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6 두근두근 놀이곰원(2) 이 몸은 더욱 짜릿한 것을 원한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나름 반갑기도 한데······.
관리자의 얼굴을 떠올리니 가슴 깊은 곳에서 울화가 치민다.
‘그래도 일단 파업도 끝났고, S급이 돼서 고미의 부담을 덜어주려면 퀘스트는 해두는 편이 좋겠지. 초월자급이 되면 더 좋고.’
파업 도중에도 퀘스트는 성실히 날아왔지만, 굳이 내용을 확인하지도, 수행하려 하지도 않은 탓에 완료된 퀘스트는 그리 많지 않았다.
완료된 퀘스트는 흑암을 잡는 것과 삼돌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것, 토생원을 이기는 것, 세 가지뿐.
덕분에 내 등급은 아직 A였다.
장비빨을 감안하면 S급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관리자는 최소 S급을 요구했으니까.
‘생각해 보니 정확한 기준도 없이 등급만 알려줬네. 뭐가 이렇게 대충 대충이야.’
그렇게 볼멘소리를 하며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아······.”
저도 모르게 장탄식이 새어 나왔다.
역시, 그때 관리자에게 불꽃 싸다구라도 한 방 날려줬어야 하는데······.
< 퀘스트 : 고미와 놀아줘! >
< 위대한 곰은 오랫동안 자신과 함께 놀아줄 친구를 기다려 왔습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놀이를 해보지 못한 고미에게 절대로 잊지 못할 즐거운 하루를 선물해 주세요! >
퀘스트 내용은 언제나처럼 고미를 행복하게 해달라는 것.
이거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이 없다.
문제는, 달성 조건이었다.
< 달성 조건 >
- 고미가 타는 ‘모든’ 놀이기구를 ‘함께’ 탈 것.
(단, 어린이 용은 제외)
- 적어도 10개 이상의 놀이기구에 탑승할 것.
- 고미가 원하는 놀이기구는 반드시 탑승할 것.
< 달성 보상 >
- 신규 스킬 획득 (+1)
- 스킬 강화 (+3)
- 능력치 강화 (+5)
······.
지금 나, 놀이기구 못 타는 거 알고 ‘모든’이랑 ‘함께’라고 강조한 거지?
아무리 봐도 그런데. 그거 아니면 강조할 이유가 없는데.
‘이 개······.’
워, 안되지 안돼. 요즘 들어 입이 험해지고 있는 것 같다.
바른말, 고운 말. 바른말, 고운 말.
이러다가 입에 욕 붙으면 고미가 보고 배운다.
“미, 미쳐버리겠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 나온 말에, 다웅이를 등에 멘 봉식이가 다가왔다.
“왜 그러냐?”
말없이 꿀태창을 보여주자, 녀석의 입에서 시원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
이 녀석은 알고 있다. 내가 놀이기구를 못 탄다는 걸.
나는 집돌이다. 그리고 놀이공원은 대부분의 집돌이, 집순이들에게 있어 절대로 제 발로 찾아 갈 일 없는 장소 1위지.
솔직히 고미가 아니었다면 스스로 이런 곳에 놀러 올 일은 평생 없었을 거다.
당연히 고등학교 때도, 20대 때도, 나는 놀이공원에 가지 않았다.
소풍이니 뭐니 하는 비극적인 행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간다 해도, 비교적 자극이 약한, 플름라이드 급의 놀이기구만 타고, 롤러코스터는커녕 바이킹조차 타지 못하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
억지로 타본 적도 있기는 한데······. 꽤 험한 꼴을 봤었지.
“왜 그러세요?”
미친 듯이 꺽꺽거리며 웃음을 흘리는 봉식이의 모습에 한유진 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이게 왜요? 놀이기구 타면 능력치 상승에 스킬 등급까지 올릴 수 있는데. 완전 좋은 거 아니에요? 부럽다.”
꿀태창의 메시지를 본 그녀는 전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하긴, 놀이기구 좋아하시는 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일석이조, 꿩 먹고 알 먹고 겠지.
“큭큭큭, 그 자식 놀이기구 못 타요. 옛날에 바이킹 한 번 타고 새파랗게 질려 가지고······. 아하하, 아, 미치겠다.”
한편,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고미는 완전히 울상이 되어 전에 없이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 우웅··· 할 수 없지······. 그렇다면 수하 너는 놀이 기구를 타지 않는 게 좋겠구나. 걱정하지 말거라, 이 몸은, 정말로··· 정말로 괜찮느니라······. ]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눈에, 힘없이 접힌 귀, 아래로 축 처진 꼬리까지.
퀘스트가 문제가 아니라, 애가 이렇게 서운해하는데 어떻게 안 탈 수가 있냐고.
“아니야, 고미. 괜찮아. 이제 헌터도 됐고, 이능도 생겼으니까,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거야.”
사실 이능이 생긴 거나 신체 능력이 강해진 거랑 놀이기구를 잘 타게 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을 거라고 정신승리를 해보자.
‘그래, 김수하. 눈 딱 감고 타보자. 그래봤자 놀이기구인데, S급 몬스터보다 무섭겠어?’
내 입장에서는 타도 그만, 안 타도 그만이지만, 고미 입장에서는 수천 년 만에 생긴 첫 친구들과 처음으로 와본 놀이동산이다.
그런데 고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인 내가 고미를 실망시킬 수는 없지.
[ 우웃! 정말이냐? 정말, 이 몸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줄 것이냐!? ]
언제 그랬냐는 듯 신이 나서 꼬리를 돌려대는 모습에 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럼 첫 번째 놀이기구는 내가 정해도 되냐? 너도 탈 만한 걸로.”
일단 놀이기구를 타겠다고 선언하자, 봉식이가 사악한 웃음을 머금은 채 나에게 다가왔다.
“아니야, 꺼져.”
이놈한테 맡기면 분명 처음부터 가장 엿 같은 걸 타려고 들 거다.
“내가 직접 정할게.”
생각해라, 김수하.
회전목마 같은 건 너무 약하다, 고미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어.
하지만 롤러코스터나 바이킹으로 시작했다가는 내가 죽을 수도 있다.
핵심은 적당히 안 무서운 것들과 스릴 있는 것들을 적절히 배치해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거야.
그렇게 회복 기간(?)을 적당히 두면,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겠지.
좋아, 시작은 적당히 스릴이 있으면서도 고미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안겨줄 수 있는 걸로······.
“첫 번째는 저걸로 하자.”
고민을 마친 내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자, 봉식이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고미의 눈은, 전에 없이 초롱초롱 빛을 발하고 있었다.
[ 우후후······. 수하, 역시 너는 최고다. 이름부터 이 몸에게 걸맞는 놀이기구로구나. ]
* * *
우리가 타기로 한 첫 번째 놀이기구는 바로 ‘신밧드의 대모험’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주로 수로를 따라가며 영상이나 설치물들을 구경하고, 중간중간 아래로 떨어지는 게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스릴로 따지면 하급이지만, 고미가 생각보다 무서운 걸 못 타거나 멀미를 할 수 있으니, 덜컥 빠르고 위험한 걸 태우는 것보다 이런 걸 먼저 태워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
맹세하는데, 절대로 내가 무서운 걸 못 타서 이런 걸 첫 번째로 정한 게 아니다.
다 고미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 후후후, 대모험이라, 그렇지. 위대한 이 몸은 모험을 즐긴다. 어떤 모험이 이 몸을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하는구나! ]
‘모험 중독자’ 아기곰은 눈을 빛내며 어둑어둑한 궁전처럼 꾸며진 실내를 정신없이 둘러보았다.
우리가 타려던 놀이기구의 대기열은 불과 5분이 되지 않았다.
그냥 쭉 걸어가서 잠깐 서 있다가 타면 되는 정도.
“꺄아아아!”
으슥한 동굴 안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순간, 고미의 솜털이 긴장과 흥분으로 바짝 곤두섰다.
[ 오오, 괴, 굉장한 놀이기구인 모양이구나. 이렇게 즐거운 소리를 내다니! ]
마침내 우리를 모험의 세계로 안내해 줄 작은 배가 다가오자, 고미가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 오, 오오오! 수하! 드디어 우리의 차례가 온 모양이다! ]
“어······.”
하지만 숲속 친구들을 발견한 직원분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 안녕하세요.”
음, 놀라셨군. 놀라셨어.
내 기억이 맞다면, 안전과 주의사항을 먼저 말해주셔야 하는데······. ‘안녕하세요’라니.
“아, 네, 안녕하세요.”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직원분께서는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죄, 죄송합니다. 미리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정말로 이렇게 귀여운 분들이 놀이기구를 타러 올 줄은 몰랐거든요.”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에 우쭐해진 고미는 나의 어깨에 올라탄 채 ‘정말로’ 직원분을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는 각도 상으로도 내려다보는 게 맞으니까.
“어, 그런데, 그렇게 어깨 위에 올려둔 채로 타시면 위험하거든요. 탑승 제한 두지 말라고 매니저님이 말씀은 하셨는데, 그래도 시설물하고 부딪히실 수가 있어서······.”
직원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자, 고미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폴짝 뛰어내려 체조 선수처럼 양팔을 벌리고 착지 포즈를 취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직원분의 말을 정확히 알아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제스처.
그렇지, 이런 주의사항은 지켜주는 게 맞지.
역시 우리 고미는 곰성이 바른 아이다.
“그리고 탑승 중에는 절대 일어서시면 안 되고요. 물이 튈 수 있으니······.”
그렇게 직원분의 안내가 끝난 뒤, 고미의 첫 번째 모험을 책임져 줄 ‘신밧드호’의 문이 열렸다.
[ 호오, 스스로 문을 열다니, 이 녀석도 위대한 이 몸과 함께 모험을 떠나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
다웅이는 봉식이, 알틴은 한유진 씨, 아웅이는 이강혁 씨, 고미는 나, 그리고 수다르 님은 제르보나에게 안겼고, 토생원은 스스로 몸집을 불려 당당히 홀로 배에 몸을 실었다.
드드드드득······.
레일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자,
[ 응? 이 녀석은 어떻게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냐? ]
놀란 고미가 눈을 치켜뜨며 고개를 빼꼼 내밀어 좌우를 훑어보았다.
“아, 그건 이 밑에······.”
[ 오옷! ]
하지만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될 어두운 동굴의 입구가 시야에 들어오자, 고미는 내 설명을 듣지도 않은 채 뚫어져라 그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동굴 안으로 입성하는 순간,
“우우웃!”
“아, 아우우우웅!”
“다, 다웅!”
“삐이이이이-!”
갑자기 배가 아래로 급강하하며 아기곰 삼 형제와 아기용의 입에서 일제히 비명이 터져 나왔다.
[ 우, 우웃! 수, 수하! 굉장하다! 이, 이게 무엇이냐! 가, 갑자기 몸이 아래로! ]
음, 하늘을 날 수 있는 녀석이 왜 이런 것에 스릴을 느끼는 걸까······.
하지만 고미뿐 아니라 알틴도 좋아하는 걸 보면 역시 스스로 하늘을 나는 것과 놀이기구를 타는 건 느낌이 다른가 보다.
첫 번째 하강 구간이 끝나자, 번개가 내리치듯 조명이 번쩍이며, 으스스한 음악이 울려 퍼지며 음침한 숲이 나타났다.
[ 흐음, 제법 훌륭하구나······. 예전에 이 몸이 혼쭐을 내주었던 커다란 괴물 박쥐 놈이 살던 곳과 비슷하다. ]
······.
굉장히 참신한 평가군. 놀이기구 리뷰의 새 장을 열 수 있겠어.
- ······. 공주는 마법사에게 잡혀있다. 찾으려면 정글을 지나 금지된 동굴까지 가야 하지.
이어서 스크린에 비춘 마왕의 얼굴이 대사를 읊어대자, 순진한 아기곰은 꼭 자신이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 그렇구나. 그렇다면 이 몸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냐? 도중에 내려서 악당들과 싸우는 곳이 있는 것이냐? ]
음······. 너무 몰입하셨군.
“아니야, 그냥 스토리가 있는 거야. 우리는 그냥 배타고 쭉 가면 돼. 절대 배에서 뛰어내리지 말고, 알았지?”
혹시나 과몰입한 아기 ‘웅자’님께서 ‘곰주’를 구하러 뛰쳐 내릴까 봐 불안해진 나는 녀석을 꼭 끌어안으며 다시 한번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 으음, 알겠느니라. ]
- 크르릉!
그렇게 동굴을 따라 조금 더 나아가자, 보트의 왼쪽에서 표범과 비슷한 몬스터가 불쑥 튀어나왔고,
[ 이, 이놈! ]
“삐이이이!”
“다, 다웅!”
“아웅!”
곰돌이 삼 형제와 아기 드래곤은 곧바로 녀석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언제라도 싸움에 들어갈 태세를 갖추었다.
······.
스릴 있네. 스릴 있어. 흥분한 쪼꼬미 군단이 갑자기 시설물을 파괴할까 봐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스토리 있는 거 타면 안 되겠네.
던전과 게이트의 등장 이후로 이런 종류의 놀이 시설은 더욱 실제 던전과 몬스터와 비슷하게 지어졌고, 덕분에 고미 입장에서는 더욱 몰입하기 쉽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러다가 반사적으로 주먹이라도 나가면······. 대형사고 나는 거지.
그렇게 계속해서 보트가 앞으로 나아가고,
- 크르릉!
- 멈추지 마세요! 공주님을 꼭 구해주세요!
붉은 조명과 안개에 감싸인 삼두룡이 나타나자, 흥분한 고미가 솜방망이를 바르쥐며 녀석을 노려봤다.
[ 흥! 이 몸은 머리가 아홉 달린 도마뱀이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
그렇지, 말은 맞는 말인데······. 음······.
고미가 저럴 때마다 다른 의미로 기분이 짜릿해진다.
하지만 다행히도 별다른 사고(?)는 없었고, 우리는 해골 병사와 허공에 매달린 채 진자 운동을 하는 거대한 도끼, 괴물들을 지나 공주를 구출하고 무사히 승강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다른 의미로 스릴 넘치는 첫 번째 탑승이 끝난 후······.
[ 흐으으음······. ]
놀이기구에서 내린 아기곰은 또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마 다음으로 뭘 타야 할지 고심 중인 거겠지.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고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 수하. 이런 모험도 좋지만, 그래, 이 몸은 조금 더 강렬한 것을 원한다. 이 몸을 흥분 시킬만한······.]
“으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
“아아아악!”
그때, 때맞춰 시끄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나에게 있어서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비명.
하지만 고미에게는 환희에 찬 탄성으로 들리겠지.
[ 그래! 저것, 저것이다! 저 녀석이라면 이 몸을 만족시켜 줄 수 있겠구나! ]
고미가 손을 들어 ‘그것’을 가리키는 순간, 나는 첫 놀이기구를 신밧드의 대모험으로 정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