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42화 (142/300)

EP.142 간만에 먹방

치, 침착하자, 김수하.

아직 모든 게 끝장난 건 아니야.

놀이공원에 키 제한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보호자와 동승하면 탈 수 있는 어린이용 놀이기구도 얼마든지 있다고.

“흐, 흥, 웃기는 소리. 수하가 이 몸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느니라!”

고미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왠지 모르게 체온이 3도쯤 떨어지는 느낌이······.

아니, 3도나 떨어지면 이미 죽은 건가.

흑암의 간교한 입놀림(?)에 고미의 믿음이 흔들리는 듯 하자, 토생원이 얼른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십시오. 고미님. 저놈이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키가 작으면 놀이기구를 못 탈 뿐, 놀이공원에는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이 눈치 없는 토끼 x끼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그건 지원 사격이 아니라 확인 사살이잖아.

토생원이 쏜 오발탄에 꿈과 희망이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고미의 꼬리뿐 아니라 화원 전체에 겨울이 찾아왔다.

“흥, 그것 보거라. 놀이 공원에 들어간다 해도 놀이기구를 타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너는 속은 것이다.”

아, 뒷골이야······.

이 두더지, 그냥 거꾸로 매달아 버릴까.

벌을 받긴 받아야 하는 캐릭터니까,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 이노옴! 그, 그, 그럴 리가 없다! 수하가 나를 속일 리가 없단 말이다! 틀림없이 뭔가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여전히 나에 대한 믿음과 꿈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고미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사실 키 문제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을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럼, 다 생각해 놨어. 걱정하지 마, 고미.”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자,

“후훗! 그것 보거라! 수하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수하에게는 다 방법이 있느니라! 다시 한번 내 가족을 모함한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고미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잔뜩 기가 살아 꼬리를 빙글빙글 돌려댔다.

미, 미치겠군.

나를 믿어주는 건 고마운데······.

‘정 안되면 살곰살곰으로 몰래 태우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모처럼 놀이공원까지 데리고 가서 몰래몰래 숨어다니게 하고 싶지는 않다.

나야 집돌이라 누가 공짜티켓을 줘도 놀이공원에 가지 않는 사람이지만, 함께 소리도 지르고 사진도 찍고······. 그런 재미로 가는 곳이 놀이공원인데, 데리고 갈 거면 제대로 즐기게 해줘야지.

‘괜찮아, 김수하. 침착하자. 초월자도 잡은 놈이 놀이공원 따위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할 수 있다.’

그래, 여기 대(大) 테이머스의 회장님도 있잖아.

한유진 씨랑 얘기하면 뭔가 답이 나올 거야.

일단 심호흡 한번 하고, 먹고 생각하자 먹고.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뜩 신이 난 고미는 곧바로 이유찬 씨에게 시선을 돌렸다.

“후훗, 그렇다면 일단 맛있는 것을 먹자꾸나! 이 몸은 배가 고프다!”

“그럼 메뉴는 뭘로 할까요?”

“중국 음식으로 하죠.”

이유찬 씨의 질문에 나는 곧바로 생각해두었던 메뉴를 말했다.

고미가 아직 먹어보지 않은 음식이기도 하고, 나는 진짜로 흑암에게 군만두를 먹일 생각이거든.

왜냐고? 괘씸하잖아.

사연을 듣고 조금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말하는 꼴을 보니 당분간은 군만두만 먹여야 정신을 차릴 것 같다.

“오오, 중국 음식이라니! 그것은 무엇이냐?”

새로운 메뉴의 등장에 고미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이유찬 씨에게 다가갔다.

“으음, 배달음식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죠.”

“호오, 배달음식이라, 이 몸도 알고 있다! 치킨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더냐?”

이유찬 씨와 고미가 친근감 있게 메뉴를 고르는 모습에 흑암은 적잖이 혼란을 느낀 듯,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대균열의 수호자와 드래곤이 이토록 친하게 지낸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

고미와 드래곤들이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저쪽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사실인 모양이니까.

“하지만 메뉴는 훨씬 다양합니다. 면부터 시작해 밥, 튀김과 고기까지······. 스무 개 이상의 메뉴를 가지고 있지요.”

“괴, 굉장하구나! 스무 가지라니! 하지만 그래서는 어떤 것을 먹어야 할지 알 수가 없지 않느냐? 그것을 모두 먹었다가는, 아무리 위대한 이 몸이라도 배탈이 나고 말 것이다!”

그 위대함, 설마 위대(胃大)함이라고 쓰는 건 아니지?

아니, 어쩌면 고미가 원하는 건 위대(偉大)한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위대(胃大)한 존재가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녀석의 표현대로 맛있는 걸 '잔뜩잔뜩' 먹으려면 위가 커야 할 테니까.

“걱정 마십시오. 저에게 맡겨 주신다면, 반드시 고미님의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드리겠습니다.”

“흐으음, 너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니더냐? 열 개 중 두 개를 고르기도 어렵거늘, 스무 개 중 두 가지라니······.”

······.

언제나 그렇지만, 이 둘은 왜 늘 이렇게 비장한 거냐.

겨우 중국집 메뉴 고르는 거잖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고미님이 만족할만한 메뉴를 골라 보이겠습니다.”

걸지 마, 걸지 말라고.

왜 그런데 블랙 드래곤의 명예씩이나 거는 건데.

“흐음, 믿을 수 없군. 자존심 높기로 유명한 용족이 먼저 자신의 명예를 걸다니······.”

간만에 재결합한 덤앤더머 콤비의 대화를 듣고 있던 흑암이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넌 또 왜 그래, 이상한 데서 감탄하지 마.

이후 이유찬 씨는 삼룡이 패밀리의 살림을 도맡고 있는 사람답게 빠르게 메뉴 취합을 마쳤고, 대단히 중요한 임무를 맡은 사람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든 채 게이트 바깥으로 나갔다.

그렇게 이유찬 씨가 배달원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 작은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끼이잉······.”

“오오, 삼돌이가 깨어났구나.”

토생원의 약향을 맡고 잠들었던 미니 삼돌이가 다시 눈을 뜬 것이다.

“멍! 멍멍!”

정신을 차린 삼돌이는 흑암을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녀석에게 달려갔다.

“케르베로스를 왜 데리고 온 것이냐? 미리 말해두지만, 나에게 인질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본 흑암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작은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며 무언가 흉악한 상상을 해댔지만,

“마지막까지 당신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고, 곰 선생님께서 거두어 주셨습니다.”

이강혁 씨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 추측을 부정했다.

이 중에서 흑암을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이강혁 씨겠지.

물론, 이쪽 세상에서는 아직 대형사고를 친 적이 없다지만, 이강혁 씨 입장에서는 당장 칼을 빼 들고 저 녀석을 죽이겠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으니까.

“저, 적을 거둔다고?”

자신의 가치관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숲속 친구들의 행동에, 흑암은 또다시 머리를 얻어맞은 두더지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고, 고작 그런 이유로 적을 거둔단 말이냐?”

“고작이라니! 이렇게 작아져서도 너를 지키겠다는 삼돌이의 마음을 고작이라고 말하지 말거라!”

그렇게 고미가 흑암에게 호통을 치고 있을 때, 이유찬 씨가 양손 가득 중국 음식을 들고, 등에는 커다란 돗자리를 멘 채 화원 안으로 들어왔다.

“고미님, 이것을 보십시오. 모처럼 꽃밭에 왔으니, 다 함께 소풍을 온 기분을 내기 위해 돗자리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오오, 검은콩! 역시 굉장하구나! 그렇지, 친구들과 함께 밖에서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이 바로 소풍이 아니겠느냐!”

음, 훌륭하다.

확실히 맨바닥에 앉아 음식을 먹기는 조금 그렇지.

이유찬 씨가 시킨 것은 탕수육 두 개와 쟁반 짜장과 쟁반 짬뽕, 볶음밥, 그리고 삼선 짬뽕에 볶음밥, 물만두였다.

아주 서민적이고 친숙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메뉴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어? 군만두가 안 왔네요?”

흑암에게 먹이려고 했던 군만두가······. 없다.

“아, 주방장님이 저랑 친하셔서, 물만두로 바꿔주셨습니다.”

야 이······. 쓸데없이 붙임성 좋은 드래곤 같으니라고 진짜.

복수의 상징은 군만두잖아. 물만두가 아니라고.

뭔가 서비스로 남은 걸 준다는, 그 느낌이 관건인데, 이러면 손님한테 음식 내주는 느낌이 되잖아.

하지만 나의 마음의 소리는 끝내 닿지 않았고, 굶주린 숲속 친구들은 빠르게 그릇에 붙은 랩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잠깐, 탕수육은 부먹이냐 찍먹이냐.”

바로 그때, 봉식이가 중국 음식을 시켜 먹을 때마다 생길 수밖에 없는 아주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부먹? 찍먹? 그것이 무엇이냐?”

고미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친구들을 번갈아 훑어보며 질문을 던졌다.

부먹파와 찍먹파의 대립.

찍먹파는 봉식이와 토생원, 이강혁 씨, 제르보나. 넷.

부먹파는 수다르님과 한유진 씨, 이유찬 씨와 나. 역시 넷.

가르라고 해도 이렇게 가를 수 없을 만큼 정확히 반.

“크크크······. 고작 그런 것으로 갈등을 일으키다니, 역시 인간이란······.”

부먹파와 찍먹파의 갈등에 흑암은 즐겁다는 듯 음흉한 웃음을 흘려댔다.

그러나, 이유찬 씨의 한마디에 두 파벌의 대립은 아주 싱겁게 끝이 났다.

“탕수육은 두 개입니다. 부먹파는 이쪽, 찍먹파는 이쪽으로.”

“이야, 역시 이유찬이야. 센스 있어.”

한유진 씨의 칭찬에 이 집사는 한껏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입이 몇 개인데, 탕수육은 당연히 두 개지.”

친구들이 화기애애하게 양쪽으로 나뉘어 짜장을 비비기 시작하자, 중간에 선 채 눈치를 살피던 고미는 흐뭇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받아들었다.

그 지극히 평화롭고 한가해 보이는 모습에, 흑암은 도저히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이거, 먹어요.”

나는 못마땅한 마음을 뒤로하고, 물만두를 흑암에게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 같이 먹는데 굶길 수는 없지.

‘으으, 다정도 병이라고, 난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한 거냐.’

잠시 의심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던 흑암은 잽싸게 물만두 하나를 조그마한 입안으로 가져다 넣었다.

그리고는······.

“어, 어째서 나에게 이런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냐? 나는 너희의 적이 아니었더냐?”

······.

이런, 설마 만두가 취향일 줄이야.

설마 군만두도 좋아하는 거 아니야? 이러면 안 되는데?

“오오오, 검은콩! 역시 너의 혜안은 굉장하구나! 이 탕수육이라는 것도, 짜장면이라는 것도, 아주 입맛에 맞는다!”

한편, 중국 음식을 처음 맛본 고미는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맛의 낙원을 신나게 거닐고 있었다.

음, 하긴, 짜장면도, 탕수육도, 달콤한 맛이 나니까, 고미의 입맛에 딱이겠지.

칼국수도 라면도 꽤 좋아했으니, 면 요리도 입에 맞는다는 소리고.

“오오! 버섯도, 새우도, 모두 훌륭하구나!”

쟁반 짜장에 든 해물과 버섯의 맛에 고미는 연신 감탄사를 내질렀고, 부먹과 찍먹을 오가며 사랑과 평화, 정의의 사자답게 대화합의 시대를 열었다.

“흑암! 너도 이리 오너라! 삼돌이도 배가 고플테니 삼돌이도 오너라!”

“멍! 멍멍!”

그리고는 친구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혼자 물만두를 먹고 있는 흑암과 곁에 있던 삼돌이까지 불러 친히 짜장면과 탕수육을 나누어 주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친절이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죽일 듯이 싸워놓고, 왜 저렇게 잘해주는 걸까?

고미 성격에 자기를 대신해서 대균열을 지켜줄 대타를 만들려고 머리를 굴릴 리는 없고,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라 그런가······.

아니, 아마 친구들을 잃었다는 흑암의 말이 고미의 마음을 흔들었던 거겠지.

자기에게 친구가 소중한 만큼, 그 소중한 친구를 잃은 흑암이 안쓰럽게 느껴져서.

‘하여간······. 무르다니까.’

하지만 쭈뼛거리며 어색하게 음식을 받아먹는 흑암과 고미의 모습을 바라보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놀이공원, 놀이공원.’

잠시 고미가 만든 대화합의 장을 감상하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한유진 씨에게 전음을 보냈다.

고미에게 놀이기구를 태워줄 방법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바로 대(大)테이머스의 회장, 한유진 씨니까.

[ 한유진 씨. ]

갑작스러운 전음에 한유진 씨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 혹시, 고미한테 놀이기구를 태워줄 방법이 없을까요? ]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이번만큼은 테이머스의 회장님이라 해도 문제를 해결해 줄 수가 없었다.

[ 어, 그건 저도 어쩔 수가 없는데······. 펫이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하는 일은 없기도 하고······. 아니, 고미님은 펫이 아니기는 하지만, 테이머스 회원들의 펫이 그렇다는 거죠. ]

[ 그래도 어떻게 좀 방법이 없을까요? ]

이어지는 나의 질문에 한유진 씨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씨익 웃음을 지었다.

[ 아,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하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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