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52화 (152/300)

EP.152 반가운 목소리

순간 알틴이 나한테 번개를 쐈나 싶은 짜릿한 기분이 전신을 관통하고, 다시 다리가 땅에 닿았을 때, 황금빛 상태창이 시야에 들어왔다.

< 축하합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 시련이 영웅(英熊)을 만든다. (완) >

- 영웅(英熊)은 수없이 많은 시련을 극복하며 완성됩니다. 그리고 진정한 영웅은, 단순히 시련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자입니다.

시련을 즐기세요! 그럼 당신도 진정한 곰이 될 수 있습니다!

< 달성 조건 >

- 스스로 무서워하는 놀이기구에 탑승할 것. (완)

-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움을 느낄 것. (완)

< 달성 보상 >

- 스킬 강화 (+1)

- 능력치 강화 (+5)

…….

관리자 양반, 그 영웅이 그 영웅이 아니지 않아?

그리고,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데 메시지 띄우면 어떻게 보라고.

번개 맞은 줄 알았잖아.

게다가 왜 자꾸 곰이 된다고 하는 거야.

‘설마 정말 내가 곰으로 변한다거나…….’

에이, 아무리 드립이라도 이건 아니지.

[ 오오, 수하! 드디어 너도 진정한 곰이 되어가는구나! ]

한편, 무사히 자이로 드롭 시승(?)을 마친 나의 모습에 진정한 곰 중의 곰, 고미는 환히 웃으며 솜방망이로 나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 그런 말 하지 마. 진짜 곰이 될 것 같다고.

“그러게, 바이킹 탈 때만 해도 새파랗게 질려 가지고 눈도 못 뜨더니.”

봉식이 역시 갑자기 변한 내 모습에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상태가 안 좋아 보였냐?”

나의 질문에 수다르님 마저 차마 아니라는 답을 하지 못하고 슬쩍 눈을 피했다.

으음, 심각하긴 했나 보네.

몬스터도 때려잡는 놈이 놀이기구는 왜 못타느냐고 묻거든, 그건 심리적인 문제라고 설명을 해주고 싶다.

‘특정 공포증’이라고, 엄연한 심리학적 증상 중 하나다.

정도가 심하면 질병으로 분류되기까지 한다고.

간혹 있지 않나, 다른 건 다 안 무서워하는데, 끝이 날카로운 물체만 보면 새파랗게 질리거나, 동그란 물체가 나란히 붙어있는 걸 못 본다거나, 조금 더 흔하게는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든가.

그래, 난 ‘놀이기구 공포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 뿐이라고.

[ 후후, 좋다 수하! 그렇다면 이제 더욱 많은 시련을 넘어보는 것이다! 어서 가자! 아직도 수많은 놀이기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

내가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한 아기곰은 잔뜩 흥이 올라 정신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놀이기구들을 훑어보았다.

거침없이 위험해 보이는 놀이기구만 쏙쏙 골라내는 것을 보니, 그 와중에도 나를 배려해 ‘진짜 위험한’ 것은 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우리는 자이로 드롭의 강화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번지 드롭’이라는 놀이기구에 탑승했다.

자이로 드롭은 내려올 때만 빠르고, 올라갈 때는 아주 느렸는데, 번지드롭은 급상승과 추락을 번갈아 가며 하는, 아주 끔찍한 놀이기구였다.

하지만 이미 웅지(熊志)를 품게 된 New 수하에게 그런 시련 따위는…….

아주, 아주 약간 무서운 놀이기구에 불과했다.

정말이다.

잠깐 산이 보였던 거 같기는 한데, 그 산이 북망산은 아니겠지.

‘스킬 레벨이 F급이라 그런 건가…….’

그렇게 내가 ‘웅혼한 기상’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이제 남은 건 유성 특급이랑, 아틀란틱, 자이로 스윙 정도네요. 정말 괜찮겠어요, 수하 씨?”

한유진 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남은 지옥의 이름을 순서대로 읊어주었다.

이름만 들어도 끔찍하다. 거기에 실내에 남은 롤러코스터까지 합치면, 놀이공원 사대천왕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극악의 조합.

하지만, 나에게는 비장의 수단이 있으니,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번지 드롭이야 워낙 급발진을 한 탓에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뿐이고.

“네, 괜찮아요.”

짐짓 여유로운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어어! 김수하 씨!”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에 반바지 차림을 한 익숙한 얼굴 하나가 손을 흔들며 나에게 달려왔다.

“뉴, 아, 아니, 노인국 씨?”

“어때요? 놀이공원은 잘 즐기고 계신가?”

노인국 씨의 뒤쪽에는 삼십 명도 넘는 화려한 원색계열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네, 덕분에요. 뒤에 계신 분들은…….”

“아, 우리 길드 헌터들이야. 다들 오랜만에 놀러 나와서 그런지 아주 신이 났어. 하루 만에 몇 년 치 친해질 거 다 친해진 느낌이라니까.”

다른 사람처럼 밝아진 노인국 씨와 블랙 메이지 헌터들의 모습에 괜스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기회에 화이트 메이지나 컬러 메이지로 길드 이름 바꿔보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니까!”

음, 그건 아닌 듯…….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New 인국 씨는 워낙 나이가 많으니 함부로 드립을 치기가 어렵다.

[ 후훗, 문어 할아범, 네 덕에 우리도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느니라! 고맙다! ]

고미가 전음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자, New인국 씨는 잠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고미 선생님! 허허허!”

그리고는 마치 어린아이에게 인사를 하듯 귀엽게 배꼽 인사를 하셨다.

“그럼 길드 운영에 관해서는 며칠 내로 다시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자고! 내가 좋은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으니까, 기대하고!”

말을 마친 New인국 씨는 어린아이처럼 후다닥 달려가 길드원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바람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데, 흑암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New인국 씨의 등장에 문득 흑암의 안부가 궁금해진 나는 수다르님과 토생원에게 녀석의 근황을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성질머리에 화원에 얌전히 갇혀 있을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 허허, 그자가 의외로 농사에 소질이 있더군요. ]

수다르님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농사요?”

뭐야……. 그 익숙한 설정은.

세계를 멸망시키려다가, 아니, 정확히는 우주의 인구를 절반으로 줄여버린 뒤에 농사꾼이 된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 제 화원을 새로 꾸미는 중이라서 말입니다. 그 일에 흑암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산신령님에 이어 토생원이 웃으며 입을 뗐다.

“화원을요?”

[ 예전에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거나 위험한 화초들도 많이 길렀는데, 이제 그런 것은 필요가 없어졌으니, 모두 뽑아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좀 심어보고 있습니다. ]

[ 호오, 토생원! 참으로 기특하구나! 그래, 이 몸을 위해 초콜릿 나무를 심어볼 생각은 없느냐? ]

…….

음, 설마 여태 초콜릿이 나무에서 열린다고 생각했던 거냐.

하지만 토생원의 대답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 고미님이 꿀을 좋아하신다 하여, 양봉을 시작해 볼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꽤 진척이 되었으니, 곧 스승님과 제가 직접 만든 꿀을 맛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보세요, 초월자의 이공간에서 양봉이라니요…….

[ 오오오! 토생원, 어찌 그리 기특한 생각을 했단 말이냐! ]

[ 제 연금술 지식을 총동원하여, 반드시 고미님에게 최고의 꿀을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

토생원이 개과천선 한 건 분명 좋은 일인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거냐고요…….

“그럼 새 화원에는 평범한 약초와 꽃을 심으시는 건가요?”

이어지는 나의 질문에 수다르님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 허허, 그것 외에도 고미님과 친구분들이 함께 놀러 갔을 때 먹을 야채나 나물, 과일 같은 것도 기를 예정입니다. 본래 야채의 맛은 신선도에 좌우되는 법이지 않습니까. ]

확실히 그건 그렇지.

그럼 여행을 갈 때마다 방금 딴 싱싱한 유기농 야채와 과일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건가.

이건 좀 끌리네.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야채는 이상할 정도로 맛있으니까.

[ 여하튼, 스승님과 제가 열심히 화원을 가꾸고 있는데, 흑암이 스스로 자신도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

의외네. 그것도 스스로 하겠다고 말했단 말이야?

[ 본래 두더지라 그런지, 저와 토생원보다 몇 배는 더 밭일을 잘하더군요. 덕분에 고미님과 친구분들에게 조만간 맛있는 야채를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수다르님의 말에 이번에는 이유찬 씨가 눈을 반짝이며 대화에 참여했다.

“그럼 혹시 고미님과 여행을 갈 때 필요한 식재료를 미리 말씀드리면, 좀 재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으음……. 그럼 조만간 초월자가 직접 재배한 야채에 산신령의 항아리에서 숙성된 식재료로 드래곤이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조합이지만,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

[ 허허,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

[ 훌륭하구나! 삼돌이는 잘 지내고 있더냐? ]

고미가 삼돌이의 소식을 묻자, 산신령님은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습니다. ]

그, 그건 아니죠, 산신령님. 그 녀석이 무럭무럭 자라면 위험한 거 아닙니까?

[ 호오, 다행이구나. 조만간 흑암을 직접 만나보아야겠다. ]

사실 고미는 정말로 흑암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오려고 했다.

하지만 흑암은 차마 블랙 메이지의 길드원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는지, 아직은 자신이 세상에 나갈 수 없다고 답했을 뿐이었다.

[ 하루빨리 문어 할아범과 흑암이 화해를 했으면 좋겠구나. ]

고미는 아쉬운 듯 그렇게 말하며 또다시 다음 놀이기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번지드롭 다음으로 녀석이 선택한 것은, 놀이공원 사대천왕 중 하나인 ‘유성 특급’이었다.

롤러코스터와 비슷한 놀이기구인데, 빙글빙글 돌아간다는 점에서 더욱 극악한 놈이라고 할 수 있지.

솔직히 말해서, 영웅(英熊)이 되기 전의 나에게는 지옥행 특급 열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물건이었다.

[ 수하 씨, 이거 타보고 도저히 못 타겠으면 롤러코스터는 포기해요. ]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 한유진 씨가 나에게 몰래 텔레파시를 보내왔다.

[ 네? 이거 롤러코스터랑 똑같은 거 아니에요? ]

[ 이게 절반은 느려요. 롤러코스터는 70킬로미터, 이건 30~40킬로미터 정도. 360도 회전도 없고요. 그냥 어두운 곳에서 달리니까 체감 속도가 더 높은 거예요. ]

그렇군……. 타 본 적이 없어서 그냥 롤러코스터랑 똑같은 건데 어두운 곳을 달리는 것뿐인 줄 알았다.

그나저나 놀이기구 시속까지 파악하고 있다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놀이기구를 좋아하시는 모양이다.

“그럼 들어가죠.”

우주를 모티브로 꾸며진 지하 공간에 발을 들이는 순간, 나의 심장이 전에 없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단언하건대, 이건 내 인생 최대의 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킹을 타고 떡실신을 한 이후, 롤러코스터 종류는 쳐다도 안 봤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얘기가 다르지.’

< 해피 곰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

< 갓-고미님의 웅혼한 기상의 스킬 등급이 임시로 상승합니다. F->D 잔여 포인트 : 2127 >

‘후훗…….’

파업을 하는 와중에도 많은 일이 있었고, 놀이공원에 온 이후로 해피 곰 포인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진즉에 2000을 돌파해 있었다.

‘D 정도면 유성 특급도 무섭지 않지.’

파업도 끝났고, 해피 곰 포인트가 고미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진즉에 확인을 마쳤다.

모처럼 놀러 와서 고미가 내 걱정을 하게 하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나 없이 고미 혼자 놀이기구를 태우는 건 더더욱 싫고.

그럼 방법 있나. 이렇게 편법으로 타는 거지.

“가자!”

[ 가자! ]

하지만 유성 특급에 몸을 실으려는 찰나,

[ 고미님. ]

누군가의 목소리가 놀이기구로 향하던 아기곰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 서, 설마……. ]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고미는 유성특급의 유혹마저 뿌리치고 후다닥 어딘가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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