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47화 (147/300)

EP.147 두근두근 놀이곰원(3) 수하의 수난시대

지금 고미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바이킹’이었다.

그래, 놀이 기구하면 롤러코스터, 바이킹을 떠올리는 사람이 대다수일 정도로, 놀이공원을 대표하는 놀이기구지.

그러나 나에게 바이킹은 공포의 상징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때, 괜한 호승심에 억지로 탔다가 내리자마자 토하고 종일 앓아 누웠거든.

바이킹의 위치는, 정확히 신밧드의 대모험의 정면이었다.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걸 타고 나오면 정면에 저 커다란 녀석이 고미를 유혹하리라는 걸.

‘망했어······.’

모든 재앙은 방심에서 비롯되는 법인데, 왜 그걸 잊었을까?

초월자를 잡은 직후라 긴장이 풀린 걸까?

아니면, S급 소환수인 케르베로스를 잡은 탓에 오만이라는 함정에 빠진 걸까?

그것도 아니면, 놀이공원이 나에게 있어서는 던전만큼이나 위험한 곳이라는 걸 잠시 잊은 탓일까?

- 후우우웅-!

“꺄아아아아!”

- 후우웅!

“으아아아악!”

커다란 배가 묵직한 소리와 함께 왕복운동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대체 저런 걸 왜 타는 거야! 왜! 아니, 애초에 저런 걸 왜 만든 거야! 누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만든 건데!

[ 저 녀석이다. 역시 저 녀석이야. 처음 보는 순간부터 느꼈느니라. 분명 저 커다란 배는 이 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여기 있었구나······. 저런 거 좋아하는 사람, 아니, 곰.

생각해 보니, 바이킹은 딱 고미 취향이다.

스릴이 있는 데다가, 크잖아.

게다가 하필이면 바다 여행을 갔을 때 묵었던 숙소와 모양도 비슷하고······.

설마, 그 호텔의 모양이 오늘 있을 대참사의 복선이었던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아보니, 다웅이와 아웅이도 바이킹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괜히 봤다.

그래, 이 둘은 당연히 취향이 고미랑 비슷하겠지.

이럴 때 보면 참 사이좋은 곰돌이 삼 형제다.

“삐이이! 삐이! 삐이!”

심지어 알틴마저 전에 없이 흥분한 목소리로 정신없이 날아다니며 ‘바이킹’에 타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으음, 이상하다······.

왜 나는 애를 낳아본 적이 없는데, 애기 넷이서 올망졸망 바라볼 때 도저히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지?

“어쩔래?”

봉식이가 걱정과 기대, 즐거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날 놀리는 게 즐겁기는 하지만, 전에 한방에 K.O. 패를 당했던 걸 봤으니, 걱정도 되겠지.

“타야지······.”

하지만 저 순진한 어린양들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놀이공원을 즐기고 싶다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냐.

집에 가서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해달라는 거 다 해줘야지.

바로 그때, 수다르님이 조용히 다가와 무언가를 내밀었다.

[ 수하님, 이것을 받으십시오. ]

응?

[ 멀미를 예방해주는 단약입니다. 인간 중에는 놀이기구를 타다가 멀미를 하는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자신과 놀아주다가 친구들이 아프면 고미님께서 마음 아파하실까 걱정이 되어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산신령님의 그 말이, 나에게는 어둠을 뚫고 내리는 한 줄기 광명과도 같았다.

‘사, 산신령님······!’

그래, 오늘 이 자리에는 천하제일 단약사, 수다르님이 있었지!

왜 진작 멀미약 생각을 못 했을까!

“감사합니다.”

동글납작한 갈색의 단약을 입안에 넣자,

“우욱······”

퀴퀴한 냄새가 입안에 퍼져나가며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이게, 화장실 냄새? 발 냄새? 대체 뭐지?’

한결같이 취향을 타는 맛을 자랑하는 산신령님의 단약이지만, 이번 건 좀 심한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와 맛에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참고 있을 때, 한유진 씨가 그 악취의 정체를 밝혀주었다.

“두리안 냄새랑 비슷하네요.”

“아, 이게 두리안 냄새예요?”

“네.”

방귀냄새가 나는 과일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정말로 이런 냄새가 나는구나. 근데 맛은 좋다고 들었는데, 왜 맛도······.

아니지, 수다르님 덕에 목숨을 건졌는데 맛을 탓할 수는 없지.

자, 그럼 약도 먹었겠다. 큰맘 먹고 한번 도전해 볼까?

“가자.”

약을 먹고 자신감을 충전한 내 모습에 봉식이는 가소롭다는 듯 픽 웃음을 흘렸고,

[ 후후후, 수다르, 과연 훌륭하구나. 수하를 위해 그런 약까지 준비하다니. ]

고미의 칭찬을 받은 산신령님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이 자리에 나 못지않게 긴장한 사람이 존재했으니······.

[ 저, 저는 저것은 무리입니다. ]

바로, 토생원이었다.

······.

당신, 초월자씩이나 돼서 바이킹을 무서워하는 거야?

왜 갈수록 토끼라는 이미지에 충실한 캐릭터가 되어가는 건데.

[ 우, 우웅······. 알겠느니라. 그럼 너는 이곳에서 쉬고 있거라. ]

하지만 조금 서운한 듯 말끝을 흐리는 고미의 모습에, 토생원은 곧바로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었다.

[ 아닙니다, 해보겠습니다! ]

[ 오오, 토생원! 그것이다! 그렇게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이 몸처럼 진정으로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느니라! 이 몸 역시 수없이 많은 시련과 두려움에 용감히 맞선 끝에 지금처럼 진정한 곰이 될 수 있었지! 훌륭하다! 훌륭해! ]

[ 정말로 저도 고미님처럼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 입니까? ]

[ 그렇다! 용기를 가지고 맞선다면, 누구나 이 몸처럼 될 수 있느니라! 너는 지금 위대한 곰이 되는 첫걸음을 뗀 것이다! ]

아니, 바이킹 하나 가지고 그런 대화 하지 말라고.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데.

무엇보다, 아무리 시련을 극복한다고 해도 토끼가 곰으로 변하지는 않지.

“자, 그럼 안전띠 매시죠.”

그때, 이강혁 씨가 평소처럼 다소 무덤덤한 표정으로 토생원이 특수 제작한 안전띠를 나눠주었다.

“괴, 굉장하네요.”

토생원이 연금술로 제작한 특수 안전띠의 생김새는 아기띠와 비슷했다.

백색 화원에서 기른 특수한 식물의 덩굴과 마력 철을 원료로 하는 덕에 A급 헌터가 잡아당겨도 찢어지지 않고, 어지간한 몬스터의 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그야말로 초강력 안전띠.

심지어 급강하와 급상승, 360도 회전에도 떨어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위험한 놀이기구를 탈 때는 아무리 몬스터와의 싸움으로 단련된 숲속 친구들이라고 해도 자칫 쪼꼬미 친구들을 놓칠지도 모르니까 준비한 장비였다.

“아무리 봐도 이건 안전띠가 아니라 아기띠 같은데 말이지.”

봉식이가 가장 먼저 안전띠를 메고, 이어서 이강혁 씨와 나, 한유진 씨와 제르보나도 각자 담당한 쪼꼬미 친구들을 안전띠에 단단히 고정했다.

“자, 그럼 가볼까요?”

수다르 님을 품에 안은 제르보나 씨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바이킹 탑승을 앞두고 있음에도 기대도, 긴장도 느껴지지 않는, 완벽하게 평온한 태도.

수다르님 역시 제르보나 못지않게 침착한 상태였다.

‘저런 게 부동심이라는 건가······’

그야말로 명경지수라는 말이 어울리는 두 사람이군.

본받고 싶다······.

장비 착용을 마치고 안전점검까지 마친 후 바이킹 앞으로 이동하자, 기다릴 것도 없이 곧바로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왜, 왜 대기열이 이렇게 짧은 거냐. 조금만 더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달라고!’

[ 오오오, 드디어, 드디어 이 몸에게 걸맞은 훌륭한 놀이기구를 탈 수 있겠구나. ]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커다란 놀이기구로 향하는 고미의 두 눈은 빔이라도 뿜을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번뜩 데미지를 최소화할 방안이 떠올랐다.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는 통상적으로 중앙이······.

[ 자, 가자, 수하! 이 몸의 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느니라! ]

하지만 고미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는 순간, 실낱같은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어째서 뱃머리나 끝부분이 가장 무섭다는 걸 알고 있는 거냐!

왜 평소에는 맹한 녀석이, 이런 순간에만 이렇게 감이 좋은 거냐고!

[ 위대한 이 몸에게는 언제나 가장 앞자리가 어울린다! 이 몸은 단 한 번도 선봉에 서지 않은 적이 없으니 말이다! ]

그래, 넌 용감하고 위대한 아기곰이니까······. 선두가 어울리긴 하지.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산신령님의 단약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래, 알았어, 맨 앞자리로 가자.”

마음을 굳게 먹고 맨 앞줄에 자리를 잡고 앉자,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듯 안전바가 내려왔다.

아기띠를 들어 안전바를 확실히 고정시킨 뒤, 혹여 아기띠가 흔들리지는 않는지 확인을 마쳤을 때, 활기찬 목소리로 직원분의 멘트가 시작됐다.

- 닻을 올려라, 자, 박수! 하나, 둘, 하나 둘, 셋······.

[ 하나, 둘! 하나, 둘, 셋! ]

“아웅, 아우웅! 아웅!”

“다, 다웅! 다웅! 다웅!”

어찌나 신이 났는지, 고미와 아웅이뿐만 아니라 싸울 때 외에는 제대로 소리를 내본 적이 없는 다웅이까지 열심히 안내 멘트에 맞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사형선고(?)가 끝나기 무섭게, 커다란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고,

[ 오오오, 으아아아, 우우우우! ]

배의 움직임이 서서히 커지면서 고미의 입에서는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

“으으으으!”

나는 차마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질끈 눈을 감았다.

[ 수하, 안된다! 눈을 뜨거라! 어떠한 시련에도 당당히 맞서야 한다! ]

아니야 고미, 난 여기서 끝인 것 같아.

미안해.

눈을 감았음에도 몸이 붕 떠오르는 감각이 생생히 전해지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며 정신이 아득해진다.

또 방심했다. 멀미약을 먹은 거지, 무서운 게 사라지는 건 아닌데······.

그 와중에도 토생원의 안전띠는 초월자가 만든 아이템답게 훌륭히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후우웅-, 후우웅-.

바이킹은 사신의 낫처럼 무정하고 잔혹한 호를 그리며 갈수록 고도를 높여갔고, 그 섬뜩한 궤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온몸의 솜털이 거꾸로 서는 것이 느껴졌다.

제법 착하게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운명은 이렇게 잔인한 걸까······.

[ 수하, 눈을 떠라! 눈을 떠! ]

놔둬, 이대로 잠들고 싶어.

후우웅······.

그렇게 생과 사의 경계를 오락가락하고 있을 무렵, 서서히 바이킹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 살아있구나.’

그제야 조금 정신이 돌아온 내가 눈을 뜨려 하는 순간,

“여러분, 오늘 이 바이킹에는 아주 특별한 손님들이 타고 계신대요!”

아, 안 돼,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런 거 하지 마, 제발. 내가 상상하는 그건 아니라고 해줘.

“몬스터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헌터분들이, 무려 저희 월급의 절반에 달하는 금액을! 보너스로 제공하셨습니다!”

제, 제발······. 아니야, 그, 그런 말 하지 마······.

“덕분에 저희 직원들은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밤샘 근무를 받아들였는데요! 그럼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이 배은망덕한 직원 놈아! 은혜를 원수로 갚겠다는 거냐!

“한 번 더!”

[ 우오오오! 수하! 저 녀석은 참으로 신의를 아는 녀석이구나! ]

“와아아아!”

“한 번 더! 한 번 더!”

어머니, 아버지, 죄송합니다. 불효자는 먼저 갑니다.

저기 먼 곳에 강이 보이네요…….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배은망덕한 직원이 운행하는 사신의 배는 그렇게 평소보다 두 배에 가까운 시간을 운행했고, 나는 하늘이 노래질 무렵이 되어서야 간신히 다시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 * *

[ 이, 이럴 수가! 이렇게 신나는 것이 있을 줄이야! 이 몸이 수천 년간 대균열을 지켜온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최고였다! 수하 네가 태워준 그네만큼이나 즐거웠다! ]

그나마 위안은, 고미가 정말로 즐거워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가 태워준 그네가 바이킹만큼이나 즐겁다고 말해준다는 사실.

하지만 보람이 느껴지는 것과는 별개로, 다리가 후들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정신이 조금 돌아오고 나서 생각해 본 건데, 헌터가 되면서 오감이 예민해져 더 무섭게 느껴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무서울 리가 없다.

“그래도 전처럼 토하고 그러지는 않네.”

봉식이가 대견하다는 듯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 녀석의 품에는 흥분과 광기로 눈을 번뜩이며 여전히 바이킹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다웅이가 안겨 있었다.

저 녀석이 저렇게 초롱초롱하게 눈을 뜰 때도 있구나.

어째서 곰돌이 삼 형제가 나란히 이렇게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거냐.

“감사합니다, 산신령님.”

다리에 조금 힘이 돌아온 것을 느낀 나는 곧바로 산신령님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래도 토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산신령님의 멀미약 덕분이겠지.

“허허, 아닙니다. 본래 가장 훌륭한 의원이란 병이 생기기 전에 막는 의원이라는 이야기가 있지요. 그저 의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했을 뿐입니다.”

산신령님이 언제나처럼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 축하합니다. 히든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고미의 표현을 빌자면, ‘시련을 넘은 대가’가 돌아왔다.

‘서, 설마, 공포 면역 스킬이라도 주는 건가?’

아니, 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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