것처럼 아군으로, 혹은 친구로 믿을만한 녀석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 두더지가 중증의 편집증 환자이며, 그 의심의 화살은 틀림없이 만수왕과 황금의 군주에게도 향했으리라는 사실을 믿는다.

‘아마 그 녀석들이 뭔가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뒤를 캐봤겠지.’

그리고 지금 늘어놓는 말은, 그 집요하게 뒤를 캐서 알아낸 정보들을 토대로 추론한 것일 테니, 상당히 믿을만한 정보라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고미가 강해질수록 그 녀석도 강해진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그리고, 그 녀석이 누구죠?”

하지만 흑암은 나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삼돌이의 세 개의 머리 중 왼쪽에 있는 사자 머리를 가리키며 고미를 바라봤다.

“그 전에, 하나 묻지. 고미, 이 녀석을 알아보겠나?”

“흥, 모른다.”

“그럴 리가 없다. 자세히 봐라.”

‘뭐지?’

고미는 삼돌이의 머리 중 ‘늑대 머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머리의 정체가 분명히 만수왕의 오른팔이었던 ‘적염낭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흑암이 가리킨 것은, 늑대가 아니라 사자의 머리였다.

“하지만 중앙에 있는 녀석은 안다. 그 녀석은 적염낭왕이 아니더냐?”

고미의 대답에 흑암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킥킥대며 웃음을 흘렸다.

“그래? 진짜 금모사왕은 알아보지 못하고, 가짜 적염낭왕은 알아본단 말이냐?”

적염낭왕이 가짜라는 말에 발끈한 고미는 곧장 눈을 부릅뜨며 흑암의 말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다! 위대한 이 몸의 눈을 속일 수 있는 것은 없느니라! 게다가 금모사왕은 저렇게 생기지 않았느니라! 얼굴 뿐만 아니라 냄새도, 능력도 달랐다!”

“그래, 네 오감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만큼 날카롭다고 들었다. 땅속에 있는 나를 추격해 올 정도이니 그건 틀림없이 사실이겠지.”

하지만, 흑암이 자신의 능력을 칭찬해주자마자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다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흥, 그렇지! 이 몸의 예민한 코와 눈은 그 누구도 속일 수 없느니라!”

음······. 그렇게 쉽게 기분이 좋아지면 안되지, 고미.

그게 그런 의미로 칭찬을 해준 게 아니잖아.

“하지만 생각해 보거라 고미, 적염낭왕은 네 곰기인지 뭔지에 당해 뼈도 추스르지 못할 정도로 부서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키메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느냐?”

흑암의 질문은 ‘전지전능한’ 고미에게 있어 결코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적염낭왕이 무사했다면 뒷마무리가 허술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자신이 잘못 봤다는 걸 인정하면 자신의 눈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니까.

“우, 우웅······.”

아니나 다를까, 고미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고, 흑암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금모사왕의 시신과 직접 만든 흑암견, 둘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만수왕이 직접 적염낭왕의 시신을 가지고 왔더군. 내가 만들 키메라의 재료로 쓰라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게 가짜였다, 이런 얘기인가?”

이강혁 씨의 질문에 흑암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뭐, 내 입장에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재료가 필요했을 뿐이니, 그게 진짜든, 아니든, 굳이 따질 이유가 없었지. 하지만 정말 이상한 건 그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만수왕이 가져다준 정보를 바탕으로 키메라를 만들었더니, 진짜였던 금모사왕은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고, 가짜였던 적염낭왕은 진짜와 똑같아졌다. 이런 이야기입니까?”

연금술의 대가, 토생원은 거기까지만 듣고도 일이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덕분에 금모사왕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히드라의 독주머니를 구한 것이다. 녀석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능력을 쓸 수 있었다면, 굳이 그런 물건이 필요하지도 않았지.”

이어지는 흑암의 말에 토생원이 무언가 짚이는 게 있다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하님, 이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짜를 가져다 고미조차 착각할 정도로 진짜 흑염낭왕과 똑같은 생물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연구.

반대로 진짜 금모사왕의 능력을 없애버리고, 고미조차 알아보지 못하도록 다른 생물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에 대한 연구.

아마도 삼돌이의 ‘진짜 제작자’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케르베로스를 만들고, 흑암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그 정체불명의 초월자가 고미의 힘을 빼앗을 방법과 고미의 힘을 불어넣은 가짜 고미를 만들 방법을 찾고 있다. 이런 얘기인가요?”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 외에 다른 결론은 없어 보였다.

“글쎄, 모르지. 어디까지나 추측이니까. 하지만 내가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고미와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괴물이 있는 것 같다. 아마 그 녀석을 만든 게 그 세 번째겠지.”

토생원이 봤다는 그 가짜 고미······. 인가.

그게 이 연구의 일환이었구나.

‘고미를 이길 방법이 없으니, 고미의 클론을 만들어 대적해 보겠다는 건가······.’

클론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도 섬뜩했지만, 정말로 두려운 건 그다음이었다.

이 연구가 성과를 거둔다면, 고미의 약점을 알아내거나, 녀석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성격까지 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건, 아마 정신적인 면까지 철저하게 연구해보겠다는 생각이겠지.

약점이 꼭 물리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생각보다 너무 똑같이 만들어진 걸지도 모르고.’

일부러 성격까지 비슷하게 만들었든,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됐든, 바보가 아닌 이상 그 가짜 고미를 분석해서 진짜 고미의 약점을 파헤칠 수 있으리라는 쪽으로 생각이 미쳤을 거다.

“흥! 웃기는 소리! 이 몸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정한 곰이다! 그 어떤 수단을 써도 이 몸의 힘을 뺏을 수도, 이 몸과 같은 존재를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숲속 친구들과 달리, 정작 고미 본인은 털끝만큼도 불안함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이 몸과 성격까지 똑같다면, 그 녀석도 틀림없이 신의를 아는 진정한 곰일 것이다! 아니, 진정한 곰은 이 몸 하나뿐이지만······. 그, 그래도 신의를 알 것이니라!”

그 와중에도 천상천하 유웅독존(天上天下 唯熊獨尊)의 자세를 잃지 않는 걸 보면, 참 고미답다고 해야 하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게 완성이 됐다면, 이미 현세에 침공해 너와 일전을 벌였겠지. 아마 온갖 수단을 통해 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 녀석이 충분히 완성됐다고 생각되면, 그제야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내 생각 역시 흑암과 같았다.

고미에 대해 꾸준히 정보를 수집해왔고, 그런 연구까지 진행했으면서 여태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아직 원하는 수준의 성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일 테니까.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만수왕은 조만간 너를 칠 것이다. 군대는 이미 준비가 되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 싸움에서 너에 대한 정보를 모으려는 것인지도 모르고.”

“흥! 잘 됐구나. 이번 기회에 그 흉악한 놈과의 악연을 끝내겠다!”

대화의 결론은 의외로 심플했다.

‘세 번째’를 끌어내기 위해서든, 가짜 고미 문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든,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든, 만수왕을 무찌르고, 녀석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만수왕과의 일전에 앞서, 짚고 넘어갈 일이 남아 있었다.

“저기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나의 질문에 흑암은 또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흥, 내가 대답해 줄 것 같으냐?”

······.

이봐요, 지금까지 알아서 줄줄이 다 불어놓고, 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

츤데레도 이 정도면 정도가 지나친 것 아닙니까.

“만수왕이 혹시 위압 스킬을 가지고 있나요?”

놀이공원에서, 시스템은 나에게 ‘웅혼한 기상’ 스킬을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계속해서 등급을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스킬을 퍼주는 데는, 분명 다른 목적이 있으리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내 질문에 먼저 답하면, 말해주마.”

이 자식이······. 정작 가장 중요한 정보는 묻지도 않았는데 줄줄이 불어놓고, 왜 이런 거에 대해서는 조건을 거는 건데.

“물어보세요.”

“어째서 너희들은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려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고미에게 맡기고 너희들은 뒤에 빠져 있는 게 가장 안전한 선택 아닌가?”

응······? 궁금한 게, 고작 이거?

의외의 질문에 내가 잠시 넋을 놓고 있을 때, 한유진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귀엽잖아요.”

······.

한유진 씨, 진심입니까?

정말 귀엽다는 이유로 목숨을 거는 겁니까?

“곰 선생님이 지키려는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게다가 곰 선생님은 이미 오랜 시간 세상을 지켜오셨지. 그런 분을 도와드리지 않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이강혁 씨가 고미를 돕는 이유는, 훨씬 더 그럴싸했다.

그래, 이쪽이 정상이지.

“가족이니까.”

이어서 봉식이가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답을 내놓았고,

“고미님은 저를 다시 바른길로 인도해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토생원도,

“약자를 위해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홀로 고독하게 싸워오신 존재에게 힘이 되어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지요.”

수다르님도,

“이상이 일치하기 때문이지. 진정한 강자에게는 그에 맞는 품격과 이상이 필요한 법이니까.”

제르보나 씨도 각각 저마다 고미님을 따르는 이유를 덧붙였다.

“그냥 좋으니까요.”

······.

이유찬 씨, 그렇게 단순한 이유였습니까.

같은 드래곤인데, 제르보나 씨처럼 뭔가 조금 더 멋진 이유를 말해줄 수는 없는 겁니까.

숲속 친구들의 답을 들은 흑암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너는 어떻지?”

“그냥 당연히 도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실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진지하게 이유를 고민해 본 적이 없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냥 불쌍하고 외로운 아이가 있으면, 손을 내밀어주는 게 당연한 거잖아.

그게 내 가족이고, 고미처럼 착한 아이라면 더더욱.

물론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우리가 다 힘을 합쳐봐야 고미는커녕 다웅이만도 못하지만, 힘이 세다고 어린애한테 혼자 다 해결하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

하지만 나의 ‘당연한’ 대답을 들은 흑암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당연하다라, 정말 황당한 답이군.”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다. 뭐, 스킬이라기보다는 맹수의 왕이기에 당연히 가지고 있는 힘에 가깝지만 말이야. 덕분에 다른 인간들은 대부분 그 전쟁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뭐야, 그 대답에 만족한 거?

“고미, 네 말대로, 인간은 정말로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응? 어딜 봐서? 대체 어디서 그렇게 느낀 거지.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사실 그건 대답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잖아.

이걸로는 합격 목걸이를 받을 수가 없는 대답이었다고.

“후훗! 그렇다!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느냐?”

심지어 고미마저 나의 대답에 만족한 듯 흡족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뭔데, 왜, 어디서 죽이 맞아버린 건데.

궁금해! 알려줘!

하지만 그 ‘당연한’ 답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흑암은 돌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정말 재미있군. 나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한 네 녀석이, 그런 대답을 내놓을 줄이야.”

이, 이봐요. 비슷하다니, 물론 나도 의심이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그건 일종의 초식동물의 보호 본능에 가까운 거라고요.

그렇게 속으로 흑암의 의심병과 나의 의심은 결이 다르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있을 때,

“뭐, 어찌 됐든, 전에 네가 나에게 주었던 맛있는 음식에 대한 대가로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하나 주지.”

괘씸해서 먹였던 군만두, 아니, 물만두의 대가로 뜻밖의 선물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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