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3 안녕하세요, New인국입니다
[ 정말요? 그게 누구인데요? ]
테이머스의 회장이자, 용왕의 길드장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 노인국 씨요. ]
그녀의 대답은, 나의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나 있었다.
[ 왜요? ]
[ 좀 사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제 능력으로는 좀 어렵거든요. 이건 협의가 안 된 사항이라. ]
[ 협의요? ]
[ 네, 1급 펫 허가증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대부분 관련 업체랑 협의가 되어 있어서 그래요. 아니면 법안이 그렇게 되어 있던가. 아무래도 반려 펫 데리고 사는 사람도 많고, 헌터들 입김이 센 세상이니까요. ]
한유진 씨의 설명에 따르면, 테이밍 능력을 가진 헌터나 반려펫을 기르는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법안이 개정됐고, 덕분에 대부분의 시설은 펫을 데리고 입장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이 협의 당시에 한유진 씨가 테이머들의 대표를 맡았는데, 그 일로 인해 S급 헌터가 갑질해서 펫들이 아무 데나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루머가 생겼다고······.
‘음,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구나.’
어찌 됐든, 내가 고미를 데리고 마트를 갈 수 있었던 것도 한유진 씨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1급 허가증을 가지고 있는 펫은 이계 생물이라 해도 개나 고양이보다 몇 배는 통제가 잘 되니까.
다만 몇 가지 엄격한 예외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게 놀이공원이라고······.
‘으으, 난 그것도 모르고 덜컥 약속을 한 거구나.’
1급 펫이라면,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놀이기구는 인간에게도 제법 엄격한 안전 수칙이 적용되는 물건이니, 펫이 놀이기구를 타는 것은 안 된다고.
[ 그러게 저한테 물어보고 약속을 하시지······. ]
어쩐지 고미 놀이기구 태워준다고 얘기할 때 입을 꾹 다물고 계시더라니······.
[ 괜찮아요. 일단 노인국한테 말하면 해결해 줄 거예요. ]
사실 내가 무리한 약속을 한 건데, 묵묵히 속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구나.
심지어 ‘어, 그런 거 안 되는데.’하고 말해서 고미가 마음 상할 일도 없게 해주고.
고마워서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 대신 고미님이랑 놀이공원 갈 때 저희도 데리고 가주세요. 알틴도 놀이기구 한번 태워주고 싶었는데, 폴리모프를 못해서 못 태워줬거든요. ]
[ 대신이라뇨, 당연히 같이 가야죠. ]
그렇게 비밀 회담을 이어가고 있는 사이, 숲속 친구들 사이에서는 수다르님의 ‘먹방 강의’가 한창이었다.
“탕수육의 유래는 중국의 당초육입니다. 당초육은 본래 소스를 부어 나오는 음식인지라, 소위 부먹파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이념의 기치로 삼고 있지요.”
이, 이념의 기치?
부먹과 찍먹이 그렇게 거창한 단어를 쓸만한 문제였나······.
“으음, 상큼하고 달곰한 소스에 부드러운 튀김과 고기가 어우러진 것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 하지만 바삭한 맛도 포기하기가 어려우니······. 인간들이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이해가 가는구나.”
고미가 흥미로운 듯 부먹 탕수육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말했다.
“반면 찍먹파는 한국에서 중국 음식이란 대개 배달이라는 형식으로 즐기는 요리이고, 이 과정에서 소스를 미리 부어버리면 튀김의 바삭한 맛이 사라지니, 당초육과는 다른 맛이 되어버린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애초에 부드러운 맛을 즐길 것이면 왜 튀기겠냐는 것이 그들의 논지입니다.”
수다르님의 설명을 들은 이유찬 씨는 십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 같은 요리인들에게 있어 식감은 대단히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죠. 식감에 따라 같은 요리라도 완전히 다른 맛이 되어버리니 말입니다.”
음······. 스스로를 요리인이라고 정의하는 드래곤이라니, 언제봐도 참 특이한 분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하여 중국인들은 단맛, 쓴맛, 신맛, 감칠맛, 짠맛에 이어 식감을 제6의 맛이라고 말하지요.”
늘 궁금한 건데······.
수다르님은 왜 이렇게 아는 게 많은 걸까?
혹시 남몰래 동굴 속에 와이파이 수신기라도 가져다 놓고 인터넷을 즐기고 계신 건 아닐까?
“우웅? 어찌하여 매운맛은 빠진 것이냐?”
고미의 질문에 수다르 님은 인자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촉각입니다. 입안의 온점, 통점에 있는 감각 수용기가 느끼는 열감이나 고통이 곧 매운맛이지요.”
“으음······. 제법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위, 위대한 이 몸은 아주 완벽하게 이해했느니라. 너, 너는 아주 설명을 잘하는구나. 그, 그래서 식감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
음, 꼬리나 귀를 안 봐도 알 수 있겠다.
지금 한 말, 절대 못 알아들었어.
그래도 이제 말도 돌릴 줄 아는 게, 조금은 발전(?)했군.
“허허, 중국인들은 이 식감을 상세하고 나누고, 그 중 누오, 후아, 추이라는 세 가지 식감을 가장 좋아하지요.”
“그, 그것은 무엇이냐? 모, 모두 먹어보고 싶구나!”
수다르 님의 설명에 고미의 눈이 식탐과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하여간 호기심도, 식탐도 참 많은 녀석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직접 먹으면서 설명해 드리지요.”
‘아앗, 궁금해. 알려주세요, 수다르님!’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절묘한 절단신공.
역시 수다르님은 연애를 잘하실 것 같다.
밀당의 타이밍을 아주 잘 알고 계신단 말이지.
그나저나, 식감에 대해서는 먹으면서 설명해 준다는 건, 역시 다음에 맛있는 거 사달라는 간접적인 표현이겠지······?
그렇게 수다르님의 ‘산신령님의 요리 특강’이 끝났을 무렵, 돗자리 위에 있던 음식이 모두 동이 났고,
“후아아······. 위대한 이 몸도 더 이상은 먹을 수가 없구나.”
고미는 볼록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 이제 나를 어찌할 것이냐?”
그때, 흑암이 삼돌이의 손을 꼭 붙잡은 채 자신의 처우를 물었다.
사이즈가 원체 작아서 그런가, 물만두 몇 개와 탕수육 조금, 짜장면 한두 젓가락을 먹은 것만으로 녀석의 배는 남산만 하게 부풀어 있었다.
“이, 인간들은 사형에 처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맛있는 것을 먹인다고 들었다. 이것이 내 마지막 식사인 것이냐?”
워어, 상상 구체적인 것 보소.
어두운 쪽으로는 고미 못지 않게 상상력이 뛰어나군.
그런데, 그런 생각을 했다면 먹기 전에 물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배 터질 때까지 먹고 나서야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아까 여기 가둬놓는다고 말했잖아.”
봉식이가 짬뽕 국물을 들이켜며 말하자, 흑암은 의심과 놀람이 반씩 섞인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정말로 그게 다란 말이냐? 나,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호, 혹시 시간을 들여 나를 괴롭힐 생각이라면······.”
따콩!
흑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미의 꿀밤이 녀석의 뒤통수에 내리꽂혔다.
귀여운 효과음으로 보아, 아프지는 않을 듯싶지만······.
어떻게 때리면 저런 소리가 나지?
“네 이놈! 어찌 그리도 의심이 많은 것이냐!? 이 몸은 신의를 아는 진정한 곰이니,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너는 당분간 삼돌이와 함께 이 화원에 머물며 네 잘못을 반성하거라! 조만간 네가 괴롭힌 사람들을 찾아가 직접 사과도 해야 한다!”
고미의 기세에 눌린 흑암은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럼 저와 토생원이 당분간 이 자를 훈육하도록 하겠습니다.”
두더지의 교육 담당(?)으로 수다르님과 토생원이 배정되는 것으로 일이 마무리되었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강혁 씨와 봉식이는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제르보나 씨와 이유찬 씨는 한사코 우리를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자기들도 꽤 피곤할 텐데, 이런 날까지 집에 태워다 달라고 하기는 조금 미안했으니까.
그나저나, 이강혁 씨야 흑암 건으로 생각이 많을 것 같기는 한데, 민봉식 저 자식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야, 왜 그러냐.”
“어, 생각 좀 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
“어떻게 해야 빨리 강해질까. 뭐 그런 생각.”
“후훗, 걱정 말거라, 봉식이! 천부적인 자질로 따지자면 친구들 중 네가 제일이니라!”
고미는 그렇게 말하며 봉식이를 격려했지만, 녀석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그게 영 실감이 안 나서, 고미 대신 대균열인지 뭔지 지키려면 빨리 강해져야 하는데······. 내가 S급 되면 한 명은 무조건 확보되는 거잖아.”
“걱정할 거 없다. 금방 강해질 수 있을 거야. 곰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시잖아.”
이강혁 씨도 웃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봉식이는 여전히 아쉬운 듯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도 가족인데, 다른 사람들만큼 고미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미안하고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형은 괜찮아? 굳이 따지자면 저 두더지 새끼가 형 원수 아닌가.”
잠시 후, 봉식이가 불쑥 중요한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글쎄, 기분이 좋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아.”
하지만 이강혁 씨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사실 이강혁 씨가 기분이 상할까 선뜻 입에 올리지 못한 문제였는데······.
“정말 괜찮으세요?”
나의 질문에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약간만 상황이 바뀌어도 달라진 사람을 한둘 본 게 아니니까요. 봉식이만 해도 전생에는 길드 하나를 초토화시킨 미치광이였지만, 지금은 친동생 같은 녀석이 됐는데요. 부디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서 곰 선생님에게 힘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운전대를 돌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이번 회차에서는 아직 큰 사고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전 회차에서 세상을 멸망시켰다는 이유로 무조건 죽일 수는 없죠. 어차피 제가 원했던 건 세상을 지키는 것이지, 복수가 아니니까요. ”
이 사람도 많이 바뀌었구나, 처음 만났을 때는 다짜고짜 봉식이에게 칼을 들이밀었었는데······.
아니, 어쩌면 한결같이 올바른 걸지도 모르겠다.
“다만 제가 상상했던 흑암과 너무 달라서, 조금 기분이 묘할 뿐입니다. 그 녀석과의 싸움이 이런 형태로 끝나리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고요. 벌써 세 번이나 회귀했지만, 여전히 세상일은 모르겠군요.”
말을 마친 이강혁 씨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복잡하고, 동시에 홀가분해 보였다.
그렇게 이강혁 씨가 떠난 뒤, 집으로 돌아간 우리는 거짓말처럼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 * *
다음 날은 문자 그대로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싸움의 여파가 뒤늦게 몰려온 탓일까, 나도, 고미도, 숲속 친구들도 모두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이틀째 되는 날 아침, 마침내 ‘티켓 원정대’가 뭉쳤다.
원정대의 구성은 나와 이강혁 씨, 그리고 한유진 씨와 고미였다.
“여기가 블랙 메이지 건물이군요.”
우리가 찾아간 곳은, 블랙 메이지의 본사 빌딩······. 인데, 여기 왜 이렇게 음침하냐.
건물은 제법 큰데, 외형부터 시작해서 로비는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인테리어가 상당히 칙칙하다.
심지어 어딘지 모르게 화장터 분위기도 나는 것 같고······.
그러나 소문과는 달리, 길드 안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 이유는 모르겠는데, 몸이 엄청 개운하다니까? 악몽도 안 꾸고.”
“나도 나도, 원래 햇빛 받으면 어지러웠는데, 어제오늘은 햇빛 받았는데 기분이 좋더라.”
“실장님이랑 길드장님은 아예 얼굴에 웃음꽃이 폈던데? 나 길드장님 웃는 거 처음 봤다.”
“나도 너 웃는 거 처음 본다.”
으음······. 흑암의 영향력이 지대하긴 했나 보군.
어떻게 이틀 만에 사람들이 이렇게 밝아지냐고.
그렇게 로비에 앉아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국 씨가 나타났다.
우리를 본 그는 황급히 ‘달려와서’ 덥석 나의 손을 잡았다.
“이야, 최진웅 씨, 반가워요, 정말 반가워. 왜 이렇게 연락이 없나 했어요!”
······.
뭐야, 이 흔한 동네 아저씨 같은 친근함은.
게다가 말끝에 느낌표가 붙어야 할 것 같은 힘찬 목소리까지······.
적응 안 되네.
이제 보니 옷도 평소에 늘 입던 칙칙한 검은 색이 아니라, 무려 꽃무늬가 그려진 하와이안 셔츠다.
“풋······.”
“큭······.”
노인국 씨의 옷차림에 이강혁 씨와 한유진 씨는 약속이라도 한 듯 웃음을 흘렸다.
상대의 옷차림이 우스꽝스럽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라, ‘안 우울한’ 노인국 씨가 이런 사람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나온 반응 같았다.
나도 같은 생각이고.
“자, 자, 얼른 올라갑시다. 얼른.”
[ 수, 수하, 정말 이 녀석이 그 자벌레 같던 문어 할아범이 맞더냐? ]
고미 역시 놀라기는 매한가지인 듯, 내 어깨에서 내려와 몇 번이나 빙글빙글 주위를 돌며 노인국 씨를 뜯어보았다.
사람이 이틀 만에 이렇게 달라지기도 하는구나.
보람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너무 낯설잖아.
“이야아, 우리 최진웅 씨가 무슨 부탁을 하려나아~♪ 내가 꼭 들어줘야 하는데 말이지이~♩”
심지어 사무실로 가는 내내 음정을 섞어서 말을 하고 있다.
대체 뭐냐고 이 아저씨.
노인국 씨의 사무실로 들어간 우리는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았고,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 요구 사항은 모두 세 가지입니다.”
“아이고, 우리 최진웅 씨가, 왜 갑자기 존댓말을 하고 그래, 어색하게! 내가 세 개가 아니라 열 개라도 들어줘야지!”
······.
당신, 누구세요?
No인국 씨는 어디 가고 New인국 씨가 나오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