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49화 (149/300)

EP.149 두근두근 놀이곰원(5) 갓-고미에게도 불가능이 있는가

말을 마친 수다르님은 슬며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 자, 선물은 저쪽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

[ 우웅? 설마 놀이공원에 미리 선물을 맡겨두기라도 했단 말이냐? ]

고미는 영문을 모르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쪼꼬미 친구들을 제외한 넷은 금세 수다르님이 준비한 선물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렸다.

‘그렇구나. 플룸라이드를 타자고 한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던 거였어.’

역시, 대단한 분이다.

놀이기구 선택 하나로 내 상태도 회복하고, 고미도 즐겁게 해주고, 선물까지…….

이건 단순히 눈치가 빠른 게 아니라, 언제나 다른 사람의 상태와 기분, 상황을 살피고, 한 번 더 생각하고 움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롤 모델이야, 롤 모델.’

평생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설마 내 롤모델이 수달의 모습을 한 산신령이 될 거라고는.

아니, 누구라도 그런 상상을 하지는 않겠구나.

수다르님이 가리킨 곳으로 걸어가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 호오, 이곳에 뭔가 재미난 것이 있는 모양이구나. ]

호기심이 발동한 고미는 나의 머리 위로 올라서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고,

[ 이, 이럴 수가! 수, 수하! 우리다! 우리가 있다! ]

화면에 떠오른 숲속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나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고, 고미, 아파.”

[ 아, 아앗! 미안하다, 하지만 저기에 친구들의 모습이! ]

고미는 아직 사진을 모른다.

우리와 함께 생활하며 현대문물을 제법 접하기는 했지만, 사진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니까.

‘그러고 보니 여행 가서 사진 한 번 안 찍어줬네.’

뒤늦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본래 사진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여행 도중에 게이트가 열리고, 고북대왕도 만나고, 이래저래 일이 많았던 탓에 정신이 없어 사진에는 아예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앞으로는 꼭 찍어줘야겠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고미에게는 사진을 남겨주고 싶었다.

이래서 부모님들은 애들을 데리고 어딘가를 갈 때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걸까.

애를 키우면 부모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더니, 왠지 고미를 만난 이후로 나도 조금씩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낸 뒤 화면에 있는 고미와 숲속 친구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거, 인화할까요?”

그때, 곁에서 나를 지켜보던 한유진 씨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인화도 돼요?”

“네, 돈 주면 해줘요.”

“그럼 얼른 가죠.”

사진을 인화해 고미에게 건네주자, 녀석의 동글동글한 솜방망이가 감격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 수하, 이 사진이라는 녀석을 대웅전에 걸어놓겠다! 이제부터 이 녀석이 이 몸의 제일가는 보물이니라! 이것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하는 위대한 순간이다! ]

“대웅전이요?”

‘대웅전’에 걸어놓겠다는 말에, 한유진 씨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곰 선생님은 불자셨군요.”

이강혁 씨는 희한한 오해를 해놓고는 고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듯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고미가 살던 집이에요. 동이님이 선물해 주셨다고 하던데…….”

“아!”

나의 대답에 한유진 씨는 그제야 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대웅전이라는 이름은 고미가 붙인 건가 보군…….

하긴, 드래곤이 그런 희한한 이름을 붙여줄 것 같지는 않았다.

[ 그렇구나! 너희가 원한다면 언젠가 이 몸이 대웅전에 초대해 주겠다! 그래, 산으로 놀러 가면 좋겠구나! 대웅전이 있다면 산에서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으니 말이다! ]

“좋아요!”

“그럼 제가 산에서 나는 것들로 할 수 있는 요리를 알아보겠습니다.”

[ 허허, 산이라……. 그렇다면, 역시 제가 빠질 수 없지요. ]

한유진 씨에 이어 이유찬 씨, 수다르님까지 자신의 초대를 받아들이자, 고미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후훗, 좋다! 그럼 또 다른 놀이기구를 타러 가보자꾸나! ]

말을 마친 고미는 내 어깨 위에 올라탄 채 몇 번이고 친구들과 함께 찍은 첫 번째 사진을 보며 바보처럼 웃어댔다.

몇 번을 보아도 행복하다는 듯 빙글빙글 꼬리를 돌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놀이공원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플룸라이드 다음으로 선택한 놀이기구는 ‘빙글빙글 바구니’였다.

흥분한 고미가 솜방망이로 열심히 핸들을 돌려대는 탓에 조금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산신령님의 특제 멀미약 덕분에 현기증을 느끼거나 토하는 일 없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 후후, 그럼 이제 저 녀석이다. 아까부터 제법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가던데, 어디 그 바이킹이라는 녀석보다 더 대단한지 이 몸이 직접 확인해 보아야겠구나. ]

하지만 고미의 손끝이 롤러코스터로 향하는 순간, 잠시 안정 심박수를 유지하던 나의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멈춘 걸지도…….

어, 언젠가 타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조금만 미룰 수는 없는 거냐?

“고미님, 롤러코스터는 마지막에 타야 재미있어요. 놀이공원의 하이라이트니까요.”

그때, 한유진 씨가 나를 위해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주었다.

다만, 나를 위해서는 아닌 것 같고, 순수하게 롤러코스터가 대미를 장식하기에 어울린다고 생각해 한 말 같았다.

[ 으음……. ]

그 제안이 제법 설득력이 있다고 느꼈는지, 숲속 대장님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지. 던전에서도 우두머리가 중간에 등장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

음……. 비유에 조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덕분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게 조금 미뤄졌으니, 일단 감사합니다.

“대신 제가 다른 재미있는 거 소개해 드릴게요.”

[ 오오, 삼룡 어멈, 너는 놀이공원에 아주 조예가 깊구나! ]

고미의 말마따나, 한유진 씨는 놀이공원에 제법 빠삭한 것 같았다.

뭐, 본래 성격이 꽤 외향적인 분이니, 소싯적에 놀이공원 좀 다녀보셨겠지.

“짜잔! 고미님 이건 어때요? 산 얘기가 나와서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곳으로 골라봤어요!”

한유진 씨가 추천해준 놀이기구는 바로 3층에 있는 ‘정글 보트’였다.

정글과 비슷하게 꾸며진 수로를 원형의 보트를 타고 이동하는 놀이기구.

그런데……. 정글하고 산은 완전히 다른 거 아닌가.

나무하고 풀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 외에는 완전히 다른 장소인 걸로 알고 있는데.

이분도 은근히 허술하단 말이지.

[ 오오! 그렇지! 이 몸은 위대한 곰이니, 숲을 빼놓을 수는 없지! 이곳에도 이 몸을 위한 숲이 준비되어 있었구나! ]

하지만 고미는 숲이나 정글이나 산이나 상관이 없는 모양이었다.

으음, 그냥 무슨 놀이기구를 타든 적당한 이유를 붙여서 자기와 어울린다고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그나저나, 정글에도 곰이 살던가? 곰은 산 아닌가.’

정글 보트의 정원은 여섯이었고, 나와 고미와 같은 보트에 탑승한 것은 한유진 씨와 알틴, 그리고 제르보나와 수다르님이었다.

보트에 오르자, 고미의 입가에 또다시 흉악한(?) 미소가 번졌다.

[ 후후후……. 이곳에도 이 몸을 위한 손잡이가 존재하는구나! ]

신이 난 고미는 또다시 빙글빙글 바구니 때와 마찬가지로 손잡이를 돌려보려 했지만…….

[ 우웅!? ]

아쉽게도 단순한 손잡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금 풀이 죽은 표정으로 입을 비죽였다.

[ 흐음……. 아쉽구나. 이 녀석이 빙글빙글 돌아간다면 더 즐거울 텐데 말이다. ]

고미가 아쉬운 기색을 내비치자, 한유진 씨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고미님, 혹시 레프팅이라고 아세요?”

[ 우웅? 그것은 무엇이냐? ]

“이것보다 몇 배는 더 물살이 험한 급류에서 직접 노를 저으면서 배를 타는 거예요.”

[ 호오……. 그것참 흥미롭구나. ]

‘직접’이라는 단어와 ‘급류’라는 말에 고미의 두 귀가 쫑긋 일어섰다.

“산에 가기 전에, 레프팅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고미님의 대웅전에서 유찬이가 요리를 하고, 다 같이 노는 거죠! 캠프파이어도 하고!”

[ 오오! 훌륭하구나! 정말 훌륭해! ]

노는 와중에 또 놀 계획을 세우다니,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군.

그나저나, 레프팅은 또 이유찬 씨 취미인가. 대체 취미가 몇 개인 거야.

그런데, 캠프 파이어가 뭔지는 알고 좋아하는 걸까.

[ 좋다! 이 몸은 노는 것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

“삐이! 삐이이!”

고미가 한유진 씨의 제안을 수락하자, 신이 난 알틴이 날개를 파닥였다.

[ 오오, 작은 금동이, 너도 그 레프팅이라는 녀석을 즐겨본 적이 있는 것이냐? ]

“삐이!”

심지어 알틴까지 데리고 레프팅을 하신 모양이다.

그렇게 새로운 여행과 놀이 계획을 세우는 사이, 정글 탐험 보트가 끝나버렸다.

보트에서 내린 고미는 잔뜩 신이 나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레프팅을 함께 하자고 이야기했고, 우리는 새로운 여행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며 또 다른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그렇게 다음에는 또 무슨 놀이기구를 탈까 고민하고 있을 때,

[ 우웅?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리가 나는구나. 대체 무슨 놀이기구이기에……. ]

고미가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흥미롭다는 듯 귀를 쫑긋거렸다.

우리가 있는 곳은 3층, 그리고 고미가 관심을 보인 놀이기구가 있는 곳은 2층이었다.

감각을 강화해 귀를 기울여보자,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연달아 ‘쿵’, ‘쿵’하고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 순간, 나는 아래층에 무엇이 있는지 깨달았다.

그래, 놀이공원에 오면 범퍼카는 꼭 타봐야지.

이걸 잊고 있었네.

[ 수하, 수하! 저 아래에 있는 녀석이 이 몸을 부르고 있다! ]

흥분한 고미가 내 어깨에서 뛰어내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 오오오오오! 수하, 이 작은 버스는 무엇이냐? ]

초인, 아니, 초웅적인 청각을 이용해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한 고미가 홀린 듯이 쇠로 된 바닥 위를 달리고 있는 범퍼카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범퍼카라는 거야.”

[ 호오오……. 그렇구나. 이 몸은 적과 부딪히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용맹한 이 몸에게 딱 어울리는 녀석이구나! ]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하군.

더하기 빼기도 제대로 못 하는 녀석이, 어째서 놀이에 관해서는 이렇게 끝도 없이 그것이 자신과 어울리는 이유를 댈 수 있는 건지?

범퍼카에 달린 안테나(?)에서 불똥이 튀고, 쿵,쿵, 하는 소리와 함께 조그마한 자동차들이 부딪칠 때마다 ‘문과형 아기곰’의 꼬리가 더욱 빠르게 흔들렸다.

[ 수하! 어서! 어서 이 몸에게 저 범퍼카라는 녀석을 맛보게 해다오! ]

하지만 막상 탑승 대기열에 가서 줄을 서자, 고미의 꼬리에서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왜 이러지?’

고미는 자동차를 좋아한다.

굳이 따지자면, 자동차, 배, 놀이기구 할 거 없이 탈 것은 모두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카트 드리프트로도 그렇게 기뻐했으니, 이미 흥분해서 난리가 났어야 정상인데…….

“고미, 왜 그래?”

나의 질문에 고미는 더없이 슬픈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솜방망이와 짤막한 다리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아…….’

그 순간, 나는 고미의 신체 구조가 가진 치명적인 결함을 깨달았다.

‘짧아…….’

그렇다.

범퍼카를 몰기에 고미의 팔다리는, 너무나도 짧았다.

다른 놀이기구야 슈퍼 안전띠를 매고 타면 문제없이 즐길 수 있지만, 범퍼카는 직접 차를 모는 느낌이 중요한 건데, 고미의 팔다리는 운전을 하기에는 가히 치명적으로 짧았다.

[ 이, 이럴 수가……. ]

“괘, 괜찮아 고미. 내 옆에 타면…….”

[ 아, 아니다! 이 몸은, 이 몸은 저 조그만 버스를 직접 몰아보고 싶단 말이다! ]

바로 그때, 꿀태창이 다시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무슨 퀘스트가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음, 이번만큼은 마음이 맞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 녀석이 운전을 할 수 있게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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