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0 두근두근 놀이곰원(6) 숲속 친구들, 내전 발발
<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
< 고미를 도와줘! (2) >
- 고미가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위대한 곰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빠르게 고미의 고민을 해결해 주세요.
······.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문장인데. 그것도 거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말이야.
(2)가 붙은 것 말고는 아주 익숙해.
설마 관리자가 복붙 같은 걸 하는 건 아니겠지?
< 달성 조건 >
- 고미가 놀이기구를 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단, 이능력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 달성 보상 >
- 특수 스킬 : 갓 고미님의 웅혼한 기상(F)
옛부터 사람들은 위대한 곰의 웅혼(熊渾)한 기상을 칭송해 왔습니다. 진정으로 웅혼한 기상을 가진 자는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공포, 위압 효과에 면역을 가지게 됩니다.
P.S. 일상생활에도 웅용이 가능할 것 같다.
······.
아, 파업 마렵다.
바이킹 탈 때는 그렇게 빌어도 안 도와주더니, 고미가 범퍼카 타고 싶다니까 바로?
게다가 웅용이 가능한 건 뭐야, 웅용이.
이게 받아주니까 갈수록 막 던지네.
‘한자 표기 틀린 건 지적할 마음도 안 생기네.’
하지만······. 화가 나는 것과는 별개로, 유혹이 너무 달콤하다.
아직은 실내에 있으니 그렇다 쳐도, 밖에 나가면 자이로드롭이니 뭐니, 무지막지한 놀이기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고, 스릴 중독자인 고미가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고미와 조금 더 제대로 놀아주기 위해서는 저 스킬이 필요했다.
놀아주는 사람이 계속 무서워하면, 고미도 마음 놓고 놀 수가 없으니까.
그냥 네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 아니냐고? 사람을 뭘로 보고······.
[ 수, 수하······. 어떻게든 해다오! 부, 부탁이다! ]
대기열이 줄어드는 것을 본 고미가 다급한 목소리로 다시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고미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순수한 선의’와 ‘책임감’이 우러나왔다.
그래, 내가 아니면 누가 이 가엾은 아기곰을 도와줄 수 있겠어.
“기다려 고미, 나만 믿어!”
안전 수칙에 따르면 범퍼카의 키 제한은 140센티미터.
아동용이라고 해도 110센티미터는 되어야 한다.
물론, 안전은 고미에게 있어서 문제가 안 된다.
범퍼카가 아니라 진짜 자동차가 와서 부딪혀도 고미가 아니라 운전자의 생사를 걱정해야 할 수준이니까.
진짜 문제는······. 고미의 신체 구조다.
치명적으로 귀엽지만, 범퍼카를 타는 데는 치명적인 문제가 되는 팔다리의 길이.
작은 키에 짧은 팔다리가 더해져, 죽었다 깨어나도 핸들과 엑셀에 동시에 닿을 수 없는 저 비율.
퀘스트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허곰섭물이나 이기어곰술로 범퍼카를 태울 수는 있지만······.
‘그러기에는 주위에 보는 눈이 너무 많지.’
그렇게 어떻게 하면 고미의 태생적 결함을 극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토생원이 슬쩍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 수하님, 이 약을 먹으면 잠시나마 고미님의 키를 자라게 만들 수 있습니다. ]
“정말요?”
으음, 그런데, 어째 불안하다.
토생원은 약 먹고 커질 때마다 조금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 같던데.
혹시 저거 먹고 고미가 난동이라도 부린다면······.
‘새, 생각도 하고 싶지 않군.’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 부작용은 없으니 걱정 마시지요. ]
무슨 소리, 아무리 그래도 애한테 이런 정체 불명의 약을 먹일 수는······.
[ 이리 다오, 토생원! ]
그러나 말릴 틈도 없이, 고미가 덥석 토생원의 키 크는 약(?)을 삼켜버렸다.
“자, 잠깐 고미!”
[ 우, 우오오옷! 수하, 키가 자라는 것이 느껴진다! ]
이어서 흥분에 찬 목소리와 함께 고미의 키가 자라기 시작했으나······.
결과는 다소, 아니, 많이 실망스러웠다.
‘한 1,2 센티나 자랐나. 50센티는 더 자라야 할 것 같은데.’
[ 오오, 토생원! 효과가 있구나! 어서 약을, 약을 다오! ]
약의 효과는 미미했으나, 고미는 동그란 눈을 번득이며 계속해서 약을 요구했고, 우리 차례가 다가올수록 그 광기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고미의 입장에서는 매우 실망스럽게도, 다음 약을 삼키기도 전에 키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말았다.
[ 으, 으아아!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
[ 죄, 죄송합니다! 야, 약효가 이렇게 빨리 사라질 줄이야······. ]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간 때문입니다.’라는 한 문장이 스쳤다.
설마, 만독불침이라 약발도 잘 안 듣는 건가······. 이건 이거대로 굉장하군.
‘몸이 너무 좋아서 문제일 때도 있구나.’
결국 고미의 키를 자라게 하는 데 실패한 토생원과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져있을 때,
“뭐하냐?”
봉식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다웅이를 품에 안으며 한마디를 툭 내던졌다.
“엑셀은 네가 밟고, 운전대는 고미가 잡으면 되는 거 아니야?”
······.
그렇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언제나 해답은 간단한 데 있다더니, 과연 옛말이 틀린 게 없군.
“이 자식은 꼭 이상한 데서 얼빠진 짓을 한다니까.”
할 말이 없다.
훗, 이런 묵직한 팩트 폭력, 제법 오랜만이군.
좋은 한방이었다, 민봉식.
“근데, 원래 그거 안 되는 거 아니야? 안전수칙······.”
“그럼 바이킹은 타도되는 거고?”
이 자식은 왜 날 공격할 때만 예리해지는 걸까.
이게 친구 보너스라는 건가.
[ 흐, 흐흠······. 수, 수하, 개의치 말 거라. 위대한 이 몸도 가끔 아주 당연한 것을 까먹고는 하니 말이다. ]
고미에게 위로를 받으니까, 왠지 더 비참한 기분이 든다.
여하튼, 봉식이의 도움을 받아 난관(?)을 돌파한 우리는 곧장 범퍼카에 몸을 실었다.
“자, 고미, 이렇게 핸들을 돌리면 차가 오른쪽으로 가는 거야, 그리고 왼쪽으로 돌리면 왼쪽으로······.”
그렇게 잠시 초보 웅전자에게 범퍼카 운전법을 가르치고 있을 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뒤쪽에서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고개를 돌려보자, 봉식이+다웅이 조가 우리를 바라보며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 네 이놈, 다웅이! 감히! ]
운전대를 잡은 것은 다웅이였다.
녀석의 입가에는 봉식이와 닮은 사악한 미소가 걸려있었고, 눈빛은 도발적이기 짝이 없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도전.
[ 수, 수하! 가자! 감히 위대한 이 몸을 공격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
고미의 다리가 되어 엑셀을 밟아주자, 핸들을 쥔 솜방망이가 빠르게 움직이며 차체가 민첩하게 오른쪽으로 회전했다.
‘오, 그래도 생각보다 운전을 잘하네.’
그러나, 다웅이의 꼬리를 잡기도 전에 누군가가 또다시 ‘고미 호’를 들이받았다.
“삐이이이!”
[ 사, 삼룡 어멈! 작은 금동이! 너희가 어찌! ]
작은 금동이가 자신을 들이받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 운전대를 쥔 고미의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삐이! 삐이!”
반면 알틴의 표정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가득했다.
아마 이전에 고미한테 번개를 뿜었을 때처럼, 그냥 좋아서 장난을 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고미에게 이것은 단순한 배신에 지나지 않았으니······.
[ 이, 이럴수가……. ]
문자 그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고미가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을 때,
쿵!
“곰 선생님!”
“아, 아웅!”
이강혁 씨, 아웅이 조가 봉식이, 다웅이 조를 거세게 들이박으며 고미를 지원했다.
[ 허, 허수아비! 역시 너는 이 몸을 버리지 않았구나! 너야말로 진정 신의를 아는 녀석이다! ]
한편, 이유찬 씨와 토생원은 너나 할 것 없이 아무나 거침없이 들이박으며 마냥 이 싸움(?)을 즐겼고, 수다르님과 제르보나 씨는 상황에 따라 고미+아웅이 팀과 알틴+다웅이 팀을 오가며 균형을 맞춰주고 있었다.
[ 다, 다웅이! 너만은, 너만은 용서할 수 없다! 오늘 이 몸이 진정한 곰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려주마! ]
하지만 흥분한 고미는 집요하게 다웅이만을 노렸고, 이로 인해 알틴에게 계속해서 뒤를 내주고 말았다.
초보 웅전자 주제에 핸들을 돌려봐야 얼마나 돌리고, 피해봐야 얼마나 피하겠나.
후방 주시는커녕 좌우도 제대로 살피지 않으니,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 어, 어째서! 수하! 속도를 높여라! 속도를! ]
가장 큰 문제는 고미가 범퍼카의 속도에는 한계가 있으며, 아무리 요란하게 핸들을 돌려도 방향 전환의 속도나 정도에는 제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몸이 좋아서 머리가 편한 아기곰에게 있어서는 난생처음 겪어보는 난관.
쿵! 쿵!
[ 이익! 이, 이놈이 왜 말을 듣지 않는 것이냐! ]
쿵!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 고미의 발이 되어 녀석을 서포트 했으나,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 아, 안돼······.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느니라! ]
그렇게 계속해서 고미 호가 공격을 당하고, 흥분한 슈퍼 먼치킨 아기곰이 핸들을 부러뜨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무렵.
‘자, 잠깐. 지금 뭔가 이상하게 움직인 것 같은데.’
조금이지만, 고미가 타고 있는 범퍼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각도로 움직였다.
끼익, 끼이익!
이어서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소리와 함께 돌연 범퍼카가 90도에 가까운 각도로 급커브를 틀며 다웅호를 들이받았다.
······.
드리프트? 범퍼카로?
“다, 다웅!?”
그 기묘한 움직임에 다웅이 역시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놀란 표정으로 고미를 노려봤다.
“야, 김수하, 방금 그 차 이상하게 움직인 것 같은데?”
봉식이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고미는 오만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 흥, 이 몸은 이미 카트라는 것을 몰아보았다. 봉식이 네 녀석은 드리프트를 모르는 모양이구나? ]
이어서 알틴이 한 번 더 ‘고미호’를 노렸지만, 엑셀을 밟기 무섭게 자동차가 급발진을 하며 날렵하게 공격을 피했다.
명백하게 범퍼카의 한계를 넘는 민첩성과 속도.
기곰술로 차를 조종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뭐, 뭐하는 짓인데 지금······.
“어어, 김수하 씨! 이러기 있어요?”
상황이 이쯤 되니, 다른 숲속 친구들 역시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 후후후후······. 어리석은 녀석들! 이 몸에게 도전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
끼익, 끼이익!
그러거나 말거나, 고미의 자동차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신들린 무브먼트를 선보이며 다웅이를 공격했고,
“다, 다웅!”
[ 우하하하! 소용없다! 나약한 놈! 이제야 이 몸에게 도전한 것이 조금 후회되느냐! ]
범퍼카가 멈출 때까지 무려 열 번에 가깝게 일방적으로 다웅호를 들이받고 나서야 조금 분이 풀린 듯 꼬리를 흔들며 차에서 몸을 내렸다.
[ 흥! 가자, 수하. 시시한 승부였다. 저런 녀석은 차가 식기 전에 물리칠 수 있겠구나. ]
······.
혹시, 관우가 목을 벤 장수의 이름이 화‘웅’이라는 걸 알고 치는 드립인 걸까.
< 축하합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범퍼카 대전’이 끝나자, 언제나처럼 시스템이 보상을 보내왔다.
그런데, 중간에 분명히 이능을 쓴 것 같은데······.
‘그래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무렴 어떠냐, 일단 나부터 살아야지.
* * *
이후 우리는 실내공간인 너구리 랜드 ‘어드벤쳐’를 벗어나 ‘매직 랜드’로 이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범퍼카에서 너무 힘을 쓴 탓일까?
고미의 배가 또다시 꼬르륵 소리를 내며 밥을 달라고 난리였다.
[ 우, 우웅······. 수하, 배가 고프구나. ]
“후훗, 걱정 마십시오, 고미님. 제가 이미 밥을 먹을 수 있는 장소를 알아두었습니다.”
고미의 배에서 나는 소리를 들은 이유찬 씨는 기다렸다는 듯 도시락 바구니를 흔들었고, 우리는 2층에 위치한 피크닉 라운지로 향했다.
“자, 그럼······.”
이유찬 씨가 준비한 도시락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와아······.”
“굉장하군요.”
“허허, 역시 유찬님은 요리에 조예가 깊으신 것 같습니다.”
“이야, 이건 진짜 예술이다.”
숲속 친구들의 입에서 분분히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메뉴 구성은 이전에 말했던 대로 ‘흑룡표 꼬치구이’와 김밥, 잘 썰린 과일 몇 가지와 샌드위치 등이었다.
“데코레이션이 장난이 아니네요.”
하지만 그것들을 적당히 잘 배치해 고미의 얼굴과 젤리를 만드는 솜씨에는 감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 거, 검은콩······. ]
도시락 상자에 든 자신의 얼굴을 발견한 고미는 감격한 표정으로 이유찬 씨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 거, 검은콩! ]
“고미, 이거 사진으로 찍어줄게.”
[ 오오! 그, 그렇구나! 어서, 어서 사진을 찍어다오! ]
핸드폰을 꺼내 기념 촬영을 마친 우리는 먼저 김밥을 하나씩 골라 들었다.
“자, 그럼 고추냉이 김밥 복불복을 시작해 볼까요?”
이유찬 씨의 말을 신호로, 현금으로 따지면 몇 억 짜리 역대급 김밥 복불복이 시작됐다.
하지만 복불복의 당첨자는······.
자리에 있던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누군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