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45화 (145/300)

EP.145 두근두근 놀이곰원(1) 시작은 화려하게

“이야, 놀이공원이라니, 이게 대체 몇 년 만이야?”

“난 그냥 놀러 온 것 자체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근데 우리 길드장님이 언제부터 이런 취미가 있었대?”

“아무렴 어때, 심야 놀이공원 전세라니, 좋은 추억이잖아.”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기대에 찬 눈으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오늘 모인 세 길드의 헌터 중 상당수는 아이나 아내, 친구, 혹은 애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데리고 왔고, 덕분에 고미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물론 주말이나 공휴일 놀이공원에 비하면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천 명은 족히 넘어 보이니, 숲속 친구들끼리 놀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규모였다.

[ 우우우우, 수, 수하! 굉장하다! 굉장해! 이 녀석들이 모두 우리와 함께 노는 것이냐!? ]

전례 없는 놀이 규모에 잔뜩 흥분한 고미는 짤막한 손가락을 꼽아가며 열심히 머릿수를 헤아리고 있었다.

한편, 자리에 모인 헌터들은 하루아침에 성사된 동맹에 조금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채 다른 길드의 헌터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오, 진짜 블랙 메이지네.”

“근데 용왕이랑 블랙 메이지가 왜 우리랑 동맹을 맺은 거야?”

“저스티스는 그렇다 쳐도, 블랙 메이지는 의외네.”

“뭐야, 블랙 메이지 애들 왜 이렇게 밝아졌냐. 옷 색 봐라.”

길드원들의 소속은 아주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몸이 탄탄하고 근육질이면 저스티스, 학구적이고 냉철한 이미지면 대충 용왕, 그리고······. 바싹 마른 체형에 이상할 정도로 화려하고 원색 계열의 옷을 입고 있으면 블랙 메이지······.

‘길드 이름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봐도 블랙이 아닌데 이제.’

저스티스와 용왕의 길드원들은 무슨 요정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블랙 메이지의 길드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 길드원들과 손을 잡고 던전을 도는 일도 드물거니와, 원체 바깥 생활을 안 하는 양반들이다 보니, 일부 헌터들은 블랙 메이지 길드원들을 ‘암흑 요정’이라고 부른다고.

그 ‘암흑 요정’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단체로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하지.

가장 많은 시선을 받는 것은, 역시나 세 길드의 수장들이었다.

“어, 길드장님이다.”

“와, 이강혁이랑 길드장님이랑 나란히 서 있어. 이게 무슨 그림이냐.”

“노인국이다. 나 실물 처음 봐. 생각보다 안 음침한데?”

“그러게, 얼마 전에 봤을 때는 거의 시체였는데, 어디 아팠었나?”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는 사대 길드의 길드장보다 더 많은 시선을 받는 이가 있었으니······.

“곰이다.”

“아기곰이네.”

“누구지? 길드장님들이랑 친해 보이는데.”

“그런데, 왜 머리 위에 곰을 올리고 다니는 거야?”

“머리가 아니라 어깨 아니야?”

“그거나 그거나.”

“근데, 저거 펫 아닌 거 같은데, 진짜 그냥 곰 아니야?”

바로, 내 머리 위에 있는 갈색 솜뭉치와······.

“수달이다.”

“왜 수달이 여기 있어?”

“토끼도 있는데?”

산신령님, 그리고 토생원이었다.

거기에 아웅이와 다웅이까지 있으니, 아무리 유명한 사람들이 이 자리에 있다 해도 이 조합보다 시선을 끌 수는 없지.

“자, 자, 모두 주목.”

바로 그때, 이강혁 씨가 손을 들어 시선을 주목시킨 뒤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용왕과 저스티스, 블랙 메이지, 세 길드가 친구가 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입니다. 다들 가족, 친구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길드원들끼리도 친목을 다졌으면 합니다. 앞으로는 한 식구라고 생각하고 잘 지내주세요. 그리고 시간이 시간이니, 주위에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놀이공원 전체에 결계를 칠 예정입니다.”

“놀이공원 전체에요?”

누군가가 의문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놀이공원 전체에 결계를 칠 정도로 대단한 결계 능력자는 한국에 없으니까.

“네, 그렇습니다. 소음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니까 이해해 주시고요. 폐장 전에 귀가하시려는 분들은 한 시간마다 출구에 모여주십시오. 그럼 그 부분만 결계를 해제해 드리겠습니다.”

“그 최진웅이라는 S급이 결계 치는 거 아니야?”

“오늘 최진웅 안 보이는데?”

지금 시각은 저녁 11시.

비용도 비용이지만, 우리가 놀아야 하니 너희는 모두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폐관 후의 놀이공원을 대여했다.

심야 소음 문제는 고미의 결계로 해결했고, 우리 때문에 밤새 일을 해야 하는 분들에게는 특근 수당 외에 삼대 길드에서 각출해 월급의 절반을 지불하기로 했다.

놀 때 놀더라도,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게 숲속 친구들의 철학이니까.

‘초월자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결계를 놀이공원을 이용하기 위해 사용하다니, 뭔가 심하게 낭비 같지만······.’

놀이공원에 빨리 오려고 서둘러 초월자를 잡은 고미 입장에서 이 정도야 뭐.

“자, 그럼 이제 입장 시작합니다. 다들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이강혁 씨의 개회사(?)를 끝으로 천 명 안팎의 사람들이 줄줄이 놀이공원 안으로 입장하기 시작했고, 숲속 친구들도 신이 나서 꿈과 희망의 땅으로 향했다.

* * *

[ 우, 우오오오! 수하, 수하! 굉장하다! 이, 이것들은 다 무엇이냐! ]

라쿤랜드 어드벤쳐에 입장하기 무섭게, 고미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 다웅!?”

심지어 늘 반응이 없는 다웅이마저 눈이 동그래져 가볍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 저, 저것은 무엇이냐, 전에 우리가 탔던 낚싯배보다 더 큰 배가 어째서 땅 위에 있는 것이냐! ]

고미가 가장 먼저 흥미를 보인 것은, 놀이공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놀이기구인 ‘바이킹’이었다.

[ 다, 당장 저것부터 타보자꾸나! ]

고미가 바이킹을 향해 진격 명령을 내리는 순간,

“으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왼쪽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오며 새하얀 물줄기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 아, 아앗······. 저, 저 작은 배는 무엇이냐? 크기는 위대한 이 몸에게 어울리지 않지만, 제법 재미있어 보이는 녀석이구나! ]

두 번째로 고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놀이공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놀이기구 중 하나인 ‘플룸라이드’였다.

놀이공원에 처음 와 본 아기곰은 회전목마니, 롤러코스터니, 회전 바구니니 하는 것들이 움직일 때마다 어떤 것을 먼저 타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갈팡질팡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 우, 우웅······. 놀이공원이라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일 줄이야······. 이, 이 몸은 도저히 어디부터 가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구나······. ]

그렇게 고뇌에 휩싸인 아기곰이 솜방망이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펑!

어딘가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리며 놀이공원 전체가 암전됐다.

[ 아, 안 돼!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수하!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왜 갑자기 불이 꺼지는 것이냐! ]

이어서 쥐죽은 듯 정적이 이어지고······.

[ 수하! 왜 말이 없는 것이냐! 어서 손을 써보거라! ]

절망에 빠진 고미가 온몸을 바들바들 떠는 순간,

쉬익-하고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며 새하얀 조명이 어두워진 놀이공원 안을 환히 밝히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그리고는 묵직한 베이스 음과 함께 신비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놀이공원 곳곳에서 형형색색의 레이저가 쏘아져 나왔다.

[ 우, 우오오오! 수하! 이것이 무엇이냐!? ]

이어서 고미가 좋아하는 ‘웅장한’ 음악과 함께 놀이공원의 구조물들이 녹색에서 파란색으로, 파란색에서 노란색으로, 노란색에서 다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 이, 이것은 마법!? 아니, 마법이 아니다! 하지만 이 환술과도 같은······. 우우! ]

굳이 따지자면, 환술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다.

그냥 흔한 레이저 쇼지.

하지만 과학이니 기술이니 하는 것을 모르는 고미에게 있어 이것은 그야말로 꿈과 희망이 가득한 대모험의 서막.

흥분을 이기지 못한 고미는 어깨가 아니라 나의 머리 위에 발을 딛고 올라선 채 홀린 듯 레이저 쇼를 감상했다.

[ 이, 인간들이 위대한 이 몸을 위해 이런 것을 준비한 것이냐! ]

음······. 그건 아니지만, 우리가 준비하긴 했지.

그렇게 황홀경에 빠진 고미가 두 손을 꼭 붙잡고 눈을 빛내고 있을 때, 벽면에 레이저로 만들어진 거대한 절벽이 나타났다가 무너지고, 휘황찬란한 건물과 마법진이 떠올랐다.

[ 우오옷! 이, 이것은······. 무언가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구나! ]

그런가 보다. 사실 나도 몰랐다.

레이저 쇼라는 게 나름대로 스토리가 있는 거라는 걸.

쇼는 처음이면서, 잘도 그런 걸 알아보네.

“후훗, 역시 준비하길 잘했네요.”

보석 같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벽면에 비추는 화면에 폭 빠져든 고미의 모습에, 한유진 씨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사실 레이저 쇼는 폐관 전에 하는 것이니, 원래대로라면 고미는 이 쇼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녀석에게 이걸 꼭 보여주고 싶었다.

쇼가 빠진 놀이공원은 반쪽짜리니까.

어차피 사람들까지 왕창 불러 모은 거, 시원하게 돈 쓰는 거지.

[ 고미님이 좋아하시니,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는군요. ]

오늘 레이저 쇼의 일등 공신은, 토생원이었다.

쇼가 진행되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그 돈의 출처는, 토생원이 밤낮없이 만든 대량의 포션과 버프 물약이었다.

[ 토생원님, 감사합니다. ]

[ 아닙니다. 저를 살려주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셨으니, 이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

토생원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쇼가 절정으로 치달았다.

형형색색의 레이저가 묘사하는 마왕과의 결투, 신비한 숲과 바닷속 풍경 등은 진짜 마법보다 더 마법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고미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아 버렸다.

[ 수, 수하! 굉장하구나, 이, 이 몸은 너무나 행복하다. 친구들과 함께 이런 엄청난 것을 보게 될 줄이야······. 웅장하다, 웅장해! 인간들이 이토록 웅장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다니······. ]

그리고 쇼가 끝나갈 무렵······.

마침내 우리가 준비한 ‘깜짝 선물’이 등장했다.

[ 우, 우웃! ]

레이저로 만들어진 커다란 ‘젤리’가 벽면을 비추는 순간, 고미의 몸이 동상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 저, 저것은! 위대한 곰의 상징이 아니더냐! 어, 어떻게 저것이 이곳에! ]

그리고 잠시 후, 갈색 솜털이 보송보송 돋아난 분홍색의 젤리가 사라지고, 공원 전체가 암전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히어로는 여전히 숨을 죽인 채 자신의 젤리가 떠올랐던 벽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이 영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쿵, 쿵,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눈부신 빛과 함께 솟아난 아기곰 한 마리가 용맹하게 녀석들을 물리치는 영상이 흘러갔다.

솔직히 말해서, 영상의 완성도는 크게 떨어졌다.

레이저 쇼가 무슨 컵라면도 아닌데, 고작 며칠 사이에 완벽한 영상을 만들기는 무리가 있지.

하지만, 조금 조잡하더라도, 고미에게 꼭 이 영상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쿠구궁!’ 하는 멋진 효과음과 함께 모든 조명이 꺼지고, 공원 전체가 어둠으로 물들며 우리가 준비한 영상이 끝났다.

이어서 하나둘 조명이 켜지며 주위가 대낮처럼 환해졌지만, 고미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녀석의 유리알 같은 맑은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참 눈물이 많단 말이지.’

약간의 적막이 흐르고, 감회에 젖어있던 아기곰이 솜방망이로 눈물을 훔치며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 고맙다. 참으로 고맙구나. 이 몸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

“워어, 죽어도 여한이 없으면 안 되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신나게 놀아야 하는데, 그런 말 하지 말고.”

봉식이가 고미를 번쩍 들어 올리며 그렇게 말하자, 녀석의 입가에 다시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 후훗, 좋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저 놀이기구라는 것들을 정복해 보자꾸나! ]

아직도 무엇을 먼저 타야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아기곰이 갈지(之)자를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한동안 무시당했던 꿀태창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니, 이 양반이 또 뭘 시키려고.’

퀘스트의 내용은 대충 예상이 갔다.

고미와 즐겁게 잘 놀아줘라, 뭐 이런 거겠지.

하지만 꿀태창을 열어보는 순간······.

“이런······.”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욕지기가 올라왔다.

‘아오오오! 그날 어떻게든 그놈 얼굴에 한 방 먹여줬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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